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1)가치를 알고 선택할 줄 아는 지혜(삼상 16장 14-23절)
가치를 알고 선택할 줄 아는 지혜
성경: 사무엘상 16장 14-23절(구 435쪽)
찬송: 254장(내 주의 보혈은; 통186), 406장(곤한 내 영혼; 통464)
설교: 20191201.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2006년도에 만들어지고 많은 인기를 끌었던 영화 중에 [타짜]가 있습니다. ‘타짜’는 ‘노름판에서 남을 잘 속이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라는 뜻인데, 노름판에서 남을 속이고 돈을 따는 내용입니다. 물론 영화라서, 더 재밌게 만드느라 과장도 된 것도, 만들어 낸 내용도 많겠지만,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이 있습니다. 장병윤이라는 분입니다.
이분의 이야기는 다양한 방송에서 나왔습니다. 노름에서 속임수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려줌으로써, 노름을 하면 무조건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주는 역할로 많이 등장했습니다. 또 그분이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인간극장」을 통해서도 소개되었습니다.
저는 노름에 대한 지식도 경험도 없습니다만, 노름판에 한번 발을 내디디면, 대부분 또 하게 된다고 합니다. 딴 사람도 더 따기 위해 노름을 계속 하게 되고, 돈을 잃은 사람도 잃은 돈을 되찾기 위해서 다시 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분도 그렇게 시작되어 노름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도박 기술자를 찾아가서 몇 달 동안 타짜 기술을 배웠다고 합니다.
이제 기술이 있으니 활동 무대가 전국으로 넓혀졌고, 그만큼 판돈도 커졌습니다. 이분이 한참 전국을 돌며 도박판을 벌일 때, 하룻밤에 벌어들이는 돈이 몇 억 원이었다고 합니다. 엄청나죠? 보통 사람은 몇 년이 아니라, 평생 일해도 벌어들이기 어려운 돈을 도박 몇 판으로 벌어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후에 완전히 도박을 끊고, 고향 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고구마 농사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물고기를 잡는 게 얼마나 돈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넉넉한 삶을 살 정도는 안 될 것입니다. 작은 아파트에서 살면서, 여느 사람들처럼 돈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한때는 하루에 몇 억 원을 벌어들인 적도 있고, 우리나라 최고의 타짜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익힌 기술이 얼마 동안 사용하지 않는다고 갑자기 사라지는 게 아니죠? 마음먹고 조금만 연습하면, 기술을 발휘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또 그 기술을 이용하면, 거의 틀림없이 돈을 쉽게 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분은 쉽고 편한 길을 마다하고, 하루에 몇 만 원 벌기 위해 차가운 강물에 들어가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고, 수익내기 어려운 고구마 농사 등 힘겨운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이분이 최고 도박 기술을 익혔고, 돈을 쉽게 벌었습니다. 쉽게 번 돈은 쉽게 쓰이기 마련이죠? 어디에 많이 쓸까요? 일반적으로는 술, 여자, 마약 등 쾌락을 위해 많이 쓰입니다. 이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아내 되는 분은 집을 나가버리고, 8개월 된 딸은 해외입양하게 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후에는 신내림을 받아 귀신을 섬기기도 했다가, 귀신에 속았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가정을 꾸렸고, 땀 흘리며 수고해 잡은 물고기 몇 마리로도 감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박에 비하면, 고기를 잡고, 고구마를 재배하는 것은, 시간과 수고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이 들어가면서도,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은 비교가 안 될 만큼 작습니다. 그럼에도 도박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고, 감사하며 산다고 합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 하죠? 크고 작은 일을 끊임없이 선택해야 합니다. 더불어 선택하면 반드시 다른 쪽이나, 반대쪽을 버려야 합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송현 마을에서 무안읍을 향해 가든지, 청계면 소재지를 향해 가든지 선택해야 합니다. 무안읍 방향을 선택한다는 것은, 면소재지로 가는 걸 버린다는 것을 뜻합니다. 반대로 면소재지로 간다는 것은, 무안읍으로 가는 걸 포기한다는 뜻입니다. 무안읍을 가면서, 동시에 청계면 소재지로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전직 타짜였던 분은 무엇을 선택했고, 무엇을 버린 것일까요? 젊어서, 도박 기술을 익혀 많은 돈을 벌고 다녔을 때는, 돈과 술과 쾌락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면서 평범한 삶의 가치를 잃었고, 가정을 버렸습니다. 도박으로 돈과 술과 마약을 얻고 즐길 수는 있지만, 가정과 평범한 삶을 버려야 합니다. 나중엔 돈과 쾌락을 포기했지만, 땀의 가치와, 가정과 평안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분의 삶이 어떤 것 같습니까? 남의 삶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고, 그럴 만한 능력도 없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지혜로운 분인 것 같습니다. 단지 이익이 되는 쉬운 길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과거 경험과 실패를 바탕으로, 나쁜 것을 버리고, 좋은 것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삶이라는 게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대신에 또 무엇인가를 버려야 한다면, 좋은 것을 선택하고, 나쁜 것을 버리는 것은 지혜로운 일입니다. 이 선택이 쌓이고 계속되면 결국 큰 가치를 지닌 삶이 됩니다. 반대로 나쁜 것을 얻었지만, 좋은 것을 버린 선택은 결국 망가지고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분은 많은 돈과 쾌락을 버렸지만, 가치가 비교할 수 없이 큰 가정과 평범한 일상을 선택했습니다. 더불어 이 땅의 삶을 이끄시는 하나님을 믿고 선택했습니다. 나쁜 것을 얻으려 중요한 것들을 버렸던 길에서 돌아서서, 좋은 것을 위해 가치 없는 것들을 과감하게 버릴 줄 아는 지혜로운 길을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선택하는 내용이 조금씩 다르긴 하겠지만, 선택과 포기의 갈림길에 서고, 그리고 그에 따라 다른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는 의미에서는 우리 모두 같습니다. 예외 없이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리느냐의 갈림길에 선다는 것이고, 선택과 버림에 따라 우리 삶의 과정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에서는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삶의 기로에서, 좋은 것을 택하고, 나쁜 것을 버릴 줄 알면, 시간이 흐를수록 기쁘고도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책임지고 함께하시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쁜 것을 선택하고, 좋은 것을 버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면, 사울처럼, 지옥에서 사는 것과 같은 삶을 살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아 사탄의 손에 놀아나게 되는 비극적이면서 고통스럽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된 사울은, 하나님의 선택과 기대를 저버립니다. 하나님의 뜻과 명령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욕심과 욕망을 채워 가는 데만 급급합니다. 오직 제사장만이 주관할 수 있는 제사를 급한 마음에 직접 드린 것 때문에, 왕의 자리가 다른 사람에게 주어질 거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이것은 질책인 동시에 경고의 말씀이었습니다.
사울이 믿음이 있고, 하나님의 뜻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면, 이런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특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울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짓고 맙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뜻과 엄격하심을 드러내라고 말씀하셨음에도, 적의 왕을 살려두고, 살진 짐승들을 살려둠으로써, 자기 욕심을 채우는 전쟁으로 바꾸고 말았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결국 사울을 포기하십니다. 경고마저 흘려버리는 사울을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시겠습니까? 이렇게 사울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라는 영광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왕의 자리는 이미 다윗이라는 사람에게 약속되고 말았습니다. 이후에도 사울은 왕의 자리에 앉아 있긴 했지만, 이미 하나님의 버리신 왕의 자리가 평탄하고 복될 리 없습니다.
사울에게서 하나님이 떠나버리시자, 그 자리를 사탄이 차지합니다. 왕이란 나라에서 가장 높은 자리입니다. 원하는 것을 가장 많이 가질 수 있고, 가장 좋은 것들을 누리고, 가장 좋은 것들을 먹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하지만 악령에 붙잡힌 순간, 왕이 가진 모든 것이 의미 없고 하찮은 것으로 변질되고 맙니다. 악령에 붙잡힌 사람이 화려하고 멋진 옷으로 치장해 봤자 악령의 손에 놀아날 수밖에 없습니다. 악령에 휘둘리는 사람에게, 맛있는 음식이 무슨 의미가 있고, 많은 금은보화가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부릴 수 있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악령에 휘둘리게 되면, 그 누구로부터도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사울이 악령에 고통을 받자 부하들이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하자고 말합니다. 악령이 사울을 괴롭힐 때마다, 수금을 연주하면 악령이 떠나게 될 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앞에서 다음 왕으로 선택되어 기름 부음을 받은 다윗이 추천되고 선택됩니다.
그런데 본문 18절에서 다윗을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라고 소개합니다. 다윗은 수금 연주를 잘 했고, 용기도 있고, 싸움도 잘 하고, 게다가 말도 잘 하고, 외모도 잘 생겼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에 대한 이 소개를 단순히 다윗이 얼마나 뛰어난 사람이라고 읽고 지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여기에서 사울 왕과 그의 부하들이 무엇을 선택하고 버리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사울이 찾는 사람은 수금 연주를 잘 하는 사람이고, 다윗을 추천하는 부하도 역시 다윗의 연주 실력을 가장 먼저 봤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사울에게 필요한 사람이 수금 연주를 잘 하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일까요? 수금 연주만 잘 하면, 악령이 떠나고, 고통이 해결될까요?
사울이 지금 고통을 당하는 까닭은 악령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악령이 든 까닭은 하나님이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악령을 “하나님이 부리시는 악령”이라고 표현되어서, 하나님이 악령을 이용해 사울을 괴롭히시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악령과 함께하시거나, 이용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녀들과 함께하시고 악의 세력으로부터 지켜주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의 길을 가는 것도, 사탄의 방해와 공격이 없어서 가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믿는 자녀와 함께하시고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울처럼 하나님이 포기하시고 버리시면, 그 누구의 도움과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악령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됩니다. 사울의 입장이 이렇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고통의 원인을 알고, 이 문제를 뿌리까지 깨끗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찾을 게 아니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사무엘이라는 선지자가 있으니, 가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듣고, 돌아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또 좋은 부하라고 하면, 왕에게 수금 잘 타는 사람을 찾아 추천하는 게 아니라, 왜 악령에 들었는지 까닭을 말해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울이 중요한 것을 외면한 채, 전혀 중요하지 않는 것에 목매자, 부하들조차도 거기에 휩쓸리고 말았습니다. 다윗이 수금을 연주할 때마다 악령에게서 잠시 벗어날 수는 있었지만, 그러나 다윗이 쉬지 않고 수금을 연주할 수는 없습니다. 수금을 통해 악령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은 일시적이고 부차적인 방법에 불과합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이 수금을 연주하면, 사울에게서 악령이 떠나간 까닭은,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하심 때문이지, 단순히 다윗이 수금 연주를 기가 막히게 잘 해서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라는 가장 중요한 것을 가장 마지막에 말합니다. 수금을 잘 타는 것을 가장 먼저 말한 것과 비교해 보면, 사울 왕과 그 부하들이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울과 부하들이 모두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택하면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영광스럽게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 세워진 사울이 왜 결국 실패했는지 이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이 나쁜 선택을 반복했기 때문입니다. 살게 하는 선택을 반복하면 살게 되듯이, 실패하는 선택을 반복하면 망하게 됩니다. 좋은 것을 선택하고, 나쁜 것을 버리면 그 삶은 성공과 복의 길로 인도되고, 좋은 것을 버리고, 나쁜 것을 선택하면 결국 실패와 좌절을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도 끊임없이 선택의 자리에 처하게 됩니다. 무엇을 선택하고, 대신에 다른 무엇을 버려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지혜롭게 선택하고, 버릴 것을 버릴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면, 우리의 앞날은 복과 평안과 영생이 보장된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하지 않는 것, 부차적인 것, 세상 것에 매달리고, 하나님의 길에서 멀어지면, 실패와 절망만 남는 삶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가치 있고, 생명 있고, 복과 은혜가 보장된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방법을 택하고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사울은 돈이 없어서 실패한 게 아니었습니다. 권력이 없어서 악령이 든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가장 먼저 높은 자리에 두고, 선택할 줄 아는 지혜가 없었기 때문이고, 욕심과 욕망에 휩싸이느라 믿음을 버리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생명과 복과 구원은 세상에 있지 않고, 이 세상에서 지금 잘 먹고, 잘 입고, 잘 누리는 것에 있지 않고, 하나님이 함께하심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살 길도 하나님이 함께하심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장 먼저 기억하고 행해야 하는 것도 다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심입니다. 이 가치를 알고 선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복되고 구원을 받습니다. 이 가치를 잊고, 세상을 선택하며 사는 사람은 실패와 절망으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구원이 되시고,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과, 다음 세상에서의 영생까지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인정하고,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의 것을 선택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서, 날이 갈수록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날마다 풍성히 누리는 사람, 이 땅에서의 복이 약속되고,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생이 약속된 삶을 살아 나아가는 믿음의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