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27)성급하면 실수합니다(삼하 16장 1-4절)
성급하면 실수합니다
성경: 사무엘하 16장 1-4절(구 488쪽)
찬송: 543장(어려운 일 당할 때), 421장(내가 예수 믿고서)
설교: 20210627.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약 두 달 전인 4월말에, 의과대학을 다니는 한 청년이 친구와 술을 마신 후 실종되었다가 엿새 만에 숨진 채 발견되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건 사고는 언제 어디서나 쉴 새 없이 일어나죠. 그런데 이 사건은 다른 사고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관심과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경찰에서는 물에 빠져 숨진 것으로 봤습니다만, 유족 측에서 타살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함께 술을 마신 친구가 아들을 타살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드러냈습니다.
우리나라의 치안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만 있으면 잘 모르는데,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들은 우리나라의 높은 치안을 한결같이 좋아하고, 높이 삽니다. 그래서 실종이나 살인 사건 등이 일어나면, 크게 놀라고, 큰 관심을 받게 되죠?
그런데 이 사건은 이 정도를 넘어섰습니다. 공중파 방송은 물론, 종합 채널, 신문과 인터넷, 또 인터넷 방송 등 어디든 이 이야기로 가득했습니다. 여러 가지 증거, 추측, 과장, 여기에 음모론까지 더해졌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고, 가장 억울한 죽음을 겪은 사람의 이야기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우리나라에 똑똑하고 뛰어난 탐정과 형사들로 가득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세상에 하나뿐인 귀한 아들을 잃은 가족의 아픔을 함께 느꼈기 때문일까요? 물론, 세상에서 자녀를 먼저 보내는 것만큼 큰 아픔도 없습니다. 그것도 의사가 되는 과정에 있을 만큼 유능하고 사랑스러운 아들이었으니, 잃는 아픔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억울한 죽음이 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의견은 납득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는 반드시 그만한 증거와 자료가 있어야 합니다.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얻지 못 했으면, 경찰의 조사가 이루어지고 발표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조사와 검증에서 가장 중요한 이런 절차를 철저히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직도 논란과 의혹을 내놓는 사람들이 있지만, 자칫 ‘생사람 잡는 꼴’이 될 수 있습니다.
진실은 하나인데, 실수로 사망한 사건이라면, 친구를 살해한 사람으로 의심과 협박을 받은 사람에게 확실한 증거도 없이 폭력을 휘두른 일이 되고 맙니다. 친구도 누군가의 가족이고 아들입니다. 그럼에도 사망한 사람의 아픔을 함께한다면서, 다른 사람을 의심하고,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치면 이는 또 다른 가해에 지나지 않습니다. 말로 할 수 없는 협박과 누명을 쓴 이 사람도 그 가족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억울한 죽음을 밝혀야 하지만, 그러나 이 과정에서 또 누군가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울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또 이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이런 이상하고, 어리석은 일이 일어난 까닭은, 탐욕에 눈이 먼 사람들에게 선동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망사고를 사고사가 아니라, 살인사건으로 이미 정해 놓고, 온갖 추측과 억지를 덧붙인 무리들이 있습니다. 정치인들, 언론인들과 방송인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사람들의 관심과 지지로 먹고 산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이 볼수록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방송사들이 앞장섰습니다. 거기에 사람들의 관심, 그래서 돈을 더 벌고자 억지 주장을 펼친 인터넷 방송인들이 함께했습니다. 거기에 무슨 말로든 TV에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여야, 자기 표와 지지가 많아질 거라 계산한 정치인들이 거들었습니다.
그렇게 온갖 증거와 추론을 내세웠던 사람들의 결말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가해자로 몰려 온갖 수치와 곤욕을 치른 사람이, 그 동안의 자료를 모아 고소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단 3일만에, 선처를 바라는 메일을 800건 넘게 받았다고 합니다. 이제는 자신이 가해자가 되어, 피해자의 용서를 구해야 하고, 용서를 받지 못 하면,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과 과정, 그리고 결과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사람은 선동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분위기에 휩쓸려 선동되기도 하고, 욕심에 눈이 멀어 선동되기도 합니다. 정확하게 보고 판단할 만한 능력이 부족합니다. 이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함부로 말하거나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고, 어떤 상황을 겪게 되었을 때는 신중해야 합니다. 자신이 실수할 수 있음을 언제나 기억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냥 지나칠 만한 사소한 실수일 수도 있지만,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실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오늘 본문 속 다윗의 모습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윗처럼 신실하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조차도 이런 실수를 저지른다면, 우리처럼 부족하고 성급하다면 더더욱 신중하고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다윗이 성을 버리고 피난길에 오릅니다. 요즘은 피난길을 겪어보는 게 드물죠. 그 정도는 비교할 수 없지만, 이사가 가장 정신없고 분주하죠? 군대에서는 ‘준비태세’라 불리는 훈련이 있습니다. 건물만 빼고, 평소 생활하던 모든 것을 치우고 옮기는 훈련입니다. 그 때의 훈련만큼 분주하고, 정신없는 경우도 별로 없습니다. 예정된 훈련마저도 그 정도로 힘들고 정신없는데, 실제 피난길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고 더 심각하겠죠.
그때 시바라는 사람이 나귀 두 마리에 떡, 건포도, 과일과 포도주를 잔뜩 싣고 찾아왔습니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키고, 다윗이 피난길에 올라야 하는 까닭은, 백성들의 마음이 압살롬을 향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다윗에게서 떠나 압살롬에게로 향했습니다. 다윗은 지는 별이고, 압살롬은 떠오르는 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때 다윗의 마음이야 말할 필요가 없겠죠. 더불어 그런 상황에서도 자기를 지지하고, 도움을 줄 사람들이 있다면, 얼마나 반갑겠습니까? 싸움을 피하고, 또 살기 위해 성읍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다윗의 입장이 이렇습니다. 이럴 때 시바가 음식을 잔뜩 싣고 찾아왔으니, 다윗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반갑고, 큰 위로와 힘을 얻었습니다.
게다가 음식을 가져온 이유를 묻자, 시바는 “이 나귀들은 임금님의 가족들이 타고, 빵과 여름 과일은 신하들이 먹고, 포도주는 누구나 광야에서 기진할 때에 마시고, 이렇게 하시라고 가져 왔습니다.”고 답했습니다. 다른 무엇을 바라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된 피난길에 오르는 다윗과 신하들을 위해서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을 때입니다. 다윗이 반란을 진압하고, 다시 왕으로 돌아올지, 아니면 압살롬이 새로운 왕이 되고, 다윗은 사라질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런 때마저도, 다윗을 왕으로 생각하고, 험난한 과정을 대비해 많은 음식을 챙겨 왔으니, 다윗으로서도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러면서 “네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냐?”고 묻습니다. 다윗이 말하는 사람은 사울 왕의 손자이자,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입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서 결국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왕자이면서도 다윗에게 순수한 사랑을 베풀었던 요나단도 자기 아버지와 함께 전장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렇게 사울 왕의 시대가 저물고, 그 가문도 무너졌는데, 그나마 므비보셋 하나가 남았습니다. 그런데 므비보셋은, 어렸을 때 유모가 안고 피난하던 중에 떨어뜨려 다리를 심하게 절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다윗이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었을 때, 요나단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 유일한 혈육인 므비보셋을 궁에 들이고, 함께 식탁에 오르도록 했습니다. 또 땅과 재산을 주고, 시바에게 관리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요나단의 은혜를 갚기 위해, 다윗은 여러 가지 배려하고, 도움을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자기 이익에 따라 다윗을 비난할 수도 있고, 모른 체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최소한 므비보셋만은 그렇지 않을 거라는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집을 관리하는 시바는 여러 가지를 준비해서 왔는데, 므비보셋은 안 보이니, 다윗으로서는 배신감도 들고, 또 궁금해서 므비보셋이 어디에 있길래, 안 보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시바는 “므비보셋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데, 할아버지의 나라를 자기가 돌려받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고 답했습니다. 다윗으로서는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죠. 망한 왕가의 후손, 하나님으로부터 징벌을 받아 모두 죽고, 겨우 하나 남은 므비보셋을 다윗이 거두었습니다. 요나단으로부터 받은 호의와 사랑이 크지만, 더불어 사울 왕에게 받은 핍박과 곤욕도 그만큼 큽니다. 인간적인 계산법으로는, 두 가지를 상쇄시켜, 사울 왕가에게 줄 것도, 받을 것도 없이 깔끔하게 정산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렇게 차갑고 냉철하게 계산하지 않고, 므비보셋에게 넘치는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곤란에 빠지고, 피난길에 오르게 되자, 찾아와 위로는 못 해줄망정, 본래 자기 할아버지 나라를 이제 자신이 받게 되었다며 기뻐한다고 하니, 므비보셋의 모습에 다윗이 실망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다윗은 그 동안 므비보셋에게 주었던 모든 땅과 재산을 시종인 시바에게 주었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이렇게 다윗의 위기를 틈타 등을 돌리는데, 시바는 음식까지 장만해 가져왔으니 다윗의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죠.
하지만 다윗의 이 결정은 실수였습니다. 시바가 작정하고 다윗을 속였습니다. 사무엘하 19장에 가면, 압살롬의 반역을 제압하고,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그때 므비보셋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다윗을 맞이합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을 좋게 생각할 수 없겠죠. 그래서 쏘아 붙입니다. “내가 피난길에 오를 때 너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다가, 내가 돌아올 때가 되어서야 얼굴을 비추느냐?”
므비보셋이 그간 있었던 일을 말합니다. 다윗이 피난을 떠날 때, 자신도 함께 가려고 시종인 시바에게 안장을 얹으라 명령했는데, 시바가 자기를 속여 함께하지 못 했을 뿐만 아니라, 다윗에게 거짓말로 자신을 모함했다는 것입니다. 다윗도 므비보셋에 대한 오해를 풀고, 시바에게 주었던 재산의 절반을 다시 므비보셋에게 주도록 명령했습니다.
여기에서 성급하게 판단하다 실수하게 된 다윗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온갖 일을 겪었습니다. 누구에게도 하소연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을 많이 겪었습니다. 경험과 지식과 능력까지 갖춘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다윗이 이처럼 성급하게 판단하고, 실수를 저지르게 된 모습을 보면, 사람은 그 누구나 부족하고, 실수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다윗이 이처럼 성급하게 판단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실수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무엇보다도 시바의 계략에 철저히 속아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시바는 다윗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읽었습니다. 위급하고, 어려울수록 쉽게 속일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주인의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주인도 속이고, 마치 자신만 다윗을 끝까지 섬기는 것처럼 포장했습니다. 피난길에 오르는 다윗을 위해 많은 음식을 정성스레 준비했습니다. 아들의 반역을 피해 피난길에 올라야 하는 다윗으로서는,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할 만한 여건이 안 되었습니다. 결국 시바의 계략대로, 다윗은 속아 넘어갔고, 시바는 주인의 모든 재산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시바의 친절과 충성을 가장한 모습에 넘어갔습니다. 다윗이 좀 더 신중했으면, 므비보셋을 오해하지도 않고, 시바에게 속지도 않았습니다. 성급한 판단과 시바의 계략으로 인해 다윗은 다시 한 번 부족한 모습을 백성들에게 보이고 말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아들의 반역을 피해 도망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백성들에게 보였는데, 돌아오자마자 다시 쉽게 속아 넘어가는 모습을 보였으니, 다윗으로서는 할 말이 없을 정도의 곤란에 빠졌습니다.
다윗이 속아 넘어가는 이 모습을 보면서, 일상에서 조심해야 하는 일을 볼 수 있습니다.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빨리 판단하고, 행동하는 게 능력이라 여깁니다. 우리가 가진 판단 능력이 완벽하다면, 빨리 판단하고, 신속하게 행동할수록 좋지만, 우리 모두는 실수투성입니다. 허점투성입니다. 매일처럼 실수를 반복하며 삽니다. 결정을 내리고 뒤돌아서 후회하는 게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실수한다는 점에서는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이를 인정하고, 더불어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 좋다’는 말처럼, 사람은 보이는 것에 따라 마음이 움직입니다. 좋게 말하면 움직인다는 뜻이지만, 겉모습에 따라 쉽게 속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나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면, 언제나 속을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믿음이나 인격에서 아주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을 보였고, 실수를 되풀이하는 부족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긴박한 상황이긴 했지만, 시바의 계략에 속았습니다. 거짓을 말하는 자를 충성된 자로 봤고, 진실하게 다윗을 생각하며, 아픔을 함께한 므비보셋을 미워했습니다. 결국 그로 인한 부끄러움은 다윗이 져야 했습니다.
겉모습에 따라 성급하게 판단함으로써 실수한 다윗을 기억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더 신중하게 행동함으로써, 나날이 복되고, 기쁨과 은혜가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