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191103)사명을 기억하며 사십시오(삼상 15장 1-16절)

청명하늘 2019. 11. 3. 18:29

사명을 기억하며 사십시오

 

성경: 사무엘상 151-16(431)

찬송: 288(예수를 나의 구주; 204), 325(예수가 함께 계시니; 359)

설교: 20191103.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KBS 방송국에서 20년 가까이 방영되었다가 종영된 체험 삶의 현장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이 방송이 진행되는 형식은 언제나 비슷합니다. 연예인이나, 이름이 있는 사람들을 노동현장에 데려가 일을 시키고, 그 사람들이 받은 일당을 모아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1년 모으면, 2,000만 원 정도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150주로 1주에 약 40만 원정도 돈이 모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연예인들이 한 프로그램에 나온 대가로 받는 출연료가 어느 정도인지 아십니까? 연예인들에게는 등급이 있고, 등급에 따라 출연료가 많이 달라집니다. 많이 받는 사람들은, 몇 백만 원, 몇 천만 원 할 것입니다. 얼마 전에도, 한 사람의 출연료가 너무 많이 책정된 것 때문에 말이 많았습니다만, 한 주에 4회 나오는데, 한 번 출연료가 300만 원이 넘었습니다. 한 달로 계산하면, 5000만 원이 넘었다고 합니다. 모르긴 해도 더 높은 등급과 더 많은 출연료를 받는 연예인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보통 대학교에서 축제하면서 유명 연예인이나 가수들을 불러 공연을 하는데, 몇 천만 원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체험 삶의 현장에서는 한 회당 두세 명의 유명인들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출연료만 해도 적지 않고, 또 촬영하려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움직여야 합니다. 감독, 카메라를 들고 찍는 사람 여러 명, 장비를 준비하고 설치하는 사람들, 진행을 돕는 사람들까지 몇 십 명이 움직입니다. 바꿔 생각해 보면, 돈을 모으기 가장 좋은 방법은, 프로그램을 쉬고, 거기에 들어갈 비용을 모으는 것입니다. 방송 한두 주만 쉬어도, 이들이 1년 동안 모을 수 있는 돈보다 더 많이 모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방송국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또 그렇게 하라고 바라지도 않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무엇보다도 공영 방송국의 가장 큰 사명과 목적은 좋은 방송을 내보내고, 방송을 통해 국민들에게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방송이 줄 수 있는 유익에는 코미디나 노래나 춤 같은 오락이나 볼 거리를 주는 것이 될 수 있고, 뉴스처럼 사실과 정보를 알려주는 것일 수 있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찾아가고, 방송을 이용해 이런 분들을 돕고, 또 돈을 모아 도와주는 것도 방송국이 줄 수 있는 유익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사람을 찾고, 돈을 모아 돕는 것이 공영 방송국의 가장 큰 사명이나 목적은 아닙니다. 이 일을 위해 공영 방송국과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영 방송국이 가장 먼저 힘써야 하는 것은, 많은 사람이 보고 유익을 얻을 만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송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체험 삶의 현장같은 프로그램을 한 번 쉬는 게 훨씬 더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1년 동안 쉼 없이 일합니다. 방송에 나오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일합니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을 들여가면서 매주 이곳저곳에서 일하고 방송합니다.

 

사명과 목적이라는 게 이렇게 중요합니다. 사명과 목적을 어디에, 무엇에 두느냐에 따라 결과와 행동이 전혀 달라집니다.

 

공영방송이 국민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라, 힘들고 손해가 된다 할지라도 방송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만일 돈을 벌기 위해 만들고 운영되는 요즘의 홈쇼핑 방송국이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런 방송국에서는 자신들에게 손해가 되는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돈이 안 되는 프로그램은 나쁜 프로그램이고, 돈을 많이 벌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일수록 좋은 프로그램입니다. 돈만을 위해 만들어진 방송국에서는, 계속 손해가 된 프로그램을 만들면 결국 자신들의 목적에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교회와 신앙인들이 있지만, 그러나 이것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회와 신앙생활하는 사명과 목적을 바르게 알고 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를 잘못 알고 판단하면, 나름 애쓰고 수고한 것 같은데, 오히려 이 때문에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미움과 버림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사명을 잊어버림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불행한 결과를 맞이하는 사울 왕의 모습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아말렉이라는 민족과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이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싸워야 하는 까닭과,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아말렉을 완전히 진멸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말렉 민족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행적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종으로 살다가 탈출합니다. 다른 나라의 종으로 400년 넘게 생활하다가 탈출했으니, 이스라엘 민족은 땅도 없고, 백성들을 지킬 만한 힘도 없습니다. 그리고 르비딤이라는 지역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백성들이 지도자인 모세를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모세는 이곳에서의 일 때문에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를 받고, 두려움을 겪었는지, 이곳을 이름을 유혹’ ‘시험이라는 뜻의 맛사라고도 불렀고, ‘투쟁’ ‘싸움이 뜻을 가진 므리바라고도 불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처럼 힘도 없고, 게다가 마실 만한 물조차 없어서, 지도자인 모세를 원망할 뿐만 아니라, ‘정말 하나님이 계신가?’ 하는 불신의 늪에 빠진 모습을 보고 아말렉 민족이 공격해 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두 죽이고, 가진 것들을 빼앗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어리석은 생각과 연약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높은 곳에서 기도하는 모세를 통해 전쟁을 이기도록 하셨습니다. 모세의 팔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팔이 내려오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이 때문에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에 돌을 놓고, 곁에서 모세를 붙잡아 주어서 결국 아말렉 민족을 무찌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삼사 백 년이 지난 후, 이스라엘이 터를 잡고, 왕도 생기고 나라가 강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인 사울에게 아말렉과 전쟁의 의미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일반적인 전쟁은 침입해 온 적을 물리쳐서 나라의 땅과 백성들을 지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 땅을 공격한다면, 적을 물리치고 가진 것들을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말렉과의 전쟁에서는 이런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삼사 백 년 전에 아말렉 민족이 이스라엘에 행했던 악행을 하나님을 대신해 심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을 무찌를 힘을 주신다는 약속을 하시면서, 아말렉에서 그 어떤 것도 얻으려 하거나, 남기려 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말렉 민족에 속한 것이면, 왕부터 어린아기까지도 없애고, 아무리 좋은 가축이라 하더라도 흔적도 없이 제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적의 왕을 살려뒀고, 좋은 짐승들을 남겨 두었습니다. 일반적인 전쟁이었다면, 사울의 선택에는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전쟁에서는 적의 왕을 살려두는 게 관례였습니다. 또 적이 가진 좋은 것들을 빼앗아오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을 벌하시는 전쟁이기 때문에, 사람과 가축과 귀금속까지 살려두지도 말고, 가져오지도 말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자신이 가장 먼저 생각하고 힘써 지켜야 할 것을 잊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대행하는 전쟁이어야 함에도, 사울은 자기 판단과 계산으로 싸웠습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이겨서, 하나님의 명령처럼 모든 것을 없앨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아말렉의 왕을 죽이지 않고 살려두었고, 살찌고 좋은 가축을 남겨둔 것이었습니다.

 

사울 스스로는 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것에 취해서, 본문 12절에 나온 것처럼, 다음 날 일찍이 승전비를 세우기 위해 갈멜로 떠났습니다. 사울이 승전비에 무엇을 기록해 넣었겠습니까? 왕인 자신의 이름이, 무찌른 적의 숫자를, 빼앗은 재물과 가축들의 수를 기록했을 것입니다. 사울의 생각 속에는 하나님의 뜻과 명령은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과 명령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사람, 사명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시겠습니까? 사울이 왕에 오른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자 사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신해 아말렉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심판을 보여주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이 사명과 하나님의 뜻에 대해 무관심하고, 오직 자기 이름을 내고 높이는 것에만 집중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제 사울을 버리셨습니다. 당분간은 왕의 자리에 머무르긴 했지만, 두려움과 초조함에 반 미친 사람이 되었고, 결국 비참한 마지막을 맞이하고 맙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먼저는 하나님이 얼마나 엄격하시고 또 위엄이 있는 분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나와서 르비딤에 있을 때 아말렉 민족이 공격해 왔던 때는, 오늘 본문보다 3,4백 년 전에 일어났습니다. 지금 우리가 3,4백 년 전에 있었던 일이라면 대부분 잊고 살지 않겠습니까? 임진왜란이 1592년에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임진왜란 때문에 우리가 일본을 싫어하지 않죠? 그때 일본이 우리민족에 와서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혔는지 역사를 공부하고 기억할 수는 있지만, 그러나 그것 때문에 일본과 싸워 무찔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웬만하면 잊고 넘어갈 세월입니다.

 

세월호 사건이 있은 지 몇 년 안 되었음에도, 이것을 이제 잊어야 발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몇 년 전에 있었던 일마저도 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사람들이 많은데, 수백 년 전의 일을 마음에 담고 기억하고 복수한다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행했던 아말렉 민족의 악행을 기억하셨습니다. 사울 왕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잊어버린 역사이고, 희미해진 기억일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때의 일 때문에, 이들을 흔적조차 남기지 않게 없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엄격하십니다. 하나님께는 대충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어물쩍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는 언제나 분명하지, 살짝 얼버무려 넘어가시는 일이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에서 마땅히 행할 것을 행하고, 버릴 것을 버리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대충 살아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되는 건 맞지만,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어떻게 살든지 괜찮다는 뜻이 아닙니다. 400년 전의 일을 기억하시고 벌하신 하나님이, 몇 년 전, 몇 달 전 우리가 행한 것을 기억 못 하실 일이 없습니다. 구원과는 별개일 수는 있지만, 반드시 그에 대한 보응하시는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기억하며, 말과 행동에서, 삶에서 절제하고 인내하고 믿음으로 살아가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두 번째 모습은, 교회의 사명과, 인생의 목적이 우리 자신을 향해서는 안 되고, 언제나 하나님이 원하시고 명령하시는 것을 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예배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죠? 천지를 만드시고 주인이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이 믿음을 고백한다는 것은, 단지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다는 의미 이상입니다.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임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는 무능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셨음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세상을 만들지 않았으며, 그래서 세상의 주인노릇하지 않겠다는 고백입니다.

 

이런 고백은 단순히 예배 시간 중 순서로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예배 순서 속에서 시작되고 그것으로 끝나고 말면, 그것을 몇 백 번, 몇 천 번 외치더라도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에 끝나고 맙니다. 그것은 신앙고백이 아니라 중얼거림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한 신앙고백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주인이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주인인 것 같고, 내가 내 뜻대로 살 수 있다는 교만과 착각에서 벗어나, 하나님만을 주인으로 삼고, 나는 종이요, 자녀로 살아가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만이 교회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면, 목사든 장로든 권사든, 공로가 많은 사람이든, 헌금을 많이 한 사람이든 그 누구도 주인노릇하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 사명 역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전하고, 이 땅에 실현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가 하나님만을 주인으로 삼고, 우리의 위치를 분명하게 알고 인정하며 살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함께하시고, 더 복되고 유익한 일을 해낼 만한 힘과 용기를 주실 것입니다. 반대로 자신의 처지를 벗어나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뜻을 생각하지 않고 살면, 사울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삶의 과정과 끝자락이 불행과 후회로 가득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주님의 뜻을 마음에 품고, 이 땅에서 삶으로 대실 행할 만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또 복과 더 큰 기회와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기억하고, 날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것을 더 잘 지키고, 행함으로써, 삶의 모든 과정 속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은혜와 복을 받고, 하나님의 칭찬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