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만이 복 주심을 인정하는 신앙
성경: 사무엘상 1장 17-2장11절(구 409쪽)
찬송: 258장(샘물과 같은; 통190), 310장(아 하나님의 은혜로; 통410)
설교: 20190324.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이번 달 6일에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보석이 결정되어, 구속된 지 350여일 만에 석방되었습니다. 재판은 계속 받아야 하지만, 형이 결정되기 전까지는 구치소 밖에서 생활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전 대통령의 보석이 결정되어 석방되면서 함께 화제에 오른 목사 한 분이 있습니다. 극동방송이라는 기독교 방송국의 이사장인 김장환 목사입니다.
이명박 씨가 보석되었을 뿐, 무죄로 인정받은 것도 아닙니다.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이 금지되고, 만날 수 있는 사람들까지 제한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씨 측에서 접견할 수 있는 사람을 추가해 줄 것을 요청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김장환 목사입니다. 자신이 밖으로 나가 예배할 수 없으니, 이 목사님을 집으로 불러서 예배를 드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구속되어 있는 동안에도, 김장환 목사를 불러 예배를 드리곤 했나 봅니다. 이 목사님이 설교 중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이명박 씨의 손자가 접견하러 가는 날과, 이 목사님이 가는 날과 겹치자, 이명박 씨가 손자는 오지 말고 이 목사님이 와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했답니다. 또 구치소 소장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 목사님이 다녀가면, 이명박 씨가 잠도 잘 자고, 말도 많이 하고, 식사도 잘 한다고 했다고도 합니다.
또 이 목사님이 극동방송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9월 12일 이명박 대통령을 찾아가 예배를 집례했다”며 “누가복음 23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재판 과정을 죽 읽어 드리고는 죄 없는 예수님도 서기관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치니까 할 수 없이 빌라도도... 그러니 예수님의 수난을 생각하며 힘을 내시라고 했다”고 합니다.
전직 대통령과 기독교의 원로 목사간의 이런 일들을 들으시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이 목사님의 이런 모습에 대해 찬반이 갈립니다. 한 쪽에서는, 비리와 불법을 저질렀고,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지도 않았음에도, 목사가 찾아가서 오히려 위로하고 격려하는 게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른 한 쪽, 특히 이 목사님은, 말씀이 필요하고, 예배를 드리러 가야 하는 자리라 하면, 상대가 누가 되었든지, 어떤 상황이든지 찾아가서 예배를 인도하고,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게 목사의 사명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런 과정을 보면서, 크게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이 목사님은 목사의 사명에 대해 일부는 맞지만, 일부는 잘못 판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목사는 예배의 자리, 말씀이 필요한 자리면, 상황과 대상을 가리지 않고 예배를 인도하고,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이 목사님의 선택과 행동은 크게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목사의 사명은, 듣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들을 성경에서 찾아 전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주시고자 하는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만일 듣고 싶은 말들만 골라 한다면, 목사라는 직분을 가지고 있더라도, 무속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예수님이 죄가 없으심에도, 억울하게 유죄 선고를 받고 죽으신 내용의 누가복음 23장을 들어서, 온갖 비리와 불법을 저질러 심판을 받고 있는 이명박 씨에게 가서 위로한 것은 너무 잘못되었습니다. 만약 이 내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면, 죄가 없음에도 억울하게 유죄 선고를 받고, 고통을 받고 있는 이를 대상으로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명박 씨는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게 아니고, 온갖 불법을 저질렀기 때문이고, 여전히 그에 대해 뉘우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목사가 전해야 하는 내용이란, 위로와 격려의 말씀이 아니라, 경고와 질책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죄를 짓고, 불법을 행한 이에게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것은, 위로와 평안의 말씀이 아니라, 경고와 질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들었던 다른 한 가지 생각은, 목사라는 직분에 대한 둘의 생각이 모두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최고 권력자로 있다, 구치소에 갇혀 생활하는 게 힘들겠죠? 다른 사람의 믿음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만, 어찌 되었든 신앙생활을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과 위로가 절실하게 필요할 때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신이 살아온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서 벗어난 잘못들을 돌아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남에게 아픔과 고통을 주었던 것, 자기 이익을 위해 불법과 부정을 저지른 것들에 대해 진심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진심으로 회개하는 데에 성경이 필요할까요? 목사가 필요할까요? 그것도 특정한 목사가 필요할까요? 하나님께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성경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목사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이명박 씨는 목사, 그것도 특정한 목사만을 원했습니다. 특정한 목사가 와야만 잠을 잘 자고, 밥을 잘 먹고, 생활을 편할 수 있었다면, 이것 자체만으로도 부르는 이도, 그리고 그 자리에 응하는 이도 잘못된 것 아니겠습니까?
전직 대통령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책망하지 않고, 오직 자신을 위로하고, 힘을 실어줄 이가 필요했던 것이고, 그리고 목사는 그 자리에 가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아니라, 듣는 이가 듣고 싶은 것을 골라 전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부른 이의 의도도, 가서 전한 이의 의도와 내용도 모두 잘못되었습니다.
이명박 씨의 이런 모습들을 오늘 본문과 연결해서 보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게 아니라, 목사라는 직분을 가진 사람을 의지하고 있고, 그것도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을 전해주는 이를 의지하고 있습니다.
대곡교회 올해 표어가 ‘하나님만이 복 주심을 인정하는 교회’죠? 이 표어처럼,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 목사가 주는 게 아닙니다. 참된 위로와 평강은 하나님이 주시지, 목사가 전하는 설교와 입술을 통해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목사가 아무리 축복하고, 안수기도하고, 위해 철야 금식 기도한다 한다고 해서, 벌 받을 짓만 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이 복 주시지 않습니다. 목사가 아무리 저주하며 벌이 임하도록 기도해도, 말씀과 계명대로 사는 이에게 하나님께서 절대 벌을 내리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복도 오직 하나님만이 주십니다. 우리가 영원히 소망으로 삼는 영생도 오직 하나님만이 허락하십니다. 저주와 영원한 형벌도 오직 하나님이 결정하십니다.
이것을 알고 인정하면, 바르게 신앙생활할 수 있습니다. 바른 믿음과 소망을 가질 수 있고, 하나님은 이런 믿음과 소망을 가진 이들을 기뻐하시고 반드시 약속하신 복과 은혜로 응답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한나의 모습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 한 것으로 한나는 많은 아픔과 괴로움을 겪습니다. 한나는 이 어려움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믿음을 버리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나아가 더 간절히 기도합니다. 엘리 제사장이 보고, 마치 술 취한 것으로 착각할 만큼, 한나는 다른 사람의 눈과 평가는 생각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생각하며 나아갑니다.
한나를 잠깐 오해했던 엘리 제사장이 한나의 사정을 듣고, 본문 17절에서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고 위로해 줍니다. 한나는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고 답하고, 가서 음식을 먹을 뿐만 아니라, 다시는 얼굴에 슬픈 기색을 띠지 않았습니다. 한나의 간절한 바람처럼, 하나님께서 태를 열어 주셔서 임신하게 되고, 아들을 낳아서 사무엘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 제사장, 신앙인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한나가 다시 음식을 먹고, 다시는 근심하지 않은 까닭이 무엇일까요? 엘리 제사장의 위로와 축복의 말을 들어서인가요? 아니면 자신이 드린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고 믿었기 때문일까요? 많은 신앙인들이 여기에서 잘못 생각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이 한나의 기도를 듣고, 위로와 축복을 선언했고, 한나도 이를 듣고서 마음의 평안을 얻어, 다시는 근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나가 위로와 평안을 얻어 일상으로 돌아가고, 다시는 근심 걱정하지 않은 까닭은, 제사장 엘리의 위로와 축복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엘리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새롭게 했지만, 한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응답해 주심을 믿었습니다.
한나의 믿음이 엘리 제사장이나, 제사장의 축복 선언을 향한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향한 것임을 두 가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기적처럼 낳은 아들에게 ‘사무엘’이라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이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 구했다’입니다. 하나님께 구했더니,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심으로 아들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한나가 낳은 후 아들에게 직접 붙여준 이름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한나의 신앙고백입니다. 자신이 드린 고통과 눈물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고백이고, 낳지 못 한 아들을 낳을 수 있도록 하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이름입니다. 자신이 기도할 때 엘리 제사장이 곁에서 지켜봤고, 평안과 축복의 말을 해주었지만, 한나는 엘리 제사장을 통해 아들을 낳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음식을 먹고, 다시는 근심과 슬픔의 빛을 보이지 않은 까닭은, 엘리의 위로의 말을 들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셨음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27절에서도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고 고백하는데, 26절 끝부분에서도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고 고백합니다. 한나는 오직 하나님만을 향해 기도했고, 응답도 역시 하나님으로부터만 왔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한나의 믿음과 의지하는 마음이, 사람인 엘리 제사장을 향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향해서라는 것은, 아들을 낳은 후 한나가 보인 다른 모습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8절에서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또 6,7절에서는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고 하고, 1절에서 전체 결론으로서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고 합니다.
한나가 드린 이 고백 속에 제사장이나 다른 이에 대한 내용은 전혀 들어 있지 않습니다. 누가 축복해 줘서 아이를 낳았다든지, 누가 위로해 줘서 힘이 되었다든지, 누가 사랑해 줘서 어려움을 이겼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에게 복과 은혜를 베푸셨고, 어려움을 이기게 하셨고,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원수들 앞에서도 얼굴을 높이 들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 모든 내용과 과정을 보면, 아이를 갖지 못 하고, 멸시와 조롱을 당해 너무 괴로웠던 한나가, 기도 후에 음식을 먹고, 다시는 근심하는 얼굴을 하지 않은 까닭이 무엇인지 확실해집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입술을 통해 나오는 말과 약속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자비하심과 능력을 믿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보면, 앞에서 말씀드린 전직 대통령의 믿음이 왜 잘못되고,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람을 의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인들 중에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복과 은혜를 베푸시고, 큰 능력을 행하시는 하나님은 뒷전이고, 그 앞에서 도구에 불과한 이들을 의지합니다. 큰 능력을 행하고, 말씀의 능력이 있는 이들에 대한 집착과 헌신이 지나쳐,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과 약속은 기억하지 못 하고, 도리어 도구들에 지나지 않는 이들의 말과 행동은 기억하며 따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려면, 이런 착각과 잘못된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복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주십니다. 복은 목사의 입술과 축복을 통해 주어지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결정하신 대로 주십니다. 저주는 목사의 입술을 통해 오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내려집니다. 삶과 죽음과 저주와 복과 영생 모두, 큰 능력을 행하는 목사나, 기도의 능력이 있는 목사나, 말씀의 능력이 있는 목사들을 통해 주어지는 게 아니고, 오직 하나님이 결정하시고 뜻하시는 대로 내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고 의지하고 기도해야 하는 대상은, 위대하고, 능력 많고, 기도의 능력이 있는 목사가 아니라, 그 뒤에서 이들을 통해 역사하시고, 함께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향해야 하는 곳은, 누구의 안수의 자리가 아니고, 기도의 능력자가 기도해 주는 자리와 입술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정말 복과 은혜를 받고 싶으면, 어떤 목사를 좋아하고, 그 목사를 잘 대접하는 게 아니라, 성경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능력있고, 위대한 목사를 잘 섬기는 이에게 복 주신다 말씀하시지 않고, 말씀과 계명에 따라 사는 이에게 복과 은혜와 영생을 주신다 약속하시기 때문입니다.
복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주십니다. 다른 누구의 손길이나 입술을 의지하지 말고, 도구에 집착하려 하지 말고, 우리의 모든 과정을 결정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기억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서, 날마다,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와 복을 받고, 믿는 자에게 약속하신 영생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복된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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