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200405)알면 행하는 게 믿음입니다(삼상 23장 1-14절)

청명하늘 2020. 4. 5. 18:00

알면 행하는 게 믿음입니다

 

성경: 사무엘상 231-14(448)

찬송: 419(주 날개 밑; 478), 461(십자가를 질 수; 519)

설교: 20200405.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배웠던 과목들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들 중에서 이후에도 계속 의미를 주었던 과목을 꼽으라면, 국어, 산수, 도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 이 과목들의 이름이 바뀐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바뀌었어도 전체적인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 세 과목 중에서, 가장 쉬운 과목을 꼽는다면 단연 도덕 과목이었습니다. 다른 과목은 공부를 해도 점수가 좋지 못 한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도덕 과목은 특별히 공부를 하지 않아도 아주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과목은 공부해야만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도덕의 경우는 공부하는 게 오히려 손해나 시간 낭비에 가깝게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국어나 산수 과목에서는 공부해도 100점을 맞기 쉽지 않았습니다만, 도덕만은 공부하지 않아도, 한 문제 틀리면 큰 손해고, 실수라는 생각을 많이 가졌습니다.

 

이것은 저 혼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과목당 반 전체 학생의 평균을 내면, 도덕 과목의 평균이 다른 과목보다 1,20점 이상의 차이로 단연 높게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도덕 과목이 이처럼 좋은 성적을 쉽게 낼 수 있던 까닭은 무엇보다도 상식과 예절에 맞게 답하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당시 시험 문제는 기억도 안 나고, 찾지 못 했습니다만, 대신 고졸 검정고시에 실제 출제된 문제라는데, 한 번 맞혀 보시겠습니까?

 

친구가 병원에 입원해 병문안을 갔더니, 입원한 친구가 병원까지 찾아와서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이때 답하기에 적합한 말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입원한 것 정말 축하해. 힘들지? 얼른 나았으면 좋겠다.

쯧쯧. 넌 왜 항상 이 모양이니? 알겠어. 앞으로는 오라고 하지 마.

 

어떤 게 정답인가요? 번이죠? 여기에서 답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뭔가 생각이 독특하다 못해 이상한 것이죠? 다른 것을 답하는 사람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 어려울 것입니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답을 정확하게 맞힐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도 이 정도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점차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도덕이 가장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어 시험에서 점수가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나이를 먹으면서 대부분 말을 잘 하죠? 손해 보지 않기 위해서, 혹은 이익을 더 챙기려고, 말을 잘 하는 사람들 적지 않죠? 아니, 대부분 말을 너무 잘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산수 과목은 어떨까요? 초등학교 때 아주 어렵고 복잡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구구단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덧셈, 뺄셈도 잘 못 하는 학생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때는 저런 애들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어떻게 살까? 저렇게 계산을 못 하면 얼마나 살기 힘들까?’ 하며 심각하게 염려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각자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고, 들어보니,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덧셈, 뺄셈조차 제대로 못 하던 이들도, 현실에서는 대부분 손해나지 않는 비법을 터득한 것처럼 보입니다. 덧셈, 뺄셈을 잘 못 했던 이들도, 어떻게 계산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돈 계산만은 정확히 해냅니다.

 

그런데 가장 쉬워 높은 점수를 받았던 도덕은 어떤 것 같습니까? 국어와 산수와는 정반대의 모습일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행하는 경우도 많고,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도둑질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누구나 알지만,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의 것을 훔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거짓말은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짓말로 남을 속이고, 자기 주머니를 챙기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작은 이익이라도 되는 일이면,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행하기도 하고, 좀 손해가 된다 싶으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어기곤 합니다.

 

이를 보면, 먼저는 아는 것과 행하는 것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만약 아는 대로 행한다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도덕법대로, 정직하고, 남을 배려하며, 선하게 살아야 합니다.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도 알아야 하고, 자기가 손해가 되더라도, 남을 속이거나 피해를 줘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오히려 반대입니다.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보다는,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선택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자 하는 이들보다는, 오직 자신의 행복과 성공을 위해 남을 짓밟고, 고통을 주며 사는 이들이 훨씬 많습니다. 이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다른 하나는, 아는 것보다는, 아는 대로 행하는 게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학교 성적을 높이기 위한 노력일 수도 있고, 아니면 지식과 교양을 자랑하기 위해서든, 아는 것에는 큰 관심을 가지고 노력합니다. 그럼에도 그대로 지키고 행하고 사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의 모습에도 있지 않는지 조심해야 합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성경을 알고 싶어 하고, 공부도 적지 않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다며, 성경을 많이 읽고, 기도를 많이 합니다. 금식하며 더 간절하게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교인들도 많습니다.

 

문제는, 정말 하나님의 뜻을 몰라 고민하는 것보다는,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모른 척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도, 그대로 살다가는, 손해가 되는 것 같고, 뭔가 부족한 것 같고, 자기 뜻대로 안 되는 것 같으니,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는 명목으로, 내 욕망을 채워주고, 내 욕심대로 될 수 있는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 이름 붙이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이미 알고 있을 때가 훨씬 많습니다. 다만 죄와 욕심의 안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안 보일 뿐입니다. 마음의 눈을 가리고 있는 죄를 씻어내고, 마음에 가득한 욕망을 거둬내면, 하나님의 뜻은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내가 주인공이 되고, 내가 가장 많은 칭찬과 관심과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이기적인 소리에 귀 닫으면, 잠잠한 가운데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많이 공부하고 노력해도 언제나 틀린 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국어 과목을 닮은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머리가 좋아야만 풀 수 있는 산수와 수학처럼 복잡하지도 않습니다. 양심과 상식만 있으면, 혼란스럽지 않을 만큼 쉽고 분명합니다. 답은 언제나 쉽게 알면서도, 내 욕심과 이익을 위해 안 지키는 도덕 과목처럼,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욕심대로 살고자 하는 죄성이 가득해, 모른 척합니다. 모르는 것으로 여기고 싶어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오늘 본문 속 다윗이 우리에게 큰 감동과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다윗을 통해, 오늘 이 시간에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의 위협을 피해 이곳저곳으로 계속 도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적국에 가서 미친 사람처럼 행동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고, 자신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제사장들 85명이 죽임을 당하고, 마을 사람들 모두가 죽고, 파괴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러던 중에, 국경 근처에 있는 그일라 지역에 블레셋 군사들이 쳐들어 와서 수확한 것들을 탈취해 간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즉시 하나님의 뜻을 묻고, 가서 도와줍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울은 다시 다윗을 죽이기 위해 달려옵니다. 정상적인 왕이라면, 자기 백성이 공격을 받을 때 와서 구해 주는 게 맞죠? 하지만 사울은 자기 백성들을 구하고 돕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다윗을 붙잡아 죽이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이를 알고, 그일라 사람들이 자신을 사울 왕에게 넘겨줄 것인가를 다시 하나님께 여쭈어 봅니다. 그일라 지역 사람들은 다윗의 도움으로 구원을 받았지만, 다윗을 돕다 멸망당한 놉 땅의 이야기를 들었던지라, 자기들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다윗을 사울 왕에게 넘겨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도망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그일라 사람의 비겁함도 보일 수 있고, 왕이면서도 전혀 왕답지 못 한 사울의 어리석음과 포악함이 미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데 이용한 에봇이라는 게 뭐고, 지금도 이를 이용해 알 수 있는지 그게 가장 궁금하지 않습니까?

 

에봇이란 제사장들이 입는 예복이었습니다. 그리고 예복의 가슴 쪽에 우림과 둠밈을 넣었다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데 이용했습니다. 에봇, 그리고 우림과 둠밈의 사진을 잠깐 볼까요?(에보, 우림과 둠밈 사진)

 

이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었다면, 지금도 그와 같은 일이 가능한지도 궁금하죠? 하지만 이 방법은 하나님께서 한시적으로 주신 방법입니다. 지금도 유효한 방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다윗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 당시 성경은 완성되지 못 했습니다. 다윗 시대에 성경이라고 하면, 창세기, 출애굽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에봇 속에 있는 우림과 둠밈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셨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말씀이 성경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다윗 이후에, 우리가 읽고 있는 구약성경이 하나씩 완성되었고, 그리고 약 천 년이 지난 후 신약성경이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신약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알려주셨고, 지금까지 신구약 성경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양심과 영적 깨달음을 통해 계속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구약시대 우림과 둠밈을 통해 말씀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다윗의 모습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찾고 아느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보인 참 신앙인다운 모습은, 에봇 속에 담긴 우림과 둠밈을 던져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는 게 아닙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고, 다음으로는, 하나님이 알려주신 말씀에 대해서는 자신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계산하지 않고, 철저히 순종했다는 점입니다.

 

지금 다윗의 입장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내 코가 석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만큼 위기와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일라 사람들은 블레셋의 침략을 받아 어려움에 처했지만, 그러나 다윗의 입장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입장 아니겠습니까? 블레셋 사람들에게 곡물과 재물을 내놓으면 죽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에게는 위기의 끝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적국으로 가도 죽이려는 사람들이 가득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오자니, 왕이 자기를 죽이려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지금 누구를 생각하고, 누구를 도와줄 입장이 전혀 못 됩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나부터 살자. 당장 내가 죽게 생겼는데, 누구를 돕고, 누구를 생각하겠냐?’라고 따졌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묻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제사장이 가져온 에봇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이것도 대단한데, 가서 구하라는 말씀을 듣고 주저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그일라 지역으로 가서 블레셋 군사들과 싸워 자기 백성을 구했습니다.

 

또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군사들을 이끌고 그일라 지역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을 넘겨줄 거라는 응답을 받습니다. 이럴 때 웬만한 사람이었으면, 그일라 사람들이 얼마나 밉겠습니까? 자신은 목숨을 걸고 찾아와서 구해 주었더니, 자기들 살기 위해 다윗을 희생시키겠다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비겁하고 증오스럽습니까?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저주를 퍼붓든지, 아니면 복수를 경고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런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뜻이 확인되자, 두 말하지 않고, 자기 군사들과 함께 뒤돌아섭니다. 다윗의 관심사와 기준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뜻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반응은 관심사 밖에 두고 사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사울 왕의 위협과, 끊임없이 계속되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이 만들고자 하신 다윗의 모습입니다. 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신앙인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에 따라 하나님의 뜻마저도 버릴 수 있는 사람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 앞에서 자기의 유불리를 나누지 않는 사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바라시는 모습 역시 이런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성과 양심을 통해, 성경 속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말씀해 주십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내 잣대와 입장에 따라 재단하거나 변질시키지 말고, 즉시 행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다윗처럼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베푸신 복과 은혜와 사랑을 우리에게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먼저 찾을 뿐만 아니라, 주저하거나 욕심대로 계산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삶으로써,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은혜를 누리며 살았던 것처럼,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앞에서, 언제나 순종하고, 따라 행함으로써,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으로 삶을 채워 나아가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