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을 기다리는 종으로 삽시다
성경: 마가복음 13장 24-37절(신 79쪽)
찬송: 180장(하나님의 나팔 소리; 통168), 191장(내가 매일 기쁘게; 통427)
설교: 20181007.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약 10일 전에, ‘문대통령, 김동연 대행체제 지시’라는 제목의 뉴스들이 올라왔습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제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국정을 총괄 지시하고, 국가안보를 책임지고, 군을 통솔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국내에 없을 때는 총리가 대통령의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대통령과 총리가 함께 외국에 나가 있게 되어서, 며칠 동안이지만, 기획재정부 장관이자 동시에 경제부총리가 대통령과 총리를 대신해 나라를 책임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총리와 부총리가 이렇게 중요한 자리입니다. 대통령이 없을 때는 총리가 대통령의 역할을 해야 하고, 대통령과 총리마저 없으면, 부총리가 대통령의 역할을 해야, 나라가 혼란에 빠지지 않고, 위기가 오더라도 이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직위인데, 총리는 대통령이 지명한 후 국회의 동의를 얻어서 임명하게 됩니다. 부총리직은 국회 동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습니다. 바꿔 생각해 보면, 총리와 부총리는 유사시에 대통령의 자리를 대신해야 할 만큼 중요하지만, 대통령이 되는 것만큼 힘들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이 필요합니까? 수십 년을 준비해도, 몇 년에 한 명 되는 정도니,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그런데 총리와 부총리는, 대통령이 되려고 들이는 정도의 노력 없이도, 대통령의 지명과 임명을 받아 될 수 있습니다.
총리와 부총리는 그 중요성을 볼 때, 대통령과 국정에 대한 방향과 철학이 비슷해야 합니다. 총리와 부총리는, 최고 지도자로서 일하는 게 아니고, 대통령을 보좌하고, 대통령이 없을 때 그 자리를 잠시 맡아 책임지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총리와 부총리의 책임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주인인 대통령의 생각을 잘 따르고, 대통령이 자신에게 맡겨준 책임과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총리와 부총리가 가지는 권력이 워낙 크고, 유사시에는 대통령에 가까운 힘을 가지기 때문에, 이에 욕심을 부리기 쉽지 않겠습니까? 총리지만, 대통령과 같은 권력을 갖게 되니, 총리가 자기의 한계를 생각하지 않고 욕심을 부리는 경우들이 간혹 생깁니다. 평시에 대통령의 뜻과 안 맞으면 교체되니, 평시에는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대통령이 자신을 쳐내지 못 할 때, 본모습과 권력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게 됩니다.
박근혜 씨가 대통령으로 있다가 탄핵되었죠? 당시 총리로 있던 사람은 황교안 씨입니다. 이 사람은 2015년 4월부터 총리로 일했는데,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는 그 본모습이 잘 안 드러났습니다. 그러다가 탄핵소추안이 통과되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을 결정하자 권력에 대한 욕심을 많이 드러냈습니다.
자기가 모시는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처했으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나라가 정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이 자신을 총리로 임명한 대통령에 대한 도리고, 총리직에 앉는 사람이 갖는 사명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책임에 대한 것보다는, 총리지만 대통령처럼 행동하고, 대우받기를 좋아했습니다. 이 사람이 이런 것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별명이 ‘의전왕’입니다. 격식에 따라 화려하게 행사를 치르는 것을 좋아해서 비꼬는 말로 붙여준 것입니다.
의전왕 황교안 사진들
대통령이라도 기차를 타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경호원들이 있으니, 기차역까지 가서 기차를 타면 되죠? 그런데 이 사람은, 전용차를 타고 기차역 안, 기차를 타는 곳까지 들어갔습니다. 이것만이 아니죠? 대통령이 되면, 기념시계를 제작합니다. 그런데 황교안이라는 사람은, 직무대행이면서 ‘대통령 직무대행 국무총리 황교안’이라고 글씨를 새긴 시계를 제작했습니다. 명패도 ‘대통령 직무대행 국무총리 황교안’으로 바꿨습니다. 대통령 직무대행이라는 것은 대통령이 없을 때 일시직으로 맡은 자리입니다. 그럼에도 명패까지 바꿀 정도면, 이 사람이 대통령으로서의 권력과 직위에 대한 욕심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책임과 의무와 신분을 잊고, 자신이 갖고 누릴 것에만 관심을 가지면 이런 모습이 드러나게 됩니다. 좋은 총리, 일꾼이었다면, 자신이 어떤 대우와 의전을 받느냐 것보다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해내는 것에만 집중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신앙인을 판단하는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오늘 본문에 비춰 보면, 좋은 일꾼, 좋은 신앙인은,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과 사명을 다하고, 완성시키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노력합니다. 반대로 나쁜 일꾼, 나쁜 신앙인은,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과 의무와 사명보다는, 어떻게 보일 것인가 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게 됩니다. 바꿔 보면, 자기의 신분과 사명과 책임을 잊는 것은 물론, 주인이 오지 않을 때는 자기 보기 좋은 대로, 자기 편한 대로 살 사람입니다.
마가복음 13장은, 세상 끝날에 대해 예수님이 알려주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세상 끝날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34절에서 종들에게 권한과 더불어 책임을 주고 외국으로 떠난 집 주인으로 빗대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 바로 앞 32절에서는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상 끝날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고,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그 어떤 사람과 능력자라도 단 한 사람도 알 수 없다고 못 박아 말씀하시면서, 왜 갑자기 종들에게 책임을 주고 외국으로 떠난 주인의 이야기를 말씀하시겠습니까?
지금 이 땅에서 사는 신앙인들이, 주인에게 책임을 받고 일하는 종들과 같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이 땅에 사는 동안은, 우리가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야 하는 것은,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맡기셨고, 그 일을 어떻게 해내느냐 하는 것임을 말씀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주인이 다시 오는 것에 대한 모든 권한과 결정은 오직 주인이신 하나님 한 분께만 있음을 말씀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우리가 발 붙여 살고 있는 이 땅은, 우리가 주인으로 사는 게 아닙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일하는 것을 사명으로 인정하며, 종과 일꾼으로서의 신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우주가 끝날이든, 육신의 끝날이든, 그 날이 언제 어디에서 임하고, 그 날을 어떻게 맞이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주님이 부르실 때까지 충성된 일꾼으로 사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은, 우리가 영원히 머물 곳이 아니고, 우리가 주인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살아가야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가장 먼저 생각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종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이 맡긴 것을 지키고, 주인이 맡긴 일을 잘 해나가는 것입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일을 맡기고 여행을 떠났으면, 언제 돌아오느냐 하는 것은 주인의 자유고 선택입니다. 주인이 늦게 오고 싶으면 늦게 오고, 일찍 오는 게 좋으면 일찍 올 것입니다. 주인이 원하면, 중간에 다른 곳을 거쳐 올 수도 있고, 바로 집으로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돌아오는 시간과 장소는 주인 뜻대로 결정할 것이고, 이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습니다.
종으로 살면서, 주인이 맡긴 사명을 다하며 살아야 한다면, 주인이 오느냐, 일찍 오느냐 늦게 오느냐 하는 것을 종이 알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종이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다 하고 있으면, 주인이 일찍 와도 열심히 일하는 종의 모습을 볼 것입니다. 종이 다른 것 신경쓰지 않고, 주인이 맡긴 일들을 위해 게으르지 않고 노력하고 있으면, 주인이 예상보다 늦게 온다 할지라도, 돌아온 주인은 늦게까지 충성을 다하는 종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맡긴 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 노력하고 책임을 다하는 종을 칭찬할 것이고, 그에 합당한 상을 줄 것입니다.
이렇게 사명과 책임을 다하는 것에 집중하는 충직하고 지혜로운 종들이 있지만, 반면에 주인이 맡긴 일보다는, 주인이 언제 어떻게 돌아오느냐 하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이것을 알아내려고 애쓰는 종들도 있을 것입니다. 누구겠습니까? 주인이 오는 때를 알아야만, 자기의 부족하고 게으른 모습이 발각되지 않을 악한 종입니다.
바꿔 보면, 주인이 없을 때는, 맡겨진 일을 잊고, 게으르고,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종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이 주인인 것처럼, 주인 행세하며 살려고 하는 악한 종이 그렇지 않겠습니까? 게으르고 악한 종은, 주인이 언제 돌아올 것인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주인이 올 때는, 열심히 일하는 척하고, 그래서 쫓겨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세상 마지막 때, 종말과 관련해 말씀하시는 까닭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이 땅에서 살아야 합니다. 주인이 잠시 여행을 떠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일들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이 언제 이 땅에 다시 오시고, 어느 곳에 오시는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일이 무엇이고, 이것을 잘 감당하고 마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게으르지 않고, 매일 이것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신앙인들은 이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맡기셨고, 무엇을 원하시고, 이를 잘 감당하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노력하는 신앙인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믿음이 좋다고, 그래서 성령님의 능력을 받았다고 하는 이들 대부분의 관심사 역시 자기의 사명보다는, 주님이 언제 어디로 오시느냐 하는 것에 집중됩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시험인지, 기독교 역사 동안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문제고, 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넘어간 주제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만 그런 게 아니고, 앞으로도 어김없이 사탄은 이것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현혹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앞, 21,22절의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는 말씀처럼, 사탄이 하나님과 예수님과 목사와 능력자의 모습으로 와서, 수많은 신앙인들을 유혹할 것이고, 여기에 넘어간 사람들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많을 것입니다.
2016년에도 홍혜선 전도사라는 사람이, 지옥을 체험하고, 또 환상을 봤다면서, 한국 땅에 큰 난리와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많은 교회를 돌아다니며 간증했습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거기에 넘어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여기에 속아 넘어가 멸망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이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탄과 귀신들은, 인간의 연약한 부분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다양하고 교묘한 말들로, 예수님이 언제 어디에서 오실 것이라고 말하면, 어김없이 거기로 따라갑니다. 예수님의 말씀보다, 사람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것을 더 확실하게 믿기 때문입니다.
아들 예수님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아신다고 말씀하심에도, 왜 그렇게 많은 신앙인들이 넘어가고, 재산을 헌납하고, 사회를 어지럽히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때는, 반드시 기도하고 있어야만 구원을 얻습니까? 반드시 교회에서 예배하고, 찬양하고 있어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성경 어디에서도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냥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살고, 혹시 예수님이 오시면 그날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날이 언제인지 안다고 해서, 준비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재림이 언제인지 알면, 그 전까지는 맘껏 살다가, 예수님의 재림 날짜에만 맞춰서 열심히 일하겠다는 뜻입니까? 만약 혹시 예수님의 재림 날짜를 알고, 그 날에 맞춰서만 열심히 일한 척 하면, 하나님께서 거기에 속아 넘어가시고, 칭찬하시고 구원해 주시겠습니까? 그런 생각 자체가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는 짓이고,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게을리 하려는 악한 마음이지 않겠습니까?
36절에서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을, 주님이 오실 때 깨어 기도하고, 찬양해야만 구원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세상에 종들에게 잠잘 시간마저 주지 않고 일을 시키는 주인이 어디 있습니까? 만약 예수님을 그런 주인으로 생각한다면, 예수님을 악한 주인으로 여기는 죄악 아니겠습니까? 주인이 돌아와 종이 자는 것을 발견하지 못 하도록 하라는 말씀은, 주인이 늦게 올 거라 생각하고, 맡겨진 일을 하지 않고, 게을리 살면서, 자신이 주인 노릇하며 사는 모습을 뜻합니다. 이런 종은 당연히 주인으로부터 꾸중을 듣고 버림을 받는 것 아니겠습니까?
주님이 이 땅에 오실 날은 언제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다시 오심에 대해 지나친 관심을 가질 필요 없고, 이런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기신 일들, 우리의 삶과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게으르지 않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 땅을 영원히 있을 곳이 아니라, 종으로 잠시 일하는 일터로 여기며, 충성스러운 일꾼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인은, 주인이 언제 오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알아내려 애쓰는 종들을 사랑하는 게 아니고, 주인이 맡긴 일을 해내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수고하는 종들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세상 끝날이 언제 어디에서 오는지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 신앙인들을 구원하시는 게 아니고, 각자에게 맡기신 일을 위해 노력하는 자녀들을 칭찬하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주님이 세상 마지막 날에 대해 주시는 이 말씀들을 마음에 새기고, 날마다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기억하며, 오직 주님의 약속과 복만을 기억하며 매일의 삶과 주어진 상황에서 노력하여,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앞에 나아갔을 때, 충성한 자에게 주시는 주님의 복과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81028)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보입니다(막 14장 10-21절) (0) | 2018.10.28 |
---|---|
(20181021)주님의 마음을 아는 신앙인이 되십시오(막 14장 3-9절) (0) | 2018.10.21 |
(20180930)그 무엇도 하나님 앞과 위에 두지 마십시오(막 13장 14-23절) (0) | 2018.09.30 |
(20180923)끝까지 말씀대로만 사십시오(막 13장 3-13절) (0) | 2018.09.23 |
(20180916)말씀 위에 든든한 믿음의 집을 지으십시오(막 13장 1-2절) (0) | 2018.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