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191124)하나님의 자리를 인정하며 사십시오(삼상 16장 1-13절)

청명하늘 2019. 11. 24. 13:54

하나님의 자리를 인정하며 사십시오

 

성경: 사무엘상 161-13(433)

찬송: 182(강물같이 흐르는; 169), 312(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341)

설교: 20191124.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10여 년 전에 긍정의 힘이 우리나라에 큰 유행을 만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몇 번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미국의 조엘 오스틴이라는 목사가 긍정의 힘이라는 책을 발간해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또 목사가 낸 책인데도, 기독교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까지 광풍에 가까운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가장 큰 주제는 믿는 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믿는 대로 되니, 꿈은 크게 꾸라고 하고, 바라고 원하는 것들을 선포하면서 살라고 합니다. 매사에 긍정적인 생각을 품고 믿으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이 얼마나 인기를 끌었는지, 이게 신학과 성경의 관점에서 옳은지, 틀린지에 대한 최소한의 검토조차 안 된 채 무작정 받아들였습니다. 일부 교회에서는 이를 신앙 지침서로 삼아 교인들을 교육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전에 있었던 한 교회 담임목사님이 부교역자와 직원들까지 데리고 영화관에 갔습니다. 가서 본 영화가 [예스 맨]이었습니다. 주제가 분명한 영화였습니다. 긍정의 힘을 영화로 만든 것으로 볼 수 있을 만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무조건 된다고 생각하면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영화를 보는 중에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신학대 교수를 역임했던 담임목사님이 왜 그런 영화를 보여주었는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 전에도 간혹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다면, 어떻게 그런 영화를 보게 되었다고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전까지도 그렇고, 이후도 그렇고 교회 직원끼리 영화를 보러 간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또 그날 영화 보러 가는 것으로 그날의 일과를 대신한다고 했으니, 분명한 계획과 의도를 가지고 보여준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내용 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라면서 두 가지 예를 듭니다. 하나는, 식당에 자리가 없는데, 시간이 별로 없어서 최대한 빨리 식사를 하고 가야 한다고 하면 주인이 최대한 빨리 제게 자리를 내줄 줄 믿습니다고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또 주차장에 자리가 없을 때도 아버지, 아버지의 은혜로 좋은 공간을 찾게 될 줄을 믿습니다.”고 선포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본인이 가족들과 함께 차를 타고 공원에 가서 겪은 일로 간증했습니다. 사람과 차로 주차장이 가득 차서 자리를 찾지 못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할 기회라 여기고, 자녀들에게 지금 주차할 곳이 없지만, 곧 주차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앞에서 빠져나가는 차가 있어서, 그 자리에 주차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 같습니까? 운전하시는 분들은, 도심에 차를 가지고 갔다가 주차할 곳을 찾지 못 해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죠? 그래서 자리가 없던 곳에서 주차할 공간을 찾는 것은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과연 믿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믿음이 과연 이런 수준과 내용이겠습니까? 또 그렇게 믿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식당과 주차장의 자리를 비워 주시겠습니까?

 

물론 우리가 기도하지 않을 만큼 사소한 일은 없습니다. 기도가 필요하지 않을 만한 일은 없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모든 일에 기도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기도의 방향이 좀 잘못된 것 같지 않습니까?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언제나, 내 계획과 뜻대로 되는 게 은혜고 복이라 생각합니다. 자기가 계획하고 바라는 대로 되는 게 잘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믿음과는 방향이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면, 잘되고, 원하는 대로 될 테니, 언제나 좋은 생각과 큰 꿈을 구체적으로 세우고 선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고, 계획하고, 세워 나아가려 노력하며 살면, 도대체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언제 개입하십니까? 우리 삶과 생각 속에 하나님의 자리는 어디고, 언제 생길 수 있습니까? 애초에 내가 계획하고, 내가 바라고, 그대로 되는 것이 복이고 은혜라면, 하나님은 언제 어떻게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고 이끄시겠습니까?

 

내가 계획하고, 내 뜻을 향해 나아가고, 하나님은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시는 분에 불과하다면, 하나님과 우리 중에 누가 주인이고, 누가 수단과 도구에 불과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주님주인님으로 부르기만 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삶을 사는 것입니까?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사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느냐가 기준이 아니라, 누가 이끌고, 누가 따르느냐에 따라, 주인과 종의 관계가 나뉩니다.

 

그런데 입으로는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자신은 종에 불과하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내가 내 삶을 계획하고, 내 뜻대로 하려 하고, 하나님은 오직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대로 이루어 주시는 분으로만 여긴다면,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된 것이고, 하나님은 오직 내 꿈과 성공을 위한 도구에 머무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주인과 종의 관계가 바뀐 것 아닙니까?

 

하지만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이 되려면,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한 믿음이어야 하는데, 내가 주인이 되고, 하나님은 그저 내 성공과 필요를 위해서 계시는 분으로 여긴다면, 그 믿음은 하나님이 절대로 인정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한 믿음이 되려면, 철저히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주인공 자리에 나는 없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작은 도구와 수단이 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주인 자리를 탐내지 않고, 주인의 뜻대로 사용되는 도구만으로 만족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바른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에 대한 말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에 왕이 된 후, 두 가지 일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하나는, 제사장만이 인도할 수 있는 제사를, 급한 마음에 사울이 직접 나서서 드린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아말렉과의 전쟁을 자기 욕심을 위한 전쟁으로 바꾼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과의 전쟁을 앞두고, 그 민족에 속한 모든 것을 없애라고 하셨습니다. 인정사정 두지 말고, 사람이나 짐승이나 남기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전쟁에서 이겼지만, 아말렉의 왕도 살려두고, 기름지고 살진 가축들을 남겨 두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해 남겨 두었다고 핑계 댔지만, 사실은 자기 욕심을 채우고자 했습니다. 사울은 육의 전쟁에서 이겼지만, 영의 전쟁에서는 패하고 말았습니다.

 

이 일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다음 왕을 미리 정해 놓으시고, 사무엘 선지자를 베들레헴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제사 드린다는 명목으로 그곳에 간 사무엘은 이새라는 사람과 그 아들들을 제사에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큰아들부터 한 사람씩 앞으로 나아오게 했습니다.

 

첫째 아들 엘리압을 보고, 사무엘 선지자는 한눈에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 될 인물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7절의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는 말씀을 보면, 엘리압의 외모는 크고 멋진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 사무엘은 엘리압의 다른 무엇이 아니라, 크고 멋진 외모를 보고 판단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둘째와 셋째 아들이 나오고, 일곱째 아들까지 나왔지만, 하나님이 왕으로 삼으시려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 때문에 사무엘 선지자가 이새에게 이 자리에 있는 일곱 아들이 전부냐? 다른 아들은 없냐?”고 묻습니다.

 

이새는 자신의 막내아들이 있는데, 양을 지키고 있다고 답합니다. 사무엘은 그 아들이 오기 전까지는 식사하지 않겠다며 재촉해서 데려오게 합니다. 급하게 온 다윗의 모습을 보니, 외모가 괜찮았지만, 아직 얼굴이 붉은 빛이 돌 만큼 소년에 불과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기름을 부어 다음 왕으로 세워질 인물로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무엘 선지자의 모습이 어떤 것 같습니까? 사무엘을 그저 제사장정도로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만, 사무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대한 인물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알려주는 선지자와 제사장의 역할도 했습니다. 또 사사로서 재판관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왕이 없던 시절 이스라엘 민족의 최고 지도자로 활동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미 왕이 세워진 후인지라, 정치권에서는 뒤로 물러났지만, 그럼에도 백성들이 사무엘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4절에서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이르되라고 기록해 놓았습니다. 성읍 장로들이라 하면, 요즘으로 보면 지역 유지나, 군수, 면장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사무엘을 맞이하는데, 벌벌 떨며 맞이할 만큼 사무엘은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 앞에서는 높고, 권위가 대단한 사무엘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것 같습니까? 이새의 첫째 아들 엘리압을 보는 순간, 왕이 될 인물, 하나님의 선택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순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곧바로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곧 바로 자기 계획을 내려놓고 포기합니다.

 

사무엘처럼 정치와 신앙 면에서 뛰어난 인물이 거의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사무엘이 평생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겠습니까? 사무엘처럼 넓은 안목을 가지고 계획을 세울 만한 사람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사무엘은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것보다 내세우지 않습니다. 자신의 판단과 계획을 먼저 세우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인도하심보다 자기 뜻을 드러내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계획과 포부와 뜻을 먼저 선포하고, 하나님이 그것을 인정해 주는 것이 복이고, 은혜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를 보면, 사무엘이 왜 하나님의 일꾼이 되고, 하나님이 크게 쓰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모세처럼 큰 이적을 행한 적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군인들을 데리고 나가 싸우는 장수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해 이스라엘을 이끌게 하시고, 일꾼들을 세우게 하시고,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사무엘상하서를 기록하게 하신 것은, 그만큼 사무엘이 언제나 삶과 생각 속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마련해 놓고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7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는 말씀을 보면, 사무엘의 이 중심을 하나님께서 보고 인정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판단하면, 사무엘은 자기의 판단과 계획을 그 누구보다도 더 뚜렷하게 세우고 밀고 나아갈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만큼 매일 매순간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를 받는 사람도 없습니다. 젖을 떼자마자 하나님의 집에서 살았고, 어린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가는 곳마다 다른 사람들은 사무엘을 두려워 감히 가까이하기 어려워할 지경이었습니다. 사무엘상 319, 20절에서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고 말씀하실 만큼, 하나님께서 사무엘과 함께하셨고, 사무엘의 말에도 권위와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무엘은 함부로 복과 은혜를 선포하지 않습니다. 자기 판단과 계획을 하나님의 말씀과 계획보다 앞세우지 않습니다. 자기의 권위가 커지고,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모든 사람이 알고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는 마치 줏대 없는 사람처럼 살아갔습니다.

 

우리가 보고 배우고 따라 살아가야 할 모습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계획하고, 내 뜻과 판단에 따라 살지 않고, 우리 삶의 중심에 하나님의 자리를 두고, 하나님의 뜻하시고 말씀하시는 대로 행하며 따라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유일한 길임을 인정하며, 하나님 앞에서 마치 바보처럼, 능력 없는 자처럼, 생각과 계산이 없는 자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면, 사무엘의 중심을 보시고, 사무엘을 들어 쓰셔서, 크고 놀라운 은혜의 삶을 살게 하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도 붙잡으시고 들어 쓰실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자기 꿈을 크게 꾸고, 선포하며 주인 행세 잘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판단하고 행동하려 하지 않고, 사무엘처럼 언제 어디에서나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 뒤에서 따라 행하는 사람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자리를 마음에 품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고, 우리를 통해 일하심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복됩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넘치는 복과 은혜로 함께하십니다. 이것을 인정하며 사는 게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를 복과 평강과 구원으로 인도합니다. 이것을 인정하며 사는 게 참된 신앙생활입니다.

 

사무엘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바르게 기억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하나님을 이끌려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주인 삼고, 하나님의 손에 이끌림 바 되어, 살아가는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만이 베푸시는 은혜와 복으로 가득 채우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