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190317)직분보다 중심이 더 중요합니다(삼상 2장 12-19절)

청명하늘 2019. 3. 17. 15:27

직분보다 중심이 더 중요합니다

 

성경: 사무엘상 212-19(410)

찬송: 287(예수 앞에 나오면; 205), 406(곤한 내 영혼; 464)

설교: 20190317.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얼마 전에 아는 목사님과 말씀을 나누다, 이분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분의 배우자, 보통 사모님이라고 부르죠? 교회 일, 그 중에서도 특히 강단에서 설교하실 때 사모님의 행동 때문에 갈등을 겪고 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모님도 몇 년에 걸쳐서 정상적인 신학 공부를 마쳤고, 또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교회를 담임하거나, 교회에서 공식적인 목사로서 활동하시는 건 아니지만, 목사 안수를 받아서 목사로 불리고 있습니다.

 

갈등이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신학을 공부하지 않거나, 또 신학을 공부했지만 목사 임직을 받지 않았을 때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는데, 사모님이 목사 안수를 받고 난 후부터는 예배에 참석하고, 설교를 듣는 자세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신학적인 지식이 있고, 목사 안수를 받았으니, 모범이 될 만큼 더 진지하고, 또 충실히 참여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고민할 필요가 없죠? 오히려 더 좋아할 일입니다.

 

하지만 고민거리가 되었으니 당연히 아니겠죠? 오히려 반대입니다. 목사 안수를 받기 전에는, 예배에 집중하고, 남편 목사님이 전하는 말씀에 대해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신실한 신앙인처럼, 설교를 통해 전해지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모님이 목사 안수를 받고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사모님이 앉아서 목사님의 설교를 판단한다는 겁니다. 설교 중에도 손과 몸을 통해, 잘못되었다는 신호를 보냅니다. 또 설교가 끝나면 어느 부분이 이상하다, 혹은 어디가 잘못되었다고 토를 답니다. 그 판단도 성경에 맞느냐 아니냐 하는 것도 아닙니다. 두 분이 어느 세미나에 참석하고 듣고, 그 내용을 중심으로 교인들에게 가르칩니다. 그런데 사모님은 목사님이 전하는 내용 중에서, 세미나에서 들었던 내용과 조금 다르거나 이상하면, 그에 대해 즉시 판단하고, 곧바로 신호를 보낸다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게 반복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목사님이 이에 대해 뭐라고 하면, 본인이 잘못한 것도 알고,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압니다. 그럼에도 다시 그런 상황이 되면, 자신도 절제하지 못 해서, 다시 손으로 잘못되었다며 신호를 보내는 일을 반복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우리가 속한 교단에서 여성목사 안수를 허용한 지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경우들이 꽤 많아질 텐데, 사역과 부부라는 개인적인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까?

 

저는 이 목사님의 고민을 듣고, 좀 직설적으로 충언을 드렸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는 것은, 목사라는 직분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 예배와 설교에 대해 함부로 간섭하고 판단할 수 있는 직책이 아니라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목사도 사람이고, 부부 모두가 목사라 하더라도 사람들의 만남입니다. 사람이니 서로 실수할 수도 있죠? 그리고 가정과 교회의 평안과 안정을 위해 상대의 잘못을 참고 용서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과 가정 일에 한정되어야 합니다. 교회와 목회는 개인의 영역을 넘어서는 일이고, 특히 이런 잘못을 지속하고 반복하는 것은, 그가 누가 되었든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상관없이 반드시 바꾸고 고쳐야 합니다.

 

이 사모님은 크게 두 가지를 잘못한 겁니다. 하나는, 목사가 된 것이 마치 성경과 말씀과 목회에 대해 전문가가 된 것처럼 착각한 것입니다. 목사라 하더라도, 예배 순서를 담당하는 이가 아니면, 그때는 목사가 아니라 반드시 본인이 예배자로 참여해야 합니다. 성경에 비춰 볼 때 잘못되지 않으면, 예배와 말씀을 판단하거나, 예배를 구경하는 사람으로 있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너무 큰 죄악입니다.

 

다른 하나는, 말씀과 설교의 기준을 성경으로 삼는 게 아니라, 다른 목회자가 가르치는 내용으로 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이라면 반드시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과 원칙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 판단과 기준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들을 기준으로 삼고 따르려 노력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신앙인들 중에는, 하나님의 것보다, 능력이 뛰어난 목사, 혹은 자신이 믿고 따르는 위인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모두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고, 이런 죄의 결과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징벌하신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 직분이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자신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잘 섬기고, 말씀하신 바대로 잘 따라 행하면, 그에 대한 결과 역시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넘치는 복과 은혜로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오늘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 해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겪던 한나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서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아들을 낳으면, 평생 하나님을 섬기는 나실인으로 만들겠다고 서약했는데, 아들을 낳은 후에도 이 약속을 어기거나 줄이지 않고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자기 목숨보다 귀한 아들이지만, 젖을 떼자마자 하나님께 제사하는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당시 엘리가 제사장으로 있었고, 그의 두 아들도 역시 제사장으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그 두 아들에 대한 평은 본문 12절의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제사장인데 여호와를 알지 못 한다는 표현은 좀 이해가 안 됩니다만, 새번역 성경에서는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빴다. 그들은 주님을 무시하였다.”고 풀이했습니다.

 

제사장은 요즘으로는 보통 목사와 비슷한 일을 하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즉 구약에서는 하나님께 제사하고, 기도하는 것을 개인이 할 수 없었고, 오직 제사장들을 통해야만 했습니다. 만약 제사장이 아닌 이가 제사를 드린다면, 하나님께 엄청 큰 죄로 여겨졌습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사울인데, 제사장인 사무엘이 늦게 오자, 사울이 직접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시는 결정적인 사건이 됩니다.

 

이처럼 선택받은 이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직분과 과정이 얼마나 거룩하겠습니까? 그런데 엘리의 두 아들은 제사장이면서도,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제사를 드리지 못 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하나님을 무시할 정도였습니다. 이들이 저지른 악행이 너무 커서 하나님께서 이들을 죽게 하셨습니다.

 

이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먼저는 백성들이 제사를 드릴 때, 반드시 제사가 끝난 후에야 고기의 일부를 제사장이 가져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15,16절에서는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날 것을 원하신다 하다가 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지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였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엘리의 두 아들은 제사장으로 있으면서, 순서를 마치면 자신들에게 돌아올 고기가 있는데, 그것을 참지 못 할 뿐만 아니라, 심부름 하는 사람을 보내서, 삶기도 전에 생고기를 가져다 먹었다는 것입니다. 절차대로 하지 않는 것도 죄이고, 제물로 드려지는 고기를 익히지 않고 생고기를 먹는 것도 죄입니다. 심지어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되고, 정해진 규정대로 한 후에 맘껏 가져가라고 말해도 소용없습니다. 원하는 대로 생고기를 내주지 않으면 억지로 그 고기를 빼앗아 가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뒤엎겠다는 협박이었습니다.

 

13,14절에 보면 어떤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 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그것으로 냄비에나 솥에나 큰 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가지되 실로에서 그 곳에 온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 뿐 아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엘리의 두 아들이 하나님의 제사를 어떻게 무시했는지 보여주기도 하지만, 더불어 이들의 행동이 반복되고 지속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제물로 쓰는 고기를 삶을 때는, 통째로 넣지 않고, 각 부위별로 조각내고, 그것을 큰 솥에 넣습니다. 큰 솥에 넣고 고기를 삶아 보시면 어떻든가요? 고기를 삶을수록 김도 많이 나오고, 또 하얀색으로 바뀌죠? 그래서 속에 든 고기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사장이 제물로 드려진 고기를 가져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절차가 모두 끝난 후에야, 제사장은 큰 솥에 들어 있는 고기를 가져갈 수 있었는데, 김도 나고, 하얀색이라 원하는 고기를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그냥 갈고리를 넣어서 걸리는 것만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이 속에는, 제사장이 원하는 것을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을 먹을 수 있다는 뜻을 담겨 있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이 이 모든 규정을 어긴 정도가 아니라, 아예 습관적이고도 고의적이었습니다. 13절에서 사환이 가져온 갈고리를 세 살 갈고리라고 설명했습니다. 지금도 갈고리를 여러 모양으로 만드는 것도 시간이 꽤 걸릴 수밖에 없죠? 지금부터 3천 년 이전에는, 금속으로 갈고리를 만드는 것도 어렵고, 시간도 비교가 안 될 만큼 길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갈고리라는 말을 모두 찾아봐도 세 살 갈고리는 본문이 유일합니다. 이를 통해 보면, 본래 제사장이 고기를 건지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살 하나뿐인 것인데, 엘리의 두 아들은 원하는 고기를 많이 빨리 찾아 먹기 위해서 특별 제작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만들기 위해 긴 시간이 필요한 것까지 생각해 보면, 이들은 하나님의 것은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젯밥에만 관심을 둔다는 속담이 이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들과는 대조되는 사무엘의 모습도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8절에서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고 하고, 다음 절에서는 그의 어머니인 한나가 매년 한 번씩 제사하러 가면서, 겉옷을 만들어 가져다 주었다고 말씀합니다.

 

연세 많으신 분들은 직접 옷을 만들어 입기도 하셨겠습니다만,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죠? 하지만 사무엘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어렵고, 많은 정성과 시간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무엘은 세마포 옷을 입고 하나님을 섬겼고, 어머니 한나는 매년 새 옷을 만들어 가져다 주었습니다.

 

사무엘은 나이가 어려서 아직 제사장으로 있는 게 아닙니다. 거추장스럽고도 힘겹게 제사장이 입는 옷을 입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무엘은 제사장이 입는 옷을 입고 하나님을 섬깁니다.

 

엘리의 두 아들과 사무엘의 모습을 보면, 서로 바뀐 것 같지 않습니까? 제사장은 전혀 제사장답지 못 한 모습들만 보입니다. 제사장이 해서는 안 되는 일들만 합니다. 제사장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은 하지 않고, 제사장이기에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들만을 골라 합니다. 하나님의 제사를 무시하고, 정해진 모든 규정과 절차를 무시합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제사장이 아니면서도, 제사장처럼 하나님 앞에 거룩한 모습으로 섭니다. 단지 겉모양만 그럴듯하게 꾸미는 게 아니라, 속마음은 물론 그 겉까지 정결하게 하나님을 모십니다. 사무엘 본인만이 아니라, 어머니 한나까지 그 신실함과 정결함이 당시 사람들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 둘은 너무 다른 마지막을 맞이합니다. 엘리의 두 아들, 직분만 제사장을 가졌을 뿐, 속이나 겉이나 전혀 제사장처럼 살지 않았던 이들은, 전쟁을 겪으면서 한 날에 아버지보다 일찍 죽습니다. 또 두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 엘리도 그 충격에 의자에서 넘어져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이 가문이 어떤 벌을 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만, 이것만이 아닙니다. 둘째 며느리는 임신해서 출산일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시아버지와 남편이 모두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를 낳자마자 죽게 됩니다. 말 그대로 엘리 제사장의 가문이 한순간에 풍비박산이 나고 맙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큰일을 해냅니다. 민족 전체의 영적 지도자가 되고, 이후에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을 세우는 일을 담당합니다. 이 때문에 그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누가 무슨 직분으로 있느냐 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고,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이라고 해서 그 이름에 따라 복 주시는 게 아닙니다. 목사라고 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라 인정하시며, 기도에 응답하시는 게 아닙니다. 평신도라고 가벼이 여기시거나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오직 어떤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지를 보시고 그에 따라 상과 벌을 내리시고, 복과 저주를 나눠 내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어떤 직분을 원하시지 않고, 오직 속과 충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복되고,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는 비결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날마다 더욱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 가까이 나아가며, 속과 충심으로 하나님을 잘 섬겨, 기도의 응답을 받고, 더불어 약속하신 복과 영생을 함께 얻는 주님의 귀한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