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190825)순종할 각오로 기도하십시오(삼상 10장 25-11장 3절)

청명하늘 2019. 8. 25. 13:50

순종할 각오로 기도하십시오

 

성경: 사무엘상 1025-113(423)

찬송: 401(주의 곁에 있을 때; 457), 320(나의 죄를 정케; 350)

설교: 20190825.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몇 년 전에 목회자 네 명이 만나서 편하게 여러 가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기도와 응답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러자 그 중 한 분이, 자신이 기도한 것을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시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신앙고백이나 간증처럼 한참 아주 열정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자신이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빨리 응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응답은 다른 무엇보다 음식에 대한 기도에서 받는다고 합니다. 먹고 싶지만 먹을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기도하면 전혀 예상하지 못 한 방법으로 생긴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갑자기 생선회가 먹고 싶은데,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거나 돈을 주고 구입한 것도 아닌데, 누군가가 생선회를 가져다준다는 것입니다. 또 어떨 때는 소고기나 치킨 등 쉽게 사먹기 부담되는 음식들이 갑자기 먹고 싶었는데, 누군가가 가져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저는 요리를 잘 못 합니다. 요리를 못 하면, 아무거나 잘 먹으면 되는데, 이 입이 얼마나 양심이 없는지, 못 먹는 것도 많고, 가리는 것도 많습니다. 또 혼자다 보니, 나가서 사먹는 것도 쉽지 않고, 좋아하지도 않지만, 갑자기 무슨 음식이 먹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전혀 생각하지 못 했던 경로를 통해, 그토록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게 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갑자기 뭐가 먹고 싶다고, 그것을 놓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또 그게 기도 응답의 좋은 경우라고도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꼭 먹고 싶은 음식을 당장이 아니라, 몇 달 계속 못 먹는다 하더라도 생명에는 지장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입이 덜 즐겁고, 덜 배부를 뿐이지, 죽고 사는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위대한 신앙인들 중에 죠지 뮬러 목사님이 있습니다. 이분은 특히 기도의 응답을 많이 받은 것으로 유명한데, 기도 응답을 어떻게 세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무려 5만 번의 응답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분의 이야기들 중에는, 먹을 음식에 대한 기도와 응답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이분은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했다는 것이고, 응답을 받아서 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먹을 것을 위한 이분의 기도와 응답이 납득되는 까닭은, 이분이 하는 일과 어려운 시기였다는 점 때문입니다.

 

이분은 1,800년대에 영국에서 큰 고아원을 운영했습니다. 이분이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돌본 아이들만 해도 3,000명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요즘 경제적으로 안정된 나라마다 사회보장 제도가 잘 갖춰 있습니다. 요즘이었으면 나라에서 많은 지원이 되었겠습니다만, 영국이 부유한 나라이긴 했어도, 당시는 지금 같은 제도가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경제적으로 도움이 안 되는 아이들을 돌보고 있으니,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필요하겠습니까? 또 그 무엇보다도 먹을 음식이 가장 필요하겠죠? 옷이야 헤진 것 입어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만, 한참 크는 아이들은 많이 먹고, 제대로 먹지 못 하면, 자칫 몸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고, 심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죠지 뮬러 목사님은 음식에 대해 기도했습니다. 당장 다음 날도 먹여야 하는 아이들은 많은데, 먹을 양식도 없고, 돈도 하나 없으니 기도할 수밖에 없겠죠? 그런데 또 그렇게 기도하면 어김없이 모두가 충분히 먹을 양식과 돈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먹을 것을 위한 기도라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그럼에도 고아들을 위해 기도한 죠지 뮬러 목사님의 기도는 좋은 기도로, 앞서 말씀드린 목사님의 기도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까닭이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고아들을 먹이기 위한 죠지 뮬러 목사님의 기도는 그것이 꼭 필요한 것을 구하는 기도이기 때문이고, 좀 더 좋은 것, 비싼 것을 먹는 것을 위한 기도는, 필요한 것을 넘어 욕심을 위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비싸고 좋은 음식은,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합니다만, 안 먹는다고 해서 죽을 일은 없습니다. 랍스타라고 하는 바닷가재, 생선회, 소고기 등 비싼 음식은 평생 안 먹는다고 해서 이것 때문에 죽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과는 상관없이 오직 입맛을 좌우할 뿐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이런 것을 먹고 싶을 때 하나님이 응답하신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이처럼 욕심을 위해 기도하면 어떻게 될까요? 혹 응답을 받아 기회가 주어지면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엉뚱하고도 이상하게 이용하게 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목사님이 그때 함께 한 다른 이야기가 이를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그 교회는 우리보다 재정이나 규모면에서 더 작고 어렵습니다. 교회나 사택도 지은 지 너무 오래되어서 다시 지어야 할 형편입니다. 다른 사업은 생각할 여건이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앞으로 교회를 유지할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고민일 만한 상황입니다.

 

그러던 중에, 어떤 계기로 외지에 있는 한 분이 1,000만원가량을 헌금했다고 합니다. 큰 교회에서야 금액이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만, 제가 알기로는, 그 교회 1년 수입의 절반 이상 되는 금액입니다. 그 동안 돈이 없어서 못 했던 일, 꼭 필요한 일에 써야겠죠? 그렇지 않으면, 더 큰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나중을 위해 저축해 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 한 일은, 모두가 70,80세 넘는 교인들과 함께 일본으로 선교 여행을 떠났다는 겁니다.

 

작은 교회에서도 필요하면 선교해야 합니다. 연세가 많은 분들이라도 할 수 있으면 동참하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연세 많은 분들을 모시고 왜 일본으로 갔는지, 일본에 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말은 선교 여행이지만, 실제는 일본 여행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재정이 바닥이 되면, 하나님이 다시 채워주실 거라는 생각으로, 1,000만원을 단 며칠간의 관광을 이용해 모두 써버리고, 또 바닥이 되면 채우시는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 대단한 믿음인 것처럼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을 보면서, 저로서는 도저히 납득도 안 되는 정도를 넘어 화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잘못되고, 그래서 응답에 대한 생각도 당연히 잘못된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고 구해야 하는 것은, 필요한 것들이지, 우리의 욕심과 욕망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도, 필요에 따라 구하지 않고, 자신들의 욕망에 따라 구한 것을 얻은 결과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이 기록되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종으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지역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새롭게 살게 될 가나안 땅은, 좋은 것들을 생산할 수 있는 기름진 땅이 아니었습니다. 가축을 기르기 좋은 너른 들과 물이 풍족한 곳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곳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약속하신 까닭은, 그곳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직접 다스리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통치가 맘에 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왕이 다스리는 다른 나라들과 달랐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축제를 열면, 술에 취하고, 온갖 음란하고 입맛을 즐겁게 하는 것들이 가득했습니다. 인간의 욕망과 욕심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이것들이 채워지는지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철저히 금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백성들마저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처럼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사들의 부정을 핑계로, 왕이 다스리는 나라를 세워 달라고 고집합니다. 그저 살아가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 하니, 자기들의 입을 즐겁게 할 것들을 달라는 것이고, 욕망을 채울 수 있도록 온갖 짓들을 할 수 있게 허용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백성들의 이 요구대로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드디어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세워집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백성들의 반응이 좀 이상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마다하면서까지, 그토록 이루고 싶었던 나라와 제도가 세워지고, 드디어 첫 번째 왕이 세워졌으면, 기뻐하는 것만으로도 모자랄 것 같은데, 본문에는 전혀 엉뚱한 반응을 보입니다.

 

먼저는 10장 마지막 부분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일부 불량배들이 사울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막상 왕이 세워지고, 이제 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되었지만, 자기들이 원하는 욕망을 채우기에는 부족해 보였습니다. 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되면, 모든 게 뜻대로 되고, 즐거울 것으로 기대했지만, 막상 사울이 왕으로 세워지고 보니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들의 욕심을 채워줄 만한 그릇도 안 되어 보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할 수 있겠느냐?”, 왕에게 바쳐야 하는 예물마저도 거부했습니다. 왕으로 인정하지 못 하겠다는 것이고, 사울의 통치도 거부하겠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왕에 대한 잘못된 반응은 113절까지 나오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로부터 나옵니다. 암몬 민족이 길르앗 야베스 지역을 공격해 왔습니다. 우리나라로 예를 들면, 임진왜란 때 일본이 우리나라 부산을 공격해 온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적이 공격해 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개인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을 만큼 적이 강하다면, 왕에게 알려야 합니다. 왕은 나라 전체를 통치하는 것이고, 많은 군사들을 끌고 와서 구해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먼저는, 적의 왕에게 가서 조약을 맺으면 섬기겠다고 제안합니다. 자신들이 그토록 고집해서 세운 자기들의 왕 사울이 있음에도, 사울이 아니라, 적의 왕인 나하스를 자신들의 왕으로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암몬 왕이 거부하자, 이번에는 3절에서 야베스 장로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에게 이레 동안 말미를 주어 우리가 이스라엘 온 지역에 전령들을 보내게 하라 만일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으면 네게 나아가리라고 합니다. 이제 왕이 세워졌으니, 전령은 왕이 보내야 하고, 왕이 군사들을 모아 끌고 오도록 명령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마치 왕이 없는 것처럼, 왕이 할 일을 자기들이 앞장서서 처리합니다. 왕의 통치와 명령을 거부하고, 여전히 자기들이 해오던 대로, 자기들 뜻대로 행동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을 세워 달라고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고집하며 세운 왕이었으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워진 왕의 통치를 따르고 협조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부 불량배들도 그렇고,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도 역시 사울을 왕으로 대우하지도 않고, 그 통치를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고, 오히려 적의 왕보다 더 무시하고 있습니다.

 

왕을 세우도록 기도하고, 그 바람대로 되었음에도, 이들이 이처럼 행동하는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애초에 왕을 바랐던 까닭이, 세상적인 욕심과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것이었고, 그러나 막상 왕이 세워졌음에도 그 빈자리가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이런 점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것들, 꼭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스스로 생각해 봐야 합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것보다, 시간을 정해 놓고 작정기도하고, 금식기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한 기도인지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정말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인지, 그리고 그게 누구에게 어떤 일에 유익이 되는지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자신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우리의 이웃에게도 좋은 도구와 계기가 된다면, 그것은 우리가 끈질기게 기도하며 응답을 바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토록 간절하게 원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위한 길에 지나지 않는다면, 또한 기도 응답이 이루어졌을 때, 오히려 자신에게도, 가정에게도, 이웃과 교회에도 오히려 해가 된다면, 그것은 잘못된 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간절함과 응답의 가치가 언제나 같은 것은 아니고, 간절함은 있으나 응답 이후에 오히려 나빠진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또 기도해 응답을 받으면, 그 응답이 어떤 형태로 주어든지 그에 순응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자세와 판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응답받기 위해 열심히, 많이 기도하는 것에 집중하지만, 막상 응답이 이루어졌을 때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과 계획도 없기 쉽습니다. 일단 응답을 받고 나면, 하나님의 뜻은 온데간데없고, 여전히 자기 욕심과 욕망대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자세로 기도하면, 응답을 받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혹 응답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 응답이 유익을 끼치지 못 하고 말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직접 통치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삶도 직접 이끄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면, 그곳이 거칠고 메마른 땅이라 할지라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통치하시면, 메마르고 거친 이 땅의 삶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욕망과 계획대로 되는 게 좋은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이루어지는 게 기쁨이고 참된 소망이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거룩한 마음과 순수한 믿음으로 기도하되, 하나님의 응답에 따라 살기로 다짐하며 행함으로써, 날마다 하나님의 이끄심 가운데, 복되고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