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엇도 하나님 앞과 위에 두지 마십시오
성경: 마가복음 13장 14-23절(신 78쪽)
찬송: 370장(주 안에 있는; 통455), 335장(크고 놀라운; 통)
설교: 20180930.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개인적으로 재밌게 읽었던 책들 중에 「갑오농민전쟁」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시간이 꽤 지나서 언제 읽었고, 또 분량이 얼마나 되는지조차 정확히 기억나지 않다가,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찾아본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책의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갑오년인 1894년에 있었던 ‘동학농민혁명’을 배경으로 다루고 있는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은 보통 ‘동학 혁명’이라고 줄여서 말하기도 하고, ‘동학농민전쟁’ ‘동학혁명운동’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 책을 읽은 시기에 대한 기억만 희미한 게 아니고, 책을 지은 사람의 이름마저 잊어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두 가지만은 지금까지 기억되었습니다. 하나는, 북한 사람이 지은 책이었다는 겁니다. 이번에 찾아보니, 박태원이라는 분인데, 서울 출생이지만, 6.25전쟁 때 북으로 가서 살다가 1984년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북에 있는 사람이 1977년부터 1984년까지 쓴 책이라 하는데, 남북이 철저히 단절되어 있을 때 어떻게 남한에서 출판될 수 있었고, 또 아무런 제제 없이 읽을 수 있었는지 지금도 꽤 신기하고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남쪽에서는 잘 쓰지 않는 표현들이 있어서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여러 의미에서 꽤 긴장하며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책에 대한 두 번째 기억은, 그 책에 저의 고향이 많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동학혁명의 주된 배경이, 고창, 부안 정읍 등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겠습니다만, 특별히 동학농민혁명이 선운산에 있는 마애불상을 여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당시 고부군수가 재물을 탐하고 타락한 인물이었습니다. 군수가 탐욕스럽고 타락했으니, 그 속에서 살아야 하는 백성들은 힘들겠죠? 그럼에도 그 부정부패에 맞설 만한 힘이 없으니 참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농민들의 억울함과 고통을 폭발시키는 계기가 생깁니다.
조선시대에 예언서로서, 세상 끝날이 언제 올 것이며, 어떤 징조들이 있을 것인가를 말하는 정감록(鄭鑑錄)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세상 끝날이 되면, ‘정도령’이라는 인물이 와서 세상을 뒤엎을 거라는 전설이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끝날을 알려주는 정감록이, 선운산에 있는 마애불상 배꼽 부분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너무 큰 고통을 당한 백성들이 마애불상에 있는 정감록을 꺼냈고, 세상을 구할 정도령이 올 것을 기대하며, 악한 세상을 뒤엎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으로 동학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북한 사람이 한참 남쪽에 있는 지역들을 알고 기록한 것도 신기하고, 고향의 이름들이 자주 나오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그래서 실제 선운산 마애불상에 가서 배꼽 부분을 유심히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마애불상이란, 암벽이나 벽 등에 새긴 불상을 뜻합니다. 실제 보니 배꼽부분이 네모로 새겨진 모습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선운산 마애불 사진)
저것이 책을 꺼낸 자리라고 말하긴 어렵죠? 책을 꺼낼 만한 공간이라면, 깊이 패였어야 하겠죠? 그런데 그런 공간은 아니고, 그냥 살짝 테두리 정도로만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농민들은, 이것을 사실로 믿었다는 겁니다. 세상은 어지럽고, 비밀로 있던 정감록이 세상에 나왔으니, 정도령이 와서 악한 세상을 심판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이라 믿었습니다. 정도령의 능력으로 보호해 줄 것이라 여겨서, 관군과 일본군들이 총으로 무장하고 오는 데도, 삼베옷을 입고 무작정 달려갔습니다.
이를 통해서, 터무니없는 것임에도 믿음에 빠진 사람들이, 얼마나 맹목적으로 덤비는지 알 수 있습니다. 좋게 말하면, 믿음 때문에 총칼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담대해집니다. 또한, 세상이 바뀌고, 새로운 세상이 오는 것을 바라는 이들은, 현실에서 큰 고통과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이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성공하고, 많이 갖고, 누리는 이들은, 할 수만 있으면 지금을 지키려 하고, 새로운 세상과 질서를 싫어합니다. 세상 욕심과 욕망이 클수록,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는 작아지고, 지금의 고통과 절망이 클수록 새 세상에 대한 기대와 간절함이 커지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한 욕심과 집착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대는 적어지고, 하나님 나라가 오기 전에 있을 세상 끝날에 대한 두려움만 커지기 마련입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집착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간절함이 클수록, 세상 끝날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오늘 본문을 통해서, 끝날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것을 가장 먼저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세상 끝날에 있을 일들을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만이 아니라, 마가복음 13장 전체가 세상 끝날에 있을 가장 큰 환난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4절에서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 할 곳에 선 곳을 보거든”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거룩한 곳, 하나님을 만나는 곳, 하나님의 것이 있어야 하는 곳에, 이와는 정반대의 것들이 그 자리를 대신할 때를 뜻합니다.
좁게 보면, 세상의 끝날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에 우상이 세워질 때를 뜻합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보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에 인간의 탐욕이라는 우상이 세워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져야 하는 때에, 인간의 탐욕과 욕망과 거짓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포장돼 전해지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만이 높여져야 하는데, 목회자가 높임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선포되어야 하는 교회에서, 탐욕과 욕망 가득한 인간의 철학과 방법과 길이 진리처럼 선포되는 때를 뜻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보면, 지금의 기독교, 우리나라의 기독교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다른 나라의 기독교를 보면, 우리와 같은 하나님을 믿는지 궁금할 만큼 이상하게 변질된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의 기독교를 욕하다 보면, 그와 별반 다르지 않는 우리나라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모습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교인 수가 많아지고, 재정이 많아지는 것이 곧 부흥이고, 구원이라고 여기며, 이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봐도 비겁하고 이상한데, 성경과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한다는 분들의 설교를 듣다 보면, 성경과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 최면술 혹은 처세술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언한다는 이들의 말을 듣다 보면, 입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고, 할렐루야와 아멘이 나온다는 점 외에는, 무속인들과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위대한 일을 한다는 이들의 결국은 대부분 이단과 멸망의 길로 끝날 때가 많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예수님이 멸망의 징조로서 말씀하신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 할 곳에 선 것”이 지금이고, 기독교의 모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렇게 교회와 강단에 마땅히 있어야 할 것들이 없고, 그 자리를 이상하고 변질된 것들이 가득하다는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멸망의 때,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시기로 정하신 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 비록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마지막 때가 아니더라도, 우리 신앙인들은 개인의 마지막 날이 매일 매순간 다가옴을 기억하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길에 따라 마지막 날을 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마지막 날과 관련해 우리가 행하고 기억해야 할 세 가지를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먼저는, 14-16절에서 세상 것들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미련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14절에서는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고 하시고, 15절에서는,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안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가지도 말라고 하시고, 16절에서는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돌이키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멸망할 만큼 큰 환난이 오면, 사람들이 무엇을 가장 먼저 챙기려 할까요? 먹을 것, 금은처럼 물건을 살 수 있는 것, 재산 문서 등일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으면, 난리 중에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먹고 더 오래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이런 것들을 향해 뒤돌아서지 말라고 하실까요? 이 말씀은, 난리가 났을 때 아무것도 챙기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난리 중에 사람들이 가장 먼저 챙기려 하는 것들, 예수님이 챙기려 뒤돌아서지 말라고 하신 것들은 모두,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도시와 집안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의 것,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들을 하나님의 것보다 더 앞세우거나, 높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곧 영원한 죽음으로 이끄는 탐욕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에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당할 때, 하나님께서는 롯과 그 가족들에게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지 고개를 돌려서 보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죄악이 가득한 것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그 동안 자신들이 가지고 누렸던 것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 했습니다. 그 동안 하나님께서 롯을 부자로 만드셨고, 죽음에서 구원해 주셨으면, 다시 복되고 풍요롭게 만들지 못 하시겠습니까? 그럼에도 롯의 아내는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욕심 때문에 결국 소금 기둥이 되어 죽었습니다.
오늘 본문 14-16절에서 하시는 말씀의 뜻도 이와 같습니다. 당장 배부르게 하고, 따뜻하게 하는 것들을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보다 앞세워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편안함과 성공을 팔아 하나님의 것을 사는 것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지혜로운 길입니다. 몇 년, 몇 십 년의 성공과 누림을 위해 하나님의 것을 팔아먹는 것은 어리석은 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두 번째 사실은, 세상의 종말이라는 큰 환난을 우리가 이겨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힘이 있어서 이겨낼 수 있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그 날의 고난을 줄여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0절에서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종말에는,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 할 만큼의 환난과 재난이 임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날 우리가 당할 어려움과 고난에 대해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편이 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날의 환난이 다가오는 것에 겁을 먹거나 미리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뜻대로 이끌어 가십니다. 이렇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가 당하는 고난과 아픔을 기억하시고, 우리를 위해 그 날의 고통을 줄여주실 정도라면, 그 사랑과 능력이 얼마나 큽니까? 또 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지켜주신다면, 그 어떤 것도 참고 이겨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주시는 세 번째 말씀은, 사탄은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에서 끊기 위해 온갖 거짓과 큰 능력으로 시험하고, 함께 멸망하도록 유혹할 터인데, 그것에 속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반드시 함께 나오는 것이,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았다느니, 하나님이 음성으로 말씀해 주셨다느니, 그래서 언제 어디에서 멸망할 것을 알 수 있다는 말들입니다.
그러나 그 누가 말하든지 모두 거짓입니다. 23절에서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는 말씀처럼, 세상 종말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이미 모두 말씀해 주셨습니다. 종말이 언제 시작되는지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24장 36절에서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아심에도, 사탄은 수많은 모습과 능력자로, 또 온갖 신비한 말들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유혹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 역사가 보여주듯이 거기에 넘어가는 사람들은 계속 많을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지 않습니다. 미련했으면 귀신들을 이끌고 하나님을 대적하겠습니까? 사탄은 하나님의 이름을 달고 오기도 하고, 예수님의 모양으로도 옵니다.
예전에 어떤 분은, 귀신은 예수님의 모습을 할 수 있지만, 손에 창 자국을 못 만든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또 십자가를 비추면, 귀신이 도망간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도 손에 창 자국을 만들 수 있는데, 사탄과 귀신이 그것 하나 못 만들겠습니까? 십자가로는 도둑도 못 물리치는데, 사탄과 귀신을 물리치겠습니까? 속지 마세요. 말도 안 되는 것들로 귀신을 물리치고, 귀신을 분별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게 모두 사실은 사탄과 귀신의 작전입니다. 이에 대해 22절에서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도 세상 끝날이 언제일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능력과 환상이라는 이름으로 그때를 이야기하며 속이려 할 것이고, 속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마지막 날을 알 수도 없거니와, 마지막 날이 언제 오는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것을 먼저 기억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날을 줄여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만 기억하면, 그날이 오는 것도 두렵지 않고, 사탄과 귀신의 작전에 걸려 넘어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세상 끝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세상 끝만이 아니라, 육신의 죽음이라는 각자의 끝날도 있음을 기억하며 살되, 더욱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을 중히 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여기며 살아감으로써, 어떤 일에서도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매일 받고 살아 나아가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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