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별하고 집중하십시오
성경: 사무엘상 9장 25-27절(구 422쪽)
찬송: 321장(날 대속하신 예수께; 통351), 492장(잠시 세상에; 통544)
설교: 20190904.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고사성어 중에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이나 이사했다는 뜻입니다. 그 유래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맹자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어, 어머니가 홀로 키웠습니다. 여성이 홀로 자녀를 키우는 것은 지금도 쉽지 않습니다만, 옛날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어려웠겠죠? 가난해서 처음 이사한 곳이 무덤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요즘으로 보면, 공동묘지 근처였습니다.
요즘은 장례 절차들이 간소화되었죠? 하지만 이것도 그리 얼마 안 되었습니다. 30년 전만 해도, 고인을 집에다 모시고, 발인도 주민들이 직접 상여를 매고 무덤까지 가서 매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무덤 근처에 살면서 매일 보는 게 상여를 매는 사람들, 그리고 죽은 사람들을 보내며 슬퍼하며 곡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이었습니다. 매일 그런 광경을 보니 아이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어릴수록 옳고 그른 일과는 상관없이, 눈에 많이 보이고, 귀에 자주 들리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상여와 곡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주 본 맹자도 곡하는 것과 상여소리 등을 흉내내며 놀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대로 성장한다면, 아무리 잘나고 성공해봤자, 상여를 이끄는 앞소리꾼밖에 못 될 것입니다. 이를 염려한 맹자의 어머니는 어려운 살림에도 시장 인근으로 이사했습니다. 공동묘지 근처보다는 시장이 훨씬 더 낫죠? 그런데 시장이란 또 어떻습니까? 장날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고, 가장 많이 보이는 게 물건을 사고파는 것입니다. 주위에서 보고 듣는 것이 물건을 사고팔며 흥정하는 것이라서, 이번에는 맹자가 장사하는 흉내를 내며 놀았습니다.
그렇게 계속 살았다면, 시장에서 장사를 잘 하는 정도의 사람밖에 못 되었을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그래서 맹자의 어머니는, 아들의 교육을 위해 서당이 있는 곳으로 세 번째 이사를 하게 됩니다. 요즘으로 보면, 학교나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겠죠? 서당에 근처에 있으면, 무엇을 가장 많이 보고 들을까요? 책 읽는 모습과 소리일 것입니다. 글을 배우고 책을 읽는 것이 익숙해지게 되고, 가장 많이 하는 일이 됩니다. 맹자는 책을 보고 글을 읽는 것에 익숙해지게 되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좋은 가르침을 전해준 학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맹모삼천지교’라고 하는데,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의미로 많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그런 뜻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하게 만든 것 자체가 자녀 교육을 위한 좋은 밑거름이 된다는 것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무덤 근처에서 살면서는, 삶과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도록 만들었고, 시장에서는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서 세 번이나 이사했다는 이야기는, 주위환경이 생각과 행동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이런 경우를 우리는 보통 ‘끼리끼리 논다’ ‘끼리끼리 모인다’라는 말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게 본래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가까이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좀 달리 생각해 보면,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서로 비슷해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살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먼저는 내가 먼저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본인은 나쁜 점들만 가지고 있으면서도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려고 하면, 이기적인 계산이기도 하지만, 상대의 좋은 점이 내 것이 되는 것보다는, 나의 나쁜 점이 다른 사람에게 물들기 쉽습니다.
더불어서 나쁜 영향을 주는 사람들은 멀리 해야 하고, 좋은 사람들, 좋은 영향을 줄 만한 사람들을 가까이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자녀를 키워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자녀들이 한참 배울 때 가장 큰 염려 중 하나는, 나쁜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죠? 안 좋은 친구들을 만나더라도, 본인의 좋은 면들이 나쁜 친구들에게 영향을 끼치면 되지 않냐며 고집하곤 합니다만, 좋은 점과 안 좋은 점들이 만나면 거의 틀림없이 안 좋은 점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래서 좋은 친구, 좋은 스승, 좋은 이웃,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기도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건전하고 좋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 곁에 머물고, 좋은 영향을 받으면 좋은 신앙인이 됩니다. 그러나 이상하고 잘못된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우상을 섬기 듯하는 사람들 곁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거의 틀림없이 잘못된 신앙을 따르게 됩니다. 가까운 곳에서 보고 듣고 체험한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그것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오늘 본문에서는 사무엘이 사울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어떻게 하도록 말하는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들 중에서 마지막 지파이면서도 가장 약한 베냐민 지파 사람인 사울이 잃은 나귀들을 찾으러 사환과 함께 이곳저곳을 다닙니다. 사울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고, 또 아주 훤칠한 인물이었습니다만, 집을 떠나버린 짐승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사람이 집을 나갔으면, 어느 정도 계산과 추측이 가능합니다만, 짐승들은 불가능합니다. 말 그대로 사방을 샅샅이 찾아다니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나귀를 찾아 집을 나온 지 3일이나 지나자, 사울은 아버지가 염려하실 것 같아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고, 함께 간 사환이 마침 가까운 곳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지자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사울도 이것을 받아들이고 사울이 있는 곳까지 찾아가는데, 하나님은 전날에 선지자 사무엘에게 나타나셔서 사울이 올 것이고,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 알려주셨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울을 극진하게 대접합니다. 삼십 명 가량의 손님들 중에서도 가장 상석에 사울을 앉게 하고, 가장 좋은 고기로 대접합니다. 또 사무엘은 사울과 같은 방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사울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려는 것이 오늘 본문의 상황입니다.
사울은, 함께 나귀를 찾으러 왔던 사환과 돌아가려는데, 사무엘이 사울에게 사환을 앞에 먼저 보내라고 합니다. 사환이 한참 앞서서 가고 거리가 멀어지자 사무엘은 사울에게 서 있을 것을 요구합니다.
사무엘은 왜 갑자기 사환과 떨어지도록 사울에게 요구했겠습니까? 성경에는 이에 대한 기록이 나와 있지 않지만, 사환과 함께할수록 사울은 잃어버린 나귀를 찾으려는 사람으로만 머물게 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사울의 그릇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되어,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고, 계속 침입해 오는 블레셋 민족과 이방 민족들을 무찌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암나귀들이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게 하셨고, 사울이 결국 사무엘 선지자를 찾아가도록 상황을 만드셨던 것입니다. 또 함께 사환을 보냄으로써, 사무엘이 있는 곳을 알려주고, 사무엘의 집까지 가도록 만드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무엘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지도자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모으게 하셨습니다.
사울 한 사람을 왕으로 세우기 위한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계획들이었고, 모든 게 다 준비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사울이 이제 자기 집안의 일보다는, 나라를 세우고, 안전하게 만들며, 발전시켜야 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마음가짐부터 행동 하나까지 왕처럼 큰 포부와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사울은, 왕이 될 것이라는 사무엘의 예언을 전혀 신뢰하지 않고, 준비조차 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다음 장인 10장에서 사울이 왕으로 뽑히는 과정이 나오는데, 왕으로 뽑힐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믿었으면, 왕이 되었을 때 좀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었겠죠? 하지만 제비를 뽑아서 사울이 왕으로 뽑혔는데, 사울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다가 짐보따리들 사이에 숨어 있는 사울을 발견했습니다. 키도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 더 크고, 인물이 아주 잘났고, 왕으로 뽑힌 사람의 모습에는 어울리지 않죠?
사울이 이처럼 큰 키와 잘난 외모와는 달리 소심하고, 됨됨이가 작은 사람이 된 까닭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을 대접하고, 같은 방에서 잠을 자며 나눈 여러 이야기를 통해 사울의 이런 면들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사울의 이런 성향에 비추어 보면,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순간 하나님의 모든 약속과 계획을 잊고 말 것입니다.
게다가 3일 함께했던 사환이 곁에 계속 있으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모르긴 해도, 사울은 하나님의 계획보다는 더욱 사소한 것들에 마음을 고정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고, 수백 만의 사람들을 이끌고 가야 하고, 그런 과정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을 금세 잊고 말았을 것입니다. 사환과 함께 길을 떠나는 순간 잃어버린 나귀를 어디에서 찾게 될 거라는 말만 기억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사환’이라고 표현되었지만, 우리에게는 종이라는 표현이 더 익숙한 말입니다. 주인의 집에서 천한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종에게 바라는 것은 똑똑하고 부지런한 정도까지밖에 안 됩니다. 그 이상의 크고 좋은 것들, 중요한 것들을 쉽게 맡길 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종의 그릇이 그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사무엘이 사울에게서 사환과 거리를 두도록 한 까닭도 이런 의미가 담겨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사울은 본래 소심하고 작은 것들에만 매달리고 살아왔습니다. 그런 사울에게 왕의 직무와 나랏일을 아무리 이야기해 주어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울이 다시 사환을 가까이하고, 사환의 이야기에 집중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왕의 일을 계획할 만한 사람이 되지 못 하고, 겨우 나귀정도에만 마음을 빼앗기고 집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사울의 사환이 생각하는 게 뭐겠습니까? 정말 나귀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고민이 가장 컸을 것입니다. 또 집에 돌아가서 사울의 아버지에게 4일간의 경과를 보고하는 것을 고민했을 것입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무엇을 먹고, 어떻게 갈 것인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종에게는 나라의 일이란 전혀 관심도 없고, 범위를 넘어선 일입니다. 그런 종과 함께 있는 한, 그런 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한, 사울은 하나님의 것보다 너무 사소한 것에만 집중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사울에게서 사환을 떨어지게 하고, 사울로 하여금 세상을 향한 발걸음을 잠시 멈추라고 요구합니다. 바꿔 생각해 보면, 사울이 세상의 사소한 것들에 매달리지 말고, 하나님의 큰 것들에 마음을 두는 사람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비록 그런 시간이 길지 않다 하더라도, 지금 잠깐만이라도 그런 것을 경험해 보는 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이것을 경험하며 사는 게 중요합니다. 작고 사소한 것들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 되지 말고, 정말 중요한 하나님의 것에 중심을 두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한순간에 바뀔 만큼 쉽고 간단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에만 관심을 두고 살아가기 때문이고, 우리도 역시 그와 별반 다르지 않는 모습으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비록 지금 당장은 이 땅에서 발 디디고 살고 있긴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종처럼 이 땅의 작고 사소한 것들에 목매며 살 사람들이 아닙니다. 나귀의 뒤꽁무니를 따라 헤매는 종이 아니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중요한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야 하는 이들입니다.
이처럼 크고 중요한 신분이고, 중요한 일들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는 우리가 가진 신분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왕의 신분이면서도 여전히 종처럼 생각하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늘의 속한 사람이면서도 땅에 속한 자처럼 살면,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고 버리는 어리석은 사람밖에 안 됩니다.
더불어서 곁에 좋은 사람들을 두어야 합니다. 돈이 많고, 지위가 높고, 지식이 많은 사람들을 곁에 두는 것보다는, 정말 순수한 마음, 하나님의 나라를 매일 매순간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 그 나라를 위해 순결한 열정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곁에 두어야 합니다. 질이 나쁜 사람들을 곁에 두면, 나쁜 점들을 보고 닮아가는 것처럼, 좋은 사람, 좋은 신앙인들을 곁에 두면, 그것을 보고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날이 갈수록 하나님의 나라에 가까워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성숙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게 되었으면, 그에 집중해야 합니다. 집중하기 위해 세상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기도 해야 합니다. 여전히 세상을 향한 발걸음을 계속하면서, 하나님의 것에 집중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 속한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왕과 같은 고귀한 신분임을 알고,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기 위해, 곁에 신실한 사람들을 가까이 두어 좋은 것을 본받고, 함께 행하며, 우리에게 맡겨진 신분에 맞게 살면,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하시고, 고난 중에도 함께하시고 지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잠시 이 땅에 살아 가지만, 하늘에 속한 자임을 잊지 말고, 가까이 보이는 세상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을 위해 더 수고하고 애씀으로써, 온 세상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면서, 충성한 자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이후에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넘치는 복을 약속받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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