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에 지혜와 절제를 더해야
성경: 열왕기상 7장 1-12절(구 521쪽)
찬송: 535장(주 예수 대문 밖에), 484장(내 맘의 주여 소망 되소서)
설교: 20220403.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어렸을 때, 밭일을 도와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어릴 때 농사를 돕는 게 쉽지 않겠지만, 무엇보다 밭까지 가는 과정이 힘들었습니다. 동네에서 가장 끝에 있는 밭이고, 집은 반대편에 있어서 거의 1.5km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보통 성인 걸음으로도 20분정도 걸어야 하는 거리죠.
거리도 멀지만, 무엇보다 비료나 여러 농자재를 수레에 싣고 밭까지 가야 할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중간에 있는 언덕길 하나를 넘어 가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높이라 해봤자 겨우 1.5m가량 될 뿐인데도 무거운 짐을 실으면, 쉽지 않습니다. 수레를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고, 10m 앞에서 힘차게 달려도 오르지 못 해, 몇 번 반복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수년 동안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이 고민이 한 번에 해결되었습니다. 경운기 한 대를 구입했기 때문입니다. 경운기를 샀더니, 오갈 때도 편히 앉아 갈 수 있었습니다. 수레에 싣던 짐보다 몇 배를 더 실어도, 언제나 힘겨웠던 언덕길을 만나도 고민하지도 않았고, 전혀 힘들지도 않았었습니다.
짐을 싣고 옮기는 과정에서만이 아니었습니다. 농약 분무기를 달면, 몇 배 빠르고 쉽게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쟁기를 달면 밭을 갈 수도 있었고, 밭을 갈고 난 후 흙을 잘게 갈아주는 작업도 할 수 있었습니다. 경운기 하나를 구입해서 얻는 편리함이 얼마나 크고 많았는지 모릅니다.
이처럼 편하고 좋은 기계지만, 경운기로 인해 생기는 사고도 적지 않습니다. 농사를 목적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안전장치가 없다시피 합니다. 또, 경운기를 운행하기 위해서 시험을 보거나, 면허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어른이나 경험자에게 몇 마디 조언을 받는 게 전부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방향을 틀다 핸들에 무릎을 다치는 일은 수없이 겪었습니다. 조작을 잘못해서, 작업하다가 넘어지고 다치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경운기로 인한 사망 사고도 해마다 적지 않게 일어납니다.
모두가 갖고 누리기 바라는 대부분도 이와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갖고 누리면 편하고 좋습니다. 많이 누릴수록 수고와 어려움을 줄일 수 있고, 편함과 기쁨의 범위도 훨씬 커집니다.
어느 한 배우가, 이야기를 나누고, 애장품을 나누는 한 프로그램에 나왔습니다. ‘애장품’이란 ‘좋아하고 소중히 여기는 물품’입니다. 그런데 이 배우가 가져온 애장품은 현금이었습니다. 방송에서 의도한 목적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이죠. 설마 방송 프로그램에서 출연자에게 돈을 가져와 시청자에게 나누라고 계획하지는 않았겠죠. 그래서 진행자가 안 받겠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자, 배우가 ‘애장품’으로 현금을 가져온 이유를 개인마다 좋아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라 설명합니다. 자기는 귀하게 여기고 좋아해서 가져온 물건이 남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물건이 될 수 있습니다.
목회자는 앞에서 설교할 때마다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매죠. 그래서인지 선물로 넥타이를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넥타이나 매고, 모양을 가꾸고 꾸미는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지금까지 넥타이조차 맬 줄 모릅니다. 그래서 지퍼 형식으로 된 넥타이 몇 개, 혹은 누군가가 매준 넥타이를 풀지 않고, 그대로 벗어서 놔뒀다 사용합니다. 그러다 보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넥타이만 점차 쌓여가고 있습니다. 넥타이를 선물한 분들은, 멋을 내도록 많은 돈을 들여 구입하고 선물했는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전혀 아끼는 물건이 되지 못 합니다.
현금을 애장품으로 가져온 배우도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 누구도 싫어하지 않고 좋아할 만한 것, 말 그대로 모두의 ‘애장품’을 생각해 보니 현금밖에 찾지 못 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돈은 매력 있습니다. 누구나 갖고 누리길 소망합니다.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온갖 수고와 노력을 쉬지 않습니다. 남보다 더 많이 벌면 으스대고, 남보다 적게 벌면 괜히 주눅 들기도 하고, 실망합니다.
돈만 이렇겠습니까? 권력도 그렇고, 편하고 호화로운 생활도 마찬가집니다. 모두가 부귀영화를 좋아하고, 이를 더 많이 누리고, 더 오래 누리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경쟁과 싸움을 이어가는지 모릅니다.
부귀영화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이를 지혜롭게 이용하면, 삶을 윤택하고, 평안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리석게 이용하면, 오히려 삶을 갉아먹고, 영혼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이는 그 누구보다 솔로몬의 삶을 통해서 분명하게 확인됩니다.
오늘 본문은, 솔로몬이 자기의 궁전을 짓는 과정과 내용입니다. 본문 앞에서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합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길이 27m, 너비 9m, 높이 13.5m가량의 크기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천 년 전이라는 점을 생각해도, 엄청난 규모라 보긴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이 성전을 짓는 데 7년이 걸렸습니다. 그만큼 조심스럽고 거룩하게 건축했습니다.
이렇게 성전을 지은 후, 자기가 살 궁을 짓기 시작합니다. 길이가 45m, 너비가 22.5m, 높이가 13.5m가량 됩니다. 성전과 비교해 보면, 높이는 같지만, 면적으로 보면 차이가 큽니다. 성전이 73.5평가량인 반면, 궁은 306평정도 됩니다. 또 공사 기간도 성전 건축하는 데 7년인 반면, 궁을 건축하는 데에는 13년이 걸렸습니다.
솔로몬이 성전과 궁을 짓는 규모와 과정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무엇보다 두 가지 면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는, 마태복음 6장 33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선순위를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점을 배울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분량으로 기준 삼으신다면, 솔로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을까요? 성전을 짓는 데는 7년, 궁을 짓는 데는 13년 걸렸습니다. 건축 면적으로 봐도, 궁이 성전보다 4배정도 더 큽니다. 분량으로 보면, 솔로몬은 하나님보다는 자신을 위해 더 많이 애썼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헌신과 수고의 분량으로만 보셨다면, 솔로몬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위한 수고보다는 자신을 위해 몇 배 더 많이 투자했다며 질책을 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어 궁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를 책망하신 적이 없습니다. 기간과 규모로 보면, 하나님보다는 자신을 위해 몇 배를 투자하고 노력했음에도, 솔로몬의 수고와 헌신을 그대로 인정하셨습니다. 이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헌신의 시간과 분량이 아니라,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고, 순서를 어떻게 하느냐를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일부 교회, 목회자들이 많이 바칠수록 복을 받는다고 가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여러 문제가 일어나곤 합니다.
몇 년 전에, 헌금 때문에 큰 사고가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남편이 원양어선을 타서 번 돈 1억 5천만 원을 아내에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부인이 남편의 동의나 허락 없이, 이를 모두 교회에 헌금했습니다. 남편이 돌아와 이를 알고, 교회에 돌려달라고 했다가 거부당하자, 흉기를 휘둘러 목사 부부를 비롯해 세 사람이 크게 다치게 되었습니다.
이 여성이 거액을 교회에 헌금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도 헌금과 헌신의 분량에 따라 복을 받는다고 배웠거나, 그렇게 믿었기 때문이겠죠. 물론 이는 아주 극단적인 경우지만, 이와 비슷한 경우는 적지 않습니다. 세상 종말을 이용하는 이단과 사이비의 주장도 똑같습니다. 많이 바칠수록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모두 바칠수록 하나님은 복을 많이 주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뜻은 이와 전혀 다릅니다. 목숨을 다하고, 가진 모두를 바칠 만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사랑하기를 원하시지, 가진 모든 재산과 시간을 하나님만을 위해 바치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이런 이들을 기뻐하시고, 복 주신다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가 효도하기를 바라죠. 그런데 부모를 잘 섬기기 위해, 자녀가 직장도 그만두고, 재산도 모두 팔고, 노숙자처럼 살면 어떨까요? 부모님이 그런 자녀를 칭찬하고 좋아하겠습니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겠습니까? 부모님을 사랑하고, 잘 섬긴다는 말은, 그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 부모님을 먼저 생각하고, 섬긴다는 순서를 뜻하지, 분량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는 바도 이와 마찬가집니다. 다른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위하기를 원하시지, 모두 바치고, 오직 하나님의 일만 하는 사람을 좋아하신다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규모로도 그렇고, 건축 기간으로 봐도, 솔로몬은 하나님께 모두를 바쳤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자기를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책망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복과 은혜를 거두시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와 결단 자체만으로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인정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성전과 궁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두 번째는 ‘그럼에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량보다는 순서를 귀중하게 여기시고, 그렇게 사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지만, 그럼에도 이를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바른 기준과 절제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못 하면, 부귀영화의 선물이 자칫 교만과 실패의 이유와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바로 여기에 해당됩니다. 부귀영화를 넘치게 받았지만, 지혜와 절제를 더하지 못 해, 오히려 실패를 향한 걸음을 재촉하고 말았습니다. 성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하고 거대한 궁을 지은 후, 그곳에 칠백 명의 아내와 300명의 첩을 두었습니다. 왕으로서 다른 나라와 정치적인 목적으로 교류와 혼인을 했다 하더라도, 이처럼 많은 여인들을 둔 이유는 다른 그 무엇보다 자기 욕심과 욕망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와 복을 누리는 과정에서 절제와 지혜를 더하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나이에 따라 아주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왕이 되어 성전을 짓기 전까지는, 지혜롭고, 겸손하고, 신실했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여러 복을 주실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성전을 지은 이후에는, 점차 하나님을 향한 믿음보다는 자기 자랑과 욕심을 위해 살았습니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많은 복을 받았지만, 그 복을 자기 욕망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이 때문에 솔로몬의 노년은, 전도서 1장 2절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는 고백처럼, 헛된 것을 위해 살아온 날들을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그처럼 욕망과 쾌락과 자랑을 위해 애썼더니,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허무함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솔로몬의 삶을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바로 배워야 하고, 지혜롭게 선택해야 합니다. 바라고 원하는 것들을 찾아 향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노력하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우선순위를 바르게 둘 줄 알아야 하고, 받은 복을 헛되이 쓰지 않는 지혜와 안목이 더 필요합니다. 모두가 부귀영화를 좋아하고, 크기는 각기 다르겠지만, 이를 목표로 살아간다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돈과 명예와 풍성하고 여유로운 삶을 목표로 삼고, 노력하는 자세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만약 부귀영화 자체가 나쁘다면,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복으로 말씀하지 않으셨겠죠. 부귀와 영화로운 삶은 분명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선물입니다.
그러나 부귀영화가 계속 복으로 유지되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통해 이 땅과 내생까지 더욱 풍성해지려면, 반드시 지혜로 살펴야 하고, 절제로 기준을 삼아야 합니다. 브레이크(브레이크)가 없으면, 빨리 달리고, 멀리 갈수록 더 크게 다치는 것처럼, 지혜와 절제와 인내가 없는 부귀영화는 우리로 하여금 교만과 실패와 죽음으로 이끄는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복으로 주신 부귀영화 자체는 좋은 도구이고 선물이지만, 이를 사용하는 방향과 목적과 방법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달라집니다. 부귀영화 자체를 목적으로 삼거나, 이기적인 목적으로 이를 누리면, 결국 초라하고 허무한 끝을 맞이하게 됩니다. 지금 갖고 누리는 자체만으로도,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앞세우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멀리 바라보는 안목과 지혜와 절제를 더해야 비로소 풍성하고 기쁨이 가득한 삶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세상에서 가장 부자였습니다. 권력과 명예로 봐도 솔로몬보다 더 크게 받은 사람도 찾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솔로몬의 삶은 평안과 기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부귀영화를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질수록 기쁨과 은혜가 더 커지리라 기대했겠지만, 그 끝은 허무함으로 가득했습니다. 오히려 초라해지고, 허무해졌습니다. 그 속에 절제와 참된 지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처럼 많이 갖고 누린 사람조차도, 그 끝에서 허무함만 마주하게 되었다면, 오늘 우리가 향해 나아가야 할 길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복과 은혜를 욕망의 기준으로 나누지 말고, 오히려 감사하며, 절제와 인내를 더해야 합니다. 삶의 끝자락은, 무엇을 얼마나 갖고 누리느냐에 따르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과 은혜에 무엇으로 덧입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솔로몬은 삶으로 부귀영화의 목적과 결과를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인정하신 이유와 과정과 더불어, 허무하고 실패하게 된 원인까지 기억함으로써, 솔로몬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부귀영화의 복을 받고, 더불어 이에 지혜와 절제와 인내를 더함으로써, 하나님이 주신 복들을 통해 영생을 향한 걸음까지 윤택하게 만드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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