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200329)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따라 사십시오(삼상 22장 6-23절)

청명하늘 2020. 3. 29. 16:02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따라 사십시오

 

성경: 사무엘상 226-23(446)

찬송: 263(이 세상 험하고; 197), 312(너 하나님께; 341)

설교: 20200329.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로 어떤 처지나 상황이 때에 맞지 않음을 이를 때사용하는데 지금의 상황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하는 말은 별로 없을 듯합니다.

 

3월말이기에 겨울 동안 느려졌던 농사와 일상이 많아지고 바빠질 시기입니다.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것이 느려지다 못 해 멈추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그 동안 당연하게 여기다 못 해, 일상에서 여러 불평과 원망을 안고 살았는데,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만나 대화하고, 식사하고, 교제를 나누는 일상이, 우리의 생각만큼 당연하지 않는 일임을 절실히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감사하게도 우리나라는 많이 진정되고 있고, 또 완치되어 격리 해제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확진된 사람의 절반 이상이 완치 판정을 받고,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감염된 사람 수에 비해 사망률도 그리 높지 않습니다. 이런 추세로 가면, 곧 끝날 수 있겠다는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기도 합니다.

 

반면에 지금은 유럽 여러 나라들에서 수없이 많이 발생하고 있고, 미국은 확진 환자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루에도 16,000명이 넘는 환자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에서는 하루에만 수백 명씩 죽고 있고, 점차 확산될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정확한 판단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 전염병 환자가 많이 발생한 나라들 대부분이 잘 사는 나라들입니다. 경제 순위를 매기면, 거의 틀림없이 아주 높은 순위에 오르는 나라들입니다. 미국, 중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인도, 이탈리아, 브라질, 캐나다, 러시아 등은 우리나라보다 더 많이 생산해 내는 나라들입니다. 보통 선진국으로 부르던 나라들입니다.

 

우리나라도 저런 나라들처럼 잘 사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들을 어려서부터 끊임없이 들어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 수준에 걸맞지 못한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과 시민 의식에 대한 실망감과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런데 이번 어려움을 통해, 그런 기준과 기대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선진국민이라 일컬어지던 이들이, 발전하고, 더 높은 수준의 의식을 가진 게 아니라, 그 동안 그저 잘 포장되고 숨겨졌을 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위기 앞에서는, 의식 수준이나 생활 수준과는 별개로 얼마나 이기적이고 비겁해지는지 여실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외출과 이동 제한 명령이 내려지자, 곳곳에서 극심한 사재기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어디를 가나 물건 사는 것에는 큰 불편을 못 느낍니다. 돈이 없어 못 사지, 물건이 없어 못 사는 경우는 없습니다. 마스크 하나만 구입하기 어려울 뿐, 다른 것을 구입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만, 다른 나라들에게는 큰 충격을 다가온다고 합니다. 인터넷에 세계 곳곳에 있는 사람들, 또 우리 교포들이 현지의 상황을 찍어서 많이 올려놓는데, 사재기하지 않는 나라가 없습니다. 특히 고기, 달걀, , , 물은 동나서 구하기 너무 어렵다고 합니다.

 

사재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화장지 하나를 두고 싸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영국의 간호사가 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영상이 올라와 안타까움을 더해 주기도 했습니다. 이 간호사는 중환자실에서 48시간, 즉 이틀을 일하고 퇴근해서 마트에 갔는데, 먹을 게 없었다는 겁니다.

 

사재기가 심각한 나라들 대부분이 그 동안 잘 사는 나라,’ ‘발전된 나라,’ ‘시민 의식이 높은 나라로 인정했던 곳들입니다. 먹고 생활하는 데 어려움을 안 느끼는 나라들입니다. 그럼에도 사재기를 하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들이니, 평상시에는 식료품 등을 사는 것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입니다. 전염병이 확산된다고 해서, 다른 때보다 음식을 몇 배 더 먹는 것도 아니죠?

 

이것을 보면, 전염병 때문에 물건을 사기 어려워질 것을 염려해서 미리 사서 집에 쌓아놓기 위해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좀 다른 표현으로 보면, 자기 좀 더 안심하기 위해서 극심한 사재기를 하는 것입니다.

 

사재기 하는 사람들이 남의 물건을 힘으로 빼앗는 것도 아닙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도 아닙니다. 불법도 아닙니다. 물건 값을 정당하게 지불하고 사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것들이 돈으로 계산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흔한 표현으로 내 돈 내고, 내가 산다는데, 뭐가 잘못되었냐?”고 항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재기가 나쁜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또 신앙을 가진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겠습니까?

 

사재기가 나쁘고 잘못된 까닭은 무엇보다도, 남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과 시간과 여건이 되는 사람들이 앞날을 염려해서, 필요한 것 이상으로 많이 사서 쟁여 놓으면, 정말 어렵고 급한 사람들은 구할 수 없습니다. 가진 사람들은 그냥 좋은 것 나쁜 것을 나누고, 맛있는 것 맛없는 것을 나누는 여유를 부릴 수 있겠지만, 못 가진 사람들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재기는 남의 굶주림과 어려움과 희생 위에 세워진 욕심덩어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자기 욕심을 위해 사는 사람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었습니다. 다윗도 견디다 못 해 이곳저곳으로 도망 다니게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도망했던 곳이 아히멜렉을 비롯한 여러 제사장들, 요즘으로 말하면 목회자가 있는 놉이라는 땅이었습니다. 다윗은 이곳에서 제사장의 도움으로 배를 채우고, 칼을 받았는데, 마침 그곳에 있던 도엑이라는 사람이 이를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이 이어집니다. 사울 왕이 부하들을 불러놓고 닦달합니다. 다윗이 부하들과 함께 근처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자신에게 알려주는 사람이 하나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충성을 보이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때 도엑이 나서고, 자신이 봤던 것들을 그대로 사울 왕에게 알렸습니다. 사울은 이 이야기를 듣고, 놉에 있던 모든 제사장들을 불러들이고 심문합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이 다윗에게 협력하고, 도망한 것을 알고도 자신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모든 제사장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하지만 호위병들이 이 명령을 따르지 않습니다. 호위병이라고 하면, 왕의 곁에서 가장 충성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제사장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하나님의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기에 이 명령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왕이 도엑에게 명령했더니, 주저하지 않고 가서 제사장 85명을 죽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곳에 있던 사람들과 짐승들까지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딱 한 사람 아비아달이라는 제사장 하나만 살아서 다윗에게 피하고, 그 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여기에서 도엑이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도엑이 성공한 사람 같습니까? 실패한 사람 같습니까?

 

앞장(21) 7절에서는 그 날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는 도엑이라 이름하는 에돔 사람이요 사울의 목자장이었더라는 말로 도엑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울의 목자장이라는 말은, 사울 왕의 가축을 기르는 여러 목자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왕의 재산을 총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로 본다면, 대통령의 재산을 총괄하는 책임자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정도만 되어도 크게 성공한 거죠?

 

게다가 이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에돔 출신이었습니다. 자기가 나고 자란 나라에서 그 정도의 지위에 오른다는 것도 대단한 성공이라 할 수 있는데, 심지어는 다른 나라 사람으로서 그 정도에 올랐으니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호위병들조차 복종할 수 없었던 왕의 명령에, 주저하지 않고 제사장을 죽인 것도 이 같은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어렵고 불리한 상황이니, 남이 하지 않는 일, 꺼려하는 일을 앞장서야만 성공할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더 잘되기 위해서 남이 싫어하고, 꺼려하는 일을 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신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고, 누군가를 해치거나 희생시켜야 하는 상황이라면 달라집니다. 남에게 피해를 끼칠수록 내가 높아질 수 있고, 남을 해칠수록 내가 잘될 수 있다면, 그것은 성공이 아니라 결국 실패와 죽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도엑이 정말 무서운 것은 평소에는 꽤 신앙이 좋은 사람처럼 보였을 거라는 점입니다. 특별한 절기가 아님에도 도엑은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해서, 요즘으로 보면, 예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평소 도엑은 꽤 신실하게 행동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위선과 가면은 오래지 않아 드러났습니다. 왕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기회, 왕으로부터 앞날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기회가 오자, 제사장들을 죽이는 일에 한 치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제사하지 않는 때에, 특별히 제사장이 있는 자리에 찾아가고, 제사하는 등의 모습이 바른 믿음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속에 감춰져 있던 욕망과 거짓과 사악함을 포장하기 위한 것에 불과했음을 여실히 보여준 것입니다.

 

요즘처럼 자기가 드러나야 하고, 자기가 높아져야 하는 시대, 그러기 위해서는 남과 경쟁해야 하고, 남을 눌러야 하고, 남을 희생시켜야 하는 때에, 도엑을 성공의 지름길을 걸었던 사람으로 판단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른 믿음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따라 살기로 다짐하는 신앙인들이라면, 절대로 버려야 하는 길입니다.

 

삶에서 좀 쉽고 편한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이 우리의 앞날을 편하게 만들 수 있고, 성공과 명예를 보장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과 더불어 악행과 거짓과 남의 희생이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겠습니까?

 

얼마 전에 사택을 짓는 문제로 기도하며 노력했죠? 그때 몇 목사님으로부터, 어느 큰 교회에 가서 도움을 청하는 게 어떻냐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침 그 교회에서 어려운 교회를 돕기 위해 적지 않은 금액을 정했다는 것입니다. 그 금액만 더해 주면, 우리가 계획했던 사택을 충분히 짓고도, 다른 일까지 더불어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솔깃한 제안이었고, 몇 분의 도움을 거치면 가능성도 충분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모두 거절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그 교회는 이미 다른 교회, 우리보다 작고 어려운 교회의 사택을 지어주려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어떤 사정으로 잠시 주춤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절반 가까이 모아놨으니, 그 틈을 잘 이용하면, 우리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어려우니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그러나 우리가 멋진 집을 지으려, 남의 집을 무너지게 만든다면, 잘못된 것 아니겠습니까? 내 집을 튼튼하게 세우기 위해, 남의 기둥을 빼오고 흔들리게 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아무리 튼튼하고, 멋진 사택을 짓는다고 해도, 그런 곳이 어찌 하나님의 은혜와 복호를 받는 곳이 되겠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이 보장하시고 함께하시는 집이 되겠습니까?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누군가가 희생하고, 죽어가고, 내가 편하기 위해 누군가가 불편하고 손해가 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거부해야 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이 용납하시지 않는 길입니다. 내 인생의 성공을 위해 누군가의 삶을 무너뜨려야 한다면, 그것은 좋은 기회가 아니라, 주저하지 않고 돌아서야 하는 길입니다. 실패하고 망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이들에게 복 주신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도엑처럼 교회에 출석하고, 예배만 드린다고, 기도하고 헌금한 한다고 복 주신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시편 52편은, 오늘 본문의 사건을 겪은 다윗이 지은 시인데, 3-7절에서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 간사한 혀여 너는 남을 해치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 그런즉 하나님이 영원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붙잡아 네 장막에서 뽑아내며 살아 있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 의인이 보고 두려워하며 또 그를 비웃어 말하기를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깐 잘된 것 같고, 잠깐 높아지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미워하시고, 영원히 멸망시키신다는 것입니다. 평소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이었음에도, 하나님은 그런 사람의 뿌리를 빼내시겠다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보장하시는 집은 다른 사람 위에, 남의 것 위에 세우는 집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삶은, 남을 짓누르고 높이 우뚝 서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복 주시는 믿음은, 종교생활의 모습은 있으나, 악과 거짓 위에 세워가는 삶이 아닙니다. 악과 거짓을 멀리하고, 좀 늦어지는 것 같고, 돌아가는 것 같아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며, 하나님의 응답과 복을 기다리며, 행하며 사는 삶입니다. 이런 삶을 하나님은 오늘도 보장하시고, 이렇게 살기로 애쓰는 자녀를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욕심과 욕망이 더욱 커지는 어려운 때를 살면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기억하고, 도엑과 같은 생각, 언행은 모양이라도 철저히 버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이 보장하시고, 복을 베풀어 주시는 자녀로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