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220130)내가 아니어도(왕상 2장 28-35절)

청명하늘 2022. 1. 30. 12:58

내가 아니어도

 

성경: 열왕기상 228-35(513)

찬송: 265(주 십자가를 지심으로), 216(성자의 귀한 몸)

설교: 20220130.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습니다. 모양새가 다를 뿐, 시간이 지날수록 수많은 사람과 이리저리로 얽히고설킬 수밖에 없습니다. 작게 보면, 가정부터 시작해, 여러 모임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영향을 주고받게 됩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모든 사람이 똑같지는 않죠. 알아온 시간과 횟수와는 상관없이, 만나면 좋고, 힘이 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야기하고 나면, 금세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갈 만큼 편하고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많죠. 만날 수밖에 없는데, 말도 안 통해 답답하고, 힘이 빠지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심한 경우는, 한두 시간 이야기하고 나면 진이 빠질 만큼 힘듭니다. 사람마다 나름의 성격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나고 이야기 나누기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 중에서도, 어떤 사람이 특히 더 심할까요? 여러 가지 기준과 이유를 말할 수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 생각을 가진 사람이 특히 어려운 듯합니다. “나만 아니면 돼!”나 아니면 안 돼!” 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입니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말은 예전 한 오락 프로그램에서 나왔습니다. 말 그대로 재미를 위한 프로그램인지라, 여러 가지 게임을 통해 벌칙 받을 사람을 정합니다. 벌칙을 받지 않는 사람은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자리에서 편히 잠을 잘 수 있습니다. 벌칙에 걸리는 사람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비나 눈이 오는 날에도, 바깥 텐트에서 자야 합니다.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하나가 되어 열심히 노력합니다. 하지만 막상 벌칙 받을 사람을 정하는 순간이 되면 하나라는 생각이 없어집니다. 다른 사람이 벌칙에 걸리고, 아무리 힘들고 불편해도, 자신만 벌칙을 당하지 않으면 괜찮다는 생각을 나만 아니면 돼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밥을 먹든 말든, 다른 사람이 폭설 속에 텐트를 치고 자더라도, 나만 그런 어려움을 당하지 않으면 괜찮다는 생각을 잘 드러낸 말입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함께하기 참 어렵죠? 이런 말은 주로, 자기의 능력을 크게 보는 이들의 입에서 많이 나옵니다. 모임을 위해 자신이 해낸 일이 크고, 자기가 아니었으면 이 정도로혹은 그만큼제대로 되지 못 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처럼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없으면, 모임은 유지되거나 발전하기 어렵다는 표현입니다.

 

군대에서는 출생지와 살아온 환경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죠. 그런데 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내가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의 모습이 기억되곤 합니다.

 

저보다 1년 정도 선임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욕하면서 내가 아니면 소대가 돌아가냐?” “내가 없으면 너희들 어떻게 할래?” 하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자기의 능력과 부지런함 때문에 소대가 돌아갈 만큼, 자신은 일도 잘 하고, 기여한 바도 크다는 말이죠.

 

하지만 내가 아니면 소대가 어떻게 돌아가겠냐?”며 말을 수없이 내뱉은 그 선임이 전역한 후에도, 군대는 전혀 이상 없이 잘 운영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없어서 문제가 생기기보다는, 오히려 소대는 더 조용해졌고, 큰 다툼이나 어려움 없이 잘 운영되었습니다.

 

나만 아니면 돼내가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언제나 공동체에 어려움과 분란을 많이 일으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한두 사람만 있으면, 그 모임은 점차 시끄러워지고, 싸우게 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와 어려움이 더 커져서, 발전과 부흥은커녕 오히려 후퇴와 붕괴를 겪게 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이들 중에도 분명 실력과 능력을 갖춘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 편에서는, 이런 말을 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을 만큼, 공로가 큰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을 통해 모임이 발전하기보다는 후퇴하고 망가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두 가지 생각을 가진 이들이 모두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사는 이들은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자기 하나만을 위해 살아갑니다.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거나, 손해를 감수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이 반복되고,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아지면 어떻게 될까요? 누군가는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해야할 때가 있습니다. 남을 위해 자기 이익을 포기하고, 손해를 감수해야 할 경우를 마주합니다. 그런데 자기만은 절대 손해와 희생을 감수하려 하지 않으면, 손해와 어려움은 더욱 커지고, 희생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수록 어려움과 갈등이 커지기는 마찬가집니다. 모임 속에 이런 사람이 한두 사람이라도 있으면, 문제는 더욱 커지고, 모든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손해를 끼칩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에게는 모든 기준과 방법이 자신에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는 오직 자신만을 위해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방향과 방법이 자신을 향해 있으니, 능력이 자신보다 더 뛰어나고, 그래서 더 많은 인정을 받는 사람이 오면 어떻게 할까요? 좋아할까요? 인정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함께할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만이 정답이고, 기준인지라, 자기보다 못 하면 못 해서 잘못이라며 싸웁니다. 자기보다 더 나으면, 더 뛰어나서, 혹은 자기보다 더 인정받아서 싸웁니다. 자기가 주인공처럼 인정받지 못 해서 또 싸우고 없애려 합니다.

 

그래서 나만 아니면 돼내가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그 능력과는 상관없이 암적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엔 본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때로는 자기 일에 집중하는 모습이나, 혹은 열심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 세포는 점차 커지고, 다른 세포에까지 병들게 합니다. 이런 세포가 커지고 넓어질수록 모임은 병들고, 결국 망하게 됩니다.

 

이 두 가지 모습을 가진 사람이 오늘 읽은 본문 속에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모습까지 기록되었습니다.

 

본문에서 솔로몬 왕이 요압을 죽이라 명령합니다. 요압은 다윗의 조카입니다. 솔로몬에게는 사촌이 되기도 하며, 다윗이 왕으로 있을 때, 군대장관으로서 오랫동안 군대를 이끌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다윗 곁에 머물며, 다윗을 위해 싸웠습니다. 다윗의 기반이 튼튼하지 못 했을 때도, 또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도망할 때도 다윗과 함께했습니다. 다윗이 나라의 기반을 다져가는 과정에서 공로와 업적이 가장 큰 사람들 중 한 사람입니다.

 

군대장관으로서 여러 업적을 세울 만큼 능력이 뛰어났음에도, 다윗은 솔로몬에게 요압이 평안히 삶을 마치지 못 하게 하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자신에게는 조카가 되고, 또 나라를 강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 바가 큼에도, 다윗이 이를 유언으로 남길 만큼 다윗은 요압을 싫어했습니다. 하지만 요압의 권력이 워낙 세서, 왕인 다윗 자신은 처리하지 못 하고, 솔로몬에게 넘겼습니다.

 

업적도 크고, 혈육으로는 조카가 됨에도, 요압을 처리하라 명령한 이유는 요압이 바로 나만 아니면 돼내가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셋째 아들인 압살롬이 자기 이복형제이자, 다윗의 맏아들인 암논을 살해하고 도망한 사건이 있습니다. 아버지 다윗으로서는 화도 나지만, 또 압살롬도 아들인지라 압살롬을 그리워하는데, 이때를 요압이 이용합니다. 요압이 작전을 짜고, 다른 사람에게 연극을 시켜 다윗의 허락을 받아냅니다. 다윗은 압살롬에게 돌아오라고 허락했지만, 직접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으로서는 요압의 중재를 통해 돌아왔는데, 아버지 얼굴을 못 보고 시간이 한참 흐르니 답답합니다. 요압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처리해 주면 좋을 텐데, 요압은 아예 손을 놓고, 오라 해도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압살롬이 요압의 보리밭을 태우라고 합니다. 요압은 그제서야 이에 항의하기 위해 압살롬을 찾아가고, 압살롬은 다윗과 직접 만날 수 있도록 손을 써달라는 말을 전합니다.

 

이 과정을 보면, 요압이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이 큰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과 압살롬이 다시 만나 화해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를 위해 수고해 압살롬이 돌아올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압살롬을 직접 보지 않겠다고 하자, 압살롬이 자기 밭에 불을 놓기까지 요압은 2년 동안 손을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만약 압살롬이 다윗과 압살롬이 화해하기를 진심으로 바란 사람이었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압살롬이 돌아오는 과정만이 아니라, 얼굴을 마주보고 화해할 때까지 노력해야 합니다. 자기 임무는 압살롬이 돌아오는 일까지라 여겼다면, 압살롬이 자기 밭에 불을 놓고, 협박해도 관심을 두지 않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압은, 2년 동안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가, 자기가 직접 손해를 입게 되자, 이전과는 다르게 열심히 수고하고 노력합니다. 다윗과 압살롬이 화해하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을 처리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보면, 요압은 말 그대로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자기가 손해를 입지 않으면, 관심이 없습니다. 자기가 손해를 입으면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요압이 비참한 마지막을 맞이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항상 자기중심적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왕의 명령 없이도, 자기 판단과 이익을 앞세워 행동한 일이 크게 두 차례 있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둘로 나뉘었다가, 다윗이 왕이 되면서 점차 하나가 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북쪽의 군사령관이 다윗을 찾아와 통일을 논의하고 돌아가는 길에 요압의 손에 살해당했습니다. 또 다윗 왕이 아마사를 군대장관에 앉히자, 요압은 아마사마저 살해했습니다.

 

요압이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이 둘을 죽인 이유가 조금 다르지만, 그러나 크게 보면, 모두 철저히 자기중심으로 판단하고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자기만이 정답이고, 자기만이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내가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에 깊이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압의 판단과 행동이 잘못되었습니다. 요압이 평생 이렇게 살아왔더니, 부귀영화가 아니라,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누구보다 많은 업적을 쌓았고, 다윗을 지키며 나라를 위해 수고했음에도, 목숨을 구걸해야 했고,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요압의 삶과 죽음을 통해, 복과 은혜와 생명을 받는 길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아니어도, 내 문제가 아니어도...”라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내가 직접 고난을 당하지 않아도, 내가 직접 손해를 입지 않아도, 내 문제와 아픔과 어려움으로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고난과 아픔을 상관없는 일로 외면하지 말고, 함께 아파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아주 싫어하셨습니다. 이들은 아주 경건하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음에도, 싫어하신 이유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남에게 짐을 지울 뿐, 다른 사람의 아픔과 어려움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마태복음 234절에서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하십니다.

 

업적과 공로에서는 자신을 중심으로 두고자 하는 욕심을 버려야 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수고와 헌신에 앞서는 모습은 분명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과정이 자기중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은 언제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태도나, 자신은 언제나 맞기 때문에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자세는 절대 옳지 않습니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어도 돼.” ‘내가 아니어도..’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1-4절에서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주인공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를 받는 사람은, 자기를 주인공으로 삼고, 자기중심으로 일하는 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내가 아니어도라는 자세로 남을 섬기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자기들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잘못된 선민사상에 빠진 이들에게 예수님은 마태복음 39절에서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고 경고하십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역시, “나만이...”라는 생각에 빠져 살면, 요압의 마지막과 다르지 않게 됩니다. 많은 수고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도 더 겸손히, 남을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마음에 새기고,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언제나 겸손하고, 자기만의 욕심과 기준을 철저히 버리고, 함께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수고함으로써, 나날이 복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과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