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때문에 사는 사람
성경: 고린도전서 15장 12-19절(신 282쪽)
찬송: 161장(할렐루야 우리 예수; 통 159), 165장(주님께 영광; 통155)
설교: 20200517. 주일낮예배(부활주일)
주님이 부활하심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시간 주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재물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재물보다는 명예가 더 중요하고, 명예보다는 건강이 더 중요하다는 뜻으로 이용되는 말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온전하게 사는 것이란, 재물과 명예와 건강을 갖는 것이라는 뜻으로도 풀이할 수 있습니다.
명예도 있고, 건강하기는 한데, 재물이 없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부와 재물이 언제나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재물이 없으면 역시 행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고, 갖고 누리고 싶은 것도 구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말 가난하고 형편이 어려우면, 굶주릴 수 있다는 것까지 확대해 생각해 보면, 물질도 우리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 적지 않습니다.
재물도 있고, 건강하긴 한데, 명예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재산도 많고 건강하지만 그럼에도 남들에게 욕먹는 것을 견디다 못 해 삶을 포기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명예 역시 온전한 행복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건강은 더 말할 필요가 없죠? 명예도 있고, 돈도 넉넉한데, 건강이 좋지 못한 경우는 워낙 흔하고 많죠? 세계에서 돈이 제일 많은 사람이 난치병에 걸려 일찍 사망하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돈으로는 그 누구에 뒤처지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도 건강을 잃거나 세상을 일찍 떠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행복하게,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재물도 있어야 하고, 명예도 있어야 하고, 건강도 있어야 합니다. 이 셋 중 하나라도 충분히 채워지지 않으면, 나머지 둘이 있어도 행복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이 세 가지를 이루고 갖고 누리기 위해서 열심히 삽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또 다른 한 가지는, 사람들은 모두 이 땅만 바라보고 산다는 것입니다.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일하고, 돈을 벌려 하는 까닭은, 어떻게 해서라도 이 땅에서 더 편하고 누리며 살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죠? 그렇게 땀 흘리고 애써서 번 돈을 병원에 가서 검사하고 치료 받는 데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까닭도, 이 땅에서 더 건강하게 더 오래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으면서도, 자기 주머니 잘 챙기기에 급급한 까닭도 역시 명예를 버려서라도, 더 좋은 것 갖고, 더 많이 누리며, 더 오래 살고자 하는 욕심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재물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다’는 말은 가장 행복하게 사는 방법과 순위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표현하는 말들 중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사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욕심과, 애착을 넘어선 집착이 얼마나 대단한지 엿볼 수 있습니다.
‘개똥밭에서 산다’는 것을, 앞에서 나온 돈과 명예와 건강에 대한 말과 연결해 생각해 보면, 돈도 없고, 명예와 건강마저 없이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을 떠나는 것보다는 어떻게 해서라도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사는 것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말을 연결해 보면, 이런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 가장 큰 행복은 이 땅에서 살면서, 재물을 가지고, 성공하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진 사람들은 자랑하며 살며, 갖지 못 한 사람들은 부러운 마음과 더불어, 자신이 그렇지 못 하다는 생각에 불만과 불행감을 가지며 삽니다.
문제는 과연 이 정도만으로 우리 삶이 희망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돈이 아무리 많고, 세상에서 아무리 크게 성공하고, 명예가 높고, 또 건강까지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원하는 만큼 살 수는 없습니다. 또 오래 사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고통과 절망이 가득합니다.
구약성경의 인물 중 야곱이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손자이자, 이집트의 총리를 지낸 요셉의 아버지입니다. 우리로서는 야곱의 비열하고 못된 행적들 때문에 안 좋아할 수도 있고,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이름이 야곱에게서 나왔습니다. 또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를 중심으로 운영되는데, 지파들이 모두 야곱의 아들들, 손자들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명예로만 따지면, 야곱만큼 잘되고, 크게 이룬 사람이 아주 드물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야곱의 아들인 요셉은 당시 세계 최강대국인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왕이 직접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창 41:40)고 말할 정도로, 왕이나 다름없는 권력을 누렸습니다.
아들이 이 정도로 성공했으니, 아버지 야곱이 누렸을 부와 명예는 당연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야곱은 147세를 살았습니다. 이 정도면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 사람들이 가장 욕심내는 모든 것을 갖고 누린 것 아닐까요?
그런데 야곱은, 자신의 나이를 묻는 왕에게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 47:9)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조상들과 비교해 수명이 짧은 것을 말하지 않고, 그 동안 자신이 겪었던 고난과 슬픔 때문에 힘들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표로 하는 것들의 결과가 어찌될지 야곱의 삶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한이 없이, 많이 갖고, 맘껏 누린 것들이 기쁘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세상에서 채울 수 없는 것들로 인해 아프고 힘겹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야곱처럼 많은 것을 갖고 누린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야곱이 이룬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야곱이 가진 것보다 더 많이 가질 수는 없습니다. 야곱이 산 것보다 더 오래 살지 못 할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갖고 이룬 야곱마저 그것만으로는 소망을 갖지 못 했다면,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땅에 것들에만 목매며 살면, 행복과 소망을 얻는 게 아니고, 오히려 고통과 절망만 얻을 뿐입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 19절에서는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가 바라는 것들이 이 세상에 한정되는 것에 그치면, 세상 그 누구도 소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잘 먹고, 많이 이루고, 많이 가지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고 애쓰며 삽니까? 이를 위해 참아야만 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과정에서 참아야 했던 고통과 슬픔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수고하고 애썼더니, 어느새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되고 맙니다. 어느새 몸은 점차 약해지고, 여기저기 아파옵니다. 삶의 이곳저곳에서 다치고 무너집니다. 다음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너진 삶의 한 쪽을 급히 막고 세워놨더니, 다른 쪽에서 더 크게 무너지고 사라지고 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부활이 없이, 이 땅의 삶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이 땅에서 조금 더 잘 먹고, 이루고, 갖고 누리는 것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애쓰며 수고하는 것들마저 아무 쓸모없게 됩니다. 부활이 없는데, 믿음을 어디에 쓰고, 신앙생활 가운데 절제하며 인내하는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는 이 말씀이 오히려 우리에게 참된 소망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부활이 있고, 부활만 있으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복된 자들이 됩니다.
부활만 있으면, 재물이 없어도 가장 복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재물이 없으면, 삶이 불편하고, 불편을 넘어 아픔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분명 있습니다만, 그러나 돈으로 행복과 영생을 살 수 없다면, 재물이 없다고 불행할 까닭이 없습니다. 좀 가난하다고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돈이 아무 것도 되지 못 할 만큼 좋은 것들로 가득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만 있으면, 명예와 성공을 이루지 못 해도 복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명예와 성공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기도 하고, 부러움의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래봤자’ 아니겠습니까? 조금 더 멋지게 죽는다고, 덜 죽는 것 아닙니다. 조금 초라하게 죽는 것도 죽는 것이지만, 조금 멋들어지게 죽는 것도 죽는 것이긴 마찬가지입니다. 명예와 성공을 이룬다는 것은 사실 조금 더 멋진 옷 입고, 좀 멋지게 죽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활이 있기에, 우리가 성공과 명예를 이루지 못 했다 하더라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루지 못 하고, 갖지 못 한 것에 절망하지 않고,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우리 앞에 있는 죽음 너머의 부활을 소망하며 살 수 있습니다.
부활 때문에 우리는 살 만한 사람들입니다. 부활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부활 때문에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건강을 잃으면, 삶의 전부를 잃은 것이라 말하며, 건강을 최고의 것으로 여기며 삽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차피 잘못된 계산법입니다. 강철처럼, 잔병치레 없이 평생을 살아봤자, 나이를 먹으면 몸은 점차 약해지고, 느려질 것이고, 머지않아 호흡과 움직임이 멈추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애초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투자입니다.
그러나 부활이 있기 때문에, 건강하지 않아도, 오래 살지 못 해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땅의 삶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고, 다음 세상이 있고, 그곳에서는 건강과 죽음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 없이 영원히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부활은 믿음의 전부입니다. 부활이 있기에 믿는 것이고, 부활이 있기에 영원히 사는 것이고, 부활이 있기에 우리 앞에 놓인 시간들을 소망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부활이 있기에, 지금 눈앞에 있는 아픔과 고난 중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기대하며 살 수 있습니다.
간혹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들을 돌아봅니다. 특별하다고 할 만큼 돈을 많이 가진 적도 없고, 성공을 이룬 적도 없고, 약과 병원의 신세를 전혀 안 질 만큼 건강한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문제로 적잖이 염려하고 고민하곤 합니다. 그래서 불편하거나 고통스럽지 않도록 부유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남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 아픈 곳들이 낫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기도 제목이 있습니다. “그럼에도”입니다. 돈이 없어도, 그럼에도 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귀한 부활이 있기 때문에 제대로 믿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뤄낸 것, 자랑할 만한 것 하나 없어도, 그럼에도 세상 성공과 명예와는 비교할 수 없는 부활을 얻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건강하지 않아도, 이 땅에서 오래 살지 못 해도, 그럼에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부활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믿음이 되고,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목사로서, 여러분의 삶이 평탄하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여러분이 넉넉히 벌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건강하시기를 위해 기도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이루고, 더 좋은 인정을 받으며 살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기도와 바람은, 여러분이 돈이 없어도, 성공과 명예가 없어도, 건강하지 않아도, 그럼에도 부활 때문에 사는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가난해도 좌절하지 않고, 부활을 소망하며 살기를 바라고, 내세울 것 하나 없는 것 같아도, 쳐진 어깨로 살지 않고, 부활 때문에 당당하게, 멋지게 사는 분들이 되시는 게 더 큰 기도 제목입니다. 건강하지 못 하고, 장수하지 못 해도, 믿음으로 주님을 따라 부활하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분들이 되시기를 위해 더 힘써 기도합니다.
오늘은 부활주일로 드리고 있습니다. 본래는 지난 달에 지켜야 했지만, 올해는 특별한 사정으로 한 달을 미루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고민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교회 절기 자체에 대해 크게 얽매이지 않는 편입니다. 성탄절 예배를 안 드린다고, 예수님이 안 태어나신 게 아니죠? 부활절 예배를 안 드린다고, 예수님이 부활 안 하신 것 아닙니다. 그래서 올해는 부활절 예배를 취소하는 것까지도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생각을 바꿨습니다. 절기 예배를 드리는 까닭이, 1년에 한 번이라도, 절기와 그에 따라 베푸시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기억하며 살게 하는 것입니다. 부활주일로 지키며 예배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신없이 살다 보면, 구원과 부활과 영생을 잊고 삽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세상의 기준에 따라 삽니다. 돈과 명예와 건강을 얻으면 잘사는 것처럼 착각하고, 얻지 못 하면 실패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1년에 단 하루만이라도, 단 한 시간만이라도, 단 한 순간만이라도, 정신없이 뛰어가는 발걸음을 멈추고, 부활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이 땅에서 더 얻고, 누리는 것들, 더 많이 갖는 것에 따르지 않고, 부활에 따라 결정됩니다. 죽음과 영생은, 더 좋은 것들을 많이 이루는 것들에 따라 결정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에 따라 결정됩니다. 우리의 소망은, 건강과 장수에 있지 않고, 저 너머에 있는 천국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조건과 상황에 따라 휘둘리지 않고, 부활에 대한 믿음 하나만으로 소망을 가질 수 있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이 부활하심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날, 하나님이 주님을 통해 보여주신 부활을 새로이 마음에 새기고, 부활 소망으로 이 땅에서의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날마다 기쁨과 소망 가운데 살아나아가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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