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190922)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십시오(삼상 12장 19-25절)

청명하늘 2019. 9. 22. 14:42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십시오

 

성경: 사무엘상 1219-25(426)

찬송: 213(나의 생명 드리니; 348), 218(네 맘과 정성을; 369)

설교: 20190922. 주일낮예배

 

 

 

주님이 복 주시기로 친히 약속하신 거룩한 날, 주님 앞에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약 두 달 전에 국제수영대회가 광주에서 열렸습니다. 수영대회는 아무래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또 기대와 관심도 그리 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다른 일을 보러 광주에 가서 친구들을 만났다가, 계획에 없던 수영대회를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수영대회라고 해서, 수영이나 다이빙과 같은 종목만 있는 줄 알았는데, 가서 보게 된 종목은 수구였습니다. 물에서 선수들이 공을 상대방 골문에 넣는 것을 경주하는 종목입니다. 이번 대회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은 몇 달 연습하는 게 전부인 선수들로 구성되어서, 경기에서 이기는 것보다는, 한 골이라도 넣을 수 있느냐로 관심을 모았습니다. 잘 하는 팀들은 한 경기에 20-30골정도를 넣는 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선수들의 수준이 이제 시작단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나라 선수들의 경기는 아니었지만, 수구 경기가 생각보다 재밌었습니다. TV에서 보면, 좀 심심하고, 경기도 자주 끊겨서 흥미가 안 생겼는데, 가까이서 눈으로 직접 보니 전혀 달랐습니다. 감독이 선수들에게 작전지시하는 모습도 볼 수 있고, 좀 심한 반칙을 하면, 퇴장을 당해 잠깐 한쪽 귀퉁이에 있는 모습도 낯설면서도 재밌었습니다.

 

수구 경기를 처음 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선수들이 물에 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도 좀 훈련하면, 가만히 누워 있으면 물에 떠 있을 수 있습니다만, 선수들은 거의 선 자세로 물에 떠 있습니다.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했는데, 중간 중간에 큰 화면에 비친 선수들의 물속 움직임을 보고 알 수 있었습니다. 거의 쉴 새 없이 두 발을 계속 해서 움직입니다. 선수들이라 하면, 물에 떠 있는 것이 쉽고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를 위해서 안 보이는 물속에서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에서 많이 겪는 것입니다. 지난 봄에 이석증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증상이 심하게 찾아오면, 걷는 것은 고사하고, 서 있는 것도, 앉아 있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병원에 있던 밤에 증상이 심하게 찾아와서, 인터폰으로 간호사실에 전화하려고 인터폰을 붙잡았습니다. 그런데 사방이 얼마나 빨리, 또 심하게 도는지, 바로 눈앞에 있는 인터폰의 번호가 안 보여서 누르지 못 하고, 벽을 잡고 한참을 그렇게 있어야 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서고 걷는 것을 당연하며 쉽고 간단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몸이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귀에 있는 작은 돌멩이가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 동안 매일 셀 수 없이 서고, 많이 걸었음에도, 감사한 적도 없고, 기뻐한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걷는 것처럼,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마저도, 그에 얼마나 많은 조건이 필요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간단해 보이지만, 우리가 생각하지 못 하는 수많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이야 수없이 많지만, 자전거를 타는 것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자전거를 탈 줄 아세요? 요즘은 시골에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고, 오히려 도시 사람들이 건강과 이동을 위해 자전거를 더 많이 타는 것 같습니다.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비율이 어느 정도 되는지 잘 모르지만, 여하튼 자전거를 탈 줄 아는 사람이, 못 타는 사람보다 더 많긴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더 많은 사람이 자전거를 탈 수 있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는 것에도, 우리가 쉽게 생각하지 못 하는 많은 조건들이 필요합니다.

 

자전거를 타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이 있어야 하겠습니까? 먼저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길이 있어야죠? 자전거를 탄다고 하면서, 물속에 들어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무가 가득하고 길도 없는 산에서도 역시 자전거를 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기 위해서는, 땅과 길이 있어야 하고, 그것도 장애물이 많지 않은 넓고 평평한 길이 있어야 합니다.

 

길이 평평하고, 넓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조건과 기능들이 있습니다. 우리 몸 밖에 있는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는 것을 감각이라고 하고, 우리 몸에는 다섯 가지 감각이 있습니다. 이것을 오감이라고 하는데, 몸 밖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청각, 냄새를 맡을 수 있는 후각, 맛을 느낄 수 있는 미각, 만지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촉각이 있고, 볼 수 있는 시각이 있습니다.

 

이렇게 다섯 가지 감각 중에서, 우리가 자전거를 탈 수 있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잘 듣지 못 하는 사람도 자전거를 탈 수는 있죠? 냄새를 못 맡거나, 감기에 걸려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감각이 많이 떨어진 사람도 자전거를 타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또 맛을 못 느끼는 사람도, 몸의 감각이 떨어진 사람도 역시 자전거를 탈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앞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면 어떻게 될까요? 앞을 못 보는 사람이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요? 탈 수 없죠. 물론 여기에서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멈춰 있는 자전거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자전거 위에 앉아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을 뜻합니다. 앞을 볼 수 없으면, 몸의 균형을 잡을 수도 없고, 또 앞이 길인지, 물인지 알 수 없고, 어떤 장애물이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몇 바퀴는 움직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자전거를 탄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먼 거리를 달릴 수는 없습니다. 페달을 밝을 수 있는 힘이 있어도, 자전거를 탈 수도 없고, 멀리 갈 수도 없고, 빨리 갈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앞을 볼 수 없어도 자전거를 아주 잘 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경주에 나갈 정도로 잘 탑니다.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자전거를 잘 타기도 하고, 자전거 타는 사람들끼리 하는 시합에도 나갈 수 있을까요?

(텐덤 자전거, 김종규 선수)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아주 빨리, 또 멀리 갈 수 있는 방법은, 영상에서 본 것처럼, 2인용 자전거를 타는 겁니다. 자전거에 탄 두 사람 중에, 누가 반드시 앞에 앉아야 하겠습니까? 두 사람 중에 누가 반드시 뒤에 앉아야 하겠습니까? 앞에서 자전거의 방향을 결정하는 사람은 앞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장애물을 피할 수 있고, 목표점을 향해 좋은 길을 선택하고, 안전한 곳으로 가도록 인도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2인용 자전거를 탠덤 사이클이라고 하는데, 이 자전거를 잘 타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먼저는 뒤에 탄 사람이 앞에서 조종하는 사람을 철저히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뒤에 탄 사람이 앞의 사람을 믿지 못 하면 어떻게 될까요? 자기는 앞을 못 보는 데다, 앞 사람까지 못 믿으면, 두려움 때문에 자전거를 안 타려고 할 것이고, 일단 탔다고 하더라도, 앞 사람이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움직이지 않겠습니까?

 

앞의 사람이 장애물을 피하지 못 할 거야라고 생각하면, 뒤에서 페달을 밟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앞에서 운전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몸을 움직이게 됩니다.

 

자전거 뒤에 사람을 태워보면 알겠지만, 뒤에 탄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앞의 사람을 잘 믿고, 앞의 사람을 잘 붙잡고, 가고자 하는 방향대로 몸을 함께 움직여 주는 사람이면, 운전하는 데도 편하고, 훨씬 쉽게 갈 뿐만 아니라, 힘도 많이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앞의 사람을 믿지 못 하는 사람이 뒤에 타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앞의 사람은, 오른쪽으로 가야해서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이는데, 뒤에 탄 사람은, 앞이 안 보이는데다, 혹시 장애물에 부딪힐까, 아니면 너무 기울어지다 넘어지지 않을까 두려워서, 자꾸 몸에 힘을 주고, 반대 방향으로 힘을 주기 시작합니다. 운전자의 의도에 따라 몸을 함께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몸을 반대로 움직입니다. 이렇게 되면, 뒤에 탄 사람은 그 사람대로 불안하고 두렵고 몸에 힘이 들어가 힘겹습니다. 또 앞에서 운전하는 사람 역시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2인용 자전거를 잘 타기 위해서는, 뒤에 탄 사람이 무엇보다도 앞 사람을 잘 믿고, 확신을 가지고 타야 합니다.

 

2인용 자전거를 잘 타기 위해서 필요한 두 번째 조건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모습이고, 만일 이것을 어기면 가장 위험하게 됩니다. 어떨 때일까요? 그것은 앞을 못 보는 사람이, 자전거 앞에 타서 운전하겠다고 고집하는 겁니다. 뒤에 탄 사람이 보니, 앞에 타고 운전하는 것이 그리 힘들어 보이지 않습니다. 어차피 자기도 똑같이 페달을 밟고 있고, 앞에 탄 사람의 역할이 특별히 어려운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운전하는 사람과 자리를 바꾸자고 하는 겁니다.

 

만일 볼 수 있는 사람이 뒤에 타고, 앞을 못 보는 사람이 앞에서 자전거를 운전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냥 가만히 서 있다가 넘어져도 다치는데, 두 명이 함께 열심히 페달을 밟아 빨리 달릴 수 있는 자전거가 넘어지거나, 장애물에 부딪히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크게 다치거나, 심하면 죽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자전거가 아무리 비싸고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앞을 못 보는 사람이 운전하는 자전거의 뒷자리에 탈 수 있겠습니까? 빠른 만큼 위험하고, 두 명이 움직이는 것만큼 더 위험해집니다.

 

우리 삶도 2인용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누구를 앞자리에 앉히고 방향을 정하고, 장애물을 피하도록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능력이 뛰어나고 성실한 사람을 앞에 앉게 하면, 원하는 목표점에 안전하게 또 빠르게 도달할 것입니다. 그러나 게으르거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하는 사람을 앞에 앉게 하면, 그 여정은 다툼과 절망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무엘이 최고 지도자의 자리를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대다수의 설교자들은 23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라는 말씀을 들어, 기도를 쉬는 게 죄라며, 기도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사무엘이 전하는 말씀은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인생이라는 2인용 자전거를 타면서, 하나님을 앞에 두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앞날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었지만,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상과 왕이라는 인간에게 자기 삶을 맡기고, 뒤따라 살았습니다.

 

우상이 풍요를 가져다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이들은 거기에 금세 넘어갔습니다. 가는 곳마다 그곳 백성들이 섬기는 우상에 혹했습니다. 전쟁에서 이기게 하는 신이라고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느새 하나님을 등지고, 우상을 향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약이라 하면, 그것이 독이 되는지, 약이 되는지 생각하지 않고, 먹기 바쁜 사람들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섬긴 우상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슨 유익을 줬겠습니까? 본문 21돌아서서 유익하게도 못 하며 구원하지도 못 하는 헛된 것을 따르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는 말씀처럼, 우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기 몸 하나 스스로 움직이지 못 하는 우상이 그 누구에게 복과 평안을 줄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구한 것도 이와 마찬가지였습니다. 단지 왕이 다스리는 나라를 요구한 게 잘못이 아닙니다. 본문 앞 12너희가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너희를 치러 옴을 보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다는 말씀처럼, 왕을 구한 까닭은, 하나님을 믿지 못 했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통치가 귀찮고 싫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난과 실패가 왜 어디에서 오는지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면 고난을 피할 수 없지만, 왕을 앞세우고 살아가면, 평안과 복이 임할 거라는 생각에, 왕을 구했고, 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들의 완전한 착각이고, 오판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아픔과 좌절을 겪은 까닭은 왕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왕이라고 해도, 지위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높을 뿐, 인생길에서 앞을 못 본다는 점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백성들이 좀 지혜롭고, 상황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었다면, 이들은 왕을 구하는 게 아니고, 자신들이 살아온 어리석은 길에서 돌아서, 하나님을 향하였을 것입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바라는 마지막 당부가 이것입니다. 앞날을 볼 수도 없고, 앞날을 좌우할 수도 없는 것들에게 소중한 자기 삶을 맡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온 이들의 결과가 보여주듯이 실패로 끝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온 세상을 만드셔서, 온 세상을 뜻대로 이끄시는 하나님만을 인생의 안내자로 삼고, 하나님의 뒤에 앉아 모든 것을 맡기면, 실패도, 실수도 없으신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확실하고 안전하게 지키시고 함께하십니다.

 

우리는 삶의 모든 여정에 대해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도, 그 어떤 사람이나 우상 아닌 오직 하나님께만 맡기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모든 과정을 아시고, 조절하시고, 이끄실 만한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마음을 다해 섬기고 따라가면, 하나님은 우리를 반드시 지키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향해 크고 놀라운 일들을 행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고, 성공하는 길이고, 구원받는 길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오직 하나님께만 모든 것을 맡기고, 뜻대로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이 베푸신 크고 놀라운 복과 은혜와 평강을 누리며 살아나아가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