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180218)무엇을 경영하십니까(막 8장 34-38절)

청명하늘 2018. 7. 16. 16:44

무엇을 경영하십니까?

 

성경: 마가복음 834-38(68)

찬송: 259(예수 십자가에 흘린; 193), 338(내 주를 가까이 하게; 364)

설교: 20180218.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최근 경제문제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나라들 중 하나는 베네수엘라라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중남미에 위치해 있고, 또 아름다운 바다와 인접해 있습니다. 땅 크기로 따지면, 남한의 약 9배 이상의 크기고, 인구는 3,130만명 정도입니다. 남한과 비교해 보면, 인구는 60%정도밖에 안 되는데, 땅은 9배나 더 큽니다.

 

그런데 이 나라가 최근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큰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반대로 물가가 올라가는 것을 인플레이션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작년에 쌀을 1kg 사는 데 1,000원을 줬는데, 올해는 2,000원을 줘야 한다면, ‘물가가 올랐다고 말하는데, 바꿔 생각해 보면, 돈의 가치가 떨어진 거죠? 2,000원이라는 돈은 작년엔 쌀 2kg의 가치였지만, 올해는 쌀 1kg의 가치로 떨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돈의 가치는 떨어지고, 물가가 너무 오르는 것을 인플레이션이라고 하는데, 작년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은 2600%였다고 합니다.

 

이전엔 1,000원을 주면 쌀 1kg을 살 수 있었는데, 작년엔 26,000원을 줘야 한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단지 작년에만 이렇게 물가가 오른 게 아니고, 몇 년 전부터 계속 물가는 오른 데다가, 작년엔 또 2600% 올랐다는 것이고, 올해는 상황이 더 안 좋을 거라 예측되고 있습니다. 이 정도 되면, 거의 생활이 불가능합니다. 월급을 받아도, 돈의 가치가 너무 떨어져서, 물건 몇 가지만 사도 끝나고 맙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도대체 저 나라는 가진 게 얼마나 없길래 저렇게 못 살고, 문제도 많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나라가 가진 게 없거나, 본래 저 정도로 가난한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땅 크기는 남한의 약 9배 정도니 아주 큰 편입니다. 게다가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꼽히는 게 석유죠? 그런데 2012년을 기준으로 하면, 베네수엘라는 석유매장량이 세계 2위입니다. 그것도 1위인 사우디아라비아와 크게 차이 나지 않을 정도이고, 어떤 조사에 의하면, 세계 1위가 베네수엘라라고도 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베네수엘라는 경제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석유가 땅 속에 많이 들어 있다는 것 때문에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발견된 석유만 캐서 팔아도, 나라 살림을 몇 백 년 해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 나라에서 기름이 얼마나 많이 나는지, 우리나라에서는 꿈조차 꿀 수 없을 만한 일들이 많습니다. 2016년에 베네수엘라 정부에서 휘발유 값을 13배 올렸습니다. 우리나라 요즘 휘발유 가격이 리터 당 1500원 정도인데, 여기에 13배를 올렸다면, 거의 2만원이 다 되는 가격이죠? 그런데 베네수엘라 정부에서 13배를 올린 가격이 얼마냐 하면, 리터 당 123원이었다고 합니다. 올리기 전 가격으로 생각하면 리터당 10원 정도였다는 뜻입니다. 자동차 한 대에 가득 넣어도, 500-600원이면 될 정도입니다. 얼마나 부럽습니까? 말 그대로 기름 값 걱정 없이 막 쓸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가장 흔하게 쓸 때, ‘물 쓰듯한다고 하는데, 베네수엘라에서는 이 말이 바뀌어야 할 정도입니다. 휘발유가 물보다 훨씬 싸기 때문에, ‘휘발유 쓰듯한다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이렇게 넓은 땅이 있고, 가장 중요한 자원인 석유가 그렇게 많은 나라가, 지금은 왜 이렇게 가난하고 고통스런 나라가 되었을까요? 땅 넓고, 가진 것이 많은 나라가, 끼니를 걱정해야 하고, 병이 나도 먹을 약이 없는 비참한 나라가 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나라를 잘못 경영했기 때문입니다.

 

하루를 살거나, 후손이 없다면, 그 다음을 위한 계획이나 노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있는 대로 지금 당장을 위해 쓰고, 먹고 싶은 것도 나중을 위해 아낄 필요가 없이 그냥 맘껏 먹으면 됩니다.

 

그러나 국가는 하루만 있는 게 아닙니다. 수백 년, 수천 년 그 속에서 국민들은 끊임없이 생활하게 됩니다. 태어나는 사람이 있고, 죽는 사람이 있지만, 어찌 되었든 그 속에서 사는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또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이 때문에 나라는 지금 당장 국민들이 잘살 수 있도록 베풀기 위해 노력도 해야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회가 있을 때, 반드시 다음을 위한 대비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베네수엘라는 이런 점에서 국가를 잘못 경영하고 말았고, 그 결과가 지금 온 국민의 굶주림과 아픔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나라를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나라가 이런 사태를 대비하고, 자원과 여건이 충분했을 때, 앞날을 위해 투자하고 노력했다면, 위기가 오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에 조금 덜 누리고, 덜 쓰더라도, 몇 년, 몇 십 년 후를 위해 준비할 만큼 지혜로웠다면,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더 발전하고, 더 많이 누릴 수 있는 좋은 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작은 사업장을 운영하는 사람이 상황을 잘못 판단하고, 잘못 경영하면, 그 사업장은 점차 기울어지고 그러다 더 길어지면 망하게 됩니다. 능력이 부족한 운영자가 있는 기업이나, 미래를 계획할 줄 모르는 무능한 지도자가 있는 나라도 점차 어려움이 많아지고, 그러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기업이 파산하고,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우리 각자의 삶도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의 삶을 운영해 갑니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자기의 삶을 운영해 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삶을 직접 설계하고, 만들어갈 나이가 되었을 때를 준비하고 훈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었을 때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만의 삶을 운영하는 것입니다.

 

각자가 나름의 계획과 방법으로 만들어 가는 개인의 삶도, 기업이나 나라와 마찬가지로, 어떻게 계획하고,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꼭 있어야 하는 것과 소유하거나 이루고 싶은 일들을 구분합니다. 지금 힘써야 하는 것과 나중을 위해 지금 준비해야 하는 것을 알고, 알맞게 배분할 줄 압니다. 자기의 삶을 이렇게 지혜롭고 또 능력있게 운영하는 사람은, 아름답고 행복한 삶으로 운영해 갈 것이고, 능력이 부족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삶을 점차 망가지고 무너진 길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운영하는 방식에 따라 그 결과가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은 같지만, 그러나 자기 삶을 운영하는 게, 기업이나 회사, 가게, 나라 등을 운영하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다른 것들을 운영하는 것은 모두 이 세상의 것만 잘 경영하면 되지만, 자기 인생을 경영하는 것은, 이 땅의 삶도 잘 경영해야 하고, 더불어 그 다음의 시간, 하늘의 때를 대비하며 만들어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업, 회사, 가게를 운영하는 목적과 목표는, 이 세상에서 좀 더 좋은 것 먹고, 원하는 것 많이 갖고, 편하게 사는 것을 위한 것들입니다. 이들은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쓰고, 그래서 이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이것 하나만으로 만족합니다. 이들의 최고의 성공, 최고의 경영은 바로 육적인 삶을 만족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각자는 육체의 삶만이 아니라, 영적인 삶도 더불어 경영해야 한다는 점에서 회사와 기업, 나라를 경영하는 것과는 차이가 납니다. 돈을 잘 벌고, 잘 먹고 여유롭게 사는 등 육체의 삶을 잘 경영한다 하더라도, 영적인 삶을 제대로 경영하지 못 하면 삶이 무의미해지고, 죽는 순간, 평생 땀 흘리며 수고하고 애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지금 이 땅에 있는 것에만 마음을 두어서, 원하는 것들을 모두 이루고 가졌다 하더라도, 영혼의 삶을 계획하고 준비하지 못 하면, 어느 순간 우리 눈앞에서 영생과 영벌의 갈림길 앞에서 때늦은 후회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육체의 죽음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육체 삶은 잘 경영하였으나, 영적인 삶을 대비하고 경영하는 일에서는 실패하였다면, 그 사람은 삶을 잘못 경영한 것이고 실패한 것입니다. 육체의 삶을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영적인 삶을 준비하고 경영하는 것에 더 많은 계획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본문에서, 삶을 지혜롭게 경영하는 방법을 말씀해 주십니다. 육체의 삶을 경영하는 것만이 아니라, 영적인 경영까지 더불어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은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은, 단지 교회에 다니고, 예배를 드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것은 당시 하나님을 잘못 믿는 사람들도 그랬고, 지금도 이단과 사이비 신앙으로 물든 이들도 얼마든지 교회에 나아와 예배할 수 있고, 종교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것은, 이런 겉모양과 형식이 아니고, 우리가 목표로 삼고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그 삶으로 직접 보여주신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내 뜻을 고집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 삶을 경영해야 하는 내용을 말씀하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의 욕심과 욕망을 먼저 찾고 구하고자 하는 육의 사람이 되지 말고, 먼저 하늘의 것을 찾고 구하는 영의 사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각자의 삶을 성공적으로 지혜롭게 경영하기 위한 순서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의 사람의 모양으로 오셔서, 우리처럼 호흡하며, 계획하고 친히 모범을 보여주신 것을 정답으로 여기며, 삶의 우선순위와 내용을 주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다짐하는 게 곧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따르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원어로 보면, ‘완전히 단절됨을 뜻합니다. 즉 우리 속에 있는 악한 본성과 악으로부터 완전히 멀리 떨어지고, 그리고 그 자리를 주님의 것으로 바꾸는 것을 뜻합니다. 창세기 65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세상 어디에 있는 사람이든지, 누구든지 모두가 그 속에는 죄가 가득하고, 예외 없이 모두의 성향 즉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악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따르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란 바로 인간의 가장 밑바탕에 있는 성향과 경향과 악한 본성을 철저히 차단시키고 주님을 따른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하며 방심하면, 사탄은 그 작은 틈을 타서 결국 우리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 결국은 삶 전부가 부패하고 맙니다. 이처럼 자기를 온전히 부인하지 못 하고, 악한 욕망과 타협한 모습으로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따른다고 해도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악한 본성과 욕심을 완전히 떨치는 자기 부인의 삶을 살라 말씀하십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은, 이 땅의 영광과 복만을 바라며 살지 말고, 주님이 그렇게 사셨던 것처럼, 하늘의 영광과 상을 바라보며 고난과 십자가를 각오하며 살라는 뜻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은 모두 영의 것, 하늘의 것을 경영하는 것입니다. 이 땅의 것인 육체의 것만을 경영하면 영적인 삶은 망하게 되는 것에 반해, 영적인 삶을 지혜롭게 경영하기 위해 주님의 길을 따르면, 영적인 생명을 얻을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육체의 삶도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오늘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어떤 삶을 경영하고 있습니까? 영적인 삶입니까? 육체의 삶입니까? 최근 새로 생긴 말 중에 욜로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은 한 번뿐이다는 뜻을 가진 영어의 앞글자를 딴 말인데, 지금 당장만, 그리고 나만 생각하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욜로족의 삶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남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한 번 살 뿐이니, 지금 당장을 즐겁게 살고, 자신을 위해 살려 애씁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서도 이같은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도,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지금 당장 갖고 누리는 것에만 마음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이 땅에서 한 번 사는 것은 맞는 이야기지만, 우리에게는 대비하고 위해 노력해야 하는 다음 세상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의 삶이 끝나면, 영원히 살든지, 영원히 고통 속에 던져지든지 다음 생이 있음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다음을 위해 지혜롭게 준비하며 대비해야 합니다.

 

영혼의 욜로족처럼, 지금 우리가 발 디디고 호흡하며 살아가는 이 땅에서 잘되고, 성공하는 것, 부와 편함과 즐거움만을 위해 살면서, 이 다음에 있을 영혼의 삶을 대비하지 않으면, 결국은 실패하고 망가진 삶이 되고 맙니다. 영혼의 욜로족의 다른 말은 곧 자기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사는 삶, 이 땅의 것만을 위해 사는 삶, 고난과 십자가를 외면하는 삶, 그래서 결국은 영원한 나라를 대비하지 않아서 실패한 삶입니다.

 

다음을 가장 지혜롭게 준비하는 삶이란, 자기의 악한 본성을 버리고, 악한 세상에서 주님이 직접 그렇게 사시며 보여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것을 먼저 찾고 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내 계획과 판단보다 앞세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참된 신앙고백이고, 주님의 제자로서 걸어야 할 길이며, 이 길을 따라 살면 천하보다 더 귀한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오직 육체의 생명만을 위해 살고자 하는 악한 본성을 이기고, 주님을 따르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담대히 십자가를 지는 길로 살아감으로써, 영생의 복과 더불어 이 땅에서의 삶도 복과 은혜로 채워가는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