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14)악에서 멀어져 사십시오(삼하 11장 14-27절)
악에서 멀어져 사십시오
성경: 사무엘하 11장 14-27절(구 478쪽)
찬송: 456장(거친 세상에서), 421장(내가 예수 믿고서)
설교: 20210314.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인간이 가진 본능들이 여러 가지겠지만, 그 중에서도 세 가지를 가장 크게 말합니다. 일정 시간이 되면 잠을 자야 하는 수면욕, 음식을 먹어야 하는 식욕, 그리고 성적인 욕구를 해소하고자 하는 성욕입니다. 이를 인간의 3대 본능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몸을 가진 이상 이 세 가지는 모두 필요하지만, 이들이 없이 버틸 수 있는 시간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견딜 수 있는 시간이 가장 짧은 게 어떤 본능일까요? 잠을 자야 하는 본능입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보통 사람이 잠을 전혀 안 자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은 며칠이 안 됩니다. 특수부대 등에서는 잠을 안 재우고 몇 주간 훈련한다고도 하지만, 틈틈이 조금씩이라도 자서 버티지, 그렇지 않다면 며칠 이상 견딜 수 없습니다.
다음은 식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배고프고, 먹고 싶은 본능이 더 강해집니다만, 그러나 음식을 전혀 안 먹어도 며칠을 넘어, 몇 십 일까지 견딜 수 있습니다. 간혹 건강이나 수련을 위해, 혹은 기도하려 수십 일씩 금식하기도 하죠? 식욕을 참을 수 있는 시간은 수면욕을 참을 수 있는 시간보다 더 깁니다.
세 가지 본능 중에서 성욕은 버틸 수 있는 시간이 가장 깁니다. 수면욕, 식욕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깁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수련이나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평생 성욕을 참고 사는 경우들이 적지 않습니다. ‘본능’이란 태어나면서 자연스레 갖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인간의 세 가지 본능 중에서, 성욕은 참을 수 있는 기간이 길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이 세 가지 본능들 중에서 피해를 주는 순서를 매기면 어떨 것 같습니까? 또 죄를 짓는 빈도를 보면, 어떤 게 가장 높습니까? 재밌게도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은 피해를 별로 안 주고, 가장 오래 참을 수 있는 본능이 오히려 가장 큰 피해를 끼치고, 문제를 일으킵니다.
사람의 몸을 가지고, 잠을 전혀 안 잘 수 없죠? 평균 잠자는 시간에 인생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삽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잠인데, 잠을 많이 자서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 죄를 짓게 되는 경우들이 있습니까? 바로 떠오르지 않을 만큼, 잠자는 일 때문에 죄를 짓거나 남을 해롭게 하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더 많이, 더 좋은 음식을 먹고자 하는 식욕은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들이 꽤 있습니다. 식욕의 수준을 넘어 탐식이 되어 피해와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더 확장시키면 탐욕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혼자 차지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죠?
그러나 가장 오래 참을 수 있고, 평생 참아도 살 수 있는 성욕으로 인한 문제와 피해와 죄는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심각합니다. 성욕을 참지 못 해서 일어나 범죄도 수없이 많고, 이와 연관된 문제들까지 포함한다면, 수면욕이나 식욕으로 인한 범죄와 피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런 문제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죠? 정치인, 기업가, 행정가, 연예인, 유명인 등이 성욕을 절제하지 못 해서 실패하고, 낙선하고, 말썽을 일으킨 경우들은 셀 수 없죠? 어디 이들뿐이겠습니까? 종교인들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다른 종교인들은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기독교인들, 그 중에서도 목회자들이 성범죄를 저질러서, 본인은 물론 교회까지 흔들리게 하는 일들도 적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기독교 전체가 비난과 욕을 먹게 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납니다.
세 가지 본능 중에서, 가장 오래 참을 수 있는 본능이면서도, 왜 성욕을 절제하지 못 해서 수 없이 많은 문제와 피해를 만들어 냅니까? 자기 인생은 물론, 가정과 교회를 무너뜨리게 한다는 사실을 모두 알면서도, 왜 이로 인한 문제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지만,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볼 수 있습니다.
먼저는, 갖지 못 한 것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갖지 못 하고, 겪어 보지 못 한 것들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막상 갖게 되면, 정말 별 것 아님을 알게 됩니다. 겪어 보고, 가보면 너무 하찮고, 추한 것들로 가득함을 앎에도,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끊임없는 환상을 가지고 바라봅니다. 이 환상이라는 게 좋은 방향으로 역할하면 괜찮은데, 대부분은 해로운 쪽으로 일어납니다.
몇 년 전 여론조사를 했더니, 우리나라 여성들 80%가 “한국 떠나고 싶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의 가장 큰 큰 이유는 치안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10명 중 8명이 우리나라를 떠나고 싶을 만큼, 우리나라의 치안에 불만을 품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로 가면, 지금보다 더 안전하고, 편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들이 깔린 답이죠?
그런데 오히려 우리나라로 온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의 치안과 안전을 가장 높이 평가합니다. 한두 사람이 아니라, 세상 그 어떤 나라보다 안전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합니다. 여성 혼자 밤늦게 밖을 다닐 수 있고, 카페 테이블에 귀중품을 두고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는 유일한 나라라고 합니다.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체험하는 TV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1년 전에 남아공에서 몇 명의 청년이 와서 체험하는데, 으슥한 골목을 지나가야 하는데 무서워하면서 꺼려해요. 외지고 어두운 곳을 혼자 가려면 좀 무서울 수는 있지만, 건장한 친구들이 있고, 함께 촬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뭐가 무섭습니까? 그런데 그 청년들은 자기들 나라에서는 환할 때에도, 너무 위험해서 그런 곳으로 절대 안 다닌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만큼 안전한 곳에 살면서, 이에 감사하기보다는, 가보지 않고, 갖지 못 한 것들에 대한 잘못된 환상만 잔뜩 품고 삽니다.
이런 환상이 우리를 죄로 이끌 때가 있습니다. 성욕이라는 게 하나님이 주신 본능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환상을 씌우고, 절제되지 못 한 눈, 왜곡된 탐심을 품고 바라보다 결국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됩니다.
성욕을 절제하지 못 해 범죄와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는 두 번째 까닭은 죄의 경향성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부부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런 중에 뱀이 이 둘을 유혹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는 겁니다. 결국 이 꾐에 넘어가, 하나님이 절대로 먹지 말라고 하셨던 열매를 먹고 말았습니다. 이 순간 아담과 하와, 그리고 이 둘로부터 나온 모든 인간에게는 원죄가 있습니다.
원죄를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만, 저는 이를 ‘죄의 경향성’으로 이해합니다. 좀 쉽게 표현하면, 본성이 죄를 향해 기울어졌다는 뜻입니다. 원죄가 없고, 죄를 향해 기울어지지 않았다면, 의도와 계획이 있을 때만 죄를 짓습니다. 누군가를 해치겠다든지, 누군가의 것을 빼앗겠다는 의도와 분명한 욕심이 있을 때만 죄를 저지릅니다. 바꿔 보면, 나쁜 의도와 계획이 없으면 죄를 짓지 않습니다. 또 죄를 짓더라도, 언제든지 돌아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능은 원죄로써 철저히 왜곡되었고, 죄를 향해 기울어졌습니다. 분명한 의도와 계획이 없어도, 가만히 있어도 죄를 짓게 되고, 죄를 지으면, 돌아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누군가 도와주고, 붙잡아 주어야만 돌아설 수 있을 정도로, 죄의 유혹과 힘은 무섭고 강합니다. 그럼에도 대다수는 죄의 무서움을 모르거나 무시합니다. 죄의 유혹을 쉽게 이길 수 있다고 자만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죄에서 돌아설 수 있고, 죄에서 벗어날 수 있고, 죄를 멈출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이건 완벽한 착각이고 교만입니다. 죄의 유혹은 우리의 힘으로 버틸 수 있을 만큼 만만하지 않습니다. 오죽했으면, 매순간 하나님과 대화한 아담과 하와마저 뱀의 말에 넘어갔겠습니까? 인간은 본능적으로, 죄가 가져다주는 고통과 절망의 크기와 시간에는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죄가 가져다주는 순간의 쾌락만 좇으려 그 뒤에 반드시 찾아올 고통과 죄악을 무시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죄를 유혹하는 사탄의 힘과 지혜와 사악함을 너무 무시하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본성이 죄를 향해 이미 기울어졌으니, 우리가 죄로부터 오는 고통을 겪지 않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죄의 유혹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 그리고 죄의 유혹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철저히 깨닫고, 죄의 가능성이 있을 때마다 멀어지는 것입니다. 죄의 가능성이 있는 곳에 눈길조차 돌리지 않는 것입니다. 죄의 유혹이 있을 때마다, 순간의 쾌락과 즐거움 뒤에 있을 비참함과 고통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향 마을에서 3-4km 떨어진 곳에 댐이 하나 있습니다. 중학생이 되기 전에 공사가 끝났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자유롭게 드나들며 놀 수도 있어서, 여름에 그곳 마을에 있는 친구들 몇 명과 함께 그 댐으로 놀러 갔습니다.


물이 많이 차지 않아서 물이 많이 흐르지는 않고, 바닥만 조금 적신 정도라서, 그곳에서 가재나 물고기를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물이 내려가는 약 80-100미터정도 수로쪽으로 갔습니다. 여름이고 물이 조금씩 흐르니, 이끼가 많이 끼고, 아주 미끄럽겠죠? 그래서 제가 친구들한테 “미끄럼 타면 엄청 재밌겠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농담으로 한 말이었습니다. 그때 친구들이 자기들끼리 눈짓을 주고받더니, “그렇게 할 수 있다. 실제 그렇게 탄 사람도 있다”고 답했습니다.
저는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바보도 아니고, 아무런 장비나 장치 없이 시멘트로 된 수로에서 미끄럼을 타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게다가 친구끼리 보낸 작전을 눈치 챘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생각조차 없었습니다. 다만, 제가 속은 것처럼 하려고, 벽을 잡고, 왼발을 살짝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쑥 미끄러져 수십 미터를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몸을 돌려서 손과 발로 짚어서 크게 다치지 않았습니다만, 몇 미터 간격마다 이음새 부분이 있는데, 그 짧은 순간에도 그게 나올 때마다 얼마나 무섭고 아팠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수십 미터를 미끄러져 내려왔다가, 물이 고여 있는 10미터 전 한쪽이 약간 높아서인지 멈춰 섰습니다.
정신없이 내려와서 보니, 손과 발에 상처는 뒷전이고, 창피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해서 위를 올려다봤습니다. 친구들도 엄청 놀랐다가, 제가 크게 다치지 않았다는 걸 알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제가 속아 수로로 내려갔다며 자지러질 듯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 한 친구가 거기에 멈추지 않고, 제가 미끄러져 내려오는 과정을 흉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그 친구도 거기에서 그대로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제 옆까지 왔을 때, 제가 손을 내밀어서 잡아줘서 물이 고인 곳까지는 안 가고 멈출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친구는 저처럼 자세를 제대로 잡지 못 해, 무릎의 뼈가 보일 만큼 깊이 패이고, 다른 곳에도 많은 상처가 생겼습니다. 이 때문에 2주 정도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죄의 유혹이 이와 비슷합니다. 재밌어 보입니다. 흥미가 생깁니다. 만만해 보입니다. 쉬워 보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거기에서 헤어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죄악의 덫에 빠지지 않을 거라 판단합니다. 이렇게 만만해 보이고, 쉬워 보이니, ‘한 번 정도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이라며 계산하다 죄에 빠지고, 그래서 결국 망하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죽 했으면, 다윗처럼 위대한 인물마저도 그와 같은 죄에 빠졌겠습니까? 성경에 위인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최고의 인물 아닙니까? 신앙은 물론이고, 인격과 능력까지 대단한 사람입니다. 이때 다윗의 모습을 사도행전 13장 22절에서는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고 하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서는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고 말씀합니다. 목숨 바쳐 충성하는 자기 부하의 아내를 불러내 간음한 죄도 크고, 이를 뒤덮으려 부하를 사지에 몰아넣어 죽게 만든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 악했습니다.
사무엘하 3장과 5장에 다윗의 아내들과 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왕이기 때문에, 하나님 보시기에 안 좋은 짓이지만, 더 많은 아내와 첩을 둘 수도 있었습니다. 밧세바가 얼마나 매력적이고, 아름다웠는지 알 수 없지만, 다윗이 충성스런 부하를 비겁하게 죽이면서까지 차지할 까닭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이 하나님 보시기에 용서받을 수 없을 만큼 악해졌다는 건, 악의 유혹이 얼마나 크고, 또 죄에 빠지면 인간이 얼마나 무능해지는지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5장 22절에서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말씀합니다. 죄악에 어떠한 빌미나 여지를 두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흉내만 내려 해서도 안 되고, 호기심이나 쾌락이나 욕심에 따라서 어떠한 틈이라도, 아무리 작은 틈이라도 내주어서는 안 됩니다. 다윗처럼 믿음과 인격이 완성된 사람마저 이처럼 쉽게 죄악에 빠지고, 크게 망가졌다면, 그와 비교할 수 없이 나약하고, 어리석고, 믿음이 보잘 것 없는 우리가 죄악에 빠진 후의 모습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처참히 망가집니다. 한 번 미끄러지면 멈출 수도 없고, 회복할 수 없는 수로처럼 우리는 죄와 죽음과 저주를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죄의 그 어떠한 기미에서도 돌아서고 멀어져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죄를 향해 기울어진 나약한 존재임을 언제나 기억하고, 죄에서 철저히 멀어지고, 죄의 유혹을 철저히 차단함으로써, 주님의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이 되고, 믿음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을 날마다 누리며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