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09)좋은 그릇에 좋은 원료를 담아야(삼하 13장 20-29절)
좋은 그릇에 좋은 원료를 담아야
성경: 사무엘하 13장 20-29절(구 483쪽)
찬송: 304장(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455장(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설교: 20210509.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술의 종류 중에 위스키가 있습니다. 위스키도 종류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지만, 다른 술에 비해 비싼 편입니다. 작년 자료에 따르면, 가장 비싸게 팔린 위스키는 두 병이 약 12억 7,000만원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술에 대해 전혀 모르고, 또 이렇게 비싼 술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다른 귀하고 비싼 술과 비교가 안 될 만큼 비싸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위스키의 가격은 몇 년 숙성시켰느냐에 따라 달라지곤 합니다. 당연히 숙성 기간이 짧을수록 가격이 낮고, 숙성시킨 기간이 길수록 가격이 오르겠죠? 위스키가 다른 술에 비해 높은 가격에 팔리는 이유는, 이런 숙성 기간을 거치기 때문입니다. 숙성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에 대한 비용을 인정받기 때문에, 그렇게 높은 가격에 팔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비싸게 팔린 위스키도 1926년, 지금으로부터 거의 백 년 전에 통에 넣어 60년 동안 숙성시킨 후 병에 담았다고 합니다.
몇 년 전에 한 사람이 30년 이상 된 소주를 발견했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금주하기 위해서, 가지고 있던 술을 땅에 묻으신 후 잊어버린 것으로 보이는 소주를 여러 병 얻었다는 것입니다. 땅에 오랫동안 묻혀 있던 소주를 만나기는 쉽지 않겠죠? 당연히 가치가 어느 정도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여러분은 30년 이상 땅에 묻혀 있던 소주의 가치가 얼마 정도 할 것 같습니까? 경매를 거치지는 않았지만, 어느 사람이 병당 만 원 사겠다는 답을 올렸습니다.
1만 원이라고 하면, 1,2천 원하는 소주보다는 훨씬 비싸지만, 30년 이상 되었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너무 저렴하죠? 30년 이상 되면 수십 만 원, 수백 만 원이 되는 위스키와는 상대가 안 됩니다.
같은 시간을 들이는데도, 위스키는 왜 소주와는 비할 수 없이 가치가 높습니까? 같은 시간 고스란히 보관된 소주는 왜 수십 년 전의 가격과 큰 차이 없을까요?
이는 두 가지 술을 만드는 과정에서 차이가 납니다. 위스키를 만드는 방법을 보면, 곡물을 발효하고 증류시킨 후 오크통에 보관합니다. 이 통은 나무로 만들어졌고, 흐르지는 않지만 조금씩 매년 1%씩 증발해 줄어듭니다. 오래 보관할수록 수분이 날아가고 원액이 남습니다. 이 때문에 맛은 좋아지고, 줄어든 양을 보충할 만큼 비싸게 된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소주는 희석된 술이고, 또 병에 밀폐되어 있어서, 그 속에서 수십 년 동안 오래 담겨 있어도, 처음 모습과 변함없이 유지될 뿐입니다. 그래서 그 맛과 가치는 만들어진 직후나, 3,40년 된 이후나 별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다. 수십 년 된 소주보다는 오히려 병 자체가 더 높은 가치를 가지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묵히는 방법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묵힐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묵혀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만약, 위스키 재료를 밀폐된 병이나 스테인리스 통에 보관하면 어떻게 될까요? 성질은 약간 달라질 수 있지만, 양의 변화도 없고, 그만큼 맛과 가치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위스키를 보관할 수 있는 좋은 재료가 얼마든지 있겠지만, 비싸고, 일부로 수분이 날아가는 오크통에 보관합니다.
또, 오래 묵히는 수고와 긴 시간의 보상을 받으려면, 반드시 그만한 가치가 있어야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바꿔 보면, 아무 것이나 오랫동안 보관한다고 한다고 해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위스키는 오래 묵힐수록 가치가 올라가지만, 그에 반해 소주는 묵힐 만한 가치를 거의 받지 못 합니다.
이는 우리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삶에서 마땅히 참고 기다려야 하는 일들이 있죠? 경솔하고 조심성 없이 행동하면 실수하기 쉽습니다. 이와 관련된 격언들이 많은데, 대표적인 표현으로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를 들 수 있습니다. 더 참고 기다리며, 신중히 생각하고 행동하면 큰 실수를 면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말처럼, 참고 기다리고 조심하라는 가르침이 많습니다.
성경에서도 이와 비슷한 말씀이 많습니다. 에베소서 4장 26절에서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라고 하십니다. 이어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하심으로써, 절제하지 않으면, 마귀에게 틈을 줄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절제하고, 참는 게 옳다는 뜻입니다. 또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성령의 열매 9가지 중에도, 오래 참음과 절제도 참고 기다리라는 말씀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떤 것 같습니까? 본문 앞에서, 다윗의 장남인 암논이 이복누이 다말을 사랑하고, 자기 욕정을 참지 못 해서 강제로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이 일이 일어난 당시와 이후의 일입니다. 먼저 다윗은 이 사고를 알고 분노했습니다. 또 다말의 친오빠인 압살롬도 분노했는데, 암논을 미워했지만, 그럼에도 암논의 잘잘못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침묵으로 끝나 보였지만, 압살롬은 이를 잊거나 지나친 게 아니었습니다. 암논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참을 뿐이었습니다.
23절부터 압살롬이 복수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2년이 흘렀으니, 당시 사건을 잊거나, 잊지는 않았더라도 좀 무뎌졌겠죠? 2년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별다르게 행동하지 않은 압살롬의 전략이었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잊었다고 생각할 무렵에 압살롬은 양털을 깎는다며, 아버지와 형제들 모두를 초청했습니다. 다윗은 이를 거절했고, 다른 형제들 모두가 압살롬이 초대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잔치 자리니 술과 음식이 많이 차려졌고, 술에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를 이용해 압살롬은 자기 부하들에게 자기 이복형인 암논을 죽이도록 했습니다. 왕자들이 모인 잔치자리니 좋은 음식과 술이 가득했을 텐데, 한순간에 사람이 죽는 자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형제들은 이를 보고 급히 도망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건의 당사자인 암논, 아버지인 다윗, 압살롬의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이 세 사람을 성령의 열매인 인내와 절제와 이어 생각해 보면 어떻습니까?
먼저 암논은 가장 어리석고 나빴습니다. 욕구를 위해 자기 누이에게 고통을 주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극단적이고 어리석은 방법이 아니더라도, 자기 소원을 이룰 수 있는 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을 참지 못 해서, 가장 악하고 미련한 방법을 이용했습니다.
이 일이 한 순간의 충동에 의해서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점이 더 큰 죄입니다. 암논은 바람을 이루지 못 하자 음식을 먹지 못 해 병이 들 지경이었습니다. 이를 보고 곁에서 가장 악한 방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기 욕망을 위해 강제로 다말을 범했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왜 몰랐겠습니까? 이 일로 인해, 다윗과 다른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을 거라는 사실도 몰랐을 리 없습니다. 다윗을 이어 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 할 거라는 사실도 알았을 것입니다. 바꿔 보면, 암논은 한 순간의 욕망을 참지 못 함으로써, 왕이 되지 못 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계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암논은 이를 참지 못 해서, 몹쓸 짓을 저질렀습니다. 다말에게만 고통이 된 게 아니고, 자기 가족과 자신에게까지 모두에게 손해가 되는 짓이었습니다. 암논은 인내와 절제의 능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 때문에, 다음 왕에 가장 가까운 위치였으면서도, 이복동생의 손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아버지 다윗은 암논의 악행을 전해 듣고 분노했습니다. 분노했다는 건, 암논의 행동이 용서할 수 없는 큰 죄악임을 알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가정의 가장만 되어도 이런 일을 지혜롭게 처리해야 가정이 건강하게 유지됩니다. 하물며 다윗은 한 나라의 왕입니다. 암논이 저지른 일은, 단순히 자기 가정의 일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의 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왕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백성들의 생각과 삶의 방향도 바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윗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합니다. 비록 자기 아들이라도, 자기 욕심과 욕망을 위해 남에게 고통과 피해를 주는 일이 어떤 결과를 맞이하는지, 본보기로 엄벌에 처해야 했습니다. 이게 자기 가문만이 아니라, 백성들이 하나님이 정해주신 길에 따라 사는 길이고, 복을 받는 길입니다.
다윗은 암논의 악행을 전해 듣고 분노했다는 이야기만 있지, 이를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해 전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암논에 대해 특별히 벌을 내리지도 않고 지나친 것으로 보입니다.
다윗이 자기 자녀들 사이에 일어난 이 비극을 드러내 처리하지 못 할 만한 상황이긴 했습니다. 자신이 여러 아내를 두어서 이런 비극이 시작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또 부하의 아내와 간통하고, 이를 숨기려 우리아를 죽게 했습니다. 이런 부끄럼이 있기에, 다윗이 암논의 죄악을 쉽게 드러내지도 못 하고, 처리하지도 못 했을 수도 있습니다. 분노로 끝내버린 다윗의 입장이 이해되긴 합니다.
그러나 다윗의 이 행동은 결국 아들들끼리 죽고 죽이는 비극을 만들어 냈습니다. 만약 가장이자 왕으로서 다윗이 암논의 범죄를 철저하게 처리했다면, 압살롬이 2년 동안 앙심을 품을 필요도 없었고, 여러 형제들 앞에서 암논을 자기 손으로 직접 죽일 필요도 없었습니다. 다윗은 비록 정치적인 면과, 자기 형편에 따라 암논을 처벌하지 하지 않고 넘어갔습니다만, 오히려 훨씬 더 큰 비극과 고통을 만들어 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내와 절제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압살롬은 암논이 다말을 범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했고, 암논을 향한 증오심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압살롬은 감정과 계획을 바로 드러내지 않고,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2년을 보냈습니다. 이 시간 동안 암논을 어떻게 처치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치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잔치를 벌이고, 아버지 다윗을 비롯해 모든 형제를 초청하고, 그 자리에서 처리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이를 거절해 그 자리에 없었지만, 만약 다윗이 그 자리에 함께했다면, 아버지와 형제들 앞에서 첫째인 암논을 제거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다윗과 압살롬은 암논의 악행을 듣고 즉시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특별한 행동을 보이지 않았고, 압살롬은 2년 동안 기다렸습니다. 그럼에도 이 둘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인내하고 절제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필요한 방법과 원료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먼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반드시에 그에 맞는 방법과 원료가 필요합니다. 무작정 오래 참고 기다린다고 해서 인내와 절제가 될 수 없습니다.
좋은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그러나 아무 그릇에 원료를 넣고 기다린다고 무조건 가격과 가치가 오르지는 않습니다. 불편하고 비싸더라도, 그에 꼭 맞는 도구를 이용해야 합니다. 인내와 절제라는 가치를 얻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모른 척 넘어간다고 인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실을 알고 분했지만, 그러나 아무 말이 없이 참는다고 절제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악행과 범죄가 남아 있는 채 기다려봤자, 악행과 범죄가 더 커질 뿐입니다. 이런 방법으로는 성령의 열매가 아니라, 사탄의 열매가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용서와 화해를 기다림이라는 그릇 속에 넣고 기다리기 전에, 먼저는 죄악을 철저히 제거된 그릇에 담아야 합니다. 세척되지 않은 그릇에 좋은 원료를 넣고 기다리면, 오히려 좋은 원료마저 망치게 될 뿐입니다. 용서와 화해는 오직 자기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자에게만 들여야 합니다. 다윗은 이 점에서 실수했기에, 오히려 더 큰 비극을 만들어 내고 말았습니다.
압살롬을 통해서는, 좋은 원료를 넣어야만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음을 배우게 됩니다. 압살롬은 무려 2년 동안 참고 넘어갔습니다. 그럼에도 이를 통해, 가정에 화해와 용서와 인내의 열매가 아니라, 저주와 불행을 얻은 까닭은 한 가지입니다. 압살롬은 2년이라는 시간 안에 증오심과 복수라는 나쁜 원료를 넣었기 때문입니다.
22절에서 압살롬은 암논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오히려 증오심이 가득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암논을 확실하게 제거할 수 있을지 하는 고민과 계획으로 그의 삶이 채워졌습니다. 증오심과 복수심이라는 원료를 가득 채우고, 2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렸으니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거기에서 성령의 열매가 나오겠습니까? 거기에서 유익한 일들이 일어나겠습니까? 거기에서 누군가를 살릴 만한 가치가 나오겠습니까?
2년 동안 기다리니, 오히려 증오심이 더 커졌습니다. 기다려온 시간만큼 증오심은 더 커져서, 복수하는 방법과 결과가 모두 처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족간에 서로 죽고 죽이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일이 빌미가 되어, 이후엔 자기 아버지를 향해 칼과 창을 휘두르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인해 인물과 능력이 뛰어난 압살롬 역시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인내와 절제라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기다림이라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기다리는 원인과 과정이 더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단지 기다린다는 것으로는 좋은 열매 맺을 수 없습니다. 용서와 화해의 열매를 얻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참고 기다리는 과정을 돌아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죄를 죄로 볼 줄 알아야 하고, 죄를 시인하는 자에게는 진심으로 용서를 베풀고 참을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복되고 좋은 앞날을 위해, 오늘 좋은 원료인 진실과 용서와 화해를 바르고 좋은 판단의 그릇에 담음으로써,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값지고, 귀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