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3)신앙은 질서와 평안 위에 세워져야(왕상 6장 1-10절)
신앙은 질서와 평안 위에 세워져야
성경: 열왕기상 6장 1-10절(구 519쪽)
찬송: 446장(주 음성 외에는), 208장(내 주의 나라와)
설교: 20220313.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운동 경기들 중에, 여러 사람이 팀을 이루어 치러지는 종목들이 있습니다. 축구는 11명이 한 팀을 이루고, 야구는 9명이 시합을 펼칩니다. 물론 교체를 대비한 선수들도 여럿 있습니다.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럿이 팀을 이뤄 경기하다 보니, 그만한 특징들이 있겠죠.
높이뛰기나 역도처럼 오직 한 사람의 결과에 따라 성적을 매기는 경기에서는 어떤 선수가 가장 좋은 선수일까요? 여러분이 감독이라면, 어떤 선수를 선택하겠습니까? 혼자서 하는 경기라면,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가 최고입니다. 이런 경기에서는 오직 능력 하나만 기준으로 삼아 선수로 선택한다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축구나 야구나 배구처럼, 여러 선수들이 함께 펼쳐야 하는 경기는 어떻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단체 종목의 감독이라면 어떤 선수를 뽑겠습니까? 경기에 나가 성적을 거두기 위한 목적이 있으니, 실력 하나만 볼까요? 실력만 좋으면, 나머지 어떤 부분도 안 보고 선택될까요?
친목과 취미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직업으로 경기를 펼치는 선수들에게는 성적이 가장 중요합니다. 또 그만한 성적을 낼 만한 실력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실력 하나만 보고 뽑지 않습니다. 다른 선수들과 얼마나 잘 어울리고, 화합하는지를 아주 중요하게 봅니다.
올해 우리나라 프로야구 한 팀에 유명한 외국 선수가 들어왔습니다. 이 선수는, 2-3년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프로야구 시장인 미국에서도 아주 뛰어난 성적을 내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야구선수로서 필요한 다섯 가지 능력을 모두 갖추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돈으로 1년에 약 100억 원 가량을 받을 정도로 인정받았고, 훨씬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기회까지 있었습니다.
그런데 2,3년 제대로 된 팀과 계약하지 못 하고, 이번에 우리나라 야구팀으로 들어왔습니다. 우리나라도 프로야구 시설과 선수들 대우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미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에 불과합니다. 1년에 100억 원 가량을 받던 선수가 우리나라에 오면서 10분 1 수준을 받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이미 충분한 성적을 냈고, 나이도 그리 많지 않아서, 앞으로도 충분히 좋은 성적을 낼 만한 선수임에도, 미국 프로야구 팀과 계약하지 못 한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악동’이라 불릴 만한 모습을 자주 보였기 때문입니다. 선수로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거침없이 저질렀습니다. 여러 사고를 일으켰고, 팀의 다른 선수들과도 화합하지 못 했습니다. 이 선수를 받아들이면 오히려 팀의 분위기가 나빠지고, 그래서 성적까지 나빠지게 되었습니다.
선수로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실력만 갖추면 되지, 왜 다른 사람과 얼마나 잘 어울리고 화합하는지를 중요하게 여길까요? 여러 명이 함께하는 경기는, 선수들 간의 호흡과 화합이 큰 영향을 끼치고, 그래서 성적도 크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선수가 팀에 잘 녹아들면, 팀이 뛰어난 성적을 내게 만듭니다. 반대로 팀에 스며들지 못 해서, 팀의 선수들과 여러 문제와 갈등을 일으키면, 그 선수의 성적은 좋아질지 모르지만, 다른 선수들을 해롭게 하고, 더 나아가 팀에는 손해를 끼치게 됩니다.
이는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집니다. 믿음은 각자의 선택과 결정에 따릅니다. 믿음이란 마치 1인 경기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믿음을 가졌는지에 따라, 삶의 방향과 내용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원과 영생과 복도 달라집니다.
하지만, 믿음을 삶으로 바꿔가는 과정은 마치 단체 경기와 같습니다. 여러 선수가 한 팀을 이뤄 겨루는 경기에서는, 각 선수의 성적과 실력만큼, 조화와 화합이 중요하듯이, 신앙생활에서는 신앙인들 각 개인의 믿음의 수준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다른 교인들과 함께 융화를 이루는 절제와 인내도 중요합니다. 말씀을 통해 주신 방향과, 교회 교육을 통해 주어진 가르침에 따라, 각자 자기를 낮추고, 변화시켜 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능력이 뛰어나지만, 자기 생각과 기준만을 내세우느라, 다른 교인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 하는 교인들보다는, 능력과 헌신의 분량이 크지 않지만, 교회 질서에 따라 조화를 이루는 교인이 더 좋은 신앙인입니다. 교회에 꼭 필요한 일꾼은, 자기 혼자만 좋은 성적을 내려는 선수 같은 신앙인이 아니라, 자신은 드러나지 않고, 칭찬을 받지 못 해도, 팀의 화합과 승리를 위해, 낮추고, 양보하고, 함께할 줄 아는 선수 같은 신앙인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에 첫 성전이 세워지는 과정이 기록되었습니다. 그 동안 이스라엘에는 성전이 없어, 천막으로 만들어진 성막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지냈습니다. 성막에 갈 수 없는 대부분은 산의 높은 곳에 세워진 ‘산당’이라는 곳에서 제사를 지내곤 했습니다.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 계획했지만, 성전을 지을 재료만 준비해 놓고, 아들 솔로몬이 왕이 된 후 4년째 되던 해에 성전 건축을 시작합니다. 크기는 2절에 나왔는데, 길이가 육십 규빗, 너비가 이십 규빗, 높이가 삼십 규빗입니다. 1규빗은 45cm가량으로서, 요즘 단위로 하면, 길이 27m, 너비 9m, 높이 13.5m가량 됩니다. 거대하다 할 수는 없죠. 그럼에도 6장 마지막 38절에 기록된 대로, 이 성전을 짓는 데 7년이 걸렸습니다.
좀 의외죠. 건물을 짓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보통은 자재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경비와 여건이 안 되는 이유가 가장 큽니다. 그런데 성전 건축을 주관하는 사람은 다른 이가 아닌 솔로몬 왕입니다. 솔로몬은 부귀영화의 복을 받았습니다. 솔로몬을 통해, 당시 이스라엘은 부해지고 강해졌습니다. 또, 왕이 성전 건축을 명령하는데, 일꾼이 부족하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앞장 5장에서도, 솔로몬은 이웃 민족인 두로 왕에게 성전 건축에 필요한 자재와 인력을 공급해 달라고 요청했고, 합의되었습니다.
이처럼 왕이 주관하고, 모든 자재가 준비되었음에도, 작은 건물을 짓는 데 무려 7년이 꼬박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전 내부를 장식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일까요? 그러나 성전에 들어가는 장식품과 도구들을 신중히, 또 정성스레 준비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보다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본문 7절 “이 성전은 건축할 때에 돌을 그 뜨는 곳에서 다듬고 가져다가 건축하였으므로 건축하는 동안에 성전 속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으며”라는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쉽게 번역된 표준새번역에서는 “돌은 채석장에서 잘 다듬어낸 것을 썼으므로, 막상 성전을 지을 때에는, 망치나 정 등, 쇠로 만든 어떠한 연장 소리도, 성전에서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로 말씀합니다.
집이나 창고를 지어보신 적 있죠? 짓는 과정을 보면 어떻습니까? 가장 먼저 기초를 다지고, 이후에는 순서에 따라 필요한 자재와 기계들을 가까운 곳에 가져와 쌓아 둡니다. 그리고 필요한 모양으로 재단해 씁니다. 건축 경험과 실력이 좋아도, 오차 범위와 횟수가 적을 뿐이지, 자재를 재단하고, 맞춰 보는 과정은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패널로 집을 짓는 경우를 생각하면, 필요한 만큼 패널과 철재를 가져와 쌓아둡니다. 그리고 필요한 모양과 크기에 따라 자르기도 하고, 용접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건축 현장을 직접 보지 않아도, 멀리서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시끄럽습니다. 연장이 만들어내는 소리만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이 내는 소리도 큽니다. 또 여러 자재와 폐기물로 혼란스럽고 지저분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건축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래야 시간과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죠. 만약, 패널과 철재가 필요할 때마다 한 장씩 주문하면 어떨까요? 오늘 필요한 모양을 정확히 계산해서 주문하면 며칠 걸려서 받습니다. 그래도 안 맞으면 이 과정을 되풀이합니다. 패널과 철재 하나씩 모두 이렇게 제작하고, 운반하면, 건축 과정에서 소란과 혼란은 적어지지만, 시간은 길어지고, 비용은 훨씬 커집니다. 그래서 일반 건축 과정은, 비용과 시간을 위해, 혼란과 소음을 감수한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전 건축 과정은 이와 전혀 달랐습니다. 성전의 기본 틀은 돌로 만들었는데, 필요한 돌마다 주문 제작했습니다. 요즘은 전화와 컴퓨터라는 좋은 통신장비가 있습니다. 또 쉽고 빠르게 운반할 수 있는 장비와 수단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성전이 지어질 때는 사람이 직접 가서 수치를 알려주어야 하고, 또 말이나 소를 통해 운반해야 합니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계획한 대로 돌을 작업해 성전까지 가져와 올렸더니, 정확하게 맞지 않는 경우가 있겠죠. 이럴 때, 쉽고 편하려면, 망치질도 하고, 정으로 모양을 가다듬으면 됩니다. 하지만 성전을 지을 때는 쉽고 편한 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돌을 채석장으로 가져갑니다. 그곳에서 성전에 꼭 맞는 모양으로 작업하거나 바꿔서 가져왔습니다.
그나마 채석강이 가까이 있다면, 시간과 비용이 조금 더 걸리고, 좀 번거로운 정도에 불과하겠지만, 채석강이 수십 km 떨어져 있다면 어떨까요? 성전에 돌 하나 올리는 데에 며칠, 몇 달이 걸릴지 모릅니다. 필요한 수치를 전해 주어야 하고, 주문대로 작업해야 하고, 또 운반해 가져와야 합니다.
성전을 짓는 과정에서, 이처럼 불편하고, 힘들 뿐만 아니라, 시간과 비용은 끝없이 들어가는 방식을 이용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성전을 세우는 현장에서는, 어떠한 소란이나 소음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성전을 건축하는 데 이용한 이 방법은 불합리하고, 불편할 뿐만 아니라, 시간과 비용은 턱없이 많이 들어가지만, 그럼에도 거룩해야 하는 성전 안에서 소란스러운 연장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그 어느 곳보다 절제되고 정리되어야 하는 성전 안이, 비록 건축 중임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깨끗할 수 있었습니다.
성전 건축에 이용된 이 방식을 통해, 성전의 거룩함을 닮아야 하는 신앙생활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소란과 소음과 지저분함을 경계했던 성전 건축을 통해, 교회생활이 어때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에서 모난 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경우라도, 성과와 효율을 위해 질서와 말씀과 화평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교회에서 아무리 크고 많은 일을 해내고, 아무리 많은 헌금을 한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자기가 원하는 모양과 생각을 앞세워서는 안 됩니다.
돌에 따라 성전을 만들어 가지 않았습니다. 성전에 필요한 모양을 철저히 계산한 후, 그에 맞게 돌을 다듬었습니다. 돌의 모양이 멋지고, 예쁘고, 특별하다 하더라도, 그 모양과 크기를 그대로 성전에 쓰지 않았습니다. 성전 중심으로 계산한 후 돌을 다듬었습니다. 이 방식이 불편하고, 어렵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집인 성전이기에, 철저히 다듬어진 돌만을 사용했고, 성전에 꼭 맞는 돌만을 이용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마찬가집니다. 성전을 세우는 과정처럼 신앙생활해야 합니다. 성전 건축에 돌을 쌓아가는 과정처럼 교회 생활을 이어가야 합니다. 교회는 건축물로서는 성전과는 차이가 있지만, 그러나 세워 가는 과정은 같아야 합니다. 성전을 세우는 과정처럼 정성과 시간과 헌신을 들여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철저히 교회의 질서와 화평을 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목회자들끼리 이야기 나누다 보면, 어려움 없는 교회가 없습니다. 가시처럼 목회자와 다른 교인들을 불편하게 하고, 다치게 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찌르고, 해치는 교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직분만 다를 뿐, 똑같은 역할을 목회자가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적지 않다고 해야 할 듯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못되게 구는 신앙인 다수는 업적과 공로가 큰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과정에서 특별하다 할 만큼 수고와 헌신을 많이 했거나, 교회를 위해 헌금과 시간을 많이 들였습니다. 이를 앞세워, 자기의 계획과 바람대로 교회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런 신앙인은 마치 크고, 화려하지만, 성전 설계에 맞지 않는 돌과 같습니다. 이런 돌을 중심으로 성전을 바꿔가지 않고, 성전에 맞게 돌을 만들고 작업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헌신과 수고를 앞세워 자기 뜻대로 하고자 하는 이들은, 교회가 시끄럽지 않도록,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서 다듬어지고, 깨져야 하는 돌에 불과합니다. 이런 과정이 몇 번 반복되었음에도, 교회에 맞춰지지 않는다면, 결국은 쓸모없어져 버림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보석처럼 빛나는 자재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희귀하고 값비싼 돌 같은 신앙인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교회의 평화와 질서와 안녕을 위해, 기꺼이 다듬어질 수 있는 자녀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계획에 따라, 번거롭고, 어렵고 힘든 과정마저 감수할 만한 일꾼을 원하십니다. 이런 일꾼이 모이고, 함께할수록, 교회와 우리 삶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모양으로 점차 완성되어 가게 됩니다. 이런 다짐과 자세로 함께해야만, 하나님이 영원히 기억하시고, 함께하시는 거룩한 처소가 됩니다.
성전의 거룩함과 정결함을 지키기 위해, 불편하고, 어려운 과정으로 세워간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신앙생활, 교회생활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깨닫고, 언제나 교회의 질서와 화평과 사랑을 위해, 철저히 자기를 낮추고, 헌신하고, 수고함으로써, 우리 모두가 거룩한 처소가 되어,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과 은혜와 평안을 날마다 누리며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