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180204)주님의 뜻과 선택대로 하시는 게 가장 큰 복입니다(막 8장 22-26절)

청명하늘 2018. 6. 24. 19:11

주님의 뜻대로, 선택대로 하십니다

 

성경: 마가복음 822-26(67)

찬송: 425(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217), 435(나의 영원하신 기업; 492)

설교: 20180204.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주위에 아는 목사님들 중 한 분이, 다른 몇 분과 함께, 작고 재정적으로도 어려운 교회를 찾아다니며, 작은 건물을 짓거나, 공사를 담당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취지와 목적이 좋고, 또 형편이 어려운 교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그 목사님께 여쭈었더니, 최근엔 그 일을 안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까닭을 여쭈었더니, 공사할 때의 수고와 어려움보다 다른 문제들이 더 힘들고 어렵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전문 기술자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래도 기술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공사를 다 마치더라도, 하자난 곳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 곳을 보수하다 보면 시간과 비용도 많이 들어서, 나중에 여러 가지로 계산해 보면, 비용도 예상만큼 적게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공사 기일은 길어지고, 보수하는 과정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등의 문제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른 그 무엇보다 더 어려운 것은, 완공이 된 후의 문제들이라고 합니다. 전문적으로 공사하는 것도 아니고,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서, 편하고 좋은 건물을 짓기 위한 설계도를 가지고 있진 않겠죠? 대략적인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따라 여러 사람이 함께 작업해서 마치고 나면, 언제나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꼭 있어야 하는 시설을 빼놓을 수도 있고, 위치가 잘못되어 다시 설치해야 하거나 사용하지 못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건물을 다 지은 다음에 문제가 발생되면 문제가 커집니다.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꼭 필요한 것을 어디에 어떻게 설치할 것인지 계획을 세우고, 설계대로 공사를 하면 좋은 건물이 완성되게 됩니다. 하지만 공사가 많이 진행되거나, 완공되었을 때 공사가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면, 이미 지은 것을 부수고 다시 공사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공사가 많이 진행되거나 완공되고 나서 문제가 발견되고 나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동안 지은 것들을 다시 무너뜨리거나, 많이 훼손해야 되기에, 비용도 두 배로 들 것이고, 두 배의 공사를 마치기 위해서는 또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서, 건물을 만들 때에,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는 좋은 설계가 있어야 하고, 좋은 설계에 따라, 건물의 구조와 여러 시설물들을 빼놓지 않고, 제자리에 만들어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꼭 있어야 할 것을 빼놓거나, 필요하지 않는 것을 넣었다가는 자칫 다 지은 건물을 부수고 처음부터 시작하거나, 일부를 크게 고쳐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좋은 설계에 따라 만들어지는 게 가장 좋은 것이고, 비용이나 시간도 절약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은 우리의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생명들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생명들 중에서 오직 인간에게만 각자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완성시킬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짐승들에게는 특별한 설계나 계획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아주 간단한 개집이나, 단순한 창고를 짓는 데에는 특별한 설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빨리 짓는 것이, 돈과 시간을 줄이는 길이고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단순한 과정이 아닙니다. 꼭 있어야 하는 시설도 많아 복잡합니다. 무엇을 어디에 어떤 순서대로 설치하느냐에 따라 삶은 전혀 달라집니다. 느린 것 같고, 수고와 희생이 많이 필요해서 답답한 것 같지만, 설계에 따라, 지혜롭게 꼭 필요한 것을 순서대로 설치하며 살아가는 삶은 존귀하고 복될 것입니다. 그러나 설계를 무시하고, 자기 눈과 지레짐작대로 삶을 만들어가다 보면, 꼭 있어야 할 것이 빠지고,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고, 이것저것 뒤엉켜서, 그 동안 수고하고 애썼던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새로 시작해야 하거나, 망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신앙생활이란, 내가 그리는 계획과 설계도가 부족하고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내려놓는 것과 더불어, 하나님이 주시는 계획과 설계가 우리 삶을 가장 온전하고 복되게 만듦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설계대로 내 삶을 가꾸어 가겠다고 다짐하며, 이를 목표로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물론 자기들의 계획이 가장 좋다고 여기고, 자기 생각과 고집대로 살아갑니다. 이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신앙인들 중에서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내 계획과 판단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아니 내 계획과 판단만 제일로 여깁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설계를 받아들이려는 최소한의 노력마저 기울이지 않고, 그럴 마음조차 없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을 설득해서, 하나님이 내 계획과 설계대로 움직이시는 것을 원합니다. 이것이 좋은 믿음이라고 여기고, 이렇게 하나님이 내 뜻과 판단대로 움직이시는 것을 기도의 응답이라고 여기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는 능력있는 사람이라고까지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각자의 삶이 사람의 계획과 설계에 대한 고집으로 가득해서, 끝까지 내 뜻대로만 삶을 이끌어 가려고 고집하면, 하나님의 능력과 계획과 설계가 내 삶으로 들어올 여력이 없게 됩니다. 교회에 다니고, 기도와 찬송과 예배를 드리긴 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내 계획만 내세우며, 이것에 응답하시기를 바라는 것은 복된 길도 아니고, 좋은 신앙의 길도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 되는 길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두가 간절히 바라는 복이란, 내 계획이 하나씩 이루어지고, 완성되고, 늘어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으로 내 삶이 채워지고, 이뤄지고, 완성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영역이 내 삶 속에서 조금씩이라도 확장되는 게 복이고, 반대로 하나님의 영역이 내 삶 속에서 조금씩이라도 좁아지고, 적어지는 게 저주입니다.

 

하지만 많은 교인들은, 삶의 영역을 하나님께 양보하거나, 하나님의 것으로 채우려는 것에는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 영역에서 아무런 영향을 못 끼치시도록 벽을 높이 쌓고, 작은 틈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내 영역을 오직 내 것으로만 가득 채워놓으면서도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그냥 복만 주시라 요구합니다. “내가 이렇게 예배하니, 이렇게 헌금하고 기도하니, 약속대로 하나님은 무조건 내 기도에 응답하시고, 복만 내려주십시오라고 합니다. 이런 모습만 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고,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우리의 삶을 이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내 욕심과 욕망의 그릇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요 도구로 보이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계신 게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합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게 신앙이고, 이것을 삶에서 실천하며 사는 것이 곧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은 세상과 복의 주인이십니다. 주인이시기에 하나님이 세상을 뜻하신 대로 이끄시고, 복도 하나님이 원하실 때, 원하시는 방법으로, 원하시는 사람에게 주십니다. 우리가 교회만 다니고, 예배와 기도만 드리면, 복을 당연히 받거나, 무조건 받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면 무조건 복이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내가, 사람이 복의 주인 노릇하려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는, 복과 응답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주님만이 원하시는 바대로 이끄신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오늘 읽은 본문 앞까지의 상황을 보면, 예수님에 대한 여러 가지 소문과 평가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 이적과, 떡 일곱 개와 두어 마리 물고기로 사천 명을 먹이시는 일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공개적으로 병자들을 고쳐 주시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행적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주위 모든 고을에까지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2, 45장 등에서, 예수님이 계시다는 곳에는 금세 사람들이 몰려 들어온 상황을 여러 차례 기록하고 있습니다. 654-56절에서는 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신 줄을 알고 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 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다는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자를 침상째로 메고 나아오니 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을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의 능력과 권위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렇게 갈급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매일의 삶에서 겪는 아픔과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과 별다를 것이 없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등장하는 사람은 어떤 생각과 계산으로 예수님께 나아왔을까요? 분명 병을 낫게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삶의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의 능력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26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앞을 못 보던 이 사람을 고치시고 나서, “너는 이곳 마을로 들어가지 말고, 너의 집으로 가라고 하신 것인데, 이것을 보면, 이 사람은 벳새다가 아닌 다른 마을에 사는 사람이었고, 예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 벳세다 마을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앞을 못 보는 사람에게 가장 힘든 것은 익숙하지 못 한 곳에 가는 것입니다. 익숙한 곳은, 계속 생활하면서 장애물이 어디에 있는지,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 때문에 괜찮지만, 모르는 곳에 가면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안 보이게 됩니다. 가야할 곳도 힘들고, 장애물을 피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익숙한 자기 동네가 아닌, 다른 마을까지 왔다는 것은, 예수님이 자기의 병을 고치시고, 기적을 행하심을 확신했음을 뜻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들까지 동원해서 벳세다 마을까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능력을 기대하며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어려운 걸음을 하면서, 맹인과 맹인을 데리고 온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왔겠습니까? 아마 자기들이 예수님 앞에 갔을 때, 예수님이 어떻게 치유하실까를 계산하며 왔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앞까지,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신 과정을 보면, 아주 쉽고 간단하게 이루진 것처럼 보입니다. 너무 쉽고 간단해서 뭔가 허전해 보일 만큼, 별다른 과정을 거친 것도 안 보이고, 요란한 절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주로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셨고, 또 말씀으로 병을 낫게 하셨습니다.

 

관심을 갖고, 소문을 들은 사람들마다, ‘예수님께 가면, 그냥 말씀 한 마디로 간단하게 병이 낫겠구나하는 생각을 가졌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도움을 받으러 오면서도, 자기 나름의 계획을 정해 놓고, 그대로 될 거라 기대하며 나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속 예수님의 모습은, 이들의 기대와는 무척 다릅니다. 예수님은 누구의 병이든 한 번의 말씀이나 행동으로 고치셨습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두 과정을 거쳐 병자를 고치신 것은, 오직 오늘 본문에서만 기록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를 알고 온 사람에게, 예수님은 왜 이렇게 낯설고 독특한 방법으로 고치십니까? 그것은 모든 권위와 능력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실 수 있음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이 맹인을 한 번에 고쳐 주셨으면, 이 사람은 예수님께만 가기만 하면 자동으로 낫게 되고, 그것도 다른 사람을 고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게 한 마디 말이면 되겠구나생각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이 사람의 확신이 될 것이고, 이것을 또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전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만 가면, 내가 원하는 대로, 내 계획대로, 내가 원하는 방법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곧 신앙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예수님을 마치, 필요한 조건만 채우면, 필요한 결과를 자동으로 내놓는 자동판매기처럼 여기는 잘못된 신앙입니다. 자동판매기에서는 정해진 돈만 넣으면 의무적으로, 그리고 자동으로 물건을 내놓아야 합니다. 자동판매기에게는 어떤 선택의 여지나 권리가 없습니다. 사람이 주인이고, 자동판매기는 사람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어리석은 믿음도 믿음이라고 인정해 주시고, 쩨쩨한 것마저도 용서해 주셔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시고, 드리는 기도에 응답해 주시기기도 하지만, 복도 하나님이 주인시고, 기도의 응답도 오직 하나님만이 주인이십니다. 이 모든 것은 철저하게 하나님만이 결정하십니다. 모든 일들을 원하시는 모양대로 이끄실 권리와 능력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뜻입니다.

 

이 시간 이 자리에 있는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모였습니까? 혹시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우리 삶의 모든 것도 뜻하신 바대로 이끄시는 우리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며 모였습니까? 우리 자신의 설계와 계획보다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설계와 계획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이며, 가장 복됨을 인정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있습니까? 내 계획과 판단과 계산을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의 것으로 채우고, 말씀하신 대로 행하며 살기로 다짐하는 마음으로 나아왔습니까?

 

이 자리에 있는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복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모든 것을, 내 삶과 내 소유마저도 원하시는 대로 하실 수 있는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을 철저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완벽한 하나님의 설계와 계획이 우리의 삶 전체를 이끄실 것이고,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으시는 주님의 능력이 우리를 영생과 복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에 따라, 짧은 지식과 계산으로 주님을 판단하거나, 우리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응답을 요구하지 말, 주님의 능력과 약속을 인정하고 의지하여, 더 좋은 선물, 응답받는 성도님들 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