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답게 새롭게 사십시오
성경: 사무엘상 11장 4-15절(구 424쪽)
찬송: 300장(내 맘이 낙심되며; 통406), 442장(저 장미꽃 위에; 통499)
설교: 20190901.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들 중에 Carpenters라는 남매가 함께 부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둘은 미국 사람들로서 1970년대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곡들을 많이 만들어 불러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활동한 시기가 좀 지났지만, 그래도 연세가 그리 많지 않은 분들은 몇 번 정도 들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잠깐 이분들의 음악을 들어보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이 좋아하시는 트로트 음악이 아니라서 별 감동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음악에 대해서 잘 모르고, 관심도 그리 크지 않습니다. 전문적으로 평가할 만한 수준이 안 됩니다. 그런데 언젠가 좋은 헤드폰으로 이분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특히 어려운 영어로 된 노래인데도 발음도 좋고, 또 얼마나 잘 부르는지. 좋은 음악들이야 어느 시대에건 있고, 또 각기 취향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겠지만, 무엇보다도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감동과 기쁨을 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수의 음악을 듣고 감동이 되어, 요즘은 어떤 노래를 하는지 알아봤더니, 이들의 활동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동생인 여가수가 3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사망원인은 거식증이었다고 합니다. ‘거식증’이란 음식 먹는 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살찐 것으로 고민하고, 또 살을 빼려고 애씁니다만, 이것은 필요 이상으로 살이 쪘기 때문이죠? 우리가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반드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먹어야 힘이 나고, 각 신체마다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식증은 최소한의 음식조차 먹지 않고 굶어죽는 것입니다. 먹을 음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살이 찌는 것이 두려워서 굶어죽을 때까지 음식을 안 먹는 것입니다.
굶어죽을 정도까지 살을 빼려고 했다면, ‘살이 엄청 많이 쪘구나’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여가수의 모습을 잠깐 사진으로 보겠습니다. 어떤가요? 살이 많이 찐 것 같은가요? 사진에 잘 나오기 위해, 사진을 찍을 때마다 살을 많이 뺀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사진으로 보기엔 전혀 안 그렇죠? 영상으로 나와 있는 것들을 봐도, 오히려 살을 더 찌워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 혹 살이 찌면 좀 어떻습니까? 지나쳐서 건강을 위협하는 정도가 되면, 조심하는 게 좋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으면, 뚱뚱한 건 어떻고, 빼빼한 건 또 어떻습니까? 이 가수가 왜 그렇게 죽을 지경에 이를 정도로 살을 빼기로 결심하고 노력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가수면 좋은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것을 잘 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가수를 세상에 보내신 까닭이 무엇일까요? 이처럼 좋은 목소리를 주시고, 또 노래할 수 있는 기회와 인기를 함께 주신 것을 보면, 노래를 통해 일하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좋은 노래를 들으면, 요즘 자주 쓰는 말로 힐링(healing), 즉 마음의 상처들이 치유되곤 합니다. 세상에 이 사람처럼 좋은 목소리로, 좋은 노래를 많이 부르면, 이 노래들을 통해, 기쁨을 얻기도 하고, 아픔과 슬픔이 가라앉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특별하다 할 만큼 좋은 재능과 기회를 모두 걷어차 버렸습니다. 좋은 것을 위해 나쁜 것, 덜 좋은 것을 버리는 것은 지혜로운 것이지만, 나쁜 것, 덜 좋은 것을 위해 더 좋은 것을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바로 이 가수의 선택이 이 경우에 해당합니다.
좋은 목소리로 좋은 노래를 계속 잘 했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겠습니까? 하지만, 이 가수가 그토록 원하는 대로 살이 너무 빠져 뼈밖에 안 남는다고 해서 그게 누구에게 무슨 유익을 주겠습니까?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한 사람이라도 있겠습니까?
또 이런 큰 재능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이 정도의 목소리는, 저 같은 사람은 평생 피를 토할 만큼 아무리 많이 노력하고 애써도 근처에도 못 갈 것입니다. 목소리로만 따지면, 전세계 사람들 중에서도 최고일 텐데, 왜 그 좋은 기회를 외면하고, 아무 필요도 없는 일에 목숨을 걸다, 정말 너무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것 아니겠습니까? 전혀 엉뚱한 일에 힘쓰다, 최고의 재능과 기회를 헛되이 만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와 비슷한 삶을 살던 사울의 모습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나와서 가나안 지역에서 왕이 없이 재판관인 사사들이 약 300년가량을 이끕니다. 그러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욕심에 따라 왕이 세워지는데, 첫 번째 왕이 사울입니다.
사울은 잃어버린 나귀를 찾아 사환과 함께 며칠을 고생하는 모습으로 성경에 등장합니다. 유력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인물도 훤칠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하는 효심도 가득하고, 가정환경도 좋고, 인물까지 좋았습니다. 드러난 모습으로만 보면, 부족함이 없는 사람 같습니다. 게다가 잃어버린 나귀를 찾으러 다니던 여정 중에, 당시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인 사무엘로부터, 왕이 될 거라는 증표로서 기름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 뽑혔습니다.
살면서 크고 작은 모임을 만들기도 하고, 그에 속하게 되죠? 그러면서 책임자나 지도자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몇 명 안 되어도, 무슨 행사를 준비하려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하물며 수백 만 명이나 되는 나라의 왕, 그것도 첫 번째 왕이 되었으니, 해야 할 일은 얼마나 많고 바쁘겠습니까?
그러나 사울은 왕의 자리에 있지 않고, 여전히 예전과 달라진 것 없이 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으면, 나라를 위해 고민하고 힘쓰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왕이 되기 전까지는, 잃어버린 나귀를 찾아다니는 게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소를 끌고 밭으로 나가, 땀 흘리며 애써서 농사짓는 것도 괜찮습니다. 왕으로 세워지기 전까지는, 평범한 가정의 한 사람으로서, 가족과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이 잘못된 게 아닙니다.
하지만 사울은 이제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신분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전체를 이끌어야 하는 최고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이끌어야 하는 책임이 가장 크고 중요합니다. 그것도 첫 번째 왕이 되었으니, 그 동안 익숙한 옛 자리를 벗어나, 왕의 자리로 삶의 자리를 바꾸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울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소를 몰고 살던 삶이 익숙해서인지, 아니면, 왕의 자리가 무엇을 의미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런지 분명치 않지만, 여전히 나귀나 찾아다니는 자리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두 마리 소로 밭을 가는 일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밭을 가는 것도 필요합니다. 소를 부리는 일꾼도 분명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일을 왕이 된 사울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 필요 없는 정도가 아니라, 그래서는 안 됩니다. 낭비 중에도 이런 낭비도 없고, 손해도 이런 손해도 없습니다. 우리 보기에도 이처럼 어리석고 손해되는 일이 없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인도하심의 관점에서 보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밭가는 사람이 부족해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도 왕이 되었어도, 정말 겸손해서 여전히 밭가는 일에만 열중할 사람이 필요해서 그토록 왕을 구했겠습니까?
왕처럼 일할 사람이 필요했기에,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면서까지 그토록 고집했습니다. 밭을 아주 많이 잘 가는 일을 잘 하는 왕이 아니라, 적이 공격해 오든지, 아니면 너무 큰 어려움에 처했을 때, 백성들을 설득하기도 하고, 백성들의 마음을 한 데 모아서 이겨내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 역시 소를 잘 부리는 일꾼이 필요해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말씀하셔도, 백성들 모두 하나님을 두려워할 뿐, 그 말씀과 계획에는 관심도 없고, 외면하며 살아가자, 하나님을 대신해서 백성들을 잘 이끌 만한 왕이 필요했기에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사무엘상 17장에서 사울이 결국 버림을 받고, 다윗이 그 뒤를 이을 왕으로 예정됩니다. 그 과정에서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키나 겉모습처럼 보이는 것들을 기준으로 하시지 않고, 그 속을 기준으로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까닭은, 사울이 소를 잘 부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울이 게으르지 않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밭을 갈 수 있는 밭가는 실력자였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왕으로서 백성들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게 할 만한 중심이 사울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엄청난 계획과 백성들의 큰 기대 속에 왕으로 세워졌지만, 사울은 왕의 자리에 합당한 모습을 전혀 보이지 못 합니다. 백성의 기대치는 물론이거니와, 하나님의 기대와 계획에서 너무 멀리 있습니다. 사울이 왕으로 세워진 후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지만, 여전히 왕의 이름만 있을 뿐, 전혀 왕처럼 행동하지 않습니다. 사울의 이런 모습은, 왕임에도 겸손히 일하는 것으로 본받을 만한 것이 아니라, 고치고 바꾸어야 하는 모습이라는 것은, 오늘 본문의 사건을 통해서 확인됩니다.
사울은 밭을 갈고 오다가, 암몬 민족이 길르앗 야베스 지역을 침략해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그 순간을 6,7절에서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의 노가 크게 일어나 한 겨리의 소를 잡아 각을 뜨고 전령들의 손으로 그것을 이스라엘 모든 지역에 두루 보내어 이르되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의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하였더니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 사람 같이 나온지라”고 말씀합니다.
이 순간에 사울에게 하나님의 영이 강하게 임하셨고, 사울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소의 힘을 의지해 살아온 사울이 이제는 하나님의 손에 이끌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왕의 자리를 멀리하고, 소와 함께하는 밭에 머물렀던 사울이었지만, 이제는 두 마리 소를 잡아 토막을 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시는 밭가는 사람으로, 소의 뒤를 좇는 사람으로 살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심으로써 사울이 이런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바꿔 생각해 보면, 그 동안 사울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여전히 사람의 생각과 판단에 갇혀 사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왕의 자리라는 귀함과 가치를 모르고, 예전과 다를 바 없이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기반으로 하며 살고 있고,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까?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고, 그것도 가장 고귀한 제사장들이고, 하나님의 소유가 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신분과 지위가 어느 수준인지, 우리가 있어야 하는 자리가 어디인지를 알려줍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고, 그래서 그 수준과 지위에 맞게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왕으로 세워졌음에도 여전히 밭을 가는 살아온 사울처럼,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세상의 밭만 갈고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영을 크게 받아 옛 신분과 지위를 깨뜨리고, 왕의 신분에 맞게 새로운 삶을 결단하는 모습으로 변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해하지 마세요. 세상의 일이 가치 없다는 것 아닙니다. 교회와 신앙과 관련한 것만 가치가 소중하다는 것 아닙니다.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과 시간과 삶을 포기하고, 교회에서만, 기도와 찬송과 예배만 드려야 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생계를 위해 수고하고 애쓰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 땅에서도 우리에게 맡겨진 일들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것, 하나님이 우리에게만 특별히 맡기신 것들이 있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 휩쓸려 세상이 끄는 대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길과 방식을 향해 더딘 걸음이라도 내디디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밭을 가는 것에만 목숨 걸지 말고, 위에 있는 하나님의 것들을 향해 힘쓰고, 고민하고, 발걸음을 내딛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시고, 예수님이 위해 피 흘려 돌아가시고, 우리로 지금 예배의 자리로 나아와 말씀을 주신 까닭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 왕의 제사장, 거룩한 국민, 하나님의 백성에 걸맞게 살아야 합니다. 말과 행동부터 생각까지 익숙하지만, 그러나 시시하고, 하찮고, 미천한 것들로부터 돌아서서, 이제는 낯설고 좀 어렵고 힘들지만, 그러나 귀한 신분에 맞게 바꿔 나아가야 합니다. 이미 세상의 방식에 익숙해진 우리로서는 이걸 바꾸는 게 불가능하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강하게 임하시면 우리도 사울처럼 변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신분에 걸맞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됩니다.
사울에게 강하게 임하심으로 새로운 길로 이끄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강하게 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더 큰 뜻과 계획을 인정하며, 이를 위해 날마다 수고하고 애씀으로써,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복과 은혜와 사랑을 날마다 넘치게 받고 살아나아가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
'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190915)하나님의 것으로 채우며 사십시오(삼상 12장 1-15절) (0) | 2019.09.15 |
|---|---|
| (20190908)하나님의 영으로 변화되십시오(삼상 11장 4-15절) (0) | 2019.09.08 |
| (20190825)순종할 각오로 기도하십시오(삼상 10장 25-11장 3절) (0) | 2019.08.25 |
| (20190818)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십니다(삼상 10장 17-27절) (0) | 2019.08.18 |
| (20190804)선별하고 집중하십시오(삼상 9장 25-27절) (0) | 2019.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