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물으며 살고 있습니까?
성경: 마가복음 12장 28-34절(신 76쪽)
찬송: 263장(이 세상 험하고; 통197), 246장(나 가나안 땅 귀한 성에; 통221)
설교: 20180812. 주일낮예배
무더운 날씨 중에도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현재 우리나라 성인 남성들은 의무적으로 군에서 일정 기간 복무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는 원해서 가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어쩔 수 없이 입대해서 복무하게 됩니다. 어쩔 수 없이 가고, 또 그곳에서 주어지는 보상이 크지 않기 때문에, 군생활에 대한 애착이 크지 못 합니다. 게다가 군에 가기 전까지는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데, 일단 입대하면 모든 것을 통제 받게 되니 힘들어 합니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고, 또 많은 것을 희생하고도, 그에 대한 보상이 크지 않다 보니, 군인으로서의 마음가짐과 자세가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군인으로서 반드시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과 자세를 ‘군기’라 하면서, 군기가 있어야 좋은 군인으로 여깁니다.
군인이 군기가 들었느냐 그렇지 못 하느냐 하는 것을 판단하는 기준들이 몇 가지 있겠지만,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한 가지 방법은, 잠자고 있는 사람을 깨웠을 때의 자세입니다. 군에서는 밤 10시에 자서 아침 6시에 일어나는데, 이것만 보면 수면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군대에서는 자다가 일어나 근무를 설 때가 많습니다. 한 주에 네다섯 번 정도는 자다가 일어나서 1시간 반에서 두 시간 가량 근무를 서야 하고, 내무반에서 근무를 서는 사람이 근무 서야 하는 사람들을 30분 전에 깨웁니다.
그런데 이때 일어나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이 군기가 들었는지 그렇지 못 한지를 확인이 됩니다. 군에서 자기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이 부르면, 관등성명을 대야 합니다. 일병일 때, 저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이 부르면, “일병 OOO”이라고 답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참 깊은 잠을 자다가 일어나서, 잠도 제대로 안 깬 상태에서 관등성명을 대는 게 쉬울 리 없습니다. 그런데 군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이 잘 되어 있는 사람은, 잠결에 일어나서도 자신의 관등성명을 제대로 대고, 군기가 덜 든 사람은, 짜증을 내기도 하고,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기도 합니다.
이것을 보면, 누가복음 6장 45절에서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됩니다. 속에 무엇이 가득하느냐에 따라서, 수시로 속의 것들이 밖으로 나옵니다. 속에 좋은 것이 가득한 사람은, 감추려 해도 어느새 그 속에서 좋은 것이 드러납니다. 속에 나쁜 것을 가득 품고 사는 사람은, 아무리 머리 좋은 사기꾼처럼 자기의 본모습을 감추고, 포장을 잘 한다 하더라도, 무시로 그 본모습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 모든 계명 중에 첫 번째 계명을 묻는 서기관의 질문을 보면, 이 서기관이 평소 무엇을 속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더불어 오늘 본문 앞에서, 예수님께 여러 질문을 던진 사람들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의 삶을 마무리하시면서 성전에 들어가셨는데, 이 때부터 예수님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첫 번째 질문을 던진 사람들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 즉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성전에서 장사꾼들의 상을 뒤엎는 예수님께 무슨 권위로 그런 일을 하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이들의 속에는, 성전에서의 권위는 곧 돈을 벌 수 있는 권리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지혜로워서 무엇이든지 들어주고,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 능력과 지혜가 있는 사람이 그들 앞에 있다면, 이들은 성전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자기의 탐욕을 채울 방법을 물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무슨 권위로 성전을 깨끗케 하느냐는 말로 그럴듯하게 표현했지만, 이들이 정말 묻고 싶은 것은 권위의 출처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주시는 권위로 성전을 깨끗케 하신다고 답하셨어도, 이들은 자신들의 탐욕을 버릴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만일 자기들의 욕심 주머니를 채울 만한 다른 길이 있다면, 언제든지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하나님을 뒤로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지를 물었던 바리새인과 헤롯 당 사람들의 속마음은 예수님에 대한 미움과 시기심으로 가득합니다. 이들은 세금을 로마의 황제에게 바치는 것이 좋은지 묻는 것 같았지만, 이들이 정작 묻고 싶고, 듣고 싶은 것은, 예수님을 단번에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자신들이 가장 미워하고 증오하는 예수님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만 있으면, 그것이 가장 지혜로운 길이고,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는 답이라면 어떤 길이라도 좋아할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에게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것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이가 있다면, 이를 묻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이들 속은 추악하고 사악합니다.
부활에 대해 예수님께 질문한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의 것보다 세상 것에 대한 욕심이 가득했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부활을 믿지 않으려 합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야만 세상에 욕심을 부리며 사는 자기들이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부활에 대해 질문한 것은, 부활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활이 없어야 하는 분명한 근거와 까닭을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질문한 내용을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세상에 일곱 형제가 있는 것도 쉽지 않은데, 첫 번째 형이 결혼했지만 자녀 없이 죽고, 전통에 따라 둘째가 형수와 결혼했지만 역시 아들이 없이 죽고, 셋째도 그렇고, 나머지 일곱째 아들까지 형수와 결혼했지만 상속자 없이 죽으면, 이 여성은 부활했을 때 일곱 형제들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는 질문이 얼마나 웃깁니까? 이 여성이 결혼만 하면 남편을 죽이는 것도 아니고, 남편이 자녀 없이 죽는 것도 드문 일인데, 어떻게 일곱 형제가 차례대로 죽고, 그것도 결혼했으면서도 자녀 없이 죽는 일이 있겠습니까?
이 사람들은 예수님께 부활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묻고자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다음에 있을 부활과 영생을 잊고, 다음 세상에 대한 부담과 두려움이 없이 땅의 것에만 맘껏 욕심을 부리며 살 수 있는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고 정확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세상에서 성공하고 잘되는 길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질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자기들의 입장에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다른 말들로 질문하고 있지만, 그만큼 이들은 자신들의 속을 감추고 싶었습니다. 자기들의 본모습을 남들에게 그대로 드러내기에는 너무 더럽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탐욕스럽고, 사악하고, 교활한 자들의 질문이 계속되던 상황에서 등장하는 오늘 본문 속 서기관의 질문은 우리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사악하고 탐욕스럽고 교활한 자들의 계속된 질문에 실망하시고 분노하셨을 예수님도 서기관의 질문을 들으시고 비로소 기쁨을 드러내십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34절에서 이 사람에게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구세주로서 처음으로 하신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세상 사람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세례 요한도 역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이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바라시는 것도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을 회개시켜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서기관에게 하신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다”는 말씀이 얼마나 큰 칭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3년 반 동안 수많은 기적을 베푸시고,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시면서, 완성시키고자 하신 모습이 바로 천국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지만 제자조차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있었음에도 여전히 성숙하지 못 했습니다. 여전히 욕심은 남아 있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못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보다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함께한 사람도 아니고, 예수님의 특별한 가르침을 받은 사람도 아님에도 서기관은 가장 성숙한 모습을 보입니다. 많은 계명들이 있는데,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즉 계명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첫 번째가 되는 계명을 물었습니다.
이 사람이 이 질문을 던진 까닭을 28절에서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라고 설명합니다. 성전에서 예수님과 여러 무리들이 이야기하는 모습, 그리고 예수님이 바르게 답하신 것을 이 서기관이 보고, 평소 자신이 가장 궁금해 하고, 풀어야 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가장 정확한 답을 주실 수 있는 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정확하게 답하실 것을 알기에 던진 서기관의 질문은,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평소 그 속에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었는지 이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 사람은, 앞에서 예수님께 질문한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뜻을 향해 애쓰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계명을 알고 잘 지키고 싶은 열망이 워낙 강해서, 가장 바른 답을 주실 만한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인가 물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추악한 속을 감추고 예수님께 그럴듯한 여러 질문을 던진 사람들, 그리고 순수함과 신앙에 대한 열정이 가득해서 가장 큰 계명에 대해 질문한 오늘 본문의 서기관의 모습들 중에, 과연 우리는 어떤 모습에 가깝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분명하고 정확한 답을 주시는 하나님께 질문할 수 있다면 무엇을 묻고 싶으십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과정, 그리고 지금 우리가 가장 많이 기울이는 관심사들을 보면, 몇 가지 질문 중 하나일 것입니다. “하나님. 무엇을 해야 돈을 많이 벌 수 있습니까?” “하나님.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까?” “무엇을 준비해야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이 오르고, 더 많이 누리며 살 수 있습니까?” “하나님. 어떻게 해야 건강해지고 오래 살 수 있습니까?”
이런 질문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많이 갖고, 잘 먹고,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 것도 분명 필요합니다. 그러나 만일 이것만 위해 산다면, 혹은 이런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산다면,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이 무엇이겠습니까? 세상 사람들도 끊임없이 이런 질문을 던지며 살지 않습니까? 다만 우리와 다른 점이라 한다면, 우리는 질문의 대상을 하나님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고, 세상 사람들은 전혀 엉뚱하거나 잘못된 것들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것들로 가득하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이런 것들만 질문 드린다면,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온전한 백성이 되지 못 한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해도, 아직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큼 성숙하지도 못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칭찬하시느냐 하는 기준은, 예배의 회수나 기도의 시간이나 헌금의 금액이 아니고, 우리 속에 무엇을 품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 평소 하나님의 계명과 천국에 관심이 많았던 이 사람의 직업이 서기관이었다는 것이 이것을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서기관은 당시 종이로 된 성경이 부족한 때에, 성경을 베끼고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다른 말로는 율법학자입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 서기관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습니다. 대부분 예수님과 갈등을 겪는 무리들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외식하고 형식주의에 빠졌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가셔 성전을 정리하실 때도, 무슨 권위로 그런 일을 하느냐고 질문한 이들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었습니다. 서기관들도 예수님을 시험하고 해치고자 하는 사람들 중 하나였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가장 좋은 질문을 드림으로써, 예수님의 칭찬과 인정을 받은 서기관도, 예수님의 미움을 받은 사람들과 비슷한 자리에 있고, 비슷한 과정으로 살아왔습니다. 다른 서기관들과 같은 자리에서 율법을 연구하고, 같은 성경을 베끼기도 하고, 같은 사람들을 가르친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다른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해치기 위해 질문했는데, 오늘 본문의 서기관은 예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바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것을 보면, 지금 우리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고, 어떤 직분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오직 우리 속이 무엇으로 채워졌는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어디를 향해 살아가느냐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합니다. 돈도 중요하고, 성공도 중요합니다.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누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유일하거나, 가장 큰 관심사가 되면, 자칫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시간에 맞춰 하나님을 예배하러 나오고 모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의 뜻을 향한 갈망과 열정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께 이 질문을 던질 수 있을 만큼 노력하고,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 길이 욕심과 욕망의 길과 다르기에 힘들고 어려울 수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이 마음을 품고, 이 길을 따라 살면, 오늘 본문에서 서기관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약속하신 주님의 칭찬과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비록 아직은 이 땅에 살기에, 이 땅의 삶과 과정 역시 중요하게 생각하며 노력해야 하지만,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이 다음에 있을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을 소망하며 노력하며 살아감으로써, 주님의 칭찬과 인정을 받고, 영원한 상급을 약속받은 서기관처럼,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와 복을 날마다 풍성히 누리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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