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02)유혹을 이기는 지혜(삼하 13장 15-22절)
유혹을 이기는 지혜
성경: 사무엘하 13장 15-19절(구 483쪽)
찬송: 450장(내 평생 소원 이것뿐), 353장(십자가 군병 되어서)
설교: 20210502.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TV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방영하죠? 여기에 나와 연기하는 사람들을 ‘배우’라고 하거나 ‘연기자’라고 하죠? ‘만들어진 인물이나 사건을 사실처럼 표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그럴 듯하게, 실제처럼 자연스럽게 연기하느냐에 따라 좋은 배우, 나쁜 배우가 결정됩니다. 현실에서는 그래서는 안 되지만, 사람을 해치기도 하고, 죽이는 정말 나쁜 사람처럼 보이면 좋은 배우입니다.
연기지만, 실제처럼 보여야 하기 때문에 발전한 분야 중 하나가 촬영기술입니다. 예전엔 그저 당연히 연기라는 사실을 감안했습니다. 죽은 사람이 숨을 쉬거나 움직여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시청자들의 수준과 기대치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습니다. 게다가 요즘 공상 영화가 많이 나옵니다. 배경을 지구를 넘어 우주까지 확장시켰고, 신들이라는 영적인 세계까지 다루는 영화와 드라마가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현실에서 있지도 않은 일,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를 ‘어떻게 그럴 듯하게 보이도록 연기하고, 촬영할까?’ 하는 궁금증을 가져본 적 있습니까? 또 ‘우주공간에서의 장면이나, 전쟁이나 바다 속에서의 모습 등을 어떻게 만들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곤 하죠? 우주공간에 나가서 찍을 수도 없죠? 전쟁터의 모습도 직접 총을 쏘고,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게 할 수도 없습니다. 물속에서 연기하고, 그걸 촬영하는 비용도 너무 많이 들고, 또 불가능에 가까운 일들입니다. 수십 년 전이라면, 그냥 특수 장치를 이용한다든지, 아니면 이상하게 생긴 탈을 쓰거나 분장하면 괜찮았겠죠? 하지만 요즘은 그 정도로는 시청자들이 만족하지 못 하기 때문에, 특별한 기술이 필요합니다.
현실에서 직접 촬영하기 어려운 모습들을 가장 현실감 있게 만들기 위해서 최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술은 ‘컴퓨터 그래픽’이라고 합니다. 저도 전문적인 지식이 없고, 막연하게 알고 있어서, 여러분께 설명 드리기 어렵습니다만, 간단히 컴퓨터로 분장시켜 촬영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론 컴퓨터 그래픽 작업 자체가 어렵고, 비용도 엄청 많이 들어간다고 합니다만, 그러나 이 작업으로 가상의 현실을 연기하고 촬영할 수 있습니다. 너무 위험하거나 비용 때문에 만들 수 없는 장면들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수십 만 명의 사람들을 쓰려면, 비용과 여건이 안 되기 때문에, 이럴 때 컴퓨터 그래픽을 씁니다. 물속이나 우주에서의 모습을 실제처럼 촬영할 때도 사용하고, 너무 위험하거나 불가능한 모습들도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이용합니다.
이런 기술을 이용하면, 만들어내지 못 하는 장면이 없다시피 합니다. 과거 탈을 쓰거나 분장하는 정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현실감이 있게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이런 기술이 이용되자, 위험하거나 불가능해서 만들 수 없는 장면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엔 ‘만화’(애니메이션)로만 만들 수 있었던 온갖 장면들과 주인공들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슈퍼맨,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헐크 등의 인물이 만들어지고 인기를 끈 이유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연세 많은 분들은 이런 영화를 잘 모르실 수도 있습니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몇 장면이라도 좀 보실까요?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ijUsSpRVhBU)
어떻습니까? 대단하고 멋져 보이죠? 어렸을 때 보았던 만화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당시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다양한 인물들과 능력이 나옵니다. 하늘을 나는 것은 기본이고, 힘과 능력도 대단합니다. 그러면서 ‘실제 저런 능력을 가진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같이 듭니다. 저런 능력을 가진 존재가 세상에 한 명만 있어도,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이렇게 뛰어나고 멋진 능력들을 가진 인물들이 영화로 나오면, 자칫 실제 저런 능력을 가진 인물들이 있을 거라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아이들일수록 이런 생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이런 만화 영화를 보고 나면, 목에 보자기를 매고, 하늘을 나는 모습을 흉내를 내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건 컴퓨터로 저렇게 보이게 만들었을 뿐, 실제 저런 능력을 가진 존재는 없습니다. 화면으로는 아무리 뛰어나 보이고, 멋져 보여도, 사실은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보다 좀 클 수도 있고, 좀 잘 생길 수도 있고, 예뻐 보일 수는 있지만, 그러나 별 차이는 없습니다. 우리처럼 숨 쉬고,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몇 번 크게 움직이면 숨차고 힘든 것은 마찬가집니다.
잠깐 멋지고 대단한 장면들의 본래 모습이 어떤지 잠깐 보실까요?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xzuL1eUHjWw)
보시니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너무 이상하다 못해 초라해 보이죠? 좀 허무하다는 생각도 들죠? 대단한 장면들이 만들어진 본 모습을 확인하고 나면, 멋지고 대단하다는 생각보다, 오히려 저런 상황에서도 정말인 것처럼 연기하는 배우들이 대단해 보이지 않습니까? 더불어 저런 영화를 보면서 가졌던 허황된 꿈과 생각들을 하나씩 벗겨낼 수 있습니다.
화려하고 멋진 장면 뒤에 숨어 있는 초라한 본모습을 보면, 죄로 이끄는 사탄의 전략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사탄의 가장 큰 목적과 바람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타락해 하나님을 버리고 멸망하도록 하는 것이죠? 우리는 이를 ‘영적 전쟁’이라 부릅니다. 이겨내지 못 하면, 우리가 죽고 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와의 영적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사탄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가장 많이 이용하는 방법들 중 하나는 바로 사탕발림입니다. 죄에서 빠져 나오지 못 하면, 결국 망하고 죽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죄를 범하도록 유혹해도 신앙인들이 넘어가지 않죠? 사탄도 이를 알기에, 죄악 위에 달콤한 것들을 덮어씌웁니다. 달콤해 보이고, 멋져 보이고, 좋아 보입니다. 그것만 얻으면, 가장 큰 기쁨을 얻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이에 넘어가곤 합니다.
그러나 사탕발림을 한 꺼풀만 벗겨내면, 그 안에 얼마나 치명적인 독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탄이 주는 사탕은 생명과 능력이 아니라, 죽음과 멸망뿐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신앙인들이 사탄의 사탕발림에 속아 넘어갑니다. 능력과 기쁨을 얻으려 사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하고, 사탕발림 속에 숨겨진 독을 먹고서야 뒤늦게 깨닫곤 합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는, 사탄의 유혹에 속아 넘어간 사람 암논,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인지 나오고 있습니다.
다윗의 첫째 아들인 암논이 이복여동생인 다말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금하신 일인지라, 암논에게 바른 믿음이 있었다면 이를 이겨냈겠습니다만, 암논은 그렇지 못 했습니다. 원하는 바를 얻지 못 해 좌절하고 있을 때, 요나답이라는 사촌이 부추깁니다. 아픈 척 해서, 다말만 있을 때 범하라며 구체적인 방법까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암논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곁에 지혜롭고 좋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요나답의 교활하고 사악한 방법을 따릅니다. 아픈 척 해서, 다말을 불러들이고, 음식을 만들어 먹이려 할 때 강제로 범했습니다. 다말은 그렇게 하지 말고, 아버지 다윗에게 결혼을 허락해 달라 하자고 합니다만, 이미 정욕에 눈이 먼 요나답이 들을 리 없습니다. 힘으로 다말을 범했고, 그 이후의 모습이 오늘 읽은 본문입니다.
암논은 정욕을 절제하지 못 해 이복동생을 범했습니다. 암논이 이를 얼마나 원했습니까? 다말을 얼마나 사랑하고, 또 차지하고 싶었습니까? 당시 권력의 크기로 보면, 암논은 첫째아들인지라, 다윗 왕 다음으로 두 번째라 할 수 있습니다. 왕에 버금갈 만큼 대단한 권력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지위와 권력을 가진 암논이 할 수 없는 일이란 별로 없겠죠? 갖지 못 하고, 누리지 못 할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이처럼 큰 권력을 가진 암논이 음식까지 먹지 못 해 병들 정도였다면, 다말을 향한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알 수 있죠? 자기 목숨과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다말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소원하던 대로 다말을 막상 범하게 되자 그 마음과 태도가 어땠습니까? 간절히 원하던 만큼 그 기쁨이 대단했을까요? 병이 생길 만큼 간절한 소원을 이루었다는 기쁨이 오래 갔을까요? 전혀 그렇지 못 했습니다. 다말을 범한 후 암논의 생각과 태도가 15절에 “그리하고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한지라 암논이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하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병이 생길 만큼 원했던 것을 차지했다고 보기 어려우리만치, 기쁨도 사랑도 전혀 남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자리에 허무함이 얼마나 컸는지, 이제는 다말을 향해 증오를 쏟아냅니다. 마치 누가 암논을 강요해서, 그런 못된 짓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다말에게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겠죠? 원해서는 안 될 일을 원한 사람도 암논 자신입니다. 다양한 선택지가 얼마든지 있었음에도, 범죄를 선택한 사람도 역시 다른 누가 아닌 암논 자신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막상 죄를 범하고 보니 남는 건 허탈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절망감과 증오심뿐이었습니다. 피해자인 다말이 그렇게 자신을 내쫓는 건, 강제로 범한 것보다 더 큰 죄악이라고 충고했음에도,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증오심과 비참함만 남았습니다.
다말을 향한 암논의 마음과 태도를 보면, 죄악의 본성을 볼 수 있습니다. 사탄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사탕발림의 수단과 결말을 엿볼 수 있습니다. 멋져 보이고, 얻기만 하면 최고의 기쁨을 줄 것 같지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절망감과 수치심만 남습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죽음으로 내몰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의 끝은 절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성경 속에서 암논의 경우와 비슷한 과정과 결말을 맞이한 이야기가 있죠? 바로 하나님이 가장 먼저 만드신 아담과 하와입니다. 하나님께서 둘에게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죠? 이때 사탄이 먹으라 유혹합니다. 사탄의 유혹을 받고, 하와가 열매를 보았을 때의 모습을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창 3:6)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와는 그 유혹을 이기지 못 하고, 결국 자신도 먹고,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했습니다.
이렇게 멋져 보이고, 맛있어 보이고, 먹기만 하면 하나님의 수준으로 지혜롭게 할 만큼 좋아 보여서 먹었습니다. 하나님은 금하시고, 사탄은 유혹했던 열매를 먹고 난 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탄의 말처럼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되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처럼 죽음에 이르는 존재가 되었을까요? 전까지는 아담이 하와를 처음 봤을 때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할 만큼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죄를 범한 후에는 서로 보기에도 부끄러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님을 피해 숨어야 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런 모습이 오늘 본문에서 보이는 암논의 모습과 똑같지 않습니까?
암논도 창세기가 기록된 한참 후의 사람인지라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맞이한 비참한 결말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탄이 내주는 욕망이 눈을 가리자, 결국 어리석은 선택을 내렸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를 익히 알면서도 암논이 똑같은 길을 걸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서도 이와 같은 유혹을 받고, 거기에 빠져 멸망당하곤 합니다. 하와가 뱀의 현란한 이야기에 혹해 열매를 따먹었던 것처럼, 암논이 욕망의 유혹에 넘어가 용서받을 수 짓을 저질렀던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 역시 사탄이 내놓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죄를 향하곤 합니다.
이럴 때마다 우리는 사탄의 속성을 알아야 하고, 그 유혹이 만들어진 과정을 기억해야 합니다. 화면에서 아무리 멋지고 화려한 장면들이 나와도, 겉만 그럴 뿐, 그 겉을 드러내고 그 밑바탕을 보면 우스꽝스럽고 허무하기 짝이 없는 것처럼, 사탄의 방법과 유혹도 겉만 좋아 보일 뿐입니다. 사탄의 방법과 유혹 뒤는, 기대와는 비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하고, 허무하고, 절망스럽습니다.
죄와 죽음을 향한 유혹이 눈앞에 있을 때마다, 그 겉을 드러내고 밑바탕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백성을 복되고 좋은 길로 보낼 수도 없고, 보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죄악을 심으면 그 결과는 절망과 죽음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탄의 유혹은 언제나 사탕발림일 뿐, 본바탕은 독약과 같아서, 일단 넘어가 만지기만 해도 결국 멸망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마음에 담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백성에게 좋은 것만 주시지만, 사탄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겉만 좋을 뿐, 사실은 죽이고 해치는 것만 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지혜와 영적 민감함을 가진다면, 아담과 하와가 걸었던 실패의 길을 되풀이하지 않습니다. 아름답게 살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었음에도, 유독 죽음과 패망과 죽음을 향해 달려간 암논의 길을 따라가지 않게 됩니다. 이런 분별력과 지혜만 있다면, 사탄의 유혹을 이기고 복된 길을 따라 살 수 있습니다. 생명의 하나님께서 보장하시는 복과 은혜를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무엇이든지 선택할 수 있지만, 더불어 결과와 책임까지 우리의 몫입니다. 좋은 길을 선택하면 복되게 살 수 있고,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면 절망과 비참한 죽음만 남습니다. 원하는 바 복되고 은혜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오늘도 사탄의 유혹 속에 담긴 거짓과 독을 깨달아야 합니다.
당장 눈앞의 욕정과 기쁨에 넘어가, 스스로 죽음과 절망의 길을 간 암논의 어리석은 모습을 기억하고, 유혹 속에 담긴 사탄의 사악한 모든 계략을 철저히 멀리하고, 지혜롭게 하나님의 것을 선택함으로써 날마다 기쁨과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