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191222)우리가 갖추고 나아가야 할 것들(삼상 17장 31-40절)

청명하늘 2019. 12. 22. 14:45

우리가 갖추고 나아가야 할 것들

 

성경: 사무엘상 1731-40(437)

찬송: 215(내 죄 속해 주신 주께; 354), 524(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313)

설교: 20191222.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질문으로 설교를 시작할까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교회를 만들고 싶으십니까? 또 어떤 신앙생활을 하고 싶으십니까? 어쩌면 교회는 그냥 교회고, 그곳에서 예배하고 신앙생활하면 되는 것 아닌가? 믿음 가지고 살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그냥 가는 것이지, 신앙생활하는 데 무엇을 계획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 것이냐고 묻나?’ 하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입장이니, 여러분과는 좀 다른 모습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실 여러분도 짧은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아서 그렇지, 나름의 방법으로 앞날을 생각하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연말을 맞이해서, 목회자의 생활비를 정하고, 올해 결산과 내년 예산을 정하는 것도 이런 모습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저는 목사로서 여러분보다는 더 구체적으로, 더 큰 책임감으로 교회를 계획하고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에도 이것저것 고민하며, 무엇을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에 대해 묻고 답하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교회에 부임한 지도 이제 6년이 지났고, 바뀐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부임한 후 어느 정도까지는, 교회로 들어올 때마다 마치 80,90년대 시대로 돌아오는 것 같았습니다. 짧은 길이지만, 폐허가 된 집들만 대나무와 풀로 가득했습니다. 교회에서 회관을 바라보려 해도, 10m씩 자란 대나무 때문에 쉽지 않았습니다. 대나무가 얼마나 빼곡하고 또 높았는지, 그 사이에 있는 감나무를 보기 쉽지 않았습니다. 물론 감나무가 더 무성하니 보이긴 했습니다. 그런데 대나무들을 베어내고 보니, 그곳에 큰 감나무가 한 그루가 아니라 두 그루 있었다는 것을 보고 놀랄 정도입니다.

 

들어오는 길만 그런 게 아니었죠? 예배당과 사택 하나뿐이었습니다. 창고도 없었고, 특히 여러분이 쉴 만한 곳 하나 없었습니다. 예배당 옆은 흙으로 덮였을 뿐만 아니라, 교회 땅 옆과 뒤는 토사가 언제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하면서도 지저분하게 둘러 있었습니다.

 

교회 살림살이를 봐도, 냉장고조차 없었습니다. 당시 제가 가진 냉장고도, 10년정도 된 것을 중고로 사서 몇 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교회에 가져왔을 때 거의 20년 되었을 건데, 여기에서는 최고급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냉장고에 넣어야 하는 교회 반찬이나 음식을 사택까지 와서 넣어 보관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후에 와서 보는 사람들로서는 머릿속에 그려놓기도 쉽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사실 저도 당시 모습이 아주 까마득한 옛날처럼 여겨질 정도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사실 몇 년 안 되었죠? 겨우 4-5년 전 대곡교회 모습입니다.

 

이제는 지어진 지 몇 십 년 되어, 좁을 뿐만 아니라, 여름엔 따뜻하고, 겨울엔 시원한 야외 화장실을 지을 계획을 세울 만큼 되었습니다. 또 가장 큰 사업이자 기도 제목이라 할 수 있는, 쉽지 않고, 어쩌면 계획을 바꾸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사택까지 단열도 잘 되고 튼튼하게 잘 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큰 교회들에서 보면, “무슨 90년대 이야기들을 하고 있나?” 하는 말을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만큼 여기가 발전되지 못 했습니다.

 

혹시 이런 말씀을 드리면, ‘자기가 사람들을 이사 오게 하고, 길을 만들고, 모든 작업을 혼자 했나?’ 하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절대 그런 뜻이 아닙니다. 교인 얼마 안 되고, 재정이 적은 우리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일들이 많았다는 뜻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사택과 식당도 계획대로 작업을 바로 시작하고, 교회 차도 하나 구입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봄에 소풍 갈 때 하듯이, 몇 대로 나눠 가지 않아도 되죠? 다른 교회에 가서 아쉬운 말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교회 차에 함께 타서 대화도 나누고, 교제를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속한 시찰회 속에 24 교회가 속해 있는데, 교회 차량이 없는 곳은 우리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앞날을 열심히 구상하고 상상하다 보면, 언제나 마지막에 나오는 생각이 있죠? 뭘까요? 돈 생각입니다. ‘돈은 어디서 날 텐데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거리입니다. 사실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각자 고민하고 애쓰는 것은 돈과 관련된 게 가장 많은 게 사실입니다. 몇 년 사이에 우리가 바꾸고 만들고 수고한 것들을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겠지만, 그러나 크게 보면 결국 돈의 테두리에 들어갈 만한 것들입니다.

 

작고 어려운 교회이고, 그때마다 쓰기에도 언제나 부족함에도, 아끼고, 고민하고, 애써서 일을 하나씩이라도 해내온 까닭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좋아지길 바랐기 때문이고, 또 교회가 좋아지는 방법은 곧 원하는 것을 짓고, 만들고, 세우고, 사서 채우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고, 고치고, 만들며 가다 보면 좋은 교회가 되는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또 대부분의 목회자가 본인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저 자신도 잘못된 신학을 한 사람도 아니고, 제 욕심을 위해 설교나 교회를 이용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조건만 채워지면 새로운 교인들이 올 거라는 판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인들이 들어오고 교회가 커져서, 교회 자체가 운영될 만할 거라는 계산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크고 넓게 보면, 좀 편하고 쉬운 길을 뒤로하고, 급하고 필요했던 것들을 세우고 만들고 채워 갔던 까닭은, 교회를 성장시키고 싶은 욕심이 있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계산과 판단이, 어쩌면 우리에게 안 맞는 옷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다윗이 골리앗과의 싸움을 앞둔 때의 모습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당시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마치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처럼, 끊임없이 갈등과 전쟁이 계속되었습니다. 차라리 한 쪽의 힘이 훨씬 크면, 약한 쪽이 거기에 숙이고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힘이 비슷하면 싸움은 길어지고 반복되기 마련입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블레셋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들어온 이스라엘이 약하고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블레셋으로부터 자주 공격을 받고, 또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점차 이스라엘이 안정되고 강해지면서, 두 민족간의 전쟁은 끊임없이 반복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왕도 없는 민족, 보잘것없던 이스라엘이 사울을 첫 번째 왕으로 세운 후입니다. 예전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민족이었지만, 이제는 왕이 세워지면서 강해질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싹수가 커지기 전에 자르기 위해 블레셋 민족이 공격해 온 것입니다.

 

문제는 제일 앞에 서서 계속 싸움을 걸어오는 거인 골리앗입니다. 친선 경기 때도, 상대방의 신경을 자극하기 위해서, 모욕적인 말들을 많이 내뱉는데, 전쟁에서는 얼마나 심하겠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에서는 그 누구 하나 골리앗과 싸울 생각조차 못 하고, 40일간 모욕만 당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장으로 왔던 다윗이 이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골리앗을 죽였을 때, 왕이 약속한 보상에 관심을 갖고 싸우려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왕에게까지 부름을 받아 가서 만나는 내용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골리앗과 싸우겠다는 사람이 하나 없어서 다윗을 불러오긴 했지만, 막상 전장에서 보는 다윗을 보고 사울은 기가막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장에서 싸운다면, 무엇보다도 덩치와 힘이 중요한데, 다윗은 아직 너무 어렸습니다. 당시 20세정도부터의 남성이 전쟁에 불려갔습니다. 다윗은 여덟 형제들 중에서 가장 막내고, 또 위 세 형만이 군대로 징집된 것을 보면, 다윗의 나이는 13,4살정도이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 됩니다.

 

사람이 없어서 다윗을 부르긴 했지만, 사울 왕도 막상 다윗을 보니 도저히 안 될 것 같으니 말립니다. 싸울 수도 없고, 싸울 만한 경험과 능력도 없고, 그럴 만한 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다윗이 계속 고집하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무기와 갑옷까지 다윗에게 줍니다.

 

왕이 쓰는 칼이고, 왕이 입는 갑옷이라면 어떨 것 같습니까? 무슨 보검(寶劍)이라고 해서, 신비한 힘이 나올 것 같고, 갑옷은 어떤 칼과 창도 막아줄 것 같은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들에 불과합니다. 특히 당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칼을 차고, 멋진 갑옷을 입고 싸우는 시대가 아닙니다. 쇠로 만든 칼이 이스라엘 민족에 두 자루뿐일 만큼 발달이 덜 되었습니다. 갑옷이라고 해도, 영화나 TV에서 보는 것처럼, 화려하고 멋지고, 튼튼할 거라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 짐승 가죽이나 단단한 껍데기 같은 것을 조각하거나 잇대서 만든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튼튼할 수는 있고, 몸을 보호는 잘 해줄 수 있겠지만, 그만큼 무겁고 거추장스러울 것은 분명합니다.

 

다윗이 시험 삼아 몇 걸음 걷고, 칼을 휘둘러 보니 자신에게는 너무 안 맞습니다. 크고 좋은 무기일수록, 단단하고 무거운 갑옷일수록 다윗에게는 어울리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결국 다윗은 자신에게 맞는 옷으로 바꿔 입고, 익숙하고 손에 맞는 무릿매로 대신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좋은 사택을 짓고, 교회 차를 사고, 좋은 화장실을 짓고, 교인이 모여드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긴 하지만, 이것이 사실은 우리가 갖추고 입을 것들이 아니라, 남의 것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세요? 지금까지 교회가 해온 것들이 잘못된 것들이고, 그래서 앞으로는, 있는 그대로 놔두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필요한 것은 사고, 할 수 있으면 짓고 만들어 나아갈 것입니다. 기도하며 애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에 의해서 흔들리거나 시험에 들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고하고 애썼다고 해서, 교회가 어느 날 갑자기 수십 명 되는 교회로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끼고 노력했음에도 계획했던 사택이 안 지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이 교회에 속한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못 해서, 혹은 교회의 방향이 잘못돼서, 아니면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까닭 때문이 아닐 것입니다. 교회와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못 받아서, 교회가 여전히 작고, 교인 수 얼마 안 되는 교회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크고 화려하고 많은 교인으로 만들어 나아가는 것이 우리가 입고 허리에 찰 무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가지고 있던 갑옷과 무기는 왕의 것이니, 다른 장수나 일반 병사의 것보다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은 것이긴 하겠죠? 그럼에도 다윗이 입고 사용하기엔 너무 크고 무거웠습니다. 들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칼이라면, 그게 아무리 날카롭다 해도 어떻게 적과 싸울 수 있겠습니까? 튼튼해서 모든 무기를 막아줄 만큼 단단해도, 움직이는 것까지도 방해하는 것이라면, 그런 갑옷으로 어떻게 적을 향해 나아가겠습니까?

 

크고 좋은 건물, 필요한 것들을 많이 갖추고, 많은 교인들을 모아들여 함께 예배하는 게 보기 좋고, 우리 모두의 바람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사실은 우리에게 맞지 않는 남의 옷일 수 있습니다. 규모와 시설과 교인 수가 복을 받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다윗은 크고 화려하고 튼튼한 것들을 벗어던지고, 동네에서 입던 대로 입고, 고작 무릿매를 가지고 골리앗을 향해 나아갔음에도,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이기도록 만드셨습니다. 골리앗은 다윗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덩치가 크고, 힘이 셀 뿐만 아니라, 좋은 갑옷을 갖추고 있었고, 곁에서 방패를 든 자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다윗으로 하여금 골리앗이 이기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무기의 강함이나, 갑옷의 두께에 있지 않고, 그 속에 무엇을 품고 사느냐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이루고, 신앙생활하면서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교회의 크기와 교인 수에 있지 않습니다. 좋은 시설을 갖추는 것에 하나님의 관심이 있지 않습니다. 단 한 명뿐인 작은 교회라 할지라도, 진실로 그 속에 하나님의 것을 품고 사는 사람이라 한다면, 그것을 하나님은 보시고 인정하시고 이기도록 해주실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좀 가난하다고 해서, 우리가 뭔가 잘못해서 하나님이 벌을 내리시는 것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돈을 잘 벌고, 일이 뜻대로 잘된다고 해서, 그것 하나만으로, 하나님 앞에서 잘했기 때문이라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어쩌면 그것이 맞지 않는 옷을 오히려 입힘으로써 공격하기 위한 사탄의 작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황과 조건을 바라보지 말고, 주저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옳은 판단으로 꾸준히 앞을 향해 나아가면 됩니다. 우리에게 맞는 옷,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것만 기억하고, 힘써 이루려 노력하며 살면 됩니다. 그러면 가난이어도, 질병과 약함이어도,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여도, 결국 우리는 거기에 흔들리지 않고 구원과 복의 자리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판단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그 마음과 판단과 노력을 보시고 인정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을 통해 주시는 말씀을 기억하고, 가진 조건이나 상황 때문에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기준들을 잘 갖추고 이루도록 노력함으로써,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모든 아픔과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하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