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200920)욕심과 교만을 버려야(삼하 2장 24-32절)

청명하늘 2020. 9. 20. 13:28

욕심과 교만을 버려야

 

성경: 사무엘하 224-32(465)

찬송: 486(이 세상에 근심된; 474), 446(주 음성 외에는; 500)

설교: 20200920.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과 재료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죠? 그런데 과학적으로는 모든 음식에는 독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이라고 표현하지만, 먹고 당장 아프거나, 심하면 죽는 정도 되면 당연히 안 먹겠죠? 표현은 이렇지만, 음식 속에 담긴 독은 건강하면 큰 부작용 없이 충분히 소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음식 속에 담긴 독이 몸을 해치는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이 때는 말 그대로 이 되는데, 먼저는 정해진 용량을 지키지 않고, 너무 많이 먹었을 때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인삼이 좋은 약재로 생산되고 이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만이 아니라, 여러 나라에 엄청난 금액으로 수출되곤 했습니다. 요즘이야 워낙 많이 생산되어 가격이 많이 내려가고, 그만큼 하찮게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약효가 뛰어나다는 사실은 인정받고 있죠? 이렇게 우리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인삼을 무조건 많이 먹으면 우리 몸이 더 좋아질까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몸에 열이 많은 사람에게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하죠? 또 적정량을 넘어서면, 여러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인삼만 그런 게 아니죠? 약재나 음식이나 비슷합니다.

 

보통은 음식으로서 맛있고, 몸에 영향을 공급하는 좋은 역할을 함에도, 독이 되는 두 번째 이유는 알레르기가 있을 때입니다. 알레르기 종류는 워낙 많습니다만, 음식과 관련해서 특히 그렇습니다. 땅콩, 우유, 달걀, 갑각류, 복숭아, 갈치, 낙지 등 수없이 많습니다.

 

이런 음식은 없어서 못 먹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죠? 하지만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은 어지럼증, 가려움증, 복통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자칫 목숨까지 위태롭게 합니다. 저도 몇 가지 알레르기가 있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이 지역이 낙지로 유명하죠? 그래서 외부 손님들이 오면, 낙지 음식점을 많이 갑니다. 가기 전에 낙지 알레르기 있다고 일일이 설명하고 안 갈 수도 없고, 가면 먹을 수도 없어서 여간 난처한 게 아닙니다. 그럴 때마다 좋은 일 하는 셈치곤 합니다. 저와 가까이 앉은 분들은, 비싼 낙지 음식을 두 배로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낙지를 많이 먹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조금 먹었을 때는 배앓이를 심하게 앓고 끝나지만, 알레르기 있는 음식을 먹고 자칫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특히 땅콩 알레르기를 앓는 분들은 많고, 또 숨을 쉬지 못 해 사망할 수도 있을 만큼 위험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음식 자체는 좋고, 꼭 필요합니다.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이 살 수 있게 합니다. 음식이 없으면, 먹는 즐거움이 없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더 이 상 이 땅에서 살아갈 방법이 없죠? 그럼에도 이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오히려 몸을 해칠 수도 있고,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습니다.

 

어디 음식만 그렇겠습니까? 사실 이 땅에 있는 대부분이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체를 귀하거나 천하다고 구분되기도 하지만, 자체보다는 그를 이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가치가 전혀 달라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도, 좋은 재능을 가졌음에도, 오히려 이를 잘못 이용함으로써 결국 가장 귀한 목숨을 잃는 아사헬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본문의 상황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사울이 죽고, 7년 반가량 이스라엘 민족이 둘로 나뉘게 됩니다. 남쪽에 있는 유다 지파는 다윗이 왕이 되어 다스리고, 나머지 열한 지파는 사울의 아들이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다윗이 둘을 통일하게 되는데, 이때까지 약 7년 반이 걸렸습니다.

 

이렇게 둘이 싸우는데, 남쪽 국방장관의 동생인 아사헬이 북쪽 국방장관을 뒤쫓았습니다. 북쪽의 국방장관인 아브넬은 뒤에 바짝 쫓아오는 아사헬을 죽일 수 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 민족의 남북으로 생각해 보면, 북한의 국방장관이 남한 국방장관의 동생을 죽이지 않으려 하는 것과 같습니다.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나, 그 가족을 죽이면, 문제가 커질 뿐만 아니라, 나중에 통일되었을 때 입장이 곤란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넬이 나를 쫓아오지 마라. 내가 너를 죽이면 너의 형을 어떻게 대할 수 있겠냐? 차라리 아무 군인이나 잡아 싸워 전적을 세워라며 경고하고 충고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아사헬은 아브넬의 충고를 전혀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아브넬은 하는 수 없이 창을 휘둘러서 뒤에 쫓아오는 아사헬이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요압은 자기 동생이 아브넬에게 죽은 것에 앙심을 품고, 결국 음모를 꾸며 아브넬을 죽여서 이스라엘이 통일되는 데 큰 걸림이 될 뻔하기도 했습니다. 또 이때 요압의 권력이 워낙 강해서 다윗이 벌을 내리거나 처리하지 못 했습니다만, 다윗이 죽기 전에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으로 남깁니다.

 

열왕기상 25,6절에서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그가 그들을 죽여 태평 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를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의 백발이 평안히 스올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지난주에는 자기와 자기 가족의 생명만 귀하게 여기고,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이들의 모습을 살펴봤습니다만, 오늘은 아사헬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사헬의 가장 큰 특기는, 본문 18아사헬의 발은 들노루 같이 빠르더라는 말씀처럼, 달리기를 아주 잘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수풀에서 노루 한 마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가까이 가자 노루가 놀라 도망가는데, 너무 빨라 크게 놀랐습니다. 순식간에 저 멀리까지 도망가버렸습니다.

 

아사헬이 들노루 같이 빨리 달렸다고 특별히 기록할 정도면 다른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리기를 잘 했다는 뜻입니다. 한 편으로는, ‘달리기 잘 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하냐?’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전쟁에서 가장 필요한 기술 중 하나죠. 달리기를 잘 하면, 내가 공격할 때 공격하고, 도망해야 할 때 쉽게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는 더 큰 장점입니다. 그런데 아사헬은 이 장점 때문에 오히려 죽게 되었습니다. 장점이 오히려 죽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만약 아사헬이 달리기를 특별히 잘 하지 못 했다면, 아브넬을 잡으려 끝까지 쫓아가지는 않았겠죠? 좀 가다가 안 될 것 같으면 멈추거나 아브넬의 말을 듣고 포기했을 터입니다.

 

분명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아사헬은 왜 빠른 다리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까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욕심을 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자만했기 때문입니다.

 

아사헬이 적군의 국방장관을 뒤쫓은 까닭은 공을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낚시를 한다고 해도, 피라미 몇 마리 잡는 것보다는 크고 귀한 고기 잡는 게 좋죠? 전쟁에서 공을 세우는 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위가 낮은 군사 몇 명을 물리친 업적보다는, 지위가 높은 사람을 사로잡는 게 훨씬 더 좋습니다. 아사헬도 이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곳에 적군이 많이 있음에도, 오직 적군에서 지위가 가장 높은 아브넬만을 향했습니다.

 

아사헬은 다른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리 달릴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전쟁에서는 무기를 잘 다루는 일만큼 큰 장점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좋은 무기였지만, 아사헬은 오히려 이 때문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적을 이기는 무기가 되지 못 하고, 오히려 자신을 망치는 흉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욕심에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사헬이 특별히 달리기를 잘 하지 않았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적의 수장을 잡으려 하지 않았겠죠? 자기가 특출나게 빨리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아브넬을 잡으려 혈안이 되었습니다. 욕심에 눈이 멀어서, 현실이라는 상황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자기가 위험에 빠지고, 죽을 수도 있다는 충고마저도 들리지 않습니다. 현실을 보지 못 하고, 들어야 하는 말을 듣지 못 하니, 결국 죽음과 멸망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아사헬이 특출나게 좋은 무기를 가졌음에도 망하게 된 두 번째 까닭은 착각, 그리고 착각에서 시작된 교만 때문입니다. 아사헬이 가진 특별한 재능은 달리기입니다. 빨리 달린다는 건 말 그대로 다른 사람에 비해 속도를 더 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아사헬은 여기에서 착각합니다. 달리기만 잘 하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고,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이렇게 판단하니, 물불을 가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사헬이 아브넬을 열심히 쫓고 있습니다. 당시는 친선을 도모하는 자리가 아니라, 순식간에 목숨이 오가는 전장입니다. 앞에 도망하는 사람의 손에 들고 있는 것은 회초리가 아니라, 끝이 날카롭고 무서운 창입니다. 이 창이 자기를 향하면 얼마나 위험한지는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 사실을 아사헬이 모를 리 없습니다. 뛰어난 용사로, 또 군인 집안으로서 싸움과 무기의 특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재밌게도 앞에 도망하는 아브넬이 물러가지 않으면 쳐서 죽일 수 있다고 충고했습니다. 그럼에도 아사헬은 물러가지 않고 계속 쫓다가 창에 찔려 죽고 말았습니다.

 

아사헬은 왜 이처럼 어리석게 판단했겠습니까? 여기에서 아사헬은 자신이 가진 장기인 달리기 솜씨에 대한 믿음이 지나쳐, 달리기 하나만 잘 하면, 창과 칼마저 무시해도 된다고 착각했습니다. 착각이고, 교만이었습니다. 결국 아사헬은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착각하고 교만해져서, 자신이 가진 달리기를 맹신함으로써 결국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아사헬의 이 모습을 통해 우리 삶에서 조심해야 할 일들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언제나 좋은 능력을 주시고, 좋은 조건과 환경을 주시라고 기도합니다. 건강하기를 바라고, 풍성하기를 원하고, 잘되기를 바라고,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누구보다도 잘나가기를 소원합니다. 이런 기도도 물론 중요합니다. 우리 삶에서 필요한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보면, 우리에게 좋은 조건과 환경을 위한 기도보다, 우리가 가진 능력과 조건과 선물을 지혜롭게 보고, 이용할 줄 알도록 기도하는 게 먼저입니다. 이는 많은 신앙인들의 모습에서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고, 풍성히 가진 것들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고, 실패한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건강이 참 중요하죠? 이 땅의 삶만 생각하면, 가장 중요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건강을 위해 수고하고 애쓰는 시간과 노력만 봐도 건강이 중요하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몸에 좋은 것을 챙겨 먹고, 건강을 위해 먹고 싶은 욕망을 참기도 합니다. 건강하기 위해 시간을 정해 운동하고, 건강하게 만든다는 소식들에 귀를 바짝 세우며 삽니다.

 

그런데 건강에 이렇게 열심히 집중하며 사는 이들 모두가 언제나 잘 삽니까? 언제나 아름답고 부러워할 만한 삶입니까? 건강해서 오히려 더 망가지는 경우가 적지 않죠? 아프고, 힘이 없으면, 더 겸손하고, 더 노력했을 터인데, 큰 질병과 아픔이 없다 보니, 쓸 데 없는 일, 자기 욕망과 쾌락만을 향하다가 결국 비참하게 삶을 마치는 이들이 많죠? 어디 건강뿐이겠습니까?

 

돈도 역시 우리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들노루의 발입니다. 돈을 위해 얼마나 많이 노력합니까? 돈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얼마나 많이 좌절합니까? 다른 것 하나 없어도, 돈만 가득한 이들을 부러워하고, 이런 이들처럼 되기를 바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돈만 있다고 삶이 온전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돈을 향한 욕심에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거라 착각하며 교만한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로 망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잠언 307-9절에서 아굴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우리에게는 아사헬의 욕심과 착각과 교만에서 벗어날 만한 지혜가 필요합니다. 더불어 아굴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에 휘둘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받은 것이 돈일 수 있고, 건강일 수 있고, 지식일 수 있고, 명예와 외모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최고로 알고, 전부인 줄 알다가는 아사헬처럼 한순간에 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받은 것에 감사하나, 지나치게 매달리거나 휘둘리지 않고, 그 너머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삶이 큰 부자가 되는 것보다, 가장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지식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보다 귀하고 좋습니다.

 

아사헬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었음에도, 감사하지도 못 하고, 겸손하지도 못 해, 어리석게 삶을 마치고 말았습니다. 아사헬의 어리석음을 마음에 새기고, 참된 가치를 향해 기도하되, 주신 선물 자체에 휘둘리다 망하는 사람이 아니라, 받은 것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복과 은혜로 삶을 가득 채우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