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200426)원수 갚는 것마저 하나님께 맡기고(삼상 24장 1-7절)

청명하늘 2020. 4. 26. 18:09

원수 갚는 것마저 하나님께 맡기고

 

성경: 사무엘상 241-7(449)

찬송: 446(주 음성 외에는; 500), 435(나의 영원하신 기업; 492)

설교: 20200426.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도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최근 TV 방송과 관련해 나온 소식들 중에 일반인 출연자 논란이라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최근 방송의 유행 중 하나가, 연예인들이 아닌 사람들의 일상을 중심으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송과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이 나오기도 하고, 방송 분야에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연예인이 아닌 제작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MBC의 한 프로그램에 결혼을 앞둔 남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했습니다. 여성은 방송국 PD인데, 과거 학창시절에 이 여성으로부터 폭력을 당했다는 글이 올라온 것입니다. 피해자가 올린 글을 보면, 2008년 뉴질랜드에서 유학 중에 만났는데, 여러 차례 구타를 당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피해자들이 등장해서, 본인도 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주인공처럼 등장하고 유명해질 수 있었던 여성 PD만이 아니라, 함께한 남성까지 방송에서 하차하게 되었습니다.

 

또 사연자에게 꼭 맞는 집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거기에 곧 결혼할 사이라며, 집을 구해 달라는 남녀가 주인공으로 예고 방송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불륜관계였다는 사실이 밝혀져서, 촬영한 모든 내용이 편집해 버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자 주인공의 이전 아내의 제보에 따르면, 자신이 임신한 상태였음에도, 두 사람이 불륜관계를 맺고 있었고, 법정에서도 이들에게 이혼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채널과 프로그램이 많아짐에 따라, 이와 비슷한 여러 문제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폭력을 저지른 전과자인데도, 산골에 홀로 사는 사람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음주운전, 선배 갑질 등 전과와 잘못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시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먼저는, ‘언제나 어디에서나 처신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죠? 쉽게 생각하고, 함부로 행한 일들이 나중에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도대체 저런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방송에 출연했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깁니다. 보통 큰 잘못을 저지르고, 전과가 있으면, 부끄러워서라도 남 앞에 드러내려 하지 않죠? 그런데 그 사람들은 얼굴이 얼마나 두껍고, 배짱이 좋은지 모든 사람이 보고 알 수 있는 방송에 나온 것입니다. 아마 둘 중 하나겠죠? 자신이 살아온 것에 대해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 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혹시 과거 잘못과 부끄러운 모습들이 밝혀질 것을 각오하고 감수할 만큼, 방송을 통해서 얻게 될 유명세, 그리고 결국은 이를 통해 얻게 될 돈에 대한 욕심이 더 컸을 것입니다.

 

이 외에도 한 가지 더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누구나 자신이 받은 피해와 상처를 잊지 않고 오랫동안 간직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논란이 되는 것들 중에는, 몇 년이라는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있었던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십 년, 혹은 훨씬 더 오래된 일들도 있습니다. 그만큼 피해자는 오랫동안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겨라는 말이 실천하기에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습니다.

 

살면서 나쁜 일 안 저지른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좋은 일 하나 하지 않은 사람도 드물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훨씬 많이 언급되고 기억되는 것은, 누군가로부터 받은 도움과 은혜가 아니라 피해와 아픔입니다. 정확한 비율을 계산할 수는 없겠지만, 비교가 안 될 만큼 피해와 아픔이 절대적으로 많습니다.

 

만약 아픔이든 은혜든 똑같은 정도로 기억한다면, 피해를 겪어 논란이 되는 것만큼이나, 은혜를 입어 감사하다는 이야기들도 자주 나오고 언급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비교가 안 됩니다.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겨라는 말대로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습니다. 됨됨이가 크고, 인격이 훌륭한 사람들 중에서는 이 말처럼 사는 이들도 있겠지만, 보통은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깁니다.

 

한 예를 들어볼까요? 만약 누구의 도움으로 500만원의 이익을 얻었습니다. 고마워할 일이죠? 고마워하는데 어느 정도로 감사를 표할까요?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큰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감사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누구 때문에 500만원의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밉고 마음속에 분노가 생기겠죠? 거의 틀림없이 언젠가는 그에 대한 피해를 앙갚음하겠다는 다짐과 증오심을 함께 가지게 될 것입니다. 복수한다고 해서 나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일임에도, 그렇게 해야만 마음만이라도 후련해질 것 같아서, 여건과 기회만 되면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할 것입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 속에 아픔과 응어리가 있습니다. 기뻐하고 감사하기보다는, 되갚지 못 한 분노,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응어리를 안고 사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힘이 없고,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언젠가 기회가 오고, 힘이 생기면 되갚아주고 싶은 아픔을 간직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다윗의 모습은 정반대입니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복수할 만했습니다. 그리고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사울 왕을 죽일 만한 힘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사울 왕에게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서, 다윗은 두 번의 큰 배신을 겪었습니다. 한 번은 그일라 사람들의 배신이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기는 상황에서도, 그일라 지역에 적이 침입해 약탈해 간다는 소식을 듣고 목숨을 걸고 찾아가 구해줬습니다. 그런데 그일라 사람들은 오히려 배신하고, 다윗을 사울에게 넘겨줄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과 같은 지파에 속한 십 황무지에 몸을 숨겼습니다. 그런데 마땅히 자신을 지키고 도와줄 거라 생각했던 그 지역 사람들이 사울 왕에게 찾아가서 고자질하고, 다윗을 넘겨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다윗이 겪어야 했던 분노와 절망감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적을 막으러 갔던 사울이 다시 다윗이 있는 곳으로 쫓아 왔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부하들 몇과 함께 깊은 굴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마침 사울이 뒷일을 보려고 그 굴속에 들어왔습니다. 뒷일을 보느라, 호위하는 군사들도 없이, 또 무기와 갑옷도 제대로 갖추지 못 하고 들어왔을 것입니다. 다윗과 그 군사들이 공격하면, 사울 왕을 죽이는 데 어려움이 전혀 없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그 자리가 굴속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굴속은 어둡습니다. 사울은 환한 밖에 있다가 어두운 굴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캄캄한 굴속에 누가 있는지 전혀 모를 것입니다. 하지만 굴속에서 먼저 들어가 있던 다윗과 그 부하들은 어둠에 익숙해져 있어서, 들어오는 사람이 사울 왕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또 이때 다윗과 부하가 사울을 해쳐도, 누가 한 것인지 전혀 모를 것입니다.

 

다윗으로서는 이만큼 좋은 기회가 언제 어디에서 있겠습니까? 뿐만 아닙니다. 우리의 판단으로는, 사울 왕은 죽어 마땅하고, 다윗은 사울을 죽여도 마땅합니다. 다윗이 끊임없이 죽음의 위협을 받고, 살기 위해 미친 사람처럼 행동해야 하고, 거지처럼 이곳저곳으로 도망다닐 수밖에 없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전혀 찾을 수 없습니다.

 

반대로 사울은 살 만한 가치가 전혀 안 보입니다. 왕으로서 통치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나라를 평화롭게 이끄는 것도 아닙니다. 능력에 따라 일하는 사람을 중요한 자리에 앉힌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신앙적으로 훌륭한 것도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서 사무엘 선지자마저 손을 놓고 포기한 사람입니다. 나라를 병들게 하고, 불의로 채우고 있으니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사울 왕만 죽이면, 고달프고 위태로운 여정을 끝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에도, 다윗은 사울 왕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이라는 까닭 하나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다윗의 위대함을 보게 됩니다. 보통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을 죽이지 않은 것 자체를 높게 평가합니다만, 당시 모든 왕은 기름 부음을 받아 왕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왕을 죽이라 명령하신 경우가 있음을 보면, 기름 부음을 받은 이유만으로 사울을 죽이지 않은 것은 말 그대로 다윗의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 하나만으로 다윗을 더 귀히 사랑하셨다고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이 다윗을 인정하시고, 크게 쓰신 까닭은 두 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모든 고난과 시련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다윗처럼 까닭 없는 핍박을 받고, 숱한 위기에 빠지면 뭐라고 불평하고 원망하겠습니까?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왜 제게 이런 벌을 주십니까?” 할 것입니다. 신앙생활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왜 나만 이렇게 재수없는 일이 일어나지?’라고 하거나, ‘왜 나는 이렇게 운수 나쁠까?’하고 불평할 것입니다. 고난과 아픔을 모두 남의 탓이라고 여기고, 불평과 원망거리로 삼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실 다윗만큼 불평을 쏟아놓을 사람이 어디 있고, 억울한 경우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때까지 다윗은 그 누구에게 쫓기고, 죽을 위험에 처할 만한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습니다. 보통이었으면, 먼저는 사울을 미워하고, 원수를 갚으려 혈안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가장 완벽한 기회, 모든 것을 해결하고, 고난과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이를 거부했습니다. 시련과 고난의 이유가 있다는 것, 고난을 통해 하나님이 더 큰 그릇, 하나님의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만드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다윗이 믿음의 조상으로 인정받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사울을 죽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에도, 이를 행하지 않은 다윗에게서 배울 수 있는 두 번째 모습은,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은 하나님보다 앞서려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복수하는 일에 가장 많이 말하는 것이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입니다. 법대로 하면, 내 성에 차지 못 합니다. 법의 판단은 복수하고 싶은 개인의 기대치에 언제나 크게 모자랍니다. 그러면서도 시간과 절차는 얼마나 길고 또 복잡합니까? 법대로 하려다가는, 복수하기 전에, 오히려 피해자가 화병에 먼저 쓰러질 지경입니다. 하지만 모든 절차와 원칙을 무시하고 직접 복수한다면 후련하기 그지없습니다. 복잡하지도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주먹을 쓰고, 직접 복수하는 게, 쉽고, 빠르고, 시원합니다.

 

그런데 로마서 1219절에서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고 하시고, 히브리서 1030절에서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보복하고, 원수 갚는 일에 직접 나서려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점에서도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의 판단대로라 하면, 굴속으로 들어와 있는 사울을 죽이는 것만큼 쉽고 완벽한 기회는 더 없을 것입니다. 또 사울을 죽이는 순간, 어쩌면 자신의 모든 고난과 억울함이 모두 해결될 것입니다. 게다가 사울은 죽어도 마땅한 사람입니다. 다윗은 전적으로 억울한 피해자이기에, 사울을 죽여도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원수 갚는 일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이후에 자신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 때 도망하던 모습을 보면 그렇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다윗이 자기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급히 피신할 때, 시므이라는 사람이 다윗에게 돌을 던지며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이때 부하가 시므이를 죽이려 하자 다윗이 이를 말리면서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고 답합니다.

 

다윗은 그럴 수 있고, 그래도 마땅한 입장이었지만, 그럼에도 보복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맡기고 따릅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칭찬하시고, 그 믿음 위에 왕위를 세우시고, 예수님의 조상으로 삼으실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서면서, 부지중에라도 누군가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조심해야 합니다. 차라리 지금 내가 손해를 감수하는 게 복된 길임을 인정할 마음을 가지고, 남에게 손해와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더불어, 이런 마음으로 살다가, 누군가로부터 억울한 일과 너무 큰 손해를 겪었다면, 그것으로 증오하는 마음을 갖지 말고, 하나님이 나를 훈련하시려 주시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보복하는 것마저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인으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산다는 것은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어리석고 답답한 길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 맡기면, 우리의 모든 사정과 생각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의 고난을 복과 은혜로 바꿔주시고, 하나님께서 직접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다윗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이 되어, 복과 은혜를 누리며 살았던 다윗처럼, 날이 갈수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선택과 복을 날마다 누리며 사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