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180916)말씀 위에 든든한 믿음의 집을 지으십시오(막 13장 1-2절)

청명하늘 2018. 9. 16. 15:28

말씀 위에 든든한 믿음의 집을 지으십시오

 

성경: 마가복음 131-2(77)

찬송: 208(내 주의 나라와; 246), 204(주의 말씀 듣고서; 379)

설교: 20180916.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10일 전에 서울에 있는 상도유치원이 뉴스에 오르고,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건물에 달려 있는 유치원 건물이 크게 기울어지고, 그래서 무너질 위기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건물이 많이 기울어지고, 그래서 결국 건물을 무너뜨리고 철거해야 했습니다.

 

그나마 방과 후, 밤에 있었던 일이라, 누가 다치거나 죽지는 않았지만, 이 일로 발생한 피해와 손해는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먼저는 지어진 지 4년밖에 안 된 건물이 사라졌습니다. 이것을 짓기 위해서 몇 억원이 들어갔을 터인데, 그 돈이 모두 사라졌죠? 이것만이 아닙니다. 기울어진 건물을 무너뜨리고 철거해야 하는 비용도 엄청나겠죠? 게다가 교육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다시 지어야 합니다. 다시 몇 억이 더 들게 됩니다. 돈만 더 들어가는 게 아닙니다. 그곳에 보내는 것을 결정하는 부모들은 많이 걱정하고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또 언제 기울어지고 무너질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상도 유치원 붕괴 https://www.youtube.com/watch?v=IQ3tq4EjI3o)

 

이렇게 한 번 무너지면 몇 배의 손해가 생김에도, 건물을 짓는 중에, 혹은 지은 후에 무너지는 경우들이 간혹 있습니다. 건물이 무너지는 것은 모두에게 손해가 됨에도, 건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생기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좋지 않은 땅에 세워진 경우입니다. 튼튼한 건물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지반의 상태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땅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게 아니죠? 모양과 성분과 강도가 각기 다릅니다. 농사를 짓는다면, 땅이 부드럽고 거름기가 많은 게 좋습니다만, 건물을 짓는 데에는 전혀 좋지 않습니다.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오히려 땅이 단단해야 하고, 더 좋기로는 바위로 이루어지는 게 좋습니다.

 

특히 크고 높은 건물일수록, 땅의 단단함이 중요합니다. 무른 땅도 땅을 다지고 건물을 지을 수도 있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만일 뻘밭이나, 모래처럼 쉽게 꺼지거나 무른 곳이라면, 크고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습니다. 이런 곳에 아무리 좋은 자재를 이용하고, 또 아무리 좋은 기술로 짓는다 하더라도, 쉽게 흔들리고 기울어지고 무너지게 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유치원 건물 역시, 건물 자체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곁에 다른 공사가 이루어지면서, 유치원 땅바닥이 약해지고, 비로 바닥이 쓸려가면서 기울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만큼 튼튼하고 좋은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바닥이 단단한 곳이어야 합니다.

 

돌이 많거나 바위로 되어 있으면, 바닥을 고르고 작업하는 게 어렵습니다. 모래나 흙이면 굴삭기 등으로 쉽게 파낼 수 있지만, 바위로 된 지역이라면, 원하는 대로 만들기는 훨씬 더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끼거나, 혹은 작업의 편의를 위해 무르거나 지반이 약한 곳에 짓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경비를 조금 아끼고 편하려 하다가는 강한 바람이 불고, 큰 비가 내리면 건물이 위험해지거나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건물이 무너지는 또 다른 까닭은, 불량한 자재를 사용하거나, 정해진 만큼의 자재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잘 모르지만, 요즘 건축하는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했습니다. 건축 기술이 발달했다는 것은, 정해준 절차와 자재대로 건물을 세우면, 흔들리고 무너질 염려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꿔 생각해 보면, 지진, 홍수, 해일 등 큰 자연재해가 없는데도 건물이 무너지는 까닭은, 정해진 건축법을 따르지 않고, 필요한 자재를 정해진 만큼 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중국 대나무 아파트 https://www.youtube.com/watch?v=OPzyQIF8UUk)

 

영상에서는 중국의 경우고, 그것도 매우 심각한 정도지만, 우리나라도 부실시공이 많죠? 2014년도 조사에 따르면, 2010년 이후에 착공한 터널공사가 121개인데, 78개 공사구간에서 공사비는 부풀리고, 반대로 정해진 부품은 적게 사용하다 적발되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부실시공 비율이 3곳 중에 2곳입니다. 이렇게 부실시공하는 경우가 많고, 부실시공하는 까닭은 자기 주머니를 채우고자 하는 욕심 때문입니다. 잠깐 잔꾀를 쓰고, 양심을 좀 속이면 자기 주머니가 풍성해집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갖게 된 배부름과 주머니가 영원할 수 없습니다. 바람과 홍수가 크면 클수록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클 것입니다. 몇 년 배불리 먹고, 주머니 두둑하게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 번 건물이 기울어지고 넘어지면 삶 전체에 절망만 남게 됩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기초를 단단한 곳에 세우고, 정해진 절차와 자재와 분량대로 세워야만, 튼튼한 건물이 세워져 안전하게 지낼 수 있고, 반대로 편하고 쉬운 곳에 기초를 쌓고, 그러면서도 마땅한 것을 어기고, 자기 욕심에 따라 만들어 가다가는, 그 멸망이 순식간에 다가오게 된다는 것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건물에만 적용되는 게 아닙니다. 이 원칙과 원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똑같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성전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마지막 시간이 되어 성전에 들어가셨고, 그곳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논쟁을 벌이셨습니다. 이후에 한 가난한 과부가 헌금하는 것을 보시고, 사람의 시선과 칭찬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향한 마음과 정성으로 헌금하는 것이 큰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성전에서의 일들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실 때, 열둘 중 한 제자가 예수님께 와서 성전에 대해 예수님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가 가진 성경에서는, 그저 예수님께 성전의 모양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성전의 웅장한 크기와 아름다움에 놀라며 하는 이야기입니다.

 

제자들 대부분은 예루살렘에서 약 150km 떨어진 시골 갈릴리에서 살아왔습니다. 수도에서 워낙 멀기 때문에, 서울인 예루살렘을 한 번 오가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골에서 가난한 어부로 살면서, 매일 먹고 사는 일에 바쁘고, 또 당시는 교통수단이 안 좋았기 때문에 평생 예루살렘에 한 번 못 가본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요즘 우리로 생각한다면, 며칠 걸어 서울에 가서, 가장 크고 높은 빌딩을 보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성전의 규모와 화려함은 시골 사람들인 제자들이 놀랄 만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이 보고 놀란 성전은 헤롯 성전으로 불립니다. 헤롯 왕이 지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성전를 짓는 데 무려 46년이 걸렸고, 주위 담을 쌓는 데까지는 86년이 걸렸습니다. 당시 왕의 주도로 몇 십 년이 걸렸으면, 성전을 건축하는 데 들어간 수고와 헌신만이 아니라, 그 웅장함과 화려함이 얼마나 대단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보고 입을 다물지 못 할 정도였습니다. 놀라서 예수님께 부러움과 놀라움을 담아 말할 만했습니다.

 

제자들은 그 크기와 화려함과 정교함에 놀라 말하는데, 예수님의 반응은 제자들의 기대와 전혀 다릅니다. 성전을 보시고 좋아하시거나 칭찬하시지도 않고, 오히려 화려함과 웅장함이 철저히 무너질 것이라는 저주하셨습니다. 건물이 되기 위해서는, 돌들이 설계에 맞게 쌓이고 만들어져 가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돌들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모두 무너지고 흩어지면 건물이 될 수 없습니다. 그저 폐허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을 만큼 철저히 무너지게 될 것이라 저주하셨습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바로 뒤에 3절에서는,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단지 성전을 바라보고 앉으셨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고, 예수님이 성전을 싫어하시고, 맞서 싸워야 하는 곳으로 여기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신학용어로 반성전주의라고 합니다. 성전에 대해 싫어하시고 반대하신다는 뜻입니다.

 

성전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에서 절대적인 곳입니다. 전국에 성전은 오직 한 곳만 있어야 했고, 그만큼 그곳은 크고 정교하고 화려하게 만들어졌습니다. 4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최고의 권력자가 건물을 지었으니, 그 건물의 견고함이 얼마나 대단했겠습니까? 한 나라의 왕이 책임을 지고 건물을 짓는데, 아무 일꾼이나 불러서 짓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 그 나라에 있는 최고의 설계자, 기술자들을 불렀을 것입니다. 또 왕이 직접 관여하고 있으니, 기술자들과 일꾼들이 대충 만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헤롯 왕의 권력이 무서워서라도, 설계에 따라 정해진 방법과 재료를 사용해 가장 완벽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건물을 지었는데, 왜 예수님은 이 성전을 싫어하시고 저주하십니까? 제자들은 보고 놀라며, 당시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가장 튼튼하고 완벽한 건물로 여김에도, 주님은 왜 뒤돌아 버리시고, 무너질 것이라 말씀하십니까? 사람들 보기에 그렇게 완벽하고 튼튼해 보이던 성전이, 예수님의 예언대로, 무너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이 있은 후 약 40년이 되었을 때, 로마군에 의해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성전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롯한 당시 유대인들은, 인간이 세운 좋은 건축물로 봤습니다.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성전만큼 튼튼하고 오래갈 건물은 없습니다. 최고의 권력자가 주도해서 지었으니, 그 기초가 얼마나 튼튼했겠습니까? 또 거기에 들어가는 자재는 또 얼마나 좋은 것이고, 정확하게 들어갔겠습니까? 이렇게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성전은 완벽하고, 영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셨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성전은 부실투성이었습니다.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은 없고, 없어야 할 불량 자재들로 가득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들로 가득해야 하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들은 없어야 하는 곳입니다. 그래야만 성전답게 거룩하고, 튼튼한 것입니다.

 

하지만 헤롯 왕이 지은 성전은 짓는 동기부터 잘못되었습니다. 심지어 이 성전을 지은 헤롯은, 하나님을 믿지도 않으면서도,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지었습니다. 건축 목적도 잘못되었는데, 이후에 성전에서 보이는 모습들도 역시 하나님의 것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습니다. 가장 거룩한 곳이어야 하는 성전이, 하나님의 이름은 가졌으나,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은 가식과 추한 욕망만이 가득했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성전은 튼튼하고 웅장했지만, 영적인 의미에서 보면, 부실투성이었고, 곧 무너질 수밖에 없는 엉터리 건물이었습니다.

 

이렇게 겉만 튼튼하고 웅장하고 거룩해 보일 뿐, 그 속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없고, 행함도 없으니,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더 미워하고 죽이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워졌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행해지고 있으니 그런 곳은 무너지는 게 당연합니다.

 

흔히 교회를 성전이라고 합니다. 또 고린도전서 316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는 말씀과,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고린도후서 616절 말씀처럼, 하나님을 믿고 사는 신앙인들이 곧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전이라는 이름을 갖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성전답게 살고 행하는 것입니다. 전 세계에 셀 수 없이 많은 교회들이 있을 터인데, 그런 교회들 중에 하나님의 이름을 달지 않은 교회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수십 억 명은 될 터인데, 이들 중에 자신을 성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잘못 알고 있는 이들 외에는, 모두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교회를 이루고, 신앙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워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믿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바른 말씀 위에 세워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갖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을 가졌으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사는 게 중요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이름만 가졌을 뿐,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서 멀어져 살아가면, 그 결과는 뻔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면 무너지고 실패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하나님의 이름을 달고 모이는 대곡교회, 하나님의 자녀로 산다고 고백하는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튼튼한 말씀과 약속 위에 세워져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들을 알고 깨닫고, 그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욕심과 욕망을 바닥으로 신앙과 우리의 삶을 세워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말씀들이, 지켜 행하는 게 어렵다며, 쉽고 편한 길이라는, 부실한 자재로 신앙과 삶을 쌓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정해주신 가장 좋은 자재를 하나씩 쌓아가는 게 느리고 무겁고 힘겹지만, 이렇게 쌓아가야만 어떤 경우에도 무너지지 않고 영원히 든든히 세워질 것을 믿고 하나님의 길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저 이름만 빌려 쓰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의 저주를 받고, 그 저주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철저히 무너지는, 이름만 하나님의 성전의 길을 걷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고, 아는 대로 실천하며 사는 참된 교회, 참된 신앙인으로 살고 있습니까?

 

겉모양과 이름이 어떻든지, 중요한 것은 그 속과 삶과 내용입니다.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받는 게 중요하지 않고, 하나님의 인정과 기준이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교회와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지켜지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과 은혜를 받게 됩니다.

 

교회와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워지고 만들어지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것이니, 그 이름에 맞게, 하나님의 말씀과 뜻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기틀이 되어야 하고, 비록 그 과정이 힘들고 어렵다라도, 이에 따라 든든하고, 영원한 영의 건물을 세워가야만, 비로소 신앙과 영생의 집이 든든히 이어지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교회와 자녀를 삼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욕심에 따라 이름과 형식만 빌려 사는 가짜 성전으로 살려다, 하나님의 꾸중과 저주로 망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거룩한 교회와 자녀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날마다 받고 살아가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