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220605)예배와 기도보다 순종으로 복을 받습니다(왕상 9장 1-9절)

청명하늘 2022. 6. 5. 13:48

예배와 기도보다 순종으로 복을 받습니다

 

성경: 열왕기상 91-9(528)

찬송: 382(너 근심 걱정 말아라), 433(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설교: 20220605.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길 빕니다.

 

지난 주 수요일에는 지방선거가 있었습니다. 도지사부터 도교육감, 군수, 군의원까지 투표를 통해 선택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만큼 투표율이 높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선거라 할 수 있는 대선이 지난 지 얼마 안 된 까닭도 한 가지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투표율이 낮은 이유를 출마자들에게서 찾으면 무엇이 있을까요? 어느 선거가 되었든 한 가지 공통점이 있죠. 출마자들의 열심입니다. 의석수와 출마자 수가 같아서, 투표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출마자들은 참 열심히 합니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다 경쟁적으로 현수막을 달고, 차량을 이용해 목소리를 높입니다. 자기가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며 호소합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곳에서, 이동이 가장 많은 시간에, 매일 몇 시간씩 지나가는 차량과 사람을 향해 인사하는 후보자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자리면, 어떻게 알았는지 후보자들이 직접 찾아와 크게 허리를 숙이며 표를 부탁합니다. 몇 사람이 있는 곳이면, 후보자의 운동원들이 찾아와서 지지해 달라고 합니다.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열기는 더 뜨거워지고, 후보자들의 간절함은 더욱 커집니다.

 

이처럼 후보자들과 운동원들의 수고와 열정은 언제나 대단한데, 표를 주어야 하는 유권자들은 왜 시큰둥할까요? 다른 이유들도 있겠지만, 실망감도 가장 큰 이유들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선거 전까지, 후보자들의 열정과 겸손은 인정할 만하고, 공약도 눈길을 끌지만, 후보자들의 이런 모습은 시한부입니다. 딱 투표일까지입니다.

 

유권자들을 향한 감사도 그 순간일 뿐 금세 사라집니다. 투표일이 가까울수록 낮아지고 구부려졌던 목과 허리는, 투표일이 지난 순간 뻣뻣해지고, 이제는 유권자들을 내려다봅니다. 선거 운동을 벌일 때는,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사람에게 찾아가고, 할 수 있는 대로 낮아지고 겸손했지만, 당선된 순간 더 이상 애써 사람을 찾아가지 않습니다. 애써 허리를 굽히지도 않고, 매일처럼 인사하던 모습도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이 내놓았던 공약도, 당선된 순간 더 이상 지킬 필요 없게 됩니다. 후보자들이 내놓은 약속들 중 다수는 절대 지킬 수 없고, 이룰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정도입니다.

 

선거에 입후보하고 당선된 사람들의 모습이 왜 그렇게 쉽게 바뀔까요? 겸손했던 자세는 어디로 가고, 당선된 순간 왜 교만해질까요? 반드시 이루어주고, 지키겠다는 약속들에 대해서도, 당선된 이후에는, 더 이상 관심도 안 쓰고, 노력도 하지 않을까요?

 

다른 무엇보다 당선 자체를 목적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당선 자체를 목적으로 삼다 보니, 이를 위해 아무 말이나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일들을 이루어 내겠다며 떠듭니다. 표를 더 얻을 수 있다면, 과정과 내용이 불법이든 합법이든 신경쓰지 않습니다. 표를 더 얻을 수 있다면, 실현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표를 얻는다면 이룰 수 없는 일도 당장 해낼 수 있다는 듯이 약속합니다.

 

그러나 선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선거를 통해 사람을 세우는 까닭이 무엇일가요? 자리를 만들고, 권력자를 세우기 위해서일까요? 단순히 대표자를 세우기 위해 선거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선거를 통해 사람을 선택하는 이유는 쉽고 분명합니다. 좋은 일꾼을 세워서 일을 더 잘 하게 만들고, 많은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나은 안목으로 목표를 세울 줄 알고, 자리에 맞는 사람을 세워 더 많이,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일하라 뽑습니다.

 

사람마다 생각과 목표가 다르고, 방법이 다릅니다. 또 사람마다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다릅니다. 그래서 일을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서, 그들로 하여금 책임을 지고 일을 진행하도록 뽑아 자리에 세웁니다. 일이 목적이지, 자리가 목적이 아닙니다. 일을 하도록 선거 제도를 만들었지, 자리를 채울 사람을 선택하기 위해 선거하지 않습니다.

 

이를 보면, 선거에 입후보한 많은 이들의 생각이 아주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선거란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한 첫걸음에 불과할 뿐, 선거 자체가 목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선거 자체는 목적을 향한 시작이자, 방법과 도구이지, 당선을 목적 삼아서는 안 됩니다. 당선을 목적 삼으면, 당선된 즉시 더 이상 일하거나 수고할 필요조차 없게 됩니다.

 

이는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신앙생활에 필요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배우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오셔서 대신 죽으셨음을 사실로 믿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높일 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 살기로 다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돈과 권력과 자신을 주인 삼아 살아가는 길과 방향이 잘못되었다며 인정하고, 하나님이 세상과 생명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이 한 순간에 바뀌지 않습니다. 여러 질병들 중, 만성이 되면 이를 고치기 어렵죠. 치료하는 과정도 훨씬 어렵고, 또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물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향해 사는 과정이 쉽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죄성 때문에, 이미 죄와 세상을 향해 만성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거슬러,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은 언제나 거치고 힘들고 어렵습니다. 어느 특정한 방법이나 계기를 통해 완벽하게 변화될 수 없습니다. 어느 한 순간 완벽해질 수는 없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고, 가늠할 수 없는 장애들을 넘어야 합니다.

 

몸을 가지고 사는 한, 이 과정을 한 번에 뛰어넘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이 걸음을 쉬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통해, 죄와 잘못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향하기로 다짐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신앙인들은 교회에 나오고, 예배에 참석하면 모두 이루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예배에 참석해 기도하고, 찬양하고, 헌금하면 신앙생활을 잘 하는 줄 압니다. 그 정도면 신앙이 완성된 줄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완전한 착각입니다. 교회에 나오고, 예배를 드리는 모든 과정은 신앙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합니다. 예배와 기도와 찬양과 헌신은 신앙생활의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과정과 수단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가는 방법을 배우고 익히고 실천하는 과정입니다.

 

이는 오늘 본문 속에서 솔로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은, 본문 1,2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건축하기를 마치며 자기가 이루기를 원하던 모든 것을 마친 때에 여호와께서 전에 기브온에서 나타나심 같이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라는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솔로몬이 왕이 된 후 이스라엘 역사에서 처음으로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성전을 건축하기 전에, 솔로몬은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이때도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꿈속에 나타나셨고, 소원을 물으셨습니다.

 

성전 건축을 마친 후 솔로몬은 백성들과 기쁨을 나눕니다. 권력자나 제사장들만의 축제로 만들지 않고, 전국에서 성전 봉헌을 위해 찾아온 모든 이들과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성전 봉헌까지 모두 바친 후, 하나님께서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하시는 말씀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말씀이 어떻습니까?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아니면 경고하는 말씀입니까? 두 가지가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3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기도와 네가 내 앞에서 간구한 바를 내가 들었은즉 나는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라는 말씀만 보면, 복을 약속셨다 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이미 성전을 건축했고, 봉헌한 후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와 간구를 들으셨고, 그대로 성전을 거룩한 곳으로 인정하실 뿐만 아니라, 성전에 눈길과 마음까지 함께하신다고 하셨으니, 이만한 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이유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제나 함께하시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이를 보면,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수고와 목적은 모두 이루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실 뿐만 아니라, 솔로몬이 기도한 바를 하나님께서 모두 들으시고, 함께한다고 약속하셨으니, 복이 약속되었습니다.

 

그런데 4절부터 8절까지 이어지는 내용은 하나님께서 복만 약속하셨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복을 받기 위한 조건도 말씀하셨지만, 저주와 경고의 말씀도 함께 주셨기 때문입니다.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이 복을 받으려면, 4절의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이라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이 조건을 다 채우면, 다윗과 솔로몬의 후손들이 이스라엘의 왕위를 계속 잇는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6절에서는 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이라는 경고의 말씀과, 그 결과로서 7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라고 말씀합니다. 7년 동안 온갖 수고와 헌신을 통해 세운 성전을 버리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성전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성전 자체가 목적이라면, 솔로몬에게 오직 복과 평안과 은혜의 말씀만 주셔야 합니다. 솔로몬은 7년에 걸쳐 성전을 건축했고, 그에 필요한 자재와 방법까지 철저히 구별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성전을 완성한 후임에도 솔로몬에게 경고의 말씀을 같이 주십니다. 성전의 완성이 신앙의 완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7년 공들여 지은 성전은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숙해지고 온전해지는 과정에서 수단으로 필요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성전의 완성을 통해 받지 않고, 4절에 나오는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이라는 조건을 채움으로써 받을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성전의 완성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과 율법을 따라 지키며 사는 이들에게 복 주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열왕기상 3장에서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린 후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14절 말씀에서도 확인됩니다.

 

솔로몬은 일천번제를 드렸고, 온갖 귀한 자재를 이용해 7년에 걸쳐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일천번제를 드렸다고 복을 준다 하시지 않았고,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했다고 복을 얻는다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일천번제를 드린 후에도, 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대로 살라 하셨습니다. 성전을 건축한 후에도, 복을 받기 위해서는 똑같이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과 율법에 따라 살라 하셨습니다.

 

일천번제나 성전 건축은 자체가 복을 받기 위한 조건이 아닙니다. 복을 받기 위해서는, 일천번제나 성전 건축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리지 못 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다면,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전을 건축하지 못 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따라 살았다면 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솔로몬의 아버지인 다윗이 산 증인입니다. 다윗은 일천번제를 드리지 않았고, 성전을 건축하지 못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뜻대로 살았더니 넘치는 복을 받았습니다. 자손들이 왕의 자리에 오르는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 기도와 예배를 드리고, 수고하는 과정도 귀합니다만, 그러나 여기에 그치면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배와 기도와 헌신은 복을 완성하는 조건이 아니라, 시작점에 불과합니다. 일천번제를 드렸지만,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져 살면, 복을 받을 길이 없습니다. 성전을 완성할 만큼 수고와 헌신이 가득해도,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서 벗어나 살면, 하나님이 외면하시고 버리십니다.

 

원하는 바대로, 복과 은혜와 평안을 누리며 살려면, 그래서 예배와 수고를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되고, 오직 시작과 도구로 삼을 줄 알아야 합니다. 예배와 말씀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기억하며, 그 뜻대로 살고자 수고하고 노력해야만 비로소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린 후에도, 성전 건축을 완성한 후에도, 여전히 복과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과 계명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솔로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날마다 하나님만이 주시는 복과 은혜와 평안을 누리는 지혜로운 자녀 모두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