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 함께 승리하기
성경: 사무엘상 17장 50-58절(구 438쪽)
찬송: 315장(내 주 되신 주를; 통512), 358장(주의 진리 위해; 통400)
설교: 20200105. 주일낮예배
2020년의 첫 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땅의 크기는 작은 편입니다. 특히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과 북으로 갈려 있습니다. 남북의 땅을 합해도 넓지 않은 크기인데, 갈라져 있으니 훨씬 불리합니다.
작은 땅과 분단이라는 아주 불리한 여건임에도, 우리나라는 꽤 잘살고 있습니다. 먼저는 경제적인 부분을 들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운동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땅이 크고, 인구가 많은 나라임에도, 우리보다 못한 성적을 내는 나라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러 종목에서 꽤 좋은 성적을 냅니다.
2,30년 전과 비교해 가장 발달한 종목을 꼽으라면, 야구와 골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야구는 1980년부터 프로야구가 생겼지만, 수준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지금은 나라별 대회에서 우승을 견줄 만큼 되었습니다. 골프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는 ‘골프’라는 이름을 듣긴 했지만,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즐길 만한 여건도 안 되었고, 인기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야구와 골프 수준을 한순간에 높여준 사람들이 있습니다. 야구선수 박찬호와 골프선수 박세리입니다. 당시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또 그 나라에 야구와 골프의 수준이 어느 정도 되는지 전혀 몰랐을 것입니다.
그런 때에 박찬호 선수는 세계에서 야구 수준이 가장 높다는 미국의 프로야구에 진출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금액을 받고 활약했습니다. 박세리 골프선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전까지 골프에 대한 관심도 없고, 지식도 전혀 없을 때인데, 박세리 선수가 우승하는 장면을 TV를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IMF 경제 위기로 힘들어 하고 있을 때였는데, 이 선수들의 활약으로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 두 선수가 우리나라의 야구와 골프 수준을 직접적으로 높인 것은 아닙니다. 당시는 미국 프로야구나, 미국 프로골프라는 게, 우리나라 수준으로서는 도저히 넘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이나 외국에 진출한다는 것이 극히 드물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선수가 직접 진출해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을 보고,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었습니다.
당시 이 선수들이 활약하는 것을 보며 자란 아이들은 자신감을 갖고,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엔 생각조차 못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두 선수가 먼저 걸어간 과정을 보고 자라며, 실력과 자신감을 함께 갖게 된 선수들이 아주 많아졌습니다. 이들을 일컬어 ‘박찬호 키즈’ ‘박세리 키즈’라고 합니다. ‘키즈’란 ‘아이들’이라는 뜻인데, 어려서부터 박찬호 선수와 박세리 선수의 활약을 보고 자란 선수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길을 처음 개척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만, 또 그만큼 중요한 영향을 끼칩니다. 첫 시작과 시도조차 없다면, 시도하는 사람도 그만큼 적고, 또 늦어질 것입니다.
오늘 본문 속 다윗의 싸움과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런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블레셋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을 공격해 왔습니다. 그리고 거인 골리앗이 맨 앞에 섰습니다. 골리앗은 엄청난 덩치에 맞게, 크고 강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공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거대하고 강한 장수를 다윗이 상대합니다. 골리앗과 맞서 싸우려면, 흔히 말하는 대로 ‘상대가 되어야’ 하지만, 모든 조건에서 다윗은 골리앗의 상대가 되지 못 했습니다. 골리앗은 어려서부터 싸움터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상대가 안 될 만큼 거대한 몸집이었음을 보면, 아마 어려서부터 덩치가 거대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맞게 일찍 싸움터에 나가 싸움을 익히고, 많이 이겼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직 어린 소년에 불과했습니다. 여러 정황으로 판단해 보면, 겨우 14,5세 정도에 지나지 않는 소년입니다. 요즘이야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잘 먹고, 돌봄을 잘 받아서 덩치가 큽니다만,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이라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테니, 덩치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작고 힘이 약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골리앗이 모든 방비가 갖추어진 것과는 달리, 다윗은 전혀 보호 장비를 갖추고 있지 않았습니다. 사울 왕이 벗어주었던 갑옷과 투구도 너무 커서 벗어던졌습니다. 사울 왕의 칼도 몇 번 휘둘러 본 후에 다시 사울 왕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칼과 창은 없었지만, 골리앗에게는 없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하나님이 손에 달려 있습니다. 골리앗과 같은 사람은 생각조차 못 하고,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각만으로 끝내고 말았을 일들을, 다윗은 직접 골리앗과 맞서 싸움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증명해 보였습니다.
이 순간으로 전쟁의 형세가 반대로 바뀌게 됩니다. 골리앗을 앞세워 40일 동안이나 무적처럼 버티고 있던 블레셋 민족은 도망치기 급급합니다. 자기들의 땅까지 쫓겨서 죽거나 다친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40일 동안 숨어 있던 이스라엘 민족은, 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른 순간, 블레셋 민족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골리앗을 향해서 한걸음도 떼지 못 했지만, 이제는 적진 한가운데를 공격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블레셋 민족 땅까지 들어가 공격할 만큼 담대해졌습니다.
왕부터 모든 군사가 겁을 먹고 포기하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이, 이처럼 담대해지고 적의 본토까지 공격할 수 있게 된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어느 한순간에 강해진 것이 아닙니다. 한 순간에 적을 무찌를 만한 강하고 좋은 무기가 생긴 것도 아닙니다. 같은 무기를 들고 있고, 군사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딱 한 가지 바뀐 것이라면, 적장 골리앗이 다윗의 손에 의해 패하고 죽임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블레셋이 갑자기 약해진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것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 민족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자신들이 블레셋 민족을 이길 수 있다는 담대함을 얻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보여주는 것은 싸움의 기술이 아닙니다. 다윗이 무릿매를 돌려서 골리앗을 이겼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무릿매를 던져 블레셋 민족을 이긴 게 아닙니다. 다만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다윗이 이를 증명해 보이자, 더 이상 조건과 상황을 보지 않고 담대해졌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영적 전쟁으로 표현합니다. 우리도 지금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군사들과 세상의 군사들이 서로 맞서 싸우는 곳이 바로 세상이라는 전쟁터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처지는, 골리앗과 블레셋을 앞에 둔 이스라엘 군사들과 비슷합니다. 거인 골리앗 때문에, 이긴다는 생각은커녕, 싸울 용기조차 없어, 움츠러들어 숨기 급급한 것처럼, 우리는 사탄의 강함과 거대함에 겁을 먹고 주저앉아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도저히 싸울 수도 없고, 이길 수 없는 전쟁터에서, 예수님은 마치 다윗처럼 사탄과 싸우십니다. 예수님은 사탄이 갖는 세상적인 힘과 권력을 갖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에게는 골리앗이 가진 강한 무기도 없고, 골리앗이 입은 튼튼한 갑옷조차 입지 않았던 것처럼, 예수님에게는 사탄이 가진 좋은 조건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이 이기게 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나아간 다윗처럼, 예수님은 영의 전쟁 역시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 싸우면 이기게 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32,33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이라는 전쟁터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름과 능력을 힘입어 싸우셨고, 승리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예수님의 이름이나 능력을 자랑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우리로 하여금 영의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왜 다윗으로 하여금 왕의 갑옷이나 투구를 입지 못 하고, 가장 좋은 사울의 칼조차 사용하지 못 하도록 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다윗이 아직 어리고, 몸집이 작고 힘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다윗이 왕의 갑옷과 투구를 쓰고, 칼을 차고 골리앗을 이기면 백성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겠습니까?
왕의 갑옷이라면, 왕을 상징하는 어떤 표시들이 있겠죠?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는 보통 용의 모습으로 왕의 것임을 드러냈습니다. 사울 왕의 것도 왕을 상징하는 그림이나 형상이 있었을 것입니다. 칼도 역시 왕의 것이라면, 특별한 표시가 되어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알아볼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왕의 갑옷과 투구를 이용하고, 칼을 가지고 가서 골리앗을 이겼으면, 백성들은 모두 왕의 무기들로 이겼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왕이 가진 무기로 이겼으니, 왕의 갑옷을 입지 못 하고, 왕의 칼을 차지 못 한 자기들은 이길 수 없을 거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으로 하여금, 왕의 갑옷과 투구를 벗고, 왕의 칼마저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이름과 능력을 의지해 나아가 싸우게 하셨고 이기게 하셨습니다. 이 때문에 백성들도, 하나님의 능력과 이름을 의지해 적을 끝까지 추격해 무찌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로 하여금 왕의 갑옷과 투구 같은 것을 벗게 하시고, 왕의 칼 같은 것을 버리도록 만드실 때가 있습니다. 영의 전쟁에서, 아무것도 갖지 못 한 사람들처럼, 돈을 빼앗기도 하시고, 건강을 빼앗기도 하십니다. 우리의 계산으로는, 왕의 갑옷과 투구를 쓰고, 칼을 들고 나아가도 이기기 힘든데, 그것마저도 벗게 하시고, 가지지 못 하게 하시느냐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포기합니다. 돈과 건강과 좋은 여건이 마련되어도 싸우기 힘든데, 왜 우리에게서 그런 것마저 빼앗으시고, 빈털터리로 만드시냐고 원망하고 불평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왕의 갑옷과 투구를 벗고, 왕의 칼을 되돌려 주고, 마치 싸울 수 없는 사람처럼 빈손으로 나아가야만, 싸움의 기술과 자기 능력으로 이긴 게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손으로 이겼음을 알릴 수 있습니다. 백성들이 이를 보고 하나님의 이름과 능력으로 나아가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탄과 싸우시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적인 권력을 힘입어 싸우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적인 권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돈과 명예를 가지고 사탄과 싸우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목수로 사셨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 골리앗을 무찌른 것처럼, 예수님도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나아가 사탄을 무찌르셨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 골리앗을 무찌르자, 먼저 겁먹고 주저앉아 있던 백성들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 적을 끝까지 쫓아가 무찌른 것처럼, 예수님이 오직 하나님의 함께하심만을 믿고 나아가 사탄을 무찌르셨으니, 이제 우리도 하나님의 함께하심만 기억하면 싸워 이길 것입니다.
우리가 목표로 해야 할 것은 왕의 갑옷이나 투구가 아닙니다. 왕이 가진 칼자루가 아닙니다. 우리의 최종 목적은 적을 무찌르고 이기는 것입니다. 다윗이 왕의 갑옷과 투구, 왕의 칼을 차지 않고 골리앗과 싸워 이겼더니, 결국 왕의 것들보다 더 크고 좋은 것들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적을 무찌르자, 적진에 있던 것들과, 적의 땅에 있던 것들을 모두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역시 이 땅에서 목표해야 할 것은 이 땅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앞에 있는 악의 세력과 싸우면, 승리의 길을 열어 보여주신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면, 구원이라는 승리만이 아니라, 우리가 목표로 하지 않았던 좋은 것들까지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2020년의 첫 주일입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지만, 마치 거인 골리앗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처럼, 삶의 여러 질곡과 고난과 아픔 때문에 한숨 깊은 시간들을 보내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싸우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돈으로 싸우라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건강으로 사탄의 세력과 싸우라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물질과 건강이 있다 하더라도, 골리앗과 같은 사탄이 가진 것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이름과 능력과 약속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예수님으로 가장 먼저 생명과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으니, 이제 우리는 이를 확신하며 나아가면 됩니다.
이제 시작된 2020년을 예수님 키즈로 살아갑시다.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길을 바라며 담대하게 행하는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연약한 삶을 사셨으나,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하셨으니, 이제 우리의 올 한 해와 앞날의 모든 과정도 승리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음을 믿고 나아가면, 영의 전쟁에서도, 이 땅의 삶에서도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다윗을 통해 주시는 말씀, 먼저 모범을 보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대로 행하며 따라 살아감으로써, 모든 과정에서 승리하고, 하나님의 넘치는 복을 받고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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