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가치에 힘쓰는 사람이 되십시오
성경: 사무엘상 25장 18-38절(구 452쪽)
찬송: 269장(그 참혹한 십자가에; 통211), 315장(내 주 되신 주를; 통512)
설교: 20200531.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어렸을 적에 보았던 코미디 프로그램의 내용이 간혹 생각나곤 합니다. 설정이 미국을 한 번 다녀온 식당 직원이 잘난 체하며, 또 미국을 끝없이 동경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에 오래 머물고 돌아온 것도 아니고, 겨우 한 주 머무르고 돌아왔습니다. 몇 달도 아니고, 며칠 머물다 왔으니 사실 달라질 게 없죠? 미국 사람처럼 제대로 발음할 수 있는 영어도 ‘햄버거’와 ‘어메리카’ 딱 두 마디였습니다. 그럼에도 미국에 푹 빠져서, 모든 것을 미국과 연결시켰고, 또 그럴 때마다 마치 이상향을 꿈꾸는 듯 눈을 치뜨는 것으로 웃음을 주었습니다.
요즘이야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져서, 오가는 사람들이 워낙 많죠? 또 인터넷을 통해서 외국의 현실을 언제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습니다만, 당시는 다른 나라를 간다는 게 어렵고 희박했습니다. 미국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상태에서 그런 내용의 코미디 프로를 보게 되면서, 미국에 대한 생각들을 쌓아가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할 만한 것은 하나 없지만, 어찌되었든 세상에서 존재하는 최고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천국에 가까운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코미디 프로 하나만으로 미국에 대한 생각들을 쌓아간 것은 아니겠지만, 저의 그런 생각과 내용과 수준이 크게 다르지 않는 이들이 아직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요즘도 시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서,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를 드는 사람들이 많고, 그중 상당수가 기독교인들입니다. 심지어는 지난 총선이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며, 이를 해결해 달라고 미국에 청원한 정신 나간 수만 명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전세계 나라들 중에서 최고이자, 점차 완성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고, 또 생각하고 있는 미국의 민낯이 최근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이번 전염병이 전세계에 퍼졌고, 우리나라와 같은 시기에 첫 번째 확진자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을 기준으로 하면, 우리나라 확진환자가 11,402명, 사망자가 269명입니다. 같은 날 기준으로, 미국은 확진자가 166만 명, 사망자가 10만 명이 넘었습니다. 확진자는 우리나라의 150배 가까이 되고, 사망자는 350배가 훌쩍 넘습니다.
물론, 인구는 미국이 우리나라의 6배가량 되기 때문에, 확진자와 사망자가 우리나라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확진자만 해도 150배나 되고, 사망자가 350배가 된다는 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설명될 수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코로나19로 사망한 시신들을 처리할 수 없어서, 무연고자 시신을 매장하던 곳에 큰 구덩이를 파고, 그곳에 수십 구의 시신을 겹쳐 매장하는 일까지 일어났겠습니까? 오직 방역과 치료에 실패했다고밖에 설명이 안 됩니다. 무능하거나 나쁜 나라입니다. 아니면 무능하기도 하고 나쁜 나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동안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돈이 가장 많고, 가장 많은 사람이 살고 싶어 하던 나라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미국이 갑자기 가난해졌습니까? 미국도 역시 경제문제로 큰 어려움을 당할 것이지만, 그러나 여전히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입니다. 한 해 동안 나라 전체에서 생산해 낼 수 있는 것으로 따지면,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13배가 더 많습니다.
돈만 많은 게 아니죠? 미국은 군사력이 가장 강한 나라입니다. 미국이 한 해 국방비에 쏟아 붓는 돈이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우리나라 돈으로 약 900조원정도 됩니다. 500조원으로 한 해를 운영하는 우리나라 예산의 두 배 가까이 됩니다. 미국이 군사력에 쓰는 돈만 해도, 우리나라 전체가 쓰는 돈보다 두 배 가까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로 어마 어마한 돈을 군사력에 쓰기 때문에, 미국을 ‘천조국’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군사력에 ‘천조 원을 쓰는 나라’라는 뜻입니다. 미국이 전염병을 막지 못 해, 수많은 사람이 전염병에 걸리고, 또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이유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미국은 돈으로 따져도 그렇고, 군사력으로 따져도 여전히 가장 강하고, 가장 돈이 많은 나라입니다. 그러나 돈을 지혜롭게 쓰지 못 했습니다. 미국이 돈을 쓰는 방식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사람을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데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느라, 정작 살리는 일에는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일에 능력자가 되느라, 사람을 살리고 돕는 일에는 철저히 무능해지고 말았습니다. 사람을 해치고, 죽이는 일에 힘쓰느라, 살리고 돕는 것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강하고 좋은 나라가 아니라, 무능하고 나쁜 나라가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무엇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 자체가 기준이 아니라, 그것이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느냐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같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으로 사람을 세우고, 살리고, 돕는 것에 사용되면 유능하고, 좋은 것이 됩니다. 그러나 똑같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사람을 죽이고, 실패하게 사용되면, 무능하고 나쁜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보면, 다윗이 자신에게 몰려든 사람들과 함께 광야와 황무지 등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들에게 가장 시급하고도 큰 문제는, 어디에서나 그렇듯, 먹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다윗에게 몰려든 사람들이 많았고, 군사로 쓸 수 있는 장년만 해도 600명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명령만 하면, 힘으로 남의 것을 빼앗아 배를 채우는 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주위에 가축을 기르는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그들의 것을 빼앗지 않고, 오히려 보호해 주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근동에서 가장 큰 부자인 나발이 양털을 깎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추수 때가 되면 마음이 너그러워지기 마련이고, 양털을 깎아 수확하는 날에는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고 베푸는 게 전통이었습니다. 다윗은 체면을 차리지 않고, 부하들을 보내 먹을 것을 나누어 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했습니다. 어느 정도 음식을 얻을 수 있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이 계산은, 웬만한 사람의 수준을 넘어선 나발의 판단과 행동 때문에 어긋나고 말았습니다. 나발은 다윗이 자신의 짐승들과 하인들을 지켜준 은혜를 모두 잊고, 비렁뱅이 취급했습니다. 주인으로부터 도망친 종이라 모욕했습니다. 분노한 다윗은 나발과 그의 모든 재산을 없애려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달려옵니다. 나발의 그 많던 짐승과 재산들을 한순간에 잃게 될 처지에 처했습니다.
이때 나발의 아내가 상황을 지혜롭게 파악하고, 신속하게 행동합니다. 다윗과 그 일행을 먹일 만한 음식을 급히 준비하고, 다윗을 향해 나아가 맞이합니다. 자기 남편이 보인 교만과 어리석음을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로, 아비가일은 겸손하고도 지혜롭게 행동합니다. 아비가일의 신속하고도 지혜로운 행동이 없었다면, 그날 나발의 집안에는 비명 소리와 주검들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통곡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아비가일 한 사람의 뛰어난 안목과 지혜로운 행동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나발과 아비가일의 모습을 대비해 볼 수 있습니다. 나발과 아비가일은 부부이지만, 재산과 재물에 대한 생각과, 이를 사용하는 방법은 정반대입니다. 먼저 나발은 재물에 대한 탐욕이 엄청났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많은 재산을 가졌지만, 더 갖고 더 누리는 것에 혈안이 되었습니다. 나발은 재산에 목숨을 건 사람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재산에 목숨을 건 사람이니, 재산과 짐승이 줄어드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 합니다.
다윗이 자기 사람들 먹이려 수 백마리 양을 달라 했겠습니까? 기껏해야 몇 마리거나, 아니면 곡식 몇 포대 정도이지 않겠습니까? 이 정도면, 나발이 가진 재산에 비하면 ‘새 발의 피’밖에 안 되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게 아까워서, 다윗을 모욕하고, 은혜를 원수로 갚았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수천 마리를 모두 잡아먹을 만큼 오래 살았습니까? 그 많은 재산을 모두 누릴 만큼 평안한 삶을 살았습니까? 죽음을 자초한 길인지도 모른 체 한껏 어깨에 힘주고, 험한 말 내뱉었습니다. 그 후의 모습은 본문 36절에서 “아비가일이 나발에게로 돌아오니 그가 왕의 잔치와 같은 잔치를 그의 집에 배설하고 크게 취하여 마음에 기뻐하므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요구를 묵살한 후 나발은 한껏 들떴던 모양입니다. 민족의 영웅, 왕의 사위, 위대한 장군이었던 다윗이 자기를 찾아와 구걸하고, 자신은 철저히 모욕하며 거부했으니, 자기가 가진 재산의 힘이 대단해 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잔치를 벌였는데, 규모가 왕의 잔치처럼 성대했고,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잔뜩 취하도록 술을 마셨습니다.
그러나 그게 자신이 보내는 마지막 시간들임을 몰랐습니다. 자신이 마실 수 있는 마지막 술잔이며, 그게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는 어리석인 짓임을 그때는 깨닫지 못 했습니다. 그 순간은 하늘을 나는 기분으로 술을 마셨는지 모르지만, 자기 아내가 아니었으면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는 소식을 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그렇게 10일 동안 죽은 사람처럼 있다가 세상을 영원히 떠나고 말았습니다.
나발이 이처럼 비참하게 세상을 떠난 까닭이 무엇입니까? 돈이 없어서입니까? 그렇지 않죠? 나발이 죽은 이후에도 그 재산은 거의 그대로 있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바뀐 사실은, 그토록 목숨 걸고 지키고자 했던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의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넓게 생각해 보면, 나발이 죽은 까닭은 재물 때문이었습니다. 부자인 까닭에 결국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나발이 평범한 정도의 재산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이것에 목숨을 걸 만큼 어리석고 교만한 사람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재물에 시선을 고정하느라, 더 크고 급한 것을 보지 못 하는 미련한 사람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나발은 다른 사람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재산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람을 돕고, 생명을 살리는 데 사용하지 못 했기 때문에, 결국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것도 자신이 첫 번째 희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비가일은 전혀 달랐습니다. 재산에 대해 나발보다는 힘이 훨씬 약했을 것이지만, 그러나 이 재산을 지혜롭게 사용할 줄 알았습니다. 만약 아비가일도 몇 마리 양과 염소가 아깝다며, 자기 남편처럼 교만하고, 어리석게 행동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다윗의 군사들에 의해 자기 남편과 함께 죽고, 모든 재물과 가축을 빼앗기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비가일은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할 줄 알았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데 이용한 것입니다. 재물보다는 생명이 귀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지만, 겸손과 지혜는 화평을 부르고, 생명을 살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아비가일은 살 수 있었고, 다윗의 아내가 되는 영광까지 누리게 되었습니다.
나발이 비참하게 죽은 까닭도 재물 때문이고, 아비가일이 영화롭게 산 까닭도 재물 때문이었습니다. 똑같은 재물이지만, 나발은 자기 혼자만 누리는 데 혈안이 되어, 남을 무시하고, 자비를 베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비가일은 재물보다는 생명이 귀함을 알았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데 재물을 쓸 줄 아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아비가일 같은 지혜와 안목이 필요합니다. 재물도 귀한 것이고,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주지만, 그러나 이것을 자기 혼자만 살고, 즐기기 위해 쓰다가는, 나발처럼 재물이 족쇄가 되어, 자기의 삶을 먼저 파괴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재물만이 아닙니다. 건강하기 때문에, 오히려 믿음을 저버리고 세상을 향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성공과 명예를 얻어, 오히려 더 큰 성공과 명예를 따라 밖을 향하는 신앙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재물과 건강과 성공과 명예 등은, 넉넉하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이런 것이 없으면, 삶이 퍽퍽해지고, 더 고되고 힘겹습니다. 그래서 이를 위해 찾고 구하고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이를 구하기 전에 먼저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려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런 것들에 매달려 사는 사람이 되지 않고, 그런 것들을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 때문에 오히려 망해가는 사람이 되지 않고, 그런 것들을 지혜롭게 이용해, 자신도 살리고, 가족을 살리고, 이웃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함께하는 사람들을 살릴 만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구하지 않고, 돈과 성공과 명예만을 위해 애쓰다가는, 그로 인해 더 가치 있고, 구원과 소망이 있는 삶이 아니라, 재물이 너무 많아 오히려 망한 나발의 삶처럼 되고 말 것입니다. 넉넉히 가진 재물이 우리를 죽음과 패망의 길로 이끌 것이고, 멋지고도 화려한 성공길이 우리를 패망의 선봉인 교만으로 데려갈 것입니다.
그래서 아비가일 같은 지혜로운 안목과 겸손이 필요합니다. 재물로 인해 죽음을 자초하는 사람이 아니라, 재물을 이용해 사람을 돕고 살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오늘 찾는 사람이 이런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돈 많은 사람을 찾으신 게 아닙니다. 성공과 명예를 이룬 사람을 기다리신 게 아닙니다. 건강한 사람을 필요로 하신 것도 아닙니다. 돈과 성공과 명예와 건강은 모두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데, 하나님이 원하시면 주시는 것이고, 뜻하시면 거두어 가시는 것들인데, 이런 것들로 삶을 채운 사람이 왜 필요하시고, 찾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오늘도 재물과 성공과 명예와 건강에 얽매이거나 휘둘리지 않고,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을 위해 이용할 줄 아는 사람,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나라를 이용해 쓸 만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가 그러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고 기다리십니다.
오늘 나발과 아비가일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우리를 향한 말씀으로 겸손하게 받아들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람을 돕고, 생명을 살리는 데 힘씀으로써, 아비가일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날마다 누리며 사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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