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는 게 가장 큰 복입니다
성경: 사무엘상 1장 4-11절(구 408쪽)
찬송: 315장(내 주 되신 주를; 통512), 445장(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통502)
설교: 20190303.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어떤 사람이 삶의 과정을 아주 간단하게 표현한 것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세 가지로 나누었는데, 즐거움, 돈, 행복입니다. 왼쪽은 스위치인데, 이게 오른쪽으로 옮겨지면 얻거나 이루는 것을 뜻합니다. 누구나 인생에서 이 세 가지를 꼭 이루고 얻고 싶죠? 즐거움과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즐거움과 행복을 얻기 바라는 마음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도표에서 보듯이 이 세 개를 모두 이루거나 얻지 못 합니다. 두 개를 이루고 힘써 마지막 세 번째 것을 얻었다 싶으면, 이미 이루어 놓은 것 중 하나가 다시 사라지거나 무너집니다. 삶을 온전하게 만들기 위해, 무너진 것을 집중해서 회복시킵니다. 그러다 보면, 이미 이루어 놓은 것, 이미 완성해 놓은 것들이 다시 무너지거나 사라지고 맙니다. 현실은 이 세 가지만이 아니라, 건강이나 권력이나 사랑 등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죠?
인생의 과정을 아주 간단하면서도 재치 있게 표현한 것이지만,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삶에서 각자가 바라는 것들이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다르다는 것이 내용보다는 순위의 차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즐거움과 돈과 행복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죠? 다만 이 세 가지만으로 판단한다면, 어떤 것을 가장 큰 목표로 두느냐 하는 차이는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을 즐겁게 사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삼아서, 돈과 행복을 그 아래에 두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가장 높은 목표로 두어서, 즐거움과 행복을 그 아래에 두기도 합니다.
이를 바꿔 생각해 보면, 그 누구도 완벽하고,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보통은 돈의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습니다. 그래서 돈을 가장 큰 목표로 삼고 노력합니다. 돈을 위해 건강과 행복과 즐거움을 모두 포기하며 살아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몸이 아파도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해야 하는 때가 많죠? 돈을 위해 건강을 포기하는 경우죠? 놀고 싶고, 하고 싶은 것들이 있어도, 일 때문에 이를 포기하는 때도 많습니다. 돈을 위해 즐거움과 행복을 포기하는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돈을 위해 다른 것들을 포기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만, 그러나 돈만 있다고 해서 행복해지고, 삶이 온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로서는 평생 못 볼 만큼의 돈을 가진 이들도, 돈 문제 외의 사랑이나 인간관계나 건강 때문에 큰 고통을 겪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 누구도 바라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가질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는, 또 다른 무엇인가를 뒤로하고 버려야 한다면, 귀하고 소중한 것들을 위에 두고 위해 노력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소하고 시시한 것들을 뒤로하고, 귀하고 소중한 것들을 얻어야 합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이고, 반대로, 사소한 것들을 얻었지만, 소중한 것들을 버렸다면 실패한 삶을 사는 어리석은 인생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미로 치는 화투가 있죠? 화투놀이 중에서도 고스톱을 칠 때, 자주 언급되는 말 중 하나가 ‘비풍초똥팔삼’입니다. 저는 점수 셀 때도 헷갈릴 정도로 화투를 잘 모릅니다만, 이 말은 자주 들었습니다.
화투라는 게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한 놀이지만, 원하는 모든 패를 가질 수 없습니다. 높은 점수를 가진 모든 패를 나 혼자 갖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놀이가 안 되죠? 어떤 경우는, 좋은 패를 가질 때도 있고, 나쁜 패를 가질 때도 있습니다. 또 모두 좋은 패만 들어온다 해도, 내 순서가 되면, 어떤 패든 내놓아야 할 때가 있고, 내가 얻을 만한 패가 없으면, 내가 가진 것을 하나씩 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버려야 할 때 ‘비풍초똥팔삼’ 순서로 버리는 게 내게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패든, 있으면 점수를 내는 데 유리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치가 크고 높은 것을 위해, 가치가 작고 낮은 것을 버려야 합니다. 반대로 가치가 작은 것들을 얻기 위해, 높은 점수의 것들을 포기한다면, 그 판을 이기기 힘들겠죠?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차피 바라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없고,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또 다른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면, 귀하고 소중한 것들을 가지고, 작고 사소한 것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을 복과 행복으로 이끄는 길이고, 지혜로운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사무엘의 어머니인 한나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나는 엘가나라는 사람의 아내였는데, 엘가나에게는 브닌나라는 또 다른 아내가 있었습니다. 엘가나의 다른 아내인 브닌나는 아들과 딸이 여럿 있었지만, 한나는 아이를 간절히 원했지만 하나도 낳지 못 했습니다. 이것이 한나에게는 스르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이자 슬픔이었고, 동시에 브닌나에게는 가장 큰 자랑거리였습니다.
그나마 남편 엘가나는 한나를 많이 사랑했습니다. 아내 둘 중에서 한 편을 더 사랑해도, 그것을 표현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반드시 사랑을 덜 받는 아내의 심한 질투와 시기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 한 것 때문에, 브닌나에게 무시와 미움을 받고 있었고, 남편도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제사를 드린 후에, 남편은 한나에게만 다른 사람의 두 배를 주었으니, 남편이 한나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한나와 브닌나 중에 누가 더 복 받은 사람일까요? 아들딸을 둔 브닌나인가요? 아니면 아이를 낳지 못 했지만,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은 한나의 복이 더 큰가요? 만약 이대로 끝을 맺었다면, 브닌나가 가지고 누리는 것들이 큽니다. 브닌나가 받은 복이 한나가 받은 복보다 더 큽니다. 요즘의 표현으로 보면, 브닌나가 한나보다 성공한 삶을 산 것입니다.
브닌나는 남편의 사랑을 못 받았지만, 아들딸을 여럿 낳았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은 늙고 힘을 잃을 것이지만, 브닌나가 낳은 자녀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힘이 세지고,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남편 엘가나가 죽으면,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이 브닌나 자녀의 것이 됩니다. 남편이 한나를 아무리 사랑하고, 그래서 몇 배의 재산을 준다 하더라도, 한나에게는 유산을 넘겨줄 자녀마저 없습니다.
특별히 유대민족들은 자녀는 하나님이 주시는 큰 복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모습은 시편 127장 3-5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본문에서 브닌나는 복을 많이 받은 것 같고, 한나는 복을 받지 못 한 여인처럼 보입니다. 한나가 아이를 낳지 못 한 까닭이 하나님께서 그 태를 닿으셨기 때문이라고 하셨으니, 반대로 브닌나가 자녀를 여럿 낳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브닌나의 태를 여시고, 자녀의 복을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매년 예배하러 실로에 갈 때 브닌나와 한나의 모습이 분명하게 갈립니다. 브닌나와 한나 모두 남편을 따라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해 실로에 갔지만, 본문에 나온 대로 한나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브닌나에게서는 이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브닌나는 오히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모습들을 잔뜩 보여줍니다.
평소에도 물론 성실하고, 겸손하며, 온유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 하나님께 제사하는 날에는 더욱 그래야 합니다. 하나님께 제사하고,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과 자리만 채우거나, 제물과 물질을 드리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것은 우상을 섬기는 종교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것들이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그 말씀대로 살기로 다짐하고, 애쓰는 마음가짐과 삶의 태도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신앙인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평소에도 말과 행동에 있어서 더욱 조심해서 남에게 아픔을 주지 않아야 하고, 우리의 삶 속에서 신앙인다운 모습들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특별히 하나님께 제사하고 예배하는 날에는 더 분명하게 드러나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브닌나는 실패한 예배자였습니다. 1년에 한 번 하나님께 나아와 제사하며, 제물을 드렸고, 그곳에 함께 자리했지만, 그러나 브닌나에게서는 하나님께 제사하는 사람으로서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만일 1년에 한 번 제사하러 나아와 제물을 드리는 것을 제외하고 보면, 브닌나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 분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1년에 한 번 하나님께 제사하러 와서도, 여전히 한나에 대한 시기와 질투를 그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훨씬 심해졌습니다. 남편이 한나를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한나가 아이를 낳지 못 하는 아픔을 공격하며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브닌나처럼 자녀를 얻지 못 했지만, 한나는 이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갑니다. 자녀를 낳지 못 한 것 때문에 브닌나에게 심한 모욕과 마음의 상처를 받았지만, 이 때문에 더욱 하나님을 향합니다. 답답하고도 아픈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갑니다.
만약, 한나가 일찍부터 많은 자녀를 낳았고, 남편의 사랑까지도 독차지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람의 눈으로 보면, 이것만큼 복된 인생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걱정 근심 없고, 원하는 것을 모두 갖추고 받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한나도 하나님을 간절히 찾거나 기도하지 못 했을 것입니다. ‘화장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는 말처럼, 인간이란 급할 것 없고, 어려움 없으면, 반드시 그 마음이 교만해지고, 쓸모없는 것들을 향해 기울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한나의 태를 닫아 자녀를 얻지 못 하게 하셨기 때문에, 한나는 더욱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처지에 놓였기에, 위에 계시는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두었습니다. 만약 자기 남편이, 혹은 이웃이 자신에게 아기를 낳을 수 있도록 도와줄 거라 여겼다면, 하나님은 찾지 않고, 사람을 먼저 찾고 구했을 것입니다.
예전 어른들은 아이를 낳지 못 하면, 아들 낳은 다른 여자의 속곳을 훔쳐 입혔다고 하죠? 그런데 얼마 전에 아이를 낳지 못 하는 여성이 실제 그렇게 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훔치지는 않고, 아이를 낳은 여성의 속곳을 갖고 싶었고, 실제 그런 옷을 준 사람이 정말 고마웠다는 겁니다. 이게 인간의 마음입니다. 말도 안 되는 것 같으면서도, “설마” 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붙잡으려 합니다.
한나는 그 누구도 자신을 도와줄 수 없다는 것, 아이를 낳고 못 낳고는 오직 하나님만이 결정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절히 기도합니다. 본문 10-11절을 보면,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하며 기도합니다. 한나가 이처럼 간절하게 기도한 까닭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태를 닫으셨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낳지 못 한 것은 한나의 아픔과 슬픔이기도 했지만, 더불어 하나님을 알고 찾고 가까이할 수 있는 복의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 하는 것이 오히려 한나를 믿음과 기도의 사람으로 만들었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복을 흩어놓으십니다. 세상에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일부분만을 갖게 됩니다. 세상에 그 누구도 완벽하게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어떤 것은 더 많이 가질 수는 있지만, 반드시 덜 가지고, 없는 것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한나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게 세상에서 가장 큰 은혜고 복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른 것을 모두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 하나만은 끝까지 붙잡아야 합니다. 이것은 다른 것보다 조금 크고 좋은 복 정도가 아니라, 복의 전부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다른 것 모든 것을 갖추고 얻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아는 마음과,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없다면, 실패한 인생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것 하나 없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과 믿음이 있다면, 가장 크고 완성된 복을 얻은 것입니다. 한나의 삶이 보여주듯이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 삶을 붙잡아 주시고, 그 외의 복마저도 내려주실 것입니다.
더불어 지금 가진 문제와 아픔과 어려움 때문에 슬퍼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과정을 통해, 더 큰 복과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브닌나는 여러 아들딸을 일찍부터 낳았지만, 성경은 그 이름조차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이스라엘 역사에 위대한 자취를 남기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해낸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결국 브닌나가 낳은 아들딸이 많았어도, 한나의 한 아들만도 못했다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은 완벽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과정들은 완벽하지 못 합니다. 그래서 가지고 누리는 것으로 교만해서는 안 되고, 없고 부족한 것 때문에 좌절해서도 안 됩니다. 있는 것에 감사하며, 없는 것 때문에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면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모두 이루어 주시지 않고, 일부만 주시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 한나와 브닌나의 삶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세상과 복의 주인이시고, 어려움과 아픔을 통해 더 큰 은혜를 주심을 기도하며 살아가되, 날마다 더욱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 자녀에게 특별한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물을 이 땅에서 가득 받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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