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181125)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찾고 따르는 겁니다(막 14장 32-42절)

청명하늘 2018. 11. 25. 21:14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찾고 따르는 겁니다

 

성경: 마가복음 1432-42(81)

찬송: 337(내 모든 시험; 363), 325(예수가 함께 계시니; 359)

설교: 20181125.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지난 주일은 추수감사주일로 지켰죠? 저는 친구 세 명과 그 가족들을 교회로 불러서, 여러분들이 준비해 주신 음식을 먹고,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가족이 시간을 정해 놓고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무슨 급한 사정이 있어서 그런가 해서 이유를 물었더니, 3주간의 기한으로 기도회를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교회에서 기도회를 갖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죠? 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규모와 사정상 기도회를 갖는 게 쉽지 않은 교회입니다. 그래서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도회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친구가 가족과 함께 하는 기도회는 영상을 통한 기도회입니다. 서울에 있는 대형 교회가 중심이 되어 시작했다고 합니다. 매년 111일부터 21일까지 기도회를 개최하고, 이것을 인터넷을 통해 생방송하면, 여러 교회들이 영상을 보면서 함께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좀 살펴보니, 교단과는 상관없이 많은 교회들이 참여하고 있고, 우리와 가까운 교회, 또 우리 교단은 물론, 시찰에 속한 교회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도회라고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기도만 하는 게 아니고, 찬양을 많이 하고, 또 설교나 간증하는 시간도 많다고 합니다. 시골의 작은 교회와, 연세 많은 교인들을 위해서, 잘 모르거나 부르기 어려운 복음성가보다는 찬송가를 위주로 하고, 설교자나 간증자들에게는 어려운 말이나 외국어 등은 사용하지 않도록 권한다고 합니다.

 

저는 이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기도 하고, 또 잘 모릅니다만, 이런 기도회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좀 특이한 형식이긴 하죠? 기도회라고 하면, 보통 한 곳에 모여서 함께 찬양하고, 말씀 듣고, 기도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인터넷을 통해서 각자의 자리에서 기도회를 하는 것이니 특이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기도회를 하면서 한 곳에 모이지 않고, 모니터를 통해 기도회를 갖는 것이니 잘못되었는가요? 그렇게 보긴 어렵죠? 대형 교회나, 목회자의 사정에 따라 영상으로 예배하는 경우가 있죠?

 

대형 교회의 경우에는, 교인들은 워낙 많고, 본당은 한정되어 있어서, 여러 방에 모니터를 설치하고, 말씀을 듣고 예배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전에 제가 있던 교회에서도, 담임 목사님이 몸이 안 좋아서, 1부 예배 시간에만 직접 설교하고, 2부 예배 시간에는 1부 시간에 녹음한 것을 영상으로 보여줌으로써 설교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인터넷을 통해 각자 다른 자리에서 예배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듣는다는 것이 잘못될 것이 없습니다. 자리의 제한을 받지 않고, 좋은 설교와 간증을 들을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또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할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영상을 통해 예배하거나 기도할 때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하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듯 시간과 자리만 채울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든 기도회든 하나님을 향한 것이라면, 반드시 자기 자신이 참여하고 함께해야 합니다. 그런데 영상을 통해서 하다 보면, 예배자, 기도자가 아니라 자칫 방관자, 구경꾼이 될 수 있습니다.

 

직접 자리에 나아와 예배해도, 몸과 시간만 채우는 사람들이 많은데, 영상을 통하다 보면 훨씬 심해지겠죠? 예배와 기도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곁에서 뭐라 하고 하는 사람도 없고, 졸거나 잔다고 해도 방해 받지 않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함께 하는 예배 중에도, 몸은 있지만 전혀 다른 생각으로 가득하기도 하고, 졸거나 아예 깊은 잠에 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화면으로 보면 훨씬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영상을 통해 예배와 기도를 드리는 것의 두 번째 문제는, 가장 심각한 문제라 생각합니다만, 말씀과 기도에서 취사선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드는 것은 받아들이고, 자기 마음을 불편하게 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것들은 외면하고 버리게 됩니다.

 

쉽고 편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며 아멘으로 쉽게 받아들입니다만, 자기 계산이나 기대와 다른 것들은 무시하고 흘려보내 버립니다. “걱정하지 말아라. 원하는 대로 잘될 것이다. 어려움은 해결되고, 아픈 몸은 낫게 될 것이고, 기도하는 것들이 뜻하는 바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는 등의 말씀에 대해서는, 주저하지 않고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좀 더 배부르고, 잘되는 것보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게 참되고 영원한 복이니, 세상에서의 성공과 욕망을 따라 살지 말라는 말씀은 외면하게 됩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습니다만, 헤롯의 생일잔치와 같은 인생이 있습니다. 화려하고 편한 자리에서 기름지고 맛있는 한 끼 식사를 잔뜩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구원과 영생의 관점에서는 독으로 가득한 잔치였으니, 헤롯의 잔치와 같은 인생이 복된 게 아니라 오히려 저주입니다. 예수님이 베푸신 오병이어 식사 자리는, 편히 쉬거나 누릴 수 없는 외지고 불편한 자리이고, 그곳에서 베풀어진 식사도 밥과 김치뿐인 초라한 식사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기적이 임하고, 구원과 영생으로 이끄는 자리였으니, 이것만으로도 기뻐하고 감사할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약속이 자기 욕망의 그릇을 채우지 못 하는 것 같으니, 이런 말씀을 듣고도 흘려보내버립니다.

 

그러나 예배에서든 기도에서든 자기 판단과 계산을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자기에게 얼마나 좋아 보이느냐, 어려워 보이느냐가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에게 얼마나 이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옳은지, 성경에 비추어 잘못되지 않았는지 하는 것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비춰 잘못되거나 어긋나지 않았으면,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은 특히 기도에서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에서 기도가 중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신앙인들 모두 생각이 같습니다. 그러나 많은 신앙인들은 기도에서 시간과 형식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이 길면 기도를 많이 하고 잘 한다고 생각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거나, 금식하며 기도하거나, 막힘없이 기도하는 게 좋은 기도, 응답을 받는 좋은 기도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기도에 대한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기도하는 시간과 형식은 하나님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은 그 속에 하나님을 향한 마음, 주신 말씀에 어떻게 결단하고, 순종하느냐 하는 것뿐입니다.

 

기도에서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게 순종이라는 것은 오늘 본문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라는 산에서 기도하시는 모습과 내용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이 장소를 감람산으로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의 이 기도 때문에, 산에서 기도하는 게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또 누가복음 2239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라는 말씀 때문에,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게 중요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잘 받는 비결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물론, 다른 것의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조용한 산에 올라가 기도하는 것도 좋습니다. 바쁜 생활 속에서, 다른 일들을 모두 마친 후 자투리 시간에서야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보다는, 먼저 하나님을 향한 시간을 정해 놓고, 그 시간에 맞춰 나아가 기도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것을 먼저 찾고 구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장소와 시간이 아닙니다. 아무리 조용한 곳, 그래서 오직 하나님께 집중해서 기도할 수 있는 곳에서 기도한다 할지라도, 매일 대부분의 시간을 오직 기도에만 집중한다 하더라도,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바람직한 기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가 될 수 없습니다.

 

몇 시간 뒤에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이 보낸 사람들의 손에 붙잡히시고, 재판을 받고, 고난 속에 십자가에서 죽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 중 하나인 유다가 자신을 팔 것을 아셨습니다. 팔린다는 것은 곧 가장 무서운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고 죽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도 얼마나 큰 두려움이었는지 모릅니다. 단순히 제자에게 배신당하고, 큰 고통 중에 죽으신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이 순간에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시고, 함께하셨던 하나님이 외면하시고 버리신다니 예수님께도 그 순간이 너무나 무섭고 두려우셨습니다. 이 고통과 두려움이 얼마나 크셨는지 34절에서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과장하는 경우들이 많지만, 죽을 만큼 고민이 된다는 예수님의 이 고백은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누가복음 22장에서도 예수님의 이 기도를 기록했는데, 44절에서는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고 합니다. 이 표현을 다양하게 해석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만큼 예수님은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기도하셨고, 또 간절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목적이 분명하고, 간절하게 기도하는데, 예수님의 기도는 그 결론은, 36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드린 기도의 두 가지 특징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확실히 믿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나 내가 바라고 원하는 대로 되기를 바라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에서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자세입니다. 내 계획대로 되고, 내 기도대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게 능력 있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에 내 삶의 과정들을 맡기며 기도하고, 응답에 따라 살기로 작정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철저히 고통과 두려움마저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하고 기도하시는데, 제자들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입니다. 본문 앞에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시면서, 한 제자가 자신을 배신하고 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또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 하나 잘못을 뉘우치려 하지도 않고, 고치려 하지도 않습니다.

 

이에 대해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만, 기도에 대해 알려주시고 직접 그대로 행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 반면에 예수님의 거듭된 부탁과 강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눈을 감고 자느라 기도하지 않는 제자들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그 까닭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대로 실천하려 하지 않고, 자기 뜻과 판단을 앞세우려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겪게 되시면, 모든 제자가 버리고 떠날 거라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고 답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모두 부인하거나, 주님을 고난 중에 홀로 버려두고 떠나지 않겠다고 장담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의 예언처럼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가 자기 살고자 하는 욕심에 따라 예수님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만, 예수님이 기도하는 것을 습관으로 두셨고, 대부분의 시간을 예수님과 함께 보낸 제자들이라면, 제자들도 역시 기도하지 않았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비록 오늘 본문 속에서는, 피곤이 너무 크기도 했고, 또 예수님께 닥쳐온 고난과 고통이 얼마나 크고 긴박한지 몰라서 계속 졸고 있습니다만, 다른 때에도 전혀 기도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라 시간을 정해 한적한 곳에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뜻과 기대와는 정반대로 행동한 까닭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려는 자세로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판단과 계획과 기대를 하나님의 역사보다 위에 두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제자들은 하나님의 응답은 곧 편안함과 성공과 부와 누림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 했습니다. 고난과 아픔과 가난은 실패요 저주라고 여겼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신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 합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받은 것은 곧 실패요 저주라 여기니, 이를 피해 도망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기 편함과 성공과 권력을 기도 응답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는 두려움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마저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맡겼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 분명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도 확신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본받아 나아가야 할 모습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대로 되는 것만을 하나님의 응답으로 여기지 않고, 내 뜻대로 하나님을 조종하거나 이끌려 하지 말고, 내가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 뒤로 물러나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자세입니다. 많은 시간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고, 간절히 집중해서 기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가장 복되고 좋은 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 뜻에 맞춰가는 게 아니라, 내 삶과 생각을 하나님의 길과 인도하심에 맡겨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을 앞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바라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가장 복된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도, 하나님의 능력과 인도하심을 믿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에 맞춰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생과 복을 날마다 누리며, 기대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