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170409)제자로 부르셨습니다(막 1장 16-20절)

청명하늘 2018. 3. 6. 23:23

제자로 부르심과 훈련

 

성경: 마가복음 116-20(53)

찬송: 279(인애하신 구세주여; 337), 456(거친 세상에서; 509)

설교: 20170409.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을 향한 마음으로 참된 예배를 드리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다음 주일은 오늘 광고된 것처럼 부활주일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관심도 별로 없을 수도 있고, 잘 모르실 수도 있는데, 이번 주일은 종려주일이자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닷새 전에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십니다. 이때 예수님은 겸손의 의미를 담아 당나귀 새끼 위에 앉아서 성에 들어가시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를 구원해 주십시오라는 뜻의 호산나를 외치면서, 종려나무를 흔들었다고 해서 종려주일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종려나무보다는 야자나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마지막 큰 고난이 시작된 주간이라고 해서 오늘부터 부활주일 전날인 토요일까지를 고난주간이라고 합니다.

 

부활절이 다가오면 많은 교회와 목회자는 이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가지고 준비합니다. 부활절만이 아니라, 부활절 한 주 전에 시작되는 고난주간이 되면, 며칠씩 금식하며 기도하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사순절 즉 부활절 40일 전부터 특별기도회를 하거나, 경건하게 지내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겪어봐서 잘 아시겠지만, 저는 이런 것에 크게 얽매이거나 강조하지 않습니다. 여러분께 말씀 안 드리는 정도가 아니라, 저 스스로도 이런 것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몇 가지 까닭이 있습니다만, 무엇보다도 꼭 필요한 것에는 관심이 없으면서도, 교회 절기를 지키고 참여하는 것 자체를 신앙생활의 전부라고 생각할 위험이 크다는 점 때문입니다.

 

교회는 잘 다니고, 예배는 매시간 앉아있고, 절기마다 헌금도 많이 하고, 사순절이 되면 더욱 특별히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고, 더욱 조용하고 검소하게 지냅니다. 금식도 하고, 기도도 많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외의 것에는 관심도 없고 지키려는 생각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거룩하다고 말할 수도 없고, 경건하게 신앙생활한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것이 오히려 다른 어떤 것보다 가장 쉬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생활이 엉망인 교인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교회에서는 물론 동네에서도 손가락질 받고 삽니다. 자기 혼자 거룩한 척 착각 속에 사는데, 교회에서도 동네에서도 어울릴 사람이 없고, 할 일도 없으니 예배당에서 살다시피 합니다. 예배 시간에 앉아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기도 많이 하고, 성경을 몇 번씩 읽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의 모습을 거룩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긴 시간 기도하는 것이 거룩합니까? 이런 사람이 며칠씩 금식하는 것이 좋은 신앙생활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헌금을 엄청나게 많이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이렇게 사는 사람에게는, 사랑과 겸손과 온유와 화평과 절제 등은 너무 어려우니 아예 관심도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런 것이 신앙생활에 중요하지 않다고 핑계를 대면서, 자기가 가장 쉽게 잘 할 수 있는 것만을 골라 지키면서 그것이 신앙의 완성이라고 착각하며 만족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절기를 준비하고, 잘 지키고 행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귀하고 필요한 것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고난주간에 며칠, 몇 끼 금식하는 것보다, 이사야 586절의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말씀처럼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돕고 위로해주는 것이 훨씬 귀합니다. 그러나 어렵습니다.

 

거룩함과 경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고보서 126,27절에서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기도하고 금식하는 것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귀합니다. 어떤 자녀가 평소에 부모님께 잘하는 것과, 생일에만 잘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좋고 또 어렵겠습니까?

 

자기에게 가장 쉬운 자기 나름의 기준을 만들어 놓고, 그것만 지키면 다 된 것처럼 여기는 모습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 종려나무를 흔들며 환호하며 성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람들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 예수님을 환영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얼마나 우렁찼는지, 성에 소동이 일어난 것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이 사람들에겐, 나귀를 타고 오는 예수님을 향해 나뭇가지를 흔들고, 옷을 깔고, 엎드려 절하며 환호하는 것이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돈 없고, 할 일 없는 사람들인지라, 구경삼아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몰려들었고, 한 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 너도 나도 따라했을 뿐입니다. 쉬운 일이었고, 고민이 필요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향해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고, 이들의 모습을 보고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신앙이란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우리의 삶에서 만들어가는 것이고, 신앙생활이란 내게 쉽고 간단한 일을 추려서 해나가는 게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행하신 일들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에서 구체화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예수님이 3년 동안의 공생애에서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심혈을 기울이신 일이 바로 제자를 부르시고 훈련하신 일입니다. 예수님이 30세까지는 일반적인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30세쯤 되었을 때에, 드디어 이 땅을 구원하시는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이것을 많은 사람을 위한 삶이라고 해서 공생애라고 하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에 남은 것이라고는 제자들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재산도 없었고, 가족도, 명예도 없었지만, 그 동안 훈련시킨 제자 몇 사람만이 남아서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전하고, 세상에 구원의 방법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지혜로운 건축자처럼, 교회의 터를 닦아주었고, 우리는 그들이 전해준 성경, 가르침과 삶을 통해 교회를 세웠고, 신앙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역이라 할 수 있는 제자를 세우고 만들어가는 이 과정을 통해, 예수님이 제자를 만드는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12 제자들의 출신지를 보면, 가룟 유다를 제외하고는 모두 갈릴리 지방 출신이었습니다. 갈릴리라는 지역은 갈릴리 바다를 중심으로 사는 곳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지형을 보면, 남쪽에 유대 지역이 있고, 유대의 북쪽에는 사마리아, 사마리아의 북쪽에는 갈릴리가 있었습니다. 사마리아라는 지역은, 유대인들로부터 철저히 무시되고 소외되었습니다. 심지어 사마리아 사람들과 말을 섞는 것 자체가 부끄럽게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사마리아 지역이 이방인들의 씨가 섞인 곳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옛날 우리나라에서 오랑캐와 피가 섞인 사람들을 욕하고 무시하던 것과 비슷합니다.

 

사마리아의 북쪽에 있는 갈릴리 지역은 법적으로나 민족적으로 차별 받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유대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평소에 힘없는 사람들,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도 혜택을 받지 못 하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기 때문에, 이렇다 할 만한 인물들이 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갈릴리 출신이라는 것은, 미래의 어떤 인물이 될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 곳입니다. 마치 싹수가 노랗다라는 말처럼, 성공과 출세의 기회가 희박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셨고, 그들을 통해 복음이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해지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역하시는 방법은 인간의 방법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간혹 운동 경기나, 내각을 구성할 때 드림팀이라는 말을 쓰곤 합니다. 마치 꿈에서나 나올 법할 정도로 가장 뛰어나고 완벽한 사람들이 모였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그 결과를 보면 허점투성이고, 실수와 실패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자들, 무시 받고, 무능한 자들을 부르셔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완벽한 사역을 이루어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의 모습에서 배울 수 있는 두 번째 것은, 현재 자기의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어부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와 더불어 예수님께서 이들을 부르시는 순간까지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다하고 있었습니다. 시몬과 안드레는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그물을 깁고 있었습니다. 조업을 마치고, 다음 작업을 위해 미리 준비하고 수고하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어떤 특별한 종교적 환경, 즉 산속 기도원에서 금식 기도 중인 사람들을 부르신 게 아니고, 각자의 삶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을 흔히 교회 내의 일에 한정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회 내에서 수고하고 애쓰는 것도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위해 애쓰는 것도 이것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열정과 열심을 다할 수 있는 일, 하면 할수록 기쁨을 느끼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교회 내에서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이것을 뒤로 하고, 교회에서 청소하고, 모임에 잘 참석하고, 봉사하는 것을 한다면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전에 있던 교회에서 제가 담당하고 있던 교구의 한 권사님이 상담해 오신 일이 있습니다. 이분이 몇 년 동안 구역장이나 구역 인도자를 맡으셨고, 담임 목사님은 그 다음 해에도 그 권사님이 그 일을 계속 맡아서 해달라고 권했습니다. 제가 봐도, 이분의 남편은 대학 교수고, 두 아들은 장성해서 부유하고 시간적 여유도 충분해 보였습니다. 그 구역에서 그분이 중심을 잡아주고 이끌어주는 게 가장 좋아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확답을 안 주던 상황에서 제가 상담해 온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대학교에서 상담학을 전공했는데,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는 겁니다. 그런데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면,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교회 일과 구역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텐데, 이게 하나님이 맡기신 일에 불순종한 것은 아닌지, 또 다른 교인들이 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공부를 포기할지 구역 일을 포기할지 고민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권사님이 교회에서 열심히 수고하고, 또 구역 일을 열심히 하는 것 참 감사한 일이지만, 권사님이 아니어도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을 세우셔서 교회와 구역은 운영됩니다. 하지만 상담은 권사님이 아니면 새로운 인재를 만들어 내는 데 시간이 한참 필요합니다. 권사님에게 학문적 지식과 상담에 대한 열정을 주신 것이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것 걱정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신경쓰지 말고 공부 계속하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대학원 과정만이 아니라, 박사 과정까지 마쳤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라고 하면 가장 신앙적인 것 같고, 당시 율법과 종교적 행위에서도 가장 완벽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로부터 여러 가지 트집을 잡히고, 욕을 먹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날을 정해 금식하지도 않았고,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한다는 정결법도 지키지 않았으며, 안식일에 금지된 것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제자들이 당시 정해진 종교 생활을 그리 열심히 한 사람들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당시 제도에서는 벗어난 것 같지만,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쓰임 받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같은 양의 달란트를 주신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필요한 만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달란트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각기 잘 하는 일,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과 도구가 각기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각자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시고 훈련시키는 과정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세 번째 것은, 제자들이 제자로서 온전해지고, 완성된 그 길은 참 멀고도 험하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뒤로하고 따랐습니다. 그만큼 열정과 결단이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의 그런 열정과 열심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실수하고, 넘어지고, 실패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순간까지 자기의 길을 찾지 못 하고 방황합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장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이, 마가복음 마지막 장이 되어서야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 순간에 제자로서 완성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오랫동안 만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부족한 우리 모습에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힘을 얻습니다. 환경이 어려워도 주저앉지 않습니다. 우리의 더딘 걸음에도 낙망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주님의 온전한 일꾼으로 만들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어떤 것보다 제자를 부르시고, 제자로 교육하는 일에 가장 큰 힘을 쏟으셨습니다. 이 과정이 길고 어려웠지만, 이런 인내의 긴 기다림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가르침이 전해졌습니다. 신앙생활이란 단지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 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지키며 행하며 만들어 가는 것임을 생각하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행하며 살아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또 제자로 부르셨으니, 이제는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며, 자녀로 거룩하며, 제자로 주님을 닮아가는 과정을 밟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격 없지만,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긴 기다림 속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기쁨 가운데 인내함으로써,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귀한 일꾼이 됨으로써, 더욱 복되고 선한 열매 맺을 수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