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200503)선을 쌓고 행하며 사십시오(삼상 24장 8-22절)

청명하늘 2020. 5. 3. 15:21

선을 쌓고 행하며 사십시오

 

성경: 사무엘상 248-22(450)

찬송: 266(주의 피로 이룬 샘물; 200), 289(주 예수 내 맘에; 208)

설교: 20200503.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만, 제가 아는 한 교회 목사님이 정년이 되어 은퇴하시고, 새로운 목사님이 부임하셨습니다. 목사님마다 목회관과 성향이 다르겠죠? 다른 점들이 교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면 교회는 부흥하고 성장하게 됩니다. 반대로 다른 점들이 오히려 안 좋은 영향을 끼치면, 교회는 갈등과 문제가 많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 교회에 아는 분들이 몇 분 계셔서, 새로 부임한 목사님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특이하게 여겨졌던 것은, 교인들에게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신다는 점이었습니다. 목회자가 다른 것이 아닌, 특정한 음식, 그것도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먹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게 좋다고 말씀하신다는 게 좀 이상하죠?

 

그런데 그 이유를 들어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목사님이 성경 연구와 교회 개혁 쪽 성향의 모임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 모임에서 추구하는 여러 가지 중 하나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게 좋다고 한 것입니다.

 

먼저는, 구약성경에서는 돼지고기가 종교적으로 부정한 음식, 즉 깨끗하지 못 한 고기라고 하시며 금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새로운 질서를 세우셨고, 음식에 따라 부정과 정결이 갈리지 않음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돼지고기를 먹으라고 기록되지도 않았고, 특히나 돼지고기가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단체의 관점은, “돼지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건강을 해칠 수 있으니 먹지 않는 게 좋다.”는 것입니다.

 

특히 과거에 비해 요즘은 전도하는 게 아주 어렵죠? 그런데 이를 극복하고, 전도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건강이라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건강하면, 그것만으로도 전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아서 건강하면, 그것을 본 사람들이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말 것을 권유한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시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교회에 갈등과 분열이 생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교회에는 성인 교인만 해도 6~700명 가량 됩니다. 그 정도 되면 식당하는 교인들이 있겠죠? 식당하면서 돼지고기를 이용해 음식을 만들어 파는 곳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돼지고기를 크게 좋아하는 교인들은 또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담임목사님이 교인들의 건강을 위한다는 이유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돼지고기를 사고파는 것으로 생업을 이어가는 교인, 돼지고기 음식을 파는 교인들의 생활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또 먹는 분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사고팔 때마다, 또 먹을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겠습니까? 교인들의 건강을 위하고, 그것으로 전도한다는 생각 자체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여러 교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면 갈등과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죠? 실제로 몇 년 지나서 교회에 여러 문제와 어려움이 생기고, 목사님이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든 또 다른 생각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건강해짐으로써 전도하는 방법이 가장 좋은 전도법인가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저는 식품학이나 영양학을 공부한 사람이 아닙니다. 돼지고기가 몸에 나쁘다는 의견이 맞는지, 아니면 그 속에 들어 있는 여러 영양소가 몸을 더 건강하게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혹 교인들이 모두 돼지고기를 안 먹어 건강해진다 하더라도, 그것을 보고 전도되어 믿음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정말 이게 가장 좋고 확실한 전도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나름 신학을 하고, 성경을 해석하면서, 또 목회하면서 가지게 된 바에 따르면, 근거도 잘못되고, 이를 풀이하는 과정도 잘못되고, 그래서 여기에서 얻은 결론도 잘못된 것 같습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돼지고기가 몸을 크게 해치는 것이라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돼지고기를 안 먹으면, 모두 건강해진다고도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렇게 건강을 얻음으로써 믿음과 구원을 전하라고 말씀하시지도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교인들이 건강한 모습 하나만으로 부러워하고, 그것으로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습니다. 이 문제는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단체를 볼 때, 어떤 점이 마음이 열리게 하고, 그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들까요? 건강한 사람들이 많은 단체에 속하고 싶은 생각이 클까요? 아니면 그 속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선하고, 의롭게 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을 때 그 무리와 함께하고 싶은 생각이 클까요? 답이 쉽게 나오는 문제입니다. 건강하다고 해서, 그들과 함께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들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에,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이 평소에 선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다면, 그들과 함께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자녀도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도록 만들어 주고 싶을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위인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 중에 가장 오래 산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므두셀라죠? 969살을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므두셀라는 그나마 가장 오래 산 사람이라 기억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 다음 오래 산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죠? 야렛이라는 사람이 962년을 살았습니다. 이 외에도 912년을 산 셋, 910년을 산 게난이 있습니다. 이처럼 오래 살 정도면, 당연히 건강했겠죠? 그럼에도 누가 이런 사람들처럼 건강하고, 오래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본받고 싶고, 닮고 싶은 대상으로 삼겠습니까? 이런 사람을 보면서, 건강하고 오래 살고 싶은 마음에 하나님을 믿으려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에 반해, 성경 속 인물들 중에 가장 많이 기억하고, 본받고 싶어하는 인물들의 여러 공통점들 중 하나는, 신실한 믿음과 더불어 의로운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먼저 보여준 인물이라는 평을 받는 요셉이 있습니다.

 

요셉은 숱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소망하며, 현실의 아픔을 이겨냈습니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이 아니죠? 얼마나 의롭게 살았습니까? 여주인이 자기를 유혹합니다. 이 유혹에 넘어가는 게 자기 삶을 편하게 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반대로 유혹을 뿌리치면, 삶을 보장하지 못 함을 잘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요셉은 정직하게, 의롭게 살았습니다. 편하고 쉽지만 불의한 삶을 선택하지 않고, 힘들지만, 그러나 깨끗하고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욥기의 주인공인 욥도 마찬가지입니다. 욥은 말도 안 되는 고난을 계속 받으면서도, 그 믿음을 변치 않고, 하나님이 주신 시련을 통과해서, 두 배의 복을 받고 살았습니다. 대단한 믿음입니다. 대부분 욥의 이 믿음을 잘 알고 기억하지만, 그러나 욥의 다른 면에 대해서는 지나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욥은 믿음만이 아니라, 그 삶 때문에 복을 받았습니다.

 

욥기 11절에서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는 말씀으로 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도 대단했지만, 이에 못지 않게 다른 누구로부터도 비난받을 만한 일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정직했고, 악을 멀리하며 살았습니다.

 

5절에서도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혹시 지었을지 모르는 죄 때문에 번제를 드릴 정도였으면, 욥이 얼마나 거룩하고 선하고 의롭게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이나 욥의 모습을 보면, 믿음과 행함이 절대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개신교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교리고 기초입니다. 선하게 사는 것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중요하게 언급하다 보면, 신앙인들이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떻게 살든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행함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맞는 이야기입니다만, 이와 더불어 행함이 없는 믿음이란, 야고보서 217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말씀처럼 빈껍데기에 불과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그래서 복을 주실 만한 삶이란 이렇습니다. 말로만 하는 믿음이나, 혼자 착각하는 믿음이 아니라, 반드시 선과 의로 밖으로 드러나는 믿음입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 속 다윗이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으로부터 온갖 위협을 겪으며, 거친 들이나 숲속에서 삽니다. 그리고 다윗을 죽이려 쫓아온 사울을 피해 굴속으로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뒷일을 보러 마침 그 굴속에 들어옵니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사울을 죽이는 게 당연할 상황입니다. 사울 왕만 죽이면, 그 동안의 모든 억울함이 한순간에 풀릴 수 있고, 자기 앞날이 보장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사울이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울을 죽이지 않고 보내줍니다. 심지어는, 사울의 옷자락을 조금 벤 것만으로 큰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사울을 살려 보낸 후, 다윗은 옷자락을 보여주면서, 충분히 사울을 죽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과, 자신은 그만큼 결백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입니다. 그러면서 13절에서 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라고 말합니다.

 

다윗의 이 말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는, ‘악은 악인에게서 나온다는 말의 또 다른 뜻은 선은 선인에게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지 않는 문제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비난했습니다. 당시 장로들의 전통이라 불리던 종교적 전통에서는,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한다고 규정했는데, 제자들은 이것을 제대로 안 지켰다는 것입니다.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 것에 대해, 우리는 위생과 건강의 문제로 연결시킵니다만,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종교와 신앙의 문제로 연결시켰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은 소화되어 배출되는 것으로 끝나지만, 우리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마음속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 등이 사람을 더럽게 만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죽이지 않고 보냈다는 것은, 그만큼 다윗의 속은, 사람을 돕고 살리고 세우고자 하는 생각들로 가득했음을 뜻합니다. 선한 생각이었고, 깨끗한 마음이었고, 죄에 물들지 않기 위한 굳은 마음이 가득습니다.

 

악은 악인에게서 나온다는 말에서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의미는, 마음속에 쌓인 것이 밖으로 표현되고 나타난다면, 지금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선을 쌓고, 악을 무너뜨려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군대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말들 중 하나는 군기라는 말입니다. ‘군인으로서 가져야 하는 마땅한 자세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일처리를 잘 하고, 군인답게 빠르게 움직이면, “군기 들었다고 말하고, 군인답지 못 하고, 일처리를 제대로 못 할 때는 군기가 빠졌다고 표현하곤 합니다.

 

누가 군기가 들었는지, 빠졌는지를 가장 쉽게 빨리 확인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잠자고 있는 사람을 깨울 때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자기보다 먼저 입대한 사람이나 계급이 더 높은 사람이 자신을 부르면 관등성명이라 해서 자기 계급과 이름을 대는 것으로 답하는 것입니다.

 

낮에 활동하면서 관등성명을 대는 것은 누구나 잘 하기 때문에 이것으로는 확인이 안 됩니다. 그런데 한밤중이나 새벽에 다음 근무를 위해 담당자가 깨울 때 차이가 드러납니다. 피곤한 상태에서 한참 깊은 잠에 들어 있는 상태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깨울 때 관등성명을 대는 게 절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입대한 지 오래지 않고, 군인으로서의 자세를 잘 갖추고 있는 사람은 그런 상황에서도 관등성명을 대며 벌떡 일어납니다. 평소 군인으로서 마음가짐이 잘 되어 있고, 흐트러지지 않도록 긴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행과 행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중요한 때 실수하지 않고, 죄악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한 삶을 살고 싶다면,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고 싶다면, 매일 매순간 선행을 쌓아가야 합니다. 믿음을 행함으로 나타내기 위해 수고하고 애쓰면, 그만큼 죄에서 멀어지고, 복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과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자녀에게 주시는 복을 받으며 살면, 이것 자체만으로도 전도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으로 증명하며 살면,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잡하고 어려운 교리와 이후의 구원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향할 것이고, 말씀을 향한 간절함을 품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시련 중에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복수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선행으로 이를 증명해 보였습니다. 다윗을 통해 주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기억하고, 어느 순간에라도 믿음을 행함과 선행으로 드러낼 수 있도록 훈련하고, 인내하고, 실천하며 살아감으로써, 다윗이 받은 복을 각자의 삶에서도 받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