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구해야 하는 것들
성경: 사무엘상 17장 12-30절(구 435쪽)
찬송: 315장(내 주 되신 주를; 통512), 365장(마음속에 근심; 통484)
설교: 20191215.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기독교의 대표적인 이단 사상 중 하나는 영지주의입니다. ‘영지주의’란 ‘선택받은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영적인 지식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여기에서는 세상을 선과 악 두 가지로 나눕니다. 그리고 영적인 세상은 선하다고 하고, 이와 반대인 이 땅과 땅에 속한 모든 것들은 악하다고 봅니다.
우리가 신앙고백하는 사도신경에서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에 대해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라고 고백하죠? 예수님이 탄생하시고 죽으시는 과정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예수님이 완전한 신이시자, 완전한 인간이심을 고백한다는 의미가 더 큽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당연히 신이시죠? 그러나 또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통해 태어나셨고,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몸을 가지셨습니다. 우리가 밥을 못 먹으면 배고프고 힘이 없는 것처럼, 예수님도 똑같이 배고픔을 느끼셨습니다. 잠을 못 자고, 쉬지 못 하면 피곤해 눈이 감기는 것처럼, 예수님도 피곤을 느끼셨습니다. 병들거나 다치면 고통을 느끼는 우리와 다를 바 없이, 예수님도 역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완전한 신이시자 완전한 인간’이라고 설명합니다.
영지주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은 온전한 선이셔야 하기 때문에, 악한 이 세상에 속하신 분이어서는 안 되고, 악한 육체를 가지고 계시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이 때문에 영지주의에서는,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시고,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과정도 ‘가현설’(假現說)로 설명합니다. ‘가짜로 나타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사셨지만, 진짜 몸을 가지신 게 아니고, 마치 유령처럼 겉만 인간의 모습을 가지고 사셨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이런 영지주의를 이단으로 규정했습니다. 이런 주장들이 잘못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가장 오래된 이단인 만큼 여전히 큰 유혹이 되곤 합니다. 지금도 신앙인들 중에는, 이런 영향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받아들이는 사람과, 기도해서 환상을 보는 사람 중에 누가 더 위대해 보입니까? 설교를 듣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대로 살기로 다짐하는 사람과,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신다고 하는 사람 중에 누가 더 믿음이 좋은 사람 같습니까? 이처럼, 기도와 금식 등을 통해서 자기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특별한 뜻을 깨닫는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사실은 영지주의적인 생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말씀을 모두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이제는 환상이나 기도의 응답이 기준이 아니라, 성경만이 기독교에서 인정하는 유일한 기준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잘못된 생각이 다른 곳에만 가득한 게 아니고, 저 자신에게도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동안 제가 전한 설교들을 돌아보면, 자칫 영지주의적 내용으로 이해될 수 있는 내용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잘못된 주장이라, 기독교에서 인정하지 않는 내용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정통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고, 영지주의의 주장들이 잘못되었다는 것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잘못된 내용임을 알면서도, 그것으로 설교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경계선을 분명하게 그을 수는 없지만, 설교들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과 구원만 강조하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영지주의의 모든 주장이 잘못된 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이 만드신 새로운 세계에는 죄와 악이 없다는 것도 맞고, 우리가 이 나라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모두 악하고, 여기에서 살아가는 과정은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나아가야 하지만, 동시에 이 땅의 삶도 외면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제 설교들에서는 이런 면을 외면한 것 같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먹고 살아가야 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과정 중 하나에 불과하다면서, 너무 이 땅에서 먹고 누리는 것에 연연하지 말자는 말씀을 많이 전했습니다. 아무리 잘 먹고, 잘 누리고 살아봤자, 이 땅에서는 영원하고도 참된 복과 평안을 누릴 수 없으니, 주시면 감사하고, 갖지 못 하고, 누리지 못 한 것 때문에 실망하지 말고, 다음 생에 있을 영생으로 소망으로 삼고 이기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이게 완전히 틀린 말씀은 분명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자세 속에는,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나라만이 좋은 것이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모든 것을 나쁘거나 혹은 덜 좋은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없었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들의 입장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씀드리기도 어려운 애매한 자세들이 제가 전한 설교 속에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이 오늘 본문으로 설교를 준비하면서 그대도 드러났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만 생각했다고 해석하려 했습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나가 있는 세 형들의 안부를 확인하러 나갔습니다. 이때 싸우는 적은 블레셋 민족이고, 이들을 대표해서 골리앗이 맨 앞자리에 나와 있었습니다. 골리앗의 몸집과 가진 무기가 너무 크고 강해 보이고, 또 입은 갑옷이 워낙 튼튼해 보여서, 도저히 싸워 이길 수 없어 보였습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의 왕과 모든 군인들이 겁을 먹고 숨고 말았습니다. 그 시간만 해도 무려 40일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의 안부를 확인하러 왔던 다윗이 이 모습을 보게 됩니다. 거인 골리앗은 앞에 나와서 온갖 험한 말로 이스라엘 민족을 모욕하며 싸우자고 하는데도, 이스라엘 쪽에서는 그 누구 하나 나서지 못 했습니다. 골리앗이 앞으로 나올수록 이스라엘은 뒤로 밀리는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귀에 사울 왕이 약속한 내용들이 들려옵니다. 누구든지 골리앗을 죽인 사람에게 왕이 많은 재물을 주고, 공주를 주어 자기의 사위로 삼고, 뿐만 아니라, 집안에 부과될 세금까지 면제해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이처럼 빨리 성공하고 부유해지는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한편으로 바꿔 생각해 보면, 그만큼 거인 골리앗과 싸워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이 이야기를 듣고 다시 다른 사람에게 이를 확인합니다. 한 번 들은 이야기로는 확신이 안 되어, 또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모습을 본 다윗의 가장 큰 형이 분노했습니다. 자기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군인도 아니고, 싸울 능력도 없는 다윗이 호기심으로 이것저것 묻고 다닌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다윗과 그의 형 중에 누가 더 잘 한 것 같습니까? 전쟁터에 나가 강한 적을 보고, 적장을 이겼을 때 주어질 상과 혜택을 묻고 다니는 다윗이 잘한 것 같습니까? 아니면, 골리앗의 거대한 몸집과 강함을 보고, 감히 나아가 싸울 용기조차 없어서 숨어 있는 다윗의 형 엘리압이 잘 한 것 같습니까? 하나님은 다윗과 형 엘리압 중에 누구를 칭찬하시고 좋아하시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은 다윗을 칭찬하시고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판단과 행동을 인정하셨기에, 전쟁의 경험이 없는 다윗으로 하여금 골리앗을 이기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은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이 본문으로 설교를 준비하면서, 다윗은 다른 그 무엇도 구하지 않고, 철저히 순수하게 하나님의 영광만 구했기에, 하나님이 다윗으로 하여금 이기도록 한 것이라 해석하려 했습니다. 다윗이 사람들에게 두 번이나 확인한 것을, 하나님의 군대인 이스라엘을 모욕한 것을 갚으려는 굳건한 마음 때문으로 봤습니다.
이 본문을 통해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다윗의 모든 행동과 결정은 인간적인 바람이나 보담을 바라지 않는 완전 순결한 것으로 정해 놓고 성경을 보고 해석하려 했습니다. 더 나아가, 이 땅에서 살면서, 이 땅의 것을 구하는 모든 것들이 수준이 좀 떨어지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물질을 구하는 것, 이 땅에서 잘되고 성공하고 인정받고 보답을 바라는 것들이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것이라 생각한 것 아닌가 하고 고민했습니다. 이것은 영과 하나님의 것은 선하지만, 우리가 가진 육체와 이 땅의 삶 자체가 악하다고 생각하는 영지주의적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 한 까닭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오늘 본문에서, 골리앗을 무찌르면 주어질 보상에 대해 다시 확인하는 모습을 보면, 다윗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이름만을 위해 싸우려 한 게 아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다윗의 믿음과 삶을 보면, 사울 왕으로부터 마땅한 상과 보답이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골리앗과 맞서 싸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보면, 이 땅에서 주어지는 보상과 성공을 바라는 다윗을 하나님께서는 수준이 떨어지거나, 잘못되었다고 외면하신 게 아니라, 오히려 인정하시고 이기도록 힘과 지혜를 주셨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의 생각처럼, 이 땅에서 우리가 갖고 바라는 것들을, 하나님은 하찮고 나쁜 것으로 여기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겪고, 고민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하나님은 무관심하시거나 외면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잘되고, 사람들의 인정과 존경을 받고,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 또 이를 바라며 위해 노력하는 것을 하나님은 ‘쓸 데 없는 짓’이라 여기시지 않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의 싸움을 앞두고, 왕이 줄 보상에 대해 확인한 것처럼,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 갖고, 누리고, 이룰 것들에 마음을 두고, 기도하는 것도 하나님은 인정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를 알면, 수준이 낮은 것, 별것 아니라고 여기던 모든 사소한 것마저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물질이 없으면, 겪어야 될 어려움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물질이 없는 것보다는, 풍성한 게 일상이나 신앙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건강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이 아프고, 병든 것보다는, 건강한 게 모든 면에서 좋습니다. 자녀와 가족을 위해서도 평안과 문제 해결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집안이 잘되고, 가족과 자녀의 삶이 평탄하고,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에 더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위해 노력하고 기도하는 게 결코 수준이 낮거나, 사소하거나, 필요하지 않는 것들이 아닙니다. 구원과 영생도 귀합니다만, 그러나 이 땅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도 역시 귀한 것들입니다. 기도하고 구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돈과 건강과 성공과 업적 등을 위해 기도할 때, 또 이를 얻으려 노력할 때도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마태복음 6장 9-11절에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고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것이 먼저이지, 내가 갖고 누리고 이룰 것들이 먼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잘되고, 내가 잘 벌고, 내가 잘 먹고, 내가 잘 누리다가는, 자칫 하나님을 잊고 나 자신만을 위해 살다가 끝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이 땅의 삶만을 위해 수고하고, 누리고 살다가 끝나고 말면, 그것이 하나님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이 정도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 모르는 사람들의 모습과 다를 바 전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정도로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고 이루어 주실 까닭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다윗은 그 동안 싸움의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전장에 나가기에는 작고 어린 소년에 불과했습니다.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이길 만한 조건 하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이 성공과 보상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과 능력을 드러내기 위해 나아가 싸우자 하나님께서는 이기도록 해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이 골리앗 앞에 선 것과 같을 수 있습니다. 싸울 용기조차 낼 수 없을 만큼, 크게 망가지고, 죽음과 같은 고통과 두려운 시간이 계속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골리앗 앞이지만, 이스라엘 백성으로 서는지, 다윗으로 서는지에 따라 그 결과는 전혀 달라졌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처럼, 먼저 겁먹고 포기하고 있으면, 고통만 길어질 뿐이고, 패망의 시간만 가까워질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것을 먼저 생각하며, 다윗으로 골리앗 앞에 서면 그 결과는 정반대가 됩니다.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낼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다윗과 같은 사람을 찾으십니다. 우리가 다윗과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 하나님의 것을 구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에게는 부와 성공마저도 하나님은 인정해 주십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많습니다. 이 문제와 어려움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먼저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다윗처럼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면, 반드시 이길 힘과 지혜를 주십니다. 구하는 것까지 풍성히 베풀어 주십니다. 다윗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모든 것을 구함으로써,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모든 것을 이기고, 구하는 것을 풍성히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을 전하고, 이 땅에서도 복과 은혜를 풍성히 누리며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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