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만나는 하나님의 능력
성경: 마가복음 1장 2-8절(신 53쪽)
찬송: 365(마음속에 근심; 통484), 569장(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 통442)
설교: 20170312.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을 향한 바른 마음으로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우리나라에 크고 높은 건물들이 많죠? 또 계속 더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어떤 것인지 아세요? 63빌딩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죠? ①이 빌딩은 1980년에 건설을 시작해 5년만에 완공된 되었는데, 그 높이가 249m라고 합니다. 건설될 당시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에서도 가장 높은 건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63빌딩이 아닙니다. 이것보다 높은 건물이 4개나 있습니다. 251m짜리인 목동의 하이페리온이라는 건물이 4위고, 3위는 도곡동에 있는 264m의 타워팰리스라는 빌딩이고, 2위는 서울국제금융센터인데 279m입니다. 게다가 338m 건물이 내년에 완공 예정이고, 올해 완공된 제2롯데월드라는 건물은 무려 555m입니다. ②이 건물이 완공돼서 다음 달에 공식 개장한다고 하는데, 당분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건물, 전세계에서도 다섯 번째로 높은 건물이 됩니다. 작년에 서울에 갔을 때 이 건물을 봤는데, 높이가 워낙 높다보니, 주위에 있는 몇 십 층짜리 건물들이 아주 작은 건물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말이 555m지, 이것은 높이만이 아니라 거리로도 짧은 거리가 아닙니다. 평지에서도 이 거리를 걸으려고 하면, 웬만한 성인들은 10분가량 걸려야 합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알고 있던 63빌딩이 249m이니, 이 것보다 두 배 이상의 높이입니다. 63빌딩이 세워졌을 때, 이것이 우리나라의 기술력을 상징하는 건물이기도 했고, 63빌딩이 얼마나 높고, 또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한 번 정도는 가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30년 정도 지나니 이보다 더 높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두 배보다 더 높은 건물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사람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더불어서 사람이 서로 힘을 합하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일을 해내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지혜와 능력을 모으면 이렇게 위대한 일들을 해낼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은 함께 모여 사는 특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인간이 이렇게 모이지 않으면, 자연에서 차지하는 인간의 지위는 거의 밑자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을 표현할 때 약육강식, 적자생존이라는 말을 사용하곤 합니다. 약한 것은 강한 것에 먹히고, 자연에서 살아남을 만한 능력이 있어야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정말 능력이 없습니다. 사자나 호랑이처럼 강한 힘과 발톱을 가지고 있지 못 합니다. 곰이나 코끼리처럼 덩치가 크지도 못 합니다. 그렇다고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도 없고, 어류들처럼 물속에서 머물러 있지도 못 합니다. 뿐만 아니라, 치타나 노루처럼 다른 동물보다 빠르지도 못 합니다. 그러니 다른 무리들 앞에 서면, 인간은 다른 것들의 먹이가 되기 십상입니다.
이렇게 다른 짐승들에 비해 특별한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인간은 살아남고 지배하기 위해 모여 사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선택이 맞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인간은 다른 생명체가 만들어내지 못 한 것들을 셀 수 없이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그 수준은 인간인 우리 스스로 보기에도 크고 놀랍습니다. 앞으로 또 몇 년이 지나면, 우리의 상상으로나 가능했던 일들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828m짜리 빌딩이 지어졌고, 20년 동안 연료를 넣지 않아도 다닐 수 있는 항공모함이 만들어졌고, 높이만 약 60m 하는 수송선이 이미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인간이 모여서 힘을 보태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일들을 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기도 하지만, 더불어서 역사가 길어질수록 인간은 더욱 더 힘을 모으고 함께함으로써 인간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욕망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욕망은 성경에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1장에 인간이 바벨탑을 쌓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인간은 모두 같은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어디에 사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말이 통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탑을 쌓는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말들을 서로 다르게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사람들의 말을 하나님께서 다르게 하신 까닭은, 인간이 단지 높은 곳을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 높은 곳을 짓고자 하는 인간의 마음 때문입니다.
인간이 바벨탑을 쌓기에 바로 앞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홍수로써 멸망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그 어떤 것들보다 인간을 특별히 사랑하셨음에도, 인간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언제나 악하고 더러운 것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가족들을 통해서 거룩하고 깨끗한 세상으로 거듭나게 하시려고, 물로써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인간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만 보면 두려워하게 됩니다. 혹시 조상들로부터 전해져 오던, 홍수로 세상이 멸망하지 않을까? 다시 온 세상의 모든 것이 물에 잠겨 죽고 뒤엎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계속 두려워합니다.
인간의 이런 두려움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물로는 세상을 다시 심판하시지 않겠다는 뜻으로 무지개를 주셨습니다. 비가 자주 내리더라도, 무지개가 보이면,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그 약속을 기억하며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본성이 더럽고 비뚤어진 인간은 하나님의 이 약속마저 믿지 못 합니다. 물로 심판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증표로 무지개를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면 이것을 절대적으로 신뢰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의 이 약속을 믿지 못 하고, 자기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홍수로 심판하실 것을 대비해서 당시 사람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탑을 쌓았습니다. 세상이 다시 홍수로 심판을 받아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③ 인간의 이런 본성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습니다. 모여서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욕망을 바탕으로 무리를 짓기 시작하고, 도시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은 능력 있는 존재가 아니라 사실은 철저히 무능한 존재임을 인정할 때, 사람의 것을 얼마나 많이 세우고 만들어 갈 때가 아니라, 사람의 것을 모두 없애서, 오직 하늘의 것에만 소망을 가질 때, 사람끼리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집할 때가 아니라, 이런 고집을 모두 버리고 하나님만을 바라볼 때가 되어서야, 하나님이 세상을 바꾸시고, 인간의 바탕이 바뀔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광야에서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는 하는 요한의 모습과, 그가 선포하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요한의 이런 모습을 다른 복음서에서는 다르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3장 1절에서는 유대 광야라 했고, 누가복음 3장 3절에서는 요단강 근처라는 지명이 등장하는데, 마가복음에서는 별다른 지명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다른 것보다 광야라는 곳이 가지는 의미를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보통 ‘광야’라고 하면 크고 넓은 들을 떠올리기 쉽습니다만, 성경에서는 광야라는 말이 단순히 넓은 장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④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만들어 놓은 문화, 시설, 제도, 정치 등이 모여 있는 곳이 도시라고 하면, 반대로 이런 모든 것이 전혀 없는 곳, 그래서 인간이 그 어떤 것에도 의존할 수 없는 자리, 그런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이렇게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고, 우리의 힘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항복할 때가 되어서야 하나님께서 오셔서 간섭하시고,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인간은 본래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교만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드시고, 사람이 가장 살기 좋은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그곳에서 인간을 두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뱀의 모양을 한 사탄이 와서 인간에게 하나님과 동등하게 될 수 있다고,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셨고,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창조과정에서 한 것이 전혀 없으니 내세울 것도 당연히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 했습니다.
바벨탑을 쌓은 까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벨탑을 쌓으면서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과 비교하면, 인간이 아무리 높은 빌딩이나 탑을 쌓은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보기에 200m, 500m 빌딩이 엄청나고 대단한 것 같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우주에 비하면, 아니 거창하게 우주까지 아니더라도 지구에 비교하더라도 새발의 피도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인간은 이렇게 자기가 만들어 놓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있으면, 그것 때문에 살았다고, 그것을 통해 해냈다고 착각하기 마련입니다. 인간의 이런 못된 습성을 아시는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신다는 복음의 소식을, 인간이 많이 모여 있는 도시,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 놓은 문명이 있는 곳에서 말씀하시지 않고, 인간의 손길이 없는 광야에서 듣게 하셨습니다. 그것도 요한이라는 세상 권력도, 재산도 없이 광야에서 마치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은 것처럼 살아가는 이를 통해 전해지도록 하셨습니다.
마가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가복음을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들을 위한 구원의 시작이, 인간에게 마땅한 자격이 있어서나, 인간의 노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시작하게 하시고 선물하셨음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또 인간의 도움이나 간섭이 전혀 없고, 오직 하나님의 결정과 은혜로 인해 복음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구약성경에 예언되었음을 함께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미래의 일을 알 수 없습니다. 과거의 여러 경험을 통해, 또 과학적인 자료를 통해 몇 가지를 예측할 수는 있어도, 미래에 어떤 일이 있을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미래라는 시간은 모두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결정하실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 700여 년 전 경에 활동했던 이사야 선지자가 구원자로 오시는 예수님을 예언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 예수님보다 먼저 와서 준비하는 요한까지 모두 예언했습니다. 만일 지금 우리에게 700년 후의 세상이 어떨지를 묻는다면 우리가 답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답을 못 내리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오시기 700년 전에 살았던 이사야는 예수님만이 아니라, 세례 요한마저 예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명령과 영감이 아니었으면 알 수 없는 너무나 긴 시간이었지만, 인간의 능력과는 무관하게 하나님의 그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첫 번째 조상인 아담의 길을 끊임없이 따라 걷고 있습니다.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던 아담과 하와와 같은 마음을 여전히 가지고 있고, 물로 심판을 받아 하나님의 무서움을 알았음에도, 모이고 힘을 모으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며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여전히 품고 살아갑니다. 조상들이 걸었던 교만함에 익숙해져 있었고, 죽음의 길을 가면서도 그 길이 마치 정답인 것처럼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길을 선택하기를 즐겼고, 자기의 고집을 꺾지 못 해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세례를 주면서 단순히 사람의 전통을 따르는 종교의식으로서 세례를 준 것이 아니라,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여기에서 ‘회개’는 단순히 죄를 뉘우치거나 자복하는 정도가 아닌, ‘하나님을 향한 근본적인 마음의 전향’을 의미합니다. 원어의 의미로는 ‘달리 생각하다’라는 뜻인데, 마음이나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고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생각, 그리스도에 대한 잘못된 것을 완전히 바꾸는 것입니다. 그 동안의 잘못된 생각에서 방향을 바꿔 처음 주님과 맺었던 관계로 돌아오라는 뜻이며, 세상적인 것, 인간적인 교만이 있지 않은 광야로 돌아오라는 말씀입니다.
광야에는 이집트에서 먹었던 좋은 음식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생명의 만나가 있었습니다. 인간이 만나 힘을 합해 만들어 놓은 편하고 좋은 시설도 전혀 없었지만,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편히 눕고 쉴 집을 지을 수는 없었지만, 광야에서 매일 매일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복을 누렸습니다.
우리에게도 믿음의 광야가 필요할 때입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생기면, 어린아이처럼 자기가 직접 해결할 수 있다고 고집을 필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문제가 버거워지면 사람이나, 사람이 만들어 놓은 어떤 것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인간적인 길과 방법을 사용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광야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인간의 제도와 힘에 의지할수록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광야가 필요합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 동안 하나님 없이도 할 수 있다는 교만을 버리는 것이고,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고 채워가는 게 아니라, 우리 속에 광야라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자리를 마련해 가는 것입니다. 다른 무엇도, 다른 누구도 의지하려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장 3절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모두가 비록 세상적인 편리함이나 이익이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강과 인도하심을 바라고, 영적인 광야, 인간의 교만과 욕심이 설 수 없는 곳에 섬으로써 오늘도 승리하는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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