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200412)고난 속에서도 약속을 바라보는 사람(삼상 23장 15-23절)

청명하늘 2020. 4. 12. 20:38

고난 속에서도 약속을 바라보는 사람

 

성경: 사무엘상 2315-23(448)

찬송: 407(구주와 함께 나; 465), 408(나 어느 곳에 있든지; 466)

설교: 20200412.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도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삶에서 여러 가지 아픔과 어려움을 겪곤 하죠? 가장 많기로는 돈 문제와 건강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의 어려움을 피하는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혀 문제와 어려움을 겪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사는 한, 우리 모두의 바람과 기도 제목과는 달리, 어려움의 파도가 계속됩니다. 하나의 큰 파도를 견뎌냈다 싶으면, 또 뒤이어 더 큰 파도를 마주해야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어려움의 종류야 셀 수 없이 많지만,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기를 극도로 싫어하고, 또 겪게 되었을 때는 큰 후유증을 남기는 경우들 중 하나는 배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배신도 모두가 같은 충격과 아픔을 주는 것은 아니죠? 가장 큰 충격은 누구의 배신일까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가족이나 친척, 친구처럼, 마땅히 나를 지켜주고, 도와주고, 힘을 줄 것이라 생각했던 이들의 배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은혜와 사랑을 베풀었는데, 그 사람이 이에 대한 보답은커녕, 오히려 나를 배신할 때입니다.

 

간혹 사람들이 많은 도시와 마을을 떠나, 깊은 산중에서 사는 분들이 있죠? 이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깝고, 아끼고 사랑했던 이들의 사기나 거짓이나 불륜 등이 가장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속 다윗은 지금 이 두 가지를 함께 겪고 있습니다. 자신을 지켜주고, 도와줄 것으로 기대했던 이들이 오히려 앞장서서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겨주려고 했습니다. 게다가 목숨을 걸고 찾아가서 도와주었던 사람들 역시 다윗을 죽이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위협을 피해 헤렛이라는 숲에 숨어 지내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도망하도록 도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십 명의 제사장과 주민들이 죽고, 마을이 파괴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큰 위협 속에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런 때 그일라 지역에 적이 공격해서 약탈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때 웬만한 사람이면 가서 도울 생각조차 못 할 것입니다. 본문 앞 3절에서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하는 말이 당연한 염려고 생각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말 그대로 목숨 걸고 가서 구해줍니다. 지금 다윗이 그일라 지역 사람들을 구해 준다고 해서, 다윗이 얻을 소득이란 크지 않을 것입니다. 수고와 희생의 가치에 비하면, 거기에서 얻을 것이라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알 사람들로서는 얼마나 큰 은혜를 입었습니까? 자기들이 가진 모든 것으로 갚아도 아깝지 않을 만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에게 어떻게 보답합니까? 다윗을 돕다가 놉 지역 사람들이 모두 죽고,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을 사울에게 넘겨주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때 마음이 어땠을 것 같습니까? 다윗이 아무리 믿음이 좋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목숨 걸고 구해준 이들의 배은망덕에 왜 깊은 상처를 입지 않았겠습니까?

 

이렇게 상처를 받고 다윗은 오늘 본문에서 십 광야에 숨었습니다. 다윗이 이곳을 택한 까닭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로 나뉘었습니다. 행정구역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지방자치제처럼, 나라를 열두 구역으로 나누어 운영되었습니다.

 

다윗을 죽이려 하는 사울은 베냐민 지파고, 다윗은 유다 지파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본문에서 도망한 십 광야는 유다지파에 속했습니다. 다윗이 이곳으로 피하면서 어떤 생각을 품었겠습니까? ‘다른 지파 사람들은 그래도.... 최소 내가 속한 지파 사람들, 내가 태어나고, 그 동안 함께했던 사람들은 다를 것이다. 내 고향이고, 나를 아는 사람들이니 억울하게 도망다니는 나를 품고 도와줄 것이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19,20절에서 그 때에 십 사람들이 기브아에 이르러 사울에게 나아와 이르되 다윗이 우리와 함께 광야 남쪽 하길라 산 수풀 요새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하온즉 왕은 내려오시기를 원하시는 대로 내려오소서 그를 왕의 손에 넘길 것이 우리의 의무니이다고 했습니다.

 

사울이 위협한 것도 아니고, 십 주민들이 먼저 사울에게 찾아가서, 다윗이 숨어 있는 곳을 이야기하고, 다윗을 넘겨주겠다고 말합니다. 자기 지파 사람을 죽이기 위해, 다른 지파 사람인 사울을 찾아가서, 다윗을 넘겨주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으로서는 이제 어디로 가고,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다윗이 지금 이 고난과 아픔을 겪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다윗으로서는 원인도 알 수 없고, 해결책도 전혀 볼 수 없는 지경입니다. 사방이 막히고, 그 동안 은혜를 베풀어 주었던 사람들도, 지켜줄 거라 기대했던 지파 사람들마저 등을 돌렸으니, 어디로 피할 수 있겠습니까? 이때 다윗의 마음은 실망감과 좌절감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다윗을 끊임없이 광야로 내모십니다. 다윗이 그 동안 의지해 왔거나, 혹은 인간적인 계산으로라도 마음을 두고 있던 사람들의 줄을 끊어지게 만드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믿음이 좋은 다윗으로 하여금, 억울한 고난을 당하게 하시고, 계속해서 배신을 당하는 사람으로 만드십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믿음이 웬만한 사람이 아니라, 믿음이 넉넉한 사람을 만드시기 위해서입니다. 그저 괜찮은 사람, 좀 착하고, 때론 희생하는 정도의 사람이 아니라,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향해 나아갈 만한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서입니다. 다윗이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으로 그치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더 크고 놀라운 일을 감당할 만한 사람이 못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왕의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 그치도록 하시지 않고, 좋은 왕이 되기를 원하시며, 그 훈련의 과정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과의 싸움으로 바로 왕의 자리에 올랐으면,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왕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까지 품고 함께 나아가는 좋은 왕은 되지 못 했을 것입니다. 거인 골리앗과 맞설 만큼 담대한 왕으로 오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믿음의 수준과 성숙 정도가 대단하지 못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좋은 믿음을 보시면서도, 더 크고 좋은 그릇으로 만드시기 위해 다윗을 고난의 광야로 내모셨습니다.

 

다윗에게 광야에서의 생활은 매순간 목숨도 장담할 수 없는 위기의 연속이었습니다. 광야라는 곳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기술과 건물과 제도가 없는 곳, 어떤 것도 보장받을 수 없는 곳을 뜻합니다. 누군가를 의지하거나 도움받기 어려운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그런 곳으로 내모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언제나 자녀들에게 그러신 것처럼, 위기와 고난 중에도 반드시 돕는 손길, 이길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십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는 고린도전서 1013절 말씀처럼, 반드시 피할 길, 돕는 손길, 위로의 길을 보내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몬 광야의 삶은 고통만 겪는 곳이 아닙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를 깊이 맛보고 누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곳은 우리의 마음을 멍들게 하고 힘겹게 하는 배반자만 있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의 혹독한 훈련으로 지쳐있는 우리를 다독이시며 위로자를 보내주십니다. 본문에서도 좌절할 수밖에 없고, 더 이상 피할 곳도, 피할 마음마저 빼앗겨 버린 다윗에게 하나님은 위로의 손길로 요나단을 보내셨습니다.

 

다윗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인데 어찌 광야에 내몰린 혹독한 상황이 두렵지 않고 절망스럽지 않았겠습니까? 다윗은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연이은 배신을 당해 낙담했습니다. 자기 지파 사람임에도 지레 겁먹고 고발자가 되도록 만드는 사울의 권력이 왜 두렵지 않았겠습니까? 생명의 은인마저도 배신하게 만드는 사울이 가진 권력과 칼의 위협이 왜 무섭지 않았겠습니까?

 

게다가 고난과 시련의 시간이 몇 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반대로 믿음이 더욱 옅어지고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이런 과정이 몇 번 반복되면, 그 후는 어찌 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골리앗을 무찌를 만큼 믿음과 용기가 대단한 다윗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본문 앞 203절에서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는 말이 처한 상황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때에 하나님은 다윗을 광야에 홀로 두시지 않고, 위로할 수 있는 자, 도울 수 있는 자, 힘을 북돋아 줄 수 있는 자를 보내셨습니다. 16-17절에서 요나단이 다윗에게 찾아와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했습니다. “두려워 말라며 안심시키고, 반드시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고 하나님의 약속을 재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이는 오래 전에 사무엘 선지자가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기억하도록 한 것입니다.

 

요나단의 방문으로 다윗은 세 가지를 얻었습니다. 절망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하나님을 더욱 깊이 신앙하게 되었고, 인내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요나단과의 만남을 통해 다윗은 그 어떤 고난과 위기가 닥칠지라도 인간적인 마음으로 서두르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리며 인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다윗은 더욱 성숙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믿음이 단단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계속된 고난과 시련 때문에 점차 멀어지고, 희미해졌던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무엘상 16장에서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아 다음 왕이 될 거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곧 17장에서 골리앗을 무찌르게 되어 사람들이 다윗을 알게 되고 높여주게 됩니다. 다음 왕이 될 거라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잘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는 오히려 왕의 자리에서 점차 멀어집니다. 왕의 자리에서 멀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언제 죽을지 모를 처지입니다. 이 정도 되면, 왕으로 세우시겠다는 약속을 바라보고, 품고 살기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요나단을 보내셔서, 지난날에 다윗에게 주셨던 그 약속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희미해져 가던 약속을 소망의 눈으로 보게 하셨고, 약속을 다시 품게 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다윗은 약속을 가진 사람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약속을 가진 자로, 하나님의 것을 품은 자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다윗은 자신을 쫓는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두 번이나 얻었지만,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고 인내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태도는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괴롭고 힘든 광야에서의 반복된 훈련을 통해 얻은 것입니다. 요나단을 통해 받은 위로와 격려를 통해 얻은 것입니다.

 

우리도 영적인 광야생활을 겪게 될 때가 있습니다. 까닭 모를 고난과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고, 의도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미움을 받기도 합니다. 진심을 다하고, 정성과 사랑으로 대했지만 결국 배신과 미움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땅히 나를 도울 거라 여겼던 사람의 뒤돌아섬으로 인해 마음 찢기는 아픔을 겪기도 합니다.

 

이럴 때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과 소망이 희미해지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살면, 기도에 응답하시고, 복과 구원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에게 닥친 고난과 배신의 연속이 다윗으로 하여금 더 좋은 왕이 되게 하는 연단이 된 것처럼, 우리에게 닥친 고난 역시 우리로 하여금 더 좋은 신앙인, 더 많은 복과 은혜로 이끄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낙담해 포기하기 전에, 반드시 돕는 손길을 보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저 그런 정도의 믿음을 가진 자가 되는 걸 원치 않으십니다. 그저 대충 믿고, 대충 사는 사람, 믿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믿는 것 같기도 한 사람으로 사는 걸 원치 않으십니다. 그 정도로 살아봤자,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영원히 살 수 있는 구원의 은혜를 누릴 수 없습니다. 구원과 복을 받을 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어떤 고난과 시련마저도 이겨내는 수준에 이르러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새롭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광야로 내몰아 시험과 고난을 겪게 하시지만, 시험이 시험으로만, 고난이 고난으로만 끝나게 하시지 않습니다. 이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와 계획하심에 합당한 사람, 하나님의 복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사람, 더 크고 놀라운 일을 해나갈 만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그래서 고난도, 누군가의 배신과 상처와 슬픔마저도, 결국은 좋은 결과로 만들어 가십니다. 또한 우리의 힘으로 풀 수 없고, 해낼 수 없는 일들이 있을 때에는 반드시 보혜사이신 성령님을 보내시고, 때에 따라 성령님 충만한 사람들, 돕는 손길을 보내셔서 약해진 우리의 믿음을 격려하시고, 상한 마음을 위로하시며, 더욱 하나님의 은혜 속에 우리가 굳건한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 가십니다.

 

삶의 모든 과정에서 만나는 어려움과 고통 중에도, 좌절하거나 낙망하지 말고, 이를 통해 베푸실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과 섭리하심, 그리고 우리와 언제나 함께하시며 위로하시는 은혜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각자의 광야 길을 오늘도 묵묵히 걷는 가운데, 날마다 소망이 있고, 기쁨이 있는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