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191117)하나님 때문에 사는 사람(합 3장 16-19절)

청명하늘 2019. 11. 17. 14:32

하나님 때문에 사는 사람

 

성경: 하박국 316-19(1305)

찬송: 429(세상 모든 풍파; 489), 588(공중 나는 새를; 307)

설교: 20191117. 주일낮예배(추수감사절)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최근 우리나라에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발생해서 이를 막기 위한 노력이 한창입니다. 이 병은 지난 917일에 파주에서 처음 발생했다고 합니다. 돼지가 이 병에 걸리면, 열이 났다가 이틀 안에 죽을 만큼 치명적입니다. 이 질병에 대해서는 면역방법도 없고, 치료법도 없어서, 무엇보다도 걸리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돼지열병이 이처럼 무섭고, 또 마땅한 치료법도 예방법도 없으니, 전염되는 경로를 철저하게 차단하는 게 중요합니다. 축사에서 이 질병에 걸린 돼지 한 마리라도 발견되면, 그 돼지는 물론이고, 그 축사에 있는 다른 돼지까지 모두 폐사시켜야 합니다. 또 그 축사만이 아니라, 그 지역 근처에 있는 축사까지 검사를 계속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올해는 돼지열병이 처음 발생한 거라 하지만, 이와 비슷한 경우들은 반복되었죠? 구제역 때문에 몇 년 전까지 살처분된 소 돼지, 양 등 가축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또 조류독감으로 살처분한 닭, 오리 등도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이렇게 가축이나 조류에 전염병이 발생해 번지면 엄청난 돈이 들어갑니다. 이전 정부에 비해서, 이번 정부가 빨리 대처하고, 수습했다고 하는데, 지난 구제역 때 500억 원이 넘는 돈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전 정부에서는 이보다 5,6배 넘는 돈이 들어갔습니다.

 

가축 등에 전염병이 돌면 왜 이렇게 많은 돈이 들어갈까요? 사람이 전염병에 걸리면 엄청난 금액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병에 걸리면, 가축이나 조류에서와 같은 방법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기르는 가축이나 조류 등이 전염병에 걸렸을 때, 차라리 없애는 게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면 이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는, 아무리 많은 돈이 들어가더라도 고치고 회복시킵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전염병이 퍼지면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 게 당연합니다. 병에 걸린 후에 치료하는 것보다는, 예방하는 게 훨씬 돈이 덜 들기 때문에, 예방에도 많은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구제역, 돼지열병, 조류독감과 같은 전염병이 돌아도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 까닭은, 전염병 때문에 살처분한 것에 대해 정부에서 보상해 주기 때문입니다. 돼지를 키우다, 몇 마리라도 구제역에 걸리면, 병에 거린 것만 살처분하는 게 아니죠? 다른 지역이나 농장까지 번지지 않도록 축사 안의 모든 돼지를 처분합니다. 보통은 자기 축사에서 전염병이 생겼으니, 살처분만 시키고 끝나고 말 것 같은데, 정부에서는 그에 대한 보상을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전염병 때문에 가축이나 조류 등을 살처분한 주인들은 하나같이 실망의 수준을 넘어 절망합니다. 물론 보상으로 받은 금액이 적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가축을 다시 키워서 본래 수준으로 회복하기까지는 너무나 많은 시간과 비용과 수고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나마 고기용 닭이나 오리는, 축사에서 키우는 시간이 길지 않습니다. 하지만 알을 생산하기 위해 키우는 닭이나 오리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돼지와 소의 경우는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전염병 때문에 처분한 것에 대해서는 정부로부터 지원과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다시 이를 길러서 팔 수 있게 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고, 그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오는 좌절감 때문에 힘들어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사람이 미래의 소망에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지금 당장만 본다면, 지원과 보상금 때문에 좌절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괜찮지만, 몇 달, 몇 년의 시간까지 잘될 것이 없다는 것, 즉 앞날에 소망이 안 보이는 것 때문에 실망하고 좌절하는 것입니다.

 

또한 소망이라는 게 변한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예전 어른들이 자주 했던 말씀이 있습니다.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그만이다.’ 이에 대한 해석이 여러 가지입니다만, 만족과 감사의 조건이 이 정도였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것 크게 내세우지 않고, 거창하고 불가능한 것을 헛되이 바라며 사는 게 아니라, 그저 굶주리지 않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내일은 무엇을 먹을 것인가, 내일도 따뜻할 수 있을지에 대한 보장이 전혀 안 되어 있음에도 만족했습니다. 앞날의 조건이나 상황이 아니라, 지금 당장이 감사와 만족의 조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그만이다.’는 말을 하면, 자칫 험한 말이 얻어들을 수도 있습니다. “짐승도 아닌데, 배부르고 등 따뜻한 것만으로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겠냐?”는 말들이 나올 것입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소망과 만족은 변하는데, 그것도 언제나 큰 쪽으로, 또 앞날을 향해 변합니다. 예전 같았으면, 충분히 만족하고 감사할 만한 것들이었더라도, 이제는 그 정도로 만족하는 이는 없습니다. 이제는 예전의 감사의 조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거대하고 멋지고 화려해야만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감사와 만족의 가장 큰 조건이 뭔가요? 보통은 돈이죠? 사실 배부르고 등 따뜻하다는 것도, 지금 당장 먹고 쓸 수 있는 돈이 있다는 것입니다. 앞날에 만족한다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주어질 돈이 있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가장 기대하는 것은 돈의 넉넉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엔 그나마 돈의 넉넉함의 기준이 지금 당장이었던 반면에, 이제는 몇 달, 몇 년 후로 커졌고 넓어졌다는 점에서 다를 뿐입니다.

 

돈이 이처럼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큰 조건이 되지만, 돈이 우리에게 참된 소망이 될까요? 돈은 우리에게 변치 않는 앞날을 보장해 주고, 만족과 감사의 그릇들을 채워줄 만큼 크고 넓습니까? 삶 전체를 맡기고 의지해도 실패하거나 실망하지 않을 만큼 돈의 가치와 힘은 크고 확실합니까?

 

아는 분이 결혼을 전제로 사귀던 여성과 헤어졌습니다. 그 까닭을 물으니, 여자분이 돈에 대한 소망이 너무 큰데, 자신은 그것을 만족시켜줄 만한 자신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돈 욕심이야 본능에 가까운 것입니다만, 어느 정도인지를 물었더니, 여성이 말한 두 가지를 전해 주었습니다. 하나는, “월 수입이 1,000만원 이상된 부부의 이혼율은 0%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하는 90%의 걱정거리는 돈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말은 자주 나오는 말이죠? 사실 월 수입이 1,000만원 넘는 부부의 이혼율이 0%라는 것은 말도 안 되죠? 설문조사에 응답한 사람들 중에 1,000만원 넘는 사람이 몇 가정이 안 돼서 그런 결과가 나왔죠? 세계에서 몇 번째에 드는 부자들도 이혼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또 걱정의 90%가 돈과 관련되었다는 것도, 부자들에게 물으면 아마 그 같은 답을 안 할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그렇게 돈에 큰 미련을 가진 분이 그나마 꽤 부유한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그분이 말한 대로라면, 행복과 평안이 보장된 삶이어야 하죠? 그런데 얼마 전에 들어보니, 결혼하고 채 2년도 안 되어서 이혼했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막을 알 바 없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것만큼, 돈이 삶을 행복하고 즐겁게 이끌지 못 하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우리 삶 전체를 맡길 수 있고, 그러면서도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소망이 그만한 가치가 있어야 하고, 그러면서도 변질되지 않아야 합니다. 만일 투자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에 소망을 품고 살면,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삶은 점차 시시해지고 하찮아질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믿고 바라는 소망이 변질되는 것이면, 우리가 이후에 거두게 될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애쓰고 수고해도, 빈털터리로 삶을 마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바국 선지자의 기도문으로서, 감사와 소망의 조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 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올리브나무에서 딸 것이 없고, 밭에는 거두어들일 만한 것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우리와 외양간에는 가축 한 마리 남아 있지 않습니다.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는 사람이라면,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논밭에 거둘 만한 것이 없으니, 지금 당장 먹고 배부를 만한 것이 없습니다. 이것만으로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런데 더 힘든 것은, 참고 인내할 만한 것마저도 눈에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나무에서 나는 것들은 풀에서 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논밭에 심은 밀이나 나락이나 보리는 몇 개월이면 나고 자라고 열매가 익어서 거둘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무는 이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리죠? 올해 거둘 것이 없으면, 며칠은 물론이거니와 몇 달은 당연히 거둘 것이 없습니다. 1년 지나고서 거둘 수 있습니다. 그것도 나무가 다시 살아나고, 건강해지고, 큰 바람이나 가뭄이나 홍수 같은 재앙이 없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가축은 더 심각합니다. 양과 소를 잃어 회복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까요? 키워 잡아먹기 위한 목적이라면, 1년 안에 가능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해서는 양과 소를 늘일 수 없습니다. 가축을 길러 충분할 만큼 수를 늘이려면, 최소 10년 이상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와 외양간에 양과 소가 없다는 것은, 10년 이상 어렵고 힘든 시간을 겪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박국 선지자는 그럼에도 즐거워하고, 기뻐한다고 합니다. 지금 당장은 물론이거니와 앞으로 몇 년, 어쩌면 평생 어려움이 계속된다고 할지라도,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는 까닭은 딱 하나입니다.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평생 애써서 거두고 이룰 수 있는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소망이 되십니다. 곡식과 과실과 가축이 줄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십니다. 논밭에서, 외양간에서 거둘 수 있는 것들은 우리의 배를 불릴 수 있습니다. 등을 따뜻하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을 통해 구원과 소망은 얻을 수는 없습니다. 이들이 우리에게 보장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잠깐의 배부름과 편안함에 불과합니다.

 

이번 주일은 추수감사절로 지킵니다. ‘추수감사절이라 하면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그냥 추수한 것들에 감사하는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이것도 전혀 틀린 답이라 보긴 어렵지만,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감사와 기쁨의 조건에 대한 관점을 달리하자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두고 얻은 것들에 따라 감사하고 즐거워한다는 것은, 거두지 못 하고, 얻지 못 한 것들에 대해 불평하고 원망한다는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정도 수준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합니다.

 

욕심이 가득한 사람은, 거두고 이룬 것들이 있다 하더라도, 더 갖지 못 하고, 더 거두지 못 한 것들 때문에 불평할 것입니다. 이보다는 좀 더 나은 사람들은, 거두고 이룬 것들로 감사하지만, 그렇지 못 한 것들에 대해서는 불평할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한 해의 수확을 마무리해 가는 시점에 이르러, 날을 정하고, 감사절로 삼는 까닭은, 세상 사람들의 수준을 넘어서자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고, 손으로 거두고, 주머니 속에 가진 것들에 따라, 감사와 원망을 가르지 말고, 기쁨과 불평을 바꾸지 말고,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구원의 길로 가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며 살자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반드시 끊어질 때가 있습니다. 돈도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습니다. 매력을 넘어 마력에 가까울 때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돈줄을 잡기 위해 평생 애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돈을 얻기 위해 목숨 거는 사람도 많고, 돈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거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래봤자 언젠가는 끊기고 잘릴 줄에 불과합니다. 몇 년 우리 삶을 좌우한 것 같아도, 점차 썩고, 잘릴 줄에 불과합니다.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몸은 약해지지 않습니까? 아프고 불편해지는 것들이 많아집니다. 건강의 줄도 평안과 안식과 생명으로 이끌지 못 합니다. 건강을 위해 목숨 바치고 노력해봤자, 다른 사람에 비해 조금 덜 할 뿐, 나빠지고, 끊기는 것에서는 크게 차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은 참된 생명줄입니다. 끊기지 않고, 썩지 않는 생명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하나님 때문에 감사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면,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은 우리가 얻고 거둔 것에 따라 감사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하나님으로부터 감사와 기쁨의 원인을 찾고 살자는 데 참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기뻐할 수 있고, 하나님 때문에 감사할 수 있으면, 주머니가 비어 있어도, 통장에 남은 것이 없어도, 수고하고 애쓴 것들이 헛수고로 끝나도 실패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절망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의 삶을 지키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올해 계획보다 더 거둔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노력에 비해 적게 거둔 것 같아도, 그것으로 실망하지 마시고, 참 소망과 구원이신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때문에 즐거워하고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된 소망이신 하나님께 마음과 시선을 고정하고 살아가면, 지금의 성공과 실패와 상관없이, 가진 것과는 별개로,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해,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하는 마음과 자세를 배워서,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하고, 영원한 소망으로 삼고 살아감으로써, 매일 매순간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은혜로 채워 나아가는 복된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