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180902)바르게 알고 바르게 행해야 합니다(막 12장 38-40절)

청명하늘 2018. 9. 3. 21:37

바르게 알고 바르게 행해야 합니다

 

성경: 마가복음 1238-40(77)

찬송: 288(예수를 나의; 204), 449(예수 따라가며; 377)

설교: 20180902.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종합병원에 가면, 치료하고 검사하는 의사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보기엔, 비슷한 옷을 입고 있고, 비슷한 일을 하고 있어서, 분간하기 쉽지 않습니다만, 병원 의사들도 여러 부류로 나뉠 수 있습니다.

 

당연히 담당하는 과에 따라 나뉘겠죠? 정형외과 의사들도 있고, 신경외과, 안과, 치과, 산부인과 등, 전문적으로 담당하고 치료하는 과에 따라 나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특정 분야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고, 또 그에 필요한 자격을 갖춘 전문 의사가 있고, 레지던트 의사와 인턴 의사가 있습니다. 이들 중에서 경력과 지식이 가장 적은 사람은 인턴입니다. 레지던트는 인턴을 마치고, 전문의가 되기 전의 중간 단계에 있는 의사라고 하면, 인턴은 이제 막 의사가 된 경우를 일컫습니다.

 

 그런데 인턴이라고 해서 의학과 기술이 전혀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인턴이 되기 위해서도 많이 공부해야 한다고 합니다.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2년 정도, 의사로서의 자질과 교양을 배우고, 이후에 4년 동안 의학을 공부합니다. 이렇게 총 6년을 공부하고, 인턴 시험에 합격해야 비로소 인턴 의사가 됩니다.(사진)

 

 

 

의사가 되기 위해 의과대학에 들어가는 게 정말 어렵습니다. 대학 입시를 보는 학생들 중에서, 최고의 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몇 번째 손가락 안에 들어가야 의과대학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정도로 공부를 잘 하는 사람들을 천재혹은 수재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머리 좋은 사람들이 공부를 잘 해서 의과대학에 들어갔는데, 거기에서 6년 동안 공부하면 얼마나 많은 지식이 생기겠습니까?

 

그렇게 6년을 공부하고 실습하며 준비해서 병원에 가더라도, 바로 좋은 의사로 인정받지 못 합니다. ‘인턴이라는 이름을 달고 일해야 합니다. 인턴으로 일하면, 온갖 힘들고 어려운 일은 도맡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또 대우는 훨씬 적게 받습니다. 그렇게 공부하고 노력해서 레지던트가 되어도, 4년 동안 병원에 머물면서, 일하며 배운 후에야 비로소 전문의 시험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의사가 되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더불어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의과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머리 좋은 것이야 누구나 알고, 6년 동안 학교에서 보고 배우고 실습하면서, 질병과 몸에 대해 얼마나 많은 지식과 경험을 쌓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데려다가 다시 5년 동안 고생시키고, 실습시켜야 비로소 전문의로서 시험을 치를 수 있으니,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병원 현장에서의 훈련이 중요하다면, 의과대학에서의 시간을 좀 줄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냥 의과대학에 들어가면 3년 정도 공부하고, 바로 인턴으로 들어가게 하면, 좋은 인력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합리해 보일 만큼, 의과대학에서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공부를 시킨 후에야 병원에서 인턴으로 일할 수 있게 만들었겠습니까? 그것은 의학이라는 게 생명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질병을 앓거나 다치면 병원에 가서 치료나 수술을 받습니다. 치료를 잘 받고, 수술이 잘 되면 몸은 회복되고 건강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치료와 수술을 하면서, 이를 담당하는 의사가 엉뚱하게 하거나, 잘못하면 몸이 더 아플 수 있습니다. 장애를 입을 수도 있고, 심하면 목숨까지 잃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건강이라고 하죠? 건강이 중요하고, 건강의 모음인 생명이 가장 중요합니다.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건강과 생명을 의사가 다룬다면, 좋은 의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가장 좋은 인재들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고, 사람의 몸과 질병에 대한 지식을 쌓게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더불어서, 보고 배운 것들을 현장에서 바르게 적용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머리가 가장 좋은 사람들을 많이 모아놓고, 좋은 것을 많이 가르치는 것으로 끝나버리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글로 보고 배웠다고 해서, 좋은 의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만으로 사람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수술할 수도 없습니다. 그 정도로 환자들의 질병을 치료할 수 없고, 환자들의 생명이 걸린 수술을 잘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의과대학에서 좋은 것을 잘 가르치고 배운 것도 중요합니다만, 더불어서 보고 배운 것을 현장에서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의학의 목적은 단지 보고 배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잘 활용해서 사람을 치료하고 수술하고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성경을 읽고 배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 속에 있으니, 성경을 잘 읽고 공부해야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많이 읽고, 제대로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대로 실천하며 사는 것입니다. 만약 성경을 잘 배우고, 많이 아는 것에 그친다면 그것이 다른 지식을 쌓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만약 성경을 수백 번 읽어서, 성경을 통달하고, 그래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알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뜻과는 멀어져 산다면, 그런 사람을 과연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을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 박사라고 할 수 있고, 전문가라고 할 수는 있지만, 신앙인이라고 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성경을 읽고 바르게 해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신앙인들 중에는 이 둘을 균형있게 하는 이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 성경을 많이 읽고 배우는 이들은 점차 많아지는 것 같기는 합니다. 성경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이들도 많고, 이런 것을 가르치는 곳도 많습니다. 그래서 신앙인들 중에는, 성경에 대해 목회자 이상의 지식을 가진 이들이 꽤 많습니다. 성경 어디에 무슨 내용이 담겨 있는지 잘 압니다. 성경의 많은 부분을 읽고 외우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친다면, 다른 지식을 많이 쌓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역사에 대해 많이 아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농사에 대해 잘 아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오히려 역사와 농사에 대한 지식보다 더 못한 것입니다. 역사를 많이 알면, 과거의 잘못들을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농사 지식이 많으면, 농사를 잘 지을 수나 있지, 성경을 많이 읽고 알기만 하면, 그것을 도대체 어디에 쓰겠습니까? 그게 사람들에게 무슨 도움을 주겠습니까? 그냥 도덕책 정도밖에 안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성경을 많이 알지만, 하나님의 뜻과는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인 서기관들, 그리고 예수님이 이들의 잘못에 대해 말씀하시는 내용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서기관들은 성경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가장 많이 읽고, 그래서 성경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그대로 베끼는 작업도 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 대다수가 예수님께 칭찬을 받지 못 하고, 오히려 꾸중과 질책을 많이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서, 가장 큰 계명을 물은 서기관 한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예수님과 많은 갈등을 겪었고, 예수님을 반대하고 해치려 하는 무리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이들이 특히 잘못 행하는 것들을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38절에서는 이들이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좋아한 것을 책망하십니다. 긴 옷을 입었다는 것은, 단지 길이가 긴 옷을 입었다는 게 아니고, 서기관이라는 신분을 잘 드러내는 가운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긴 옷을 입고 다녔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그럴 듯하게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서기관들은 그렇게 긴 옷을 입고 시장에 가기를 좋아했습니다. 시장에 일이 있거나, 물건을 사러 간 게 아닙니다. 시장이란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곳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에, 서기관임을 드러내는 가운을 입고 가면 어떻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들에게 와서 인사했습니다. 요즘으로 보면, 신학 박사라는 것을 알려주는 모자와 가운을 입고 시장에 가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기도하는데, 자기들이 얼마나 유창하게 기도하는지 자랑하기 위해, 길게 기도하고, 큰 소리로 기도했습니다. 그만큼 서기관들은, 자신들의 신분과 지식과 업적을 자랑하는 것,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환영과 인사 받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가운을 입는다는 것은 자기의 신분이나 업적이나 지식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자기의 신분과 모습을 철저히 감추고자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보통 가운을 입는 직업이 크게 세 가지입니다. 의사, 법관 그리고 목사들입니다. 이 세 가지 직업의 공통점은, 사람들의 삶과 생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의사는 몸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 가장 중요하고, 법관의 판결에 따라 다른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습니다. 목사들은 육체의 건강이나 생명보다는, 영의 건강과 생명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다른 것보다 오래 공부해야 합니다. 더불어서 다른 누구의 간섭에 따르지 않고, 인간의 욕망과 욕심에 따르지 않고, 오직 법과 원칙에 따라서만 처리하겠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가운을 입었습니다. 서기관이 긴 옷을 입었다면 바로 이런 목적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반대로 긴 옷을 입고 자기를 드러내고 자랑했습니다. 39절에 나온 것처럼, 이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회당에 가면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했습니다. 잔치 자리에 가서도 상석에 앉길 좋아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섬김과 대접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기대했습니다.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질책을 받는 두 번째 이유는, 이들이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것을 빼앗아 자기 뱃속을 채웠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요즘과는 달리, 철저히 남성 중심의 사회였습니다. 특히 여성은 결혼하고 나면, 남편에 순종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성을 돕고 보호할 수 있는 남편이 죽고 나면, 여성은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 당시에는 과부라고 하면, 가장 어려운 사람이면서도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런데 서기관들이 이들로부터 재산을 빼앗았던 것입니다. 서기관들은 성경을 잘 알고,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서기들이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안다고 인정하고 있었으니, 서기관들은 그럴 듯한 이유로 과부들의 재산을 빼앗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해 봤더니 그렇게 응답하셨다” “당신의 남편이 죽은 까닭은, 뭔가 숨겨놓은 죄 때문이다. 그러니 그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재산을 모두 들여서라도 우리에게 성경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질책을 받은 까닭은 곧 우리가 조심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서기관들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고, 또 공부한 것을 그대로 지키며 사는 사람들이었으면, 그렇게 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애쓰라고 기록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언제 성경 지식과 자기 신분을 이용해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것을 빼앗아 자기 배를 채우라 말씀하셨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보면, 서기관들은 전혀 잘못 행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앞 그리스도에 대해 잘못 알고 있던 것을 보면, 서기관들은 성경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이고, 오늘 본문에 나온 모습들을 보면, 이들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기관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함께 주의해야 합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아는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어느 한 가지를 버릴 수 없을 만큼 중요합니다. 바르게 알아야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고, 아는 것을 행해야 비로소 신앙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경우 신앙생활이 아니라 취미생활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신앙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고, 하나님을 이용해 자기 욕심을 채우며 사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런 이들의 결말은 분명합니다. 구원과 영생의 주인이신 주님이 꾸중하시고 버리신 서기관들처럼, 영생과 영원한 형벌 사이에서 철저히 꾸중을 듣고 버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시간에 예배하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봐야 합니다. 주님의 뜻을 잘 알고 있습니까? 잘 알기 위해 날마다 수고하고 애쓰고 있습니까? 단지 주일이 되고, 예배 시간이 되었으니, 아무런 생각이 없이 시간과 자리를 채우는 목적으로 설교를 듣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마음으로 듣고 있습니까?

 

그리고 바르게 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인간적인 계산과 이익과 욕망을 버리고, 오직 그대로 지키며 살려 하고 있습니까? 만일 이 둘 중 하나라도 소홀히 하거나, 지키지 못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서기관과 비슷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이 우리의 판단과 계산과는 달리 보여도, 결국은 우리에게 무한한 유익과 복과 생명을 주십니다. 날마다 겸손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지켜 행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자녀에게 주시는 영생을 누리고, 더불어서 이 땅에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을 받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