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200510)진심으로 회개하고, 간절하게 결심하고(삼상 24장 16-22절)

청명하늘 2020. 5. 10. 14:59

진심으로 회개하고, 간절하게 결심하고

 

성경: 사무엘상 2416-22(451)

찬송: 204(주의 말씀 듣고서; 379), 300(내 맘이 낙심되며; 406)

설교: 20200510.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얼마 전에 한 프로야구 선수가 다시 우리나라 프로야구 팀에서 뛰고 싶다는 의향서를 제출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이 선수는 우리나라 프로야구 팀에서 뛰면서 좋은 성적을 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프로야구 선수라도 병역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운동이라는 게 한 번 감을 잃거나 뒤처지면, 회복하는 게 무척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병역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자 어려움이 되곤 합니다.

 

그런데 이 선수는 야구를 잘 해서 국가대표가 되었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서 병역을 면제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 선수가 되고, 또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서 병역 면제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죠? 우리나라 프로야구 선수로서는 가장 성공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 프로야구 팀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미국은 여러 가지 면에서 세계 최강대국이라 할 수 있는데, 프로 스포츠에서도 특히 그렇습니다. 몇 가지 종목에서는 세계 어느 곳보다 대우가 가장 좋습니다. 그만큼 세계에서 가장 잘 하는 선수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고, 그래서 가장 성공하기 어려운 곳이기도 합니다.

 

이 선수는, 그렇게 어렵다는 미국 프로야구 팀에서도 좋은 성적을 냈습니다. 돈과 명예로 계산하면, 이 선수만큼 잘된 경우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미국 프로 팀에서 성공만 하면, 우리나라 일반 직장인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만큼의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선수가 이제 우리나라로 돌아와 활동하고 싶다고 의향서를 제출한 것입니다. 프로야구 선수로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 이런 지경에 이른 까닭이 있습니다.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를 냈는데,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그대로 도망했고, 다른 사람이 운전했다고 거짓말까지 한 게 밝혀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데, 게다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음주운전을 하다가 이미 두 번이나 적발되었습니다. 음주운전을 할 때마다 걸리는 경우는 희박하다는 것으로 보면, 거의 습관에 가깝게 음주운전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세 번 걸렸을 뿐입니다.

 

그 선수의 사정을 상세하게 알 바 없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기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음주운전이 위험하다는 것은 누구나 분명히 압니다. 음주운전 하다 걸리면, 처벌을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 특히 세 번 걸리면 삼진 아웃제라고 해서, 훨씬 더 강한 처벌을 받습니다. 한 번 걸렸을 때 정신을 차려야 했습니다. 두 번까지 적발되었으면, 술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 해야 합니다. 말 그대로 죽기를 각오하고, 자기 인생이 망가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이 선수가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되었을 때, 반성하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말했겠죠? 그래서 별다른 처벌을 받지도 않았고, 또 많이 알려지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간 것일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이 선수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되어 반성하고, 선처를 요구한 것들이, 그저 그 위기만 넘어가려 뉘우치는 척이었을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반성의 모양은 있으나, 말 그대로 절차에 불과했습니다. 다시는 음주운전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과 노력이 없었습니다.

 

이 선수는 이 때문에, 그 무엇보다도 잘 하는 야구를 계속 하지 못 하고, 여러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음주운전 때문에 본인이 입은 경제적 손실은 얼마나 큽니까? 연봉으로 수십 억원을 받을 수 있는 선수였는데, 몇 년째 뛰지 못 하고 있고, 이제는 전에 받던 금액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연봉을 주는 곳으로 오려고 합니다. 음주운전 때문에 돈과 명예를 모두 잃는 너무 어리석은 행동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2절에서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말씀처럼, 모든 죄에서 철저히 멀어져야 합니다. 사회법에서 어긋나는 것도, 신앙의 법에서도 어긋나는 죄를 저질러서는 안 됩니다. 죄악의 근처에도 가서는 안 되고, 범죄자들과 함께해서도 안 됩니다. 이것이 신앙인들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연약합니다. 아무리 다짐하고 노력해도, 어느새 죄를 저지르기도 하고, 죄인들과 함께할 때도 있습니다. 죄를 짓지 말자는 다짐도 하고, 꽤 노력도 하지만, 문득 정신차려 보면, 죄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대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우리의 다짐이 단단하지 못 해서 그럴 수도 있고, 죄와 거짓이 더 좋은 것을 가져다줄 것처럼 판단되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면서, 어느새 우리마저도 죄에 대해 너무 무감각해져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럴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냥 하나님께 회개만 하면 모든 죄가 없어지고 해결됩니까? 교회 앞에서 회개의 기도만 드리면, 우리는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이럴 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죄 가운데 멸망할 수도 있고, 수렁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지만,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다윗에게 온갖 악행을 저지른 악한 사울의 모습이 나오는데, 이전과는 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을 죽이고자 혈안이 된 사울이 뒷일을 보러 혼자 굴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 굴속에는 다윗이 부하 몇과 함께 숨어 있었습니다. 혼자 들어온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럼에도 사울이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라는 이유로,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고, 다만 이를 확인하려는 목적으로 사울의 옷자락 끝을 베었습니다.

 

사울은 이 사실도 모른 채 밖으로 나갔고, 다윗과 그 부하도 굴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자신이 벤 사울의 옷자락을 보여주면서,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음에도 그렇지 않았다며, 자신은 그만큼 결백하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울은 두 가지 생각이 함께 들었을 것입니다. 한 편으로는, 다윗이 마음만 먹었으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었다는 두려움입니다. 원수가 무방비로 가장 가까이 있음에도 그냥 보내는 다윗 같은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다윗과 같은 사람이 세상에 또 없을 것으로 판단해 보면, 사울은 죽음에서 살아 돌아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이를 알고 사울의 등골이 오싹했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다윗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를 절실하게 느꼈을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미워하고, 죽이려 쫓아다닐 사람이 아니라, 지켜주고 함께할 사람임을 자기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다윗에게 고마워하고, 다윗의 무죄와 선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다윗의 앞날에 복을 주셔서 왕이 될 것이라 축복까지 합니다. 이때 보여주는 사울의 말과 행동만 보면, 사울이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보이는 사울의 말과 행동이, 단지 한 순간의 감정적인 변화가 아니라, 정말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회개와 사죄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정말 저 사람이 살기등등해서 다윗을 죽이러 다녔던 사울이냐?” 하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실수와 악행에 대해서 회개하고 사과했으면, 다시는 그와 비슷한 모습도 보여서는 안 됩니다. 정말 다윗의 무죄와 선함을 인정했다면, 다윗을 해치려 했던 모든 계획과 노력을 철저히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다음 장 마지막 절에 보면, 본래 다윗에게 주었던 자신의 딸 미갈을 엉뚱한 사람에게 줍니다. 사울이 다윗을 해치고자 하는 마음을 바꾸고,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했다면, 이런 짓을 하지는 않았겠죠? 오히려 다윗을 궁전으로 불러들여서, 미갈과 함께 살도록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26장에서 보면, 십 광야 주민들이 사울에게 가서 다윗이 어디에 숨어 있다는 이야기를 해줍니다. 백성들은 왜 사울에게 다윗이 숨어 있는 곳을 알려줄까요? 사울이 여전히 다윗을 미워하고, 죽이려 하고 있다는 것을 백성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이를 통해, 사울은 여전히 다윗의 무죄와 자기의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의 회개가 진심에서 나오는 것이었다면, 부하와 백성들에게 이미 알려주었을 것입니다.

 

자신을 살려주었다는 다윗의 이야기를 듣고, 회개하고 다윗을 축복하는 것들이 단지 한 순간의 감정 변화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혹은 그저 자기의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한 말장난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는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된 것처럼, 말은 번지르르하게 했으나,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윗이 있는 곳을 듣고, 다시 삼천 명의 군사들을 뽑아서 쫓아갑니다.

 

사울의 이런 모습은 다윗의 모습과는 철저히 대비되고 있습니다. 다윗은 믿음이 대단한 사람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죄를 전혀 짓지 않은 깨끗하고 선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부하의 아내를 불러들여 부정을 저지른 적도 있고, 이를 감추기 위해 자기 부하를 일부러 위험한 곳에 밀어 넣고, 다른 사람들은 빠져나오게 해서 전사하도록 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으로서는 분명 실망스럽기 짝이 없는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유독 다윗을 사랑하시고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이라 인정하신 까닭이 있습니다. 이 죄에 대해 선지자가 와서 책망하자, 다윗은 자기 침상을 눈물을 적실 만큼 통곡하며 진심으로 회개합니다. 뿐만 아니라, 다시는 그런 죄를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말로만, 기도로만 회개하고, 다시 같은 죄를 반복한 사울과는 정반대입니다.

 

이를 통해 보면, 참된 회개,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용서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으로 머물게 하는 회개는 당장 그 순간의 말과 행동에 따르는 게 아니라, 이후의 삶에서 증명됨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하고, 성경을 잘 알고, 언변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것으로 그 삶과 믿음이 판가름나지 않고, 자기 입으로 내뱉은 고백을 이후의 생각과 삶에서 실천하는 것으로 증명됩니다.

 

이것을 우리의 삶과 신앙생활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천사처럼 말과 행동에 실수하지 않고, 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이것만큼 좋은 것은 없습니다. 이를 목표로 하고, 이런 삶을 살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죄의 유혹에 너무 약합니다. 작은 유혹만 와도 흔들리고, 작은 이익만 있어도, 믿음을 저버리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본성의 악함과 믿음의 약함 때문에 실수와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회개해야죠? 잘못을 인정하고, 죄에서 벗어나려 노력해야 합니다.

 

문제는, 많은 신앙인들이 회개의 수준을 적잖이 오해한다는 점입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회개 기도하는 정도면 모두 해결되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회개의 수준을 이 정도로 생각하니, 죄에 대해 심각하게 여기지도 않습니다. 다시는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도 보이지 않습니다. 무슨 죄를 저질러도, 아무리 큰 상처를 주었더라도, 미안하다고 말하고, 회개 기도하면 되니, 회개 역시 가볍고 쉽습니다.

 

하지만, 죄의 무서움과 심각성을 이 정도로만 착각하고 회개한다면, 이것은 참된 회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회개, 하나님이 받아주시는 회개는 사울의 것과 같은 게 아닙니다. 다윗의 수준처럼, 철저한 회개와 더불어,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 죽을힘을 다하는 것만을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용서해 주십니다.

 

사울은 회개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과 선지자로부터 버림받고, 악령에 휘둘리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다윗이 자기를 쉽게 죽일 수 있음에도, 그리 하지 않았음을 직접 보고 겪었으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죽음과 멸망의 자리에 있음을 인정하고 처절하게 회개하고, 다시는 그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죽을힘을 다했다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셨을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절호의 순간, 최후의 순간을 너무 쉽게 버리고 말았습니다. 진심으로 회개하지도 않았고, 다시는 이런 죄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도 보이지 않았고, 결국 비참하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얼마 전에 친구들 중 둘이 말다툼을 했다가, 한 친구가 사과 문제를 보낸 것 때문에 절교 직전까지 간 일이 있습니다. 두 친구가 말다툼을 하고 마음이 상한 채로 헤어졌는데, 한 친구가 친구야! 내가 부족하고 못나서 미안하다는 문자로 사과했는데, 이를 받은 친구가 더 화가 났다는 것입니다. 사과의 내용이지만, 구체적이지도 않고, 그저 자기 마음 편하고자 사과하는 척하는 문자로 이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끼리도 마음과 결단 없는, 허울뿐인 말을 알아낼 수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은 우리의 깊은 속과 생각들을 모르시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회개의 기회가 마지막이고, 영생과 죽음마저 결정되는 마지막 기회라는 마음으로, 진심으로 회개하고, 절실하게 결단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사울의 말과 행동을 닮지 않았는지 조심해야 합니다. 죄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심도 없고, 벗어나고자 하는 간절하고도 굳은 다짐도 없이, 그저 그 순간 자기 마음 편하고자 하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과하고 회개했다고 착각하면, 우리는 기회를 놓치고 결국 버림받고 멸망당할 것입니다. 그때 후회해도 이미 너무 늦은 것입니다.

 

사울은 최고이자 최후의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편히 말하고, 쉽게 보내고 말았습니다. 다시 죄악을 반복하고 말았습니다. 본문에서 사울의 어리석음과 죄악과 멸망을 기억하고,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기억하여, 철저히 죄악에서 멀어지고, 다시는 죄를 반복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함으로써, 하나님의 인정과 용서를 받고, 모두 구원의 자리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