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190929)하나님만 바라보며 사십시오(삼상 13장 8-15절)

청명하늘 2019. 9. 29. 13:26

하나님만 바라보며 사십시오

 

성경: 사무엘상 138-15(427)

찬송: 315(내 주 되신 주를; 512), 400(험한 시험 물; 463)

설교: 20190929.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벌써 5년이 넘었습니다만, 2014416일에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바다에서는 바람이 세고, 파도가 높아 배가 뒤집히는 일이 전혀 없을 수는 없습니다. 파도나 조류 때문에 배가 뒤집히는 경우는 대부분은 어선이라고 합니다. 육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이용되는 고기잡이용 배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크지 않은 만큼 파도와 조류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 있고, 자칫 전복되는 사고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는 길이가 146미터, 22미터, 높이는 아파트 10층 높이인 30미터라고 합니다. 이처럼 거대한 배가 침몰했고 300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5명의 시신을 찾지 못 했습니다. 시신을 찾지 못 했다는 것은, 몸 전체를 온전하게 찾지 못 했다는 게 아니고, 작은 뼛조각과 같은 흔적조차 찾지 못 했다는 것입니다. 시신이라도 찾은 유족들은 그나마 나을 만큼, 세월호 침몰 사건은 너무 큰 사고이고,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월호 침몰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는, “지겹다. 시간도 흘렀으니, 이제 잊자는 말이라고 합니다. 사실 이 말은 사고가 일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사고의 책임이 있는 정부와 기관들이 흘려보낸 말입니다. 비난이 커지고, 지지율이 떨어지자, 대부분의 의견인 것처럼 만들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고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과거나 지금 당장만 생각하면, 아픈 기억을 되살릴 필요가 없습니다. 해야 할 일이 많은 앞날을 향해 힘을 쏟는 게 좋습니다. 하지만 과거를 기억하고, 아픈 사고를 되돌아보는 까닭은, 반성 없는 사고는 언젠가는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사고도 보통 사고가 아니고, 300명이 넘는 생명이 원인도 모른 채 사망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원인이 무엇인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무엇을 어떻게 고치고 바꿔야 하는지 철저하게 조사하고 돌아보고 확인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세월호 참사 이후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가장 큰 책임은 황교안 씨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에 박근혜 씨가 국정농단 사건을 기점으로 결국 탄핵되었습니다. 당시 국무총리였던 황교안 씨가 대통령 직을 대신 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세월호 사고에 대해 철저히 조사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황교안 씨는, 세월호와 관련한 수많은 기록과 자료를 대통령 기록으로 넣어버렸습니다. 대통령 기록으로 넣어지면, 이후에 30년 동안 내용을 확인하거나 이용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잠시 신학도 공부했다고 하고, 신앙도 대단한 것처럼 말했습니다만, 어떻게 그런 모습을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과 정당의 이익을 위해 세월호를 이용한 것입니다. 사고로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자신의 권력 욕심을 위해 이용했으니, 신앙인으로서 절대 보여서는 안 되는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조국 법무장관과 가족에 대한 조사가 엄청납니다. 여론도 찬성과 반대로 극명하게 나뉘었습니다. 죄가 있으면 대가를 받아야 하고, 언론도 그에 대해 보도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죄의 크기에 따라 조사와 처벌의 수준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의 집에서 호미 하나 훔친 사람과, 사람을 죽인 사람에게 같은 조사를 펼치고, 똑같이 처벌한다면 잘못된 것이죠? 호미 한 자루라도 훔친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긴 하지만, 사람의 생명에 비하면, ‘그까짓것밖에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지금 검찰과 법원이 하는 행태가 얼마나 비열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 정도로 신념과 열정이 뛰어난다면, 상장을 위조했느냐 하는 것으로 11시간씩 압수수색하지 말고, 수백 명의 생명을 빼앗은 자들이 누군지, 왜 그랬는지에 대해 조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사건을 왜 누가 막고 숨겼는지 조사해야 합니다. 이 정도면 11시간이 아니라, 11년이라도 조사하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황교안 씨나 검찰이나 모두 무엇에 힘써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을 잘못하고 있습니다. 힘쓰고 집중해야 하는 것에는 전혀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크게 필요하지 않는 일에 힘쓰거나, 혹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에 목숨 걸 듯 애쓰고 있습니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울의 모습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본문 앞 131절에서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 년에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본문의 사건이 사울이 마흔 두 살 때 일어난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성경마다 좀 달리 기록했습니다.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이라, 정황으로 판단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전까지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이, 재판관의 사역을 담당하던 사사들이 300년가량을 이끌었습니다. 왕이 없으니, 아무래도 나라에 하나 된 모습이 좀 부족하겠죠? 위기가 찾아와도 우왕좌왕하기 쉽습니다. 그나마 사사들이 나서서 여러 차례의 위기를 넘겼습니다만, 왕처럼 통치력을 발휘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집해서 왕이 세워졌습니다.

 

인접해 있던 블레셋 민족의 입장에서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는 게 훨씬 좋습니다. 이스라엘이 혼란스러워야, 블레셋 자기들이 쉽게 공격하고, 또 약탈할 수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왕이 없이 300년 동안이나 버텨온 이스라엘 민족이 신기하면서도 동시에 쉬워 보였을 것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공격하고 빼앗을 수 있는 민족, 왕이 없어 제대로 대처하지 못 하거나, 대처가 늦은 민족으로 여겨졌습니다. 반대로 좋은 통치자가 나와 이스라엘을 하나로 묶으면,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되고, 그것은 블레셋 민족에게는 큰 위협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우려는 곧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300년 동안의 전통과 제도를 버리고, 이제 왕이 생기고, 왕이 전체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또 사울이 왕에 오르고 나서 곧 바로 군사들을 모았습니다. 삼천 명의 군사를 모아서, 이천 명은 자신을 지키도록 하고, 천 명은 아들 요나단에게 맡겼습니다. 요나단이 이끄는 군사들은 블레셋과의 접경지대에 가서, 그곳을 지키고 있는 블레셋 수비대를 공격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군사들을 모아 공격해 오는 게 현실로 다가온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 과정을 보면서, 이스라엘을 초장에 잡을 계획을 세웁니다. 이스라엘의 싹을 자르지 못 하면,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스라엘은 점차 강해질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전쟁용 수레인 병거가 3, 기마병이 육천 명이고, 싸움을 지원하는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군대의 힘으로 맞서 싸워 보려고 했는데, 막상 블레셋의 규모를 보고, 사울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기가 팍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겨우 삼천 명 정도의 군사밖에 안 되는데, 블레셋은 수도 10배가 훌쩍 넘고, 게다가 전쟁을 위해 훈련된 병거와 기마병으로 이루어졌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놀라, 여기저기에 숨는 게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이 때문에 사울은, 사무엘 선지자를 불러냈습니다. 맞닥뜨린 위기를 어떻게 해쳐나갈 수 있을지를 묻고, 또 전쟁에 앞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상치 못 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사무엘에게 상황을 전하자, 사무엘은 7일 후에 왕이 있는 곳으로 가서 제사를 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약속한 7일이 지났음에도, 사무엘은 오지 않았습니다. 요즘 같았으면, 전화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겠지만, 당시는 사람을 통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또 사무엘을 찾아가는 데만도 며칠이 더 걸릴 것입니다.

 

평상시라고 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냥 기다릴 수도 있고, 사무엘에게 사람을 보내서 상황을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긴박합니다. 감당할 수 없는 적은 눈앞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사무엘 선지자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약속한 날짜가 지났음에도 사무엘이 나타나지 않자, 백성들도 흔들리고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울 왕은 더 이상 기다리지 못 합니다. 오직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제사를 자신이 직접 드립니다. 그리고 제사를 막 마치자마자 그토록 기다리던 사무엘 선지자가 도착합니다. 제사를 드리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지만, 몇 시간이었을 것을 감암하면, 사울이 몇 시간만 참았으면, 사무엘이 주관하는 제사를 드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울은 이 몇 시간을 참지 못 하고,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제사를 드리고 말았습니다. 제사를 드릴 수 없는 왕이 제사를 드리는 사건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이 사건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14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는 사무엘 선지자의 말을 통해 확인됩니다. 이 일 때문에 사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왕의 자리도 다른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누가 제사를 주관하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만큼 너무 큰 잘못이라는 뜻입니다.

 

제사를 드린 것 때문에,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시고, 새로운 왕을 세우기로 작정하신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이 마음에 맞는 새로운 사람을 찾으실 거라는 것을 들어보면, 사울의 선택과 행동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시기로 작정하신 두 번째 이유이자, 사울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은 까닭은, 사울이 하나님을 보지 않고 사람을 기준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 동안 버틸 수 있었던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이스라엘에 강한 군사들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종으로 살 때, 군사 하나 없었지만, 당시 가장 강했던 나라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가나안 지역에 나라를 세우고, 왕이 없이 300년 동안 버틸 수 있었던 까닭도 역시 군대가 강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지형이 유리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사울의 반응을 보면, 이스라엘의 보호자가 되시는 하나님은 안중에 없습니다. 마주 대한 블레셋 민족을 보고 두려운 까닭도, 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직접 드려서는 안 되는 제사를, 무리해서라도 드리고자 했던 까닭도 사람을 봤기 때문입니다. 제사를 주관해야 하는 사무엘이 오지 않자, 백성들이 불안해 계속 흩어졌기 때문입니다.

 

만일 사울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졌다면, 사무엘이 올 때까지 기다렸을 것입니다. 제사장이 오지 않아서 하나님께 제사하지 못 했다고 하나님께서 사울을 책망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그 사람의 사정과 마음보다는, 겉과 형식을 중시하시겠습니까?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고, 어떤 사람을 원하시고, 어떤 제사를 원하시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마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제사하면서도, 사람을 향해 제사하듯 했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에 맞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위기 앞에서 사울은 잘못된 길을 선택하고 행동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지키시고, 자신을 왕으로 세우시고, 오직 하나님만을 마음에 두지 못 하고, 오히려 사람과 사람의 것들에 집중합니다. 이 때문에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은혜와 복의 증표라 할 수 있는 왕위마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사는 우리도 이 점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조건에 따라 정해지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없고, 함께하는 사람도 없다시피 하더라도, 우리의 삶과 구원은 하나님이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가진 것이 많고, 조건이 완벽해도, 그 결과마저 성공이라 장담할 수는 까닭은, 하나님이 결정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 눈에 사람은 가깝고, 쉽게 확인되기에, 혹하기 쉽습니다. 사람에게 잘 하고, 사람을 만족시키면 잘되고 성공할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사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왕의 자리에 머물렀을 때마저도 빈껍데기로 살게 되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도, 사울의 길을 선택하고 행하면, 우리 또한 아무것도 얻지 못 하는 삶, 실패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사울도 평온한 때에는 이런 잘못된 것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급하고, 어려운 때라, 어리석게 판단하고, 실패한 길을 선택했습니다. 우리도 급할수록, 어려울수록, 문제가 중요할수록,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판단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승리와 평안이 군사의 많고 적음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삶은 조건과 상황에 따라 결정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을 향한 믿음으로 정하고 따라 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실패가 없는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기억하고, 사울이 실패하게 된 까닭과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들을 바르게 판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돌아서 사람을 봄으로써 실패한 사울의 삶을 거울로 삼고, 우리의 삶에서도 이를 조심하고, 조건이나 상황에 따라 좌절하지도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살아감으로써, 우리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복과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