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190818)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십니다(삼상 10장 17-27절)

청명하늘 2019. 8. 18. 14:55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성경: 사무엘상 1017-27(423)

찬송: 321(날 대속하신; 351), 410(내 맘에 한 노래; 468)

설교: 20190818. 주일낮예배

 

 

 

무더운 날씨, 바쁜 일상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최근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경제 문제로 인한 갈등과 어려움이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분야가 수출의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반도체 품목들을 만드는 데 중요한 원료들을 그 동안 주로 일본에서 수입해 왔습니다. 일본의 기술이 좋고, 또 반도체에서는 품질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이러한 품목들을 우리나라에 수출하지 않거나 제한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일본에서 원료를 수출하지 않으면 일본도 손해가 되죠? 자기들도 손해가 되지만, 우리나라에는 자칫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품을 만들어서 언제까지 어느 정도의 물량을 수출해야 하는 약속들이 돼 있겠죠? 그런데 필요한 원료를 일본에서 수입해 오지 못 하면, 당장 물건을 만들지 못 하고, 팔지 못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만, 그보다 우리나라 기업과 상품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일본의 이번 경제보복은 한 마디로, ‘나는 몇 끼 굶을 테니, 너희들 한 번 굶어 죽어봐라. 우리 돈 덜 벌 테니, 너희들 한 번 망해 봐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개인이나 작은 모임에서도 이렇게 행동하면, 비겁하다고 손가락질 받고, 욕먹기 십상입니다. 하물며 국가간에 이런 못된 짓을 하는 것을 보면, 화도 납니다만, 일본이 우리나라를 너무 우습게 봤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20,30년 전만 해도, ‘외제라는 말이, 특히 일본’ ‘일제라는 말이 붙으면 곧 최고’ ‘완벽’ ‘무흠을 뜻했습니다. 일본의 제품이면 당연히 완벽한 기술로 만들어진 것이라 여겼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제품보다 몇 배의 돈을 지출하는 게 당연하다 했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왜 우리나라 기술이 떨어지는지에 대한 이해는 없었지만, 그것을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일본의 이번 경제보복도 이와 비슷한 생각이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제품을 안 쓰면, 제대로 물건을 만들고 팔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20,30년 전의 나라가 아닙니다. 당시는 외제’ ‘미제’ ‘일제가 곧 최고의 품질을 보장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비슷하거나, 오히려 우리가 앞선 부분이 아주 많아졌습니다. 지금은, ‘국산이라는 말이 오히려 품질과 가치를 보장하는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아주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향한 일본의 경제 보복, 이로 인한 갈등 과정에서,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들임에도 논란이 된 몇 부류들이 있습니다. 친일 발언을 내뱉는 정치인들, 지식인들입니다. 그리고 더 안타깝고 마음 상하게 하는 일은, 친일 발언을 내뱉는 자들 중에 일부 목사들과 교인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친일 발언을 한 자들, 차마 목사’ ‘기독교인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자들입니다만, 이들이 내뱉은 말들 중에 이런 말들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은 2차대전승전국이 아니다. 오히려 일본의 식민지 시절 일제와 함께 전쟁에 참여한 전범국이다. 오히려 일본이 대한민국의 독립을 인정해준 것이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대한민국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과연 어떻게 처리하실 것 같냐.” 일본이 멸망시키지 않았어도 멸망할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를 가진 나라가 조선이다. (일본에) 가봐라. 얼마나 나라가 깨끗하고 좋은지 그런 거는 배워야 한다. 국가권력에 순종하는 거는 배워야 하는 거다는 말도 설교 중에 말했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이런 말들을 내뱉는 것을 설교라고 말할 수 없죠? 설교는 자기들의 생각을, 성경을 이용해 말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삶에 적용시켜 풀이하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이름을 달고, 예배와 설교, 목사라는 이름을 달고, 이런 어처구니없는 말들을 내뱉는 것도 화가 치밉니다만, 또 이런 말들을 듣고, 감동과 은혜를 받았다며 아멘이라고 화답했을 자들의 모습에도 불편함과 분노를 지울 길 없습니다.

 

이들의 발언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다양한 각도에서 말할 수 있습니다만, 우리는 신앙인의 관점, 그리고 성경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게 중요합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의 핵심은, 일본이 우리를 구원해 주고 발전시켜 주었다는 것입니다. 바꿔 생각해 보면, 만일 일본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독립국가가 아니라, 나라를 빼앗겨 이미 사라진 나라이이거나, 혹 나라로서 존재한다 하더라도, 가진 것 없고,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나라가 되었을 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아베 총리를 찬양하며, 고마움을 모르는 우리 민족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용서를 구하기까지 합니다.

 

교회에서 예배 시간에 목사가 교인들에게 한 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십니까? 저는 이 소리를 들을 때, ‘저들은 일본이 하나님나라고, 일본의 지도자가 곧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우리나라를 흥하게도 하고, 사라지게 할 만한 능력이라면 하나님 외에 그 누구이겠습니까? 이들은 교회에 모이고, 성경을 읽고, 찬양하며 기도했지만, 이들의 생각 바탕에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게 아니고, 일본과 그 지도자를 믿고 섬기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일본이 원하는 대로, 일본 지도자가 이끄는 대로 따르면 잘되고 평안하고 성공할 것입니다. 평안과 성공과 복과 구원이 모두 일본과 일본 지도자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들어 내는 정책과 제도가 우리의 생사화복을 결정하는 것이고, 그 역할을 일본과 일본의 지도자가 해낸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가득하니, 일본의 방침을 거부하고, 맞서 싸우려는 우리 대통령을 비난하고 물러나라고 주장합니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 능력과 방향에 대해서는 각자의 시각에서 보고 평가할 것이기에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면 다음에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그 직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부정과 불법과 편법을 이용하지 않고, 다수의 국민을 위한 방향으로 운영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이 언제나 그러하듯, 나라를 이끄는 데 있어서도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방향이 잘못되면, 그 끝은 실패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비록 느려 답답하지만, 방향이 바르면, 언젠가는 다수의 국민이 바라고 원하는 지점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저는 현재 대통령의 운영 방식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대통령이 너무 원칙적으로, 바꿔 말하면, 목표한 바를 더 빨리 얻을 수 있는 길이 있는 것 같은데도, 그것을 마다하고, 원칙에 따라 더딘 길을 선택하는 점들이 좀 답답해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우리나라 많은 권력자들이 불법과 편법과 부정을 행하고, 이 때문에 전직 대통령들이 임기 이후에 감옥에 갇히는 사례가 몇 번 반복되었습니다. 전직 대통령이 옥에 갇혔기 때문에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직에 있던 사람들이 감옥에 갇힐 만큼 온갖 부정과 부패에 앞장섰다는 것이고, 당연히 정치, 경제적으로도 너무나 큰 손해와 후퇴를 만들어 냈기에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느리다 못 해 제자리인 것처럼 보이는 지금의 운영방식과 방향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지금의 대통령이 우리를 완벽한 행복과 안식으로 이끌어 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나라를 이끄는 데 있어 실수와 흠이 전혀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통령만 믿고 따르면, 고난과 고통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 노련해지고, 지혜로워서 전국민이 찬성하고 만족할 만한 정책을 편다고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우리 삶이 온전해지고 행복해질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 기업인들이 만들어 내는 것은 조금 더조금 덜의 차이일 뿐입니다. 과거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법에 따라 정직하게 정말 국민들을 위한 정책을 펼수록 조금 더 나아질 것입니다. 국민들이 느끼는 고통이 조금 덜해질 것입니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잘못된 방법과 방향으로 이끌면, 대다수의 삶이 조금 더 나빠지고 힘들어질 것입니다. 만족하며 즐겁게 살 만한 사람들이 조금 적어질 것입니다. 정치가, 권력자들이 우리의 삶 전체를 좌우하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정치가와 권력자들, 기업가들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특히 일본이나 그 지도자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사울이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 뽑히는 과정이 기록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이스라엘의 정치와 종교를 총괄해 이끌었던 사무엘 선지자가, 백성들을 미스바라고 하는 지역에 모으고, 백성들의 요구대로 왕을 뽑게 됩니다.

 

그런데 이를 앞두고 사무엘은, 왕을 세우고,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제도가, 단순히 제도가 바뀌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버리는 잘못된 선택임을 선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는 왕이 다스림으로써, 고난과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습니다. 삶을 결정하는 능력이 왕의 지도력에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집트에서 민족 전체가 종으로 살 만큼 보잘것없는 이스라엘 민족을, 모든 억압과 재난과 고통에서 구원하신 이는 지혜와 능력이 가득한 왕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종으로 살던 나라에서 벗어나고, 더 이상 억압과 고통을 받지 않을 수 있었던 까닭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을 통치하시고, 이끄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 동안 보아왔던 왕들이 그들의 나라를 강하게 하고 부자로 만들어 주는 것으로 착각하고, 다른 나라들처럼, 그 백성들처럼 되고 싶다며, 왕을 세워 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요구가 어리석고, 또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모두 잊어버리는 배은망덕한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고집이 포기를 모른다는 것을 아셨기에 왕을 세우게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과 간섭을 뒤로하면서까지 고집해 얻은 왕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왕다운 모습을 보여줍니까? 백성들이 그토록 바라고 원하던 대로 사울이 왕으로 세워졌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적으로부터 지켜줄 만한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을 강한 나라로 만들어 줄 만큼 능력과 지혜가 뛰어난 것 같지도 않습니다. 키는 다른 사람들보다 훌쩍 크고, 멋진 외모를 가졌지만, 그러면 뭐합니까? 사울의 큰 키와 멋진 외모가 백성들의 안전과 행복을 보장해 주지 못 합니다. 사울 본인 자신부터, 무서운 적이 공격해 온 것도 아니고, 왕으로 뽑힌 것에 부끄러워 짐짝들 사이에 머리를 처박고 떨고 있는데, 이런 사람이 누구를 구하고 지켜주고 도와주겠습니까? 자신 한 몸도 건사하지 못 하는 이가 수많은 백성들을 어떻게 지켜주겠습니까?

 

하나님이 아닌 왕이 자기들을 지켜줄 거라는 기대로 왕을 세워 달라고 고집했지만, 막상 왕이 세워진 후의 평가는, 본문 27어쩐 불량배는 이르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제도도 우리의 삶을 완벽하게 만들어 주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정치가들의 정치력이 아니고, 권력자들의 제도가 아닙니다. 일본의 파렴치한적인 억압과 통치가 아니었고, 또한 아닙니다. 이 땅에서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하는 고통과 재난 가운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은 좋은 제도와 정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능력입니다.

 

지난 2주에 걸쳐서 태풍이 연이어 세 개가 발생했고, 각기 우리나라, 중국, 일본으로 향했습니다. 이 태풍으로부터 피해를 겪지 않을 수 있는 길이 무엇입니까? 우리나라처럼, 오던 태풍마저 사라지는 게 피해를 입지 않는 유일한 길입니다.

 

강한 태풍은 그 나라가 어떤 나라든지, 그 나라를 누가 이끄는지를 가리지 않고 피해를 입힐 것입니다. 건물과 시설이 망가질 수도 있고, 사람이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습니다. 유능하고 좋은 지도자가 있고, 좋은 정책으로 안전장치들을 잘 마련한다고 하더라도, 그래봤자 태풍의 피해를 조금 덜 입는 정도지, 피해를 전혀 안 입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 하나만 보더라도, 우리 삶은 정치인이나, 제도나 정책을 통해 보장받고 보호를 받는 게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부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정도 수준으로 살 수 있게 된 것은, 일본이 우리나라의 땅을 짓밟고, 젊은 여성들을 끌고 가 정신 위안부로 부려먹고, 수많은 젊은 청년들을 끌고 가 강제 노동을 저지른 덕택이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온전한 사과와 보상을 하지 않는 일본의 사악함과 오만함 덕분이 아닙니다. 박정희가 국민들의 목에 칼을 드리우고, 20년간 이끌고 간 덕분이 아닙니다. 전두환이 수많은 광주시민을 죽이고 이끌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또한 좋은 지도자들의 정책 덕분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사람의 지식과 능력을 기초로 한 정치, 정책, 제도에 시선을 고정하지 말고, 그 뒤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인도에 시선을 고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람의 것에 모든 것을 바치면, 삶의 마지막 자리에서 빈털터리로 남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에 소망을 두고, 말씀대로 삶을 뿌리며 노력하며 살면, 이 땅의 마지막 자리는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온 세상은 하나님이 만들어 가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모든 것을 뜻대로 이끌어 가시고, 온전하고도 영원한 복과 평안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세상의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에 휘둘리다 실패하지 말고,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들에 구원과 온전한 삶이 있는 것처럼 여기지도 말고, 오직 우리의 영원한 힘과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만을 굳게 믿고 살아감으로써,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 속에 날로 복되며, 참되고도 영원한 안식과 삶을 누리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