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181111)하나님의 약속만이 확실합니다(막 14장 22-31절)

청명하늘 2018. 11. 11. 15:35

하나님의 약속만이 확실합니다

 

성경: 마가복음 1422-31(80)

찬송: 335(크고 놀라운; ), 542(구주 예수 의지함이; 340)

설교: 20181111.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하는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인류가 만들어 낸 것들이 엄청 많고 대단합니다. 증기를 이용해 힘을 얻는 것을 증기기관이라고 하는데, 이게 발명된 지가 250년이 채 안 되었습니다. 영국의 와트라는 사람이, 1769년에서야 물을 끓여서 힘을 얻는 것을 발견했다는 겁니다. 발견된 지 300년도 안 되었는데, 그에 비하면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발전을 이뤘습니다.

 

자동차를 만들어 내는 것도 신기한데, 이제는 너무 많아져서, 도시마다 주차하는 것을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30,40년 전에서야 가정에 유선전화가 많이 보급되었습니다만, 이제는 온갖 일을 해내는 전화기를 각자 들고 다니는 때가 되었습니다. 단순히 전화기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만큼, 인터넷, 영상통화, 리모컨, 계산기, TV, 라디오, 음악 재생까지 온갖 것들을 해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것들이 발견되고 발전되었는데, 이런 것들 중에서 가장 어렵고, 가장 놀라운 발견과 발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개인과 시간에 따라 다 달리 생각하겠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우주선이야말로 인류가 지금까지 보여준 수많은 것들 중에서도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이전까지는 큰 망원경을 통해서야 겨우 볼 수 있었던 곳들에 우주선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달은 사람이 타고 직접 오간 것에 꽤 되었습니다만, 지금은 화성은 물론 목성을 지나 토성까지 우주선이 가고, 태양계 밖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 거리가 얼마나 먼지, 이 우주선을 보낸 것이 1977년입니다. 벌써 40년이 넘었습니다. 대단하죠?

 

이렇게 엄청난 우주선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요? 우리나라도 선진국에 속하고, 기술력은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인공위성들만 쏘아 올릴 수 있습니다. 인공위성은 하늘에서 높이 떠서 지구와 함께 도는 것을 말합니다. 지구를 떠나 다른 별을 향해 갈 수 있는 우주선은 지금도 만들고 보낼 수 있는 나라는 미국, 러시아, 중국 정도밖에 안 될 정도입니다.

 

우주선을 만들고 보내는 게 어렵다는 것은, 거기에 들여야 하는 노력이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기술력이 가장 좋은 나라들만이 이 일을 감당할 수 있고, 또 그 나라 사람들 중에서도 기술과 지능이 가장 뛰어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지능과 기술이 가장 좋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들이 우주선을 만들고 보내는 데 수 천 억원씩 들이고, 몇 년씩 준비하는데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주선을 만들고 보낼 준비하는데 몇 번 준비하고 말까요? 각 부품마다 제대로 작동하는지 조사하고 검사하고 확인하는 작업을 수없이 할 것입니다. 부품이 연결되어서는 어떤지도 셀 수 없이 확인하겠죠? 이렇게 준비하고도, 날이 조금만 흐리거나 바람이 불면 연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과정을 보면, 능력이 가장 좋은 사람들이, 가장 좋은 장비를 통해 만들고 검사를 셀 수 없이 반복해서, 실수나 오류가 없도록 철저히 만듭니다.

 

문제는, 철저히 만들고 확인하고 검사함에도 불구하고,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우주선을 발사한다는 것은, 그 나라의 자존심과 자긍심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대충 날짜를 잡거나 발표하지 않습니다. 계속된 조사와 검사를 거쳐서 흠이나 오류가 없어서 완벽하다고 판단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발사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발사가 안 되는 경우도 있고, 조금 날아올랐다가 폭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잠깐 영상을 보실까요?)

 

하나는 1998년에 있었던 타이탄 A-20로켓 폭발인데, 이 사고로 약 11500억 원 가량의 손실이 생겼다고 합니다. 다른 하나는, 1986년에 7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발사되었다가 폭발한 챌린저 호입니다. 폭발 장면이 전세계로 생중계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사고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이런 기계를 우주로 쏘아 올릴 만큼 인간의 기술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인간에게 완벽함이란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를 위해 천재들 중 천재들이 수백 명이 모여서, 셀 수 없이 검사하고 확인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하는 사고가 많다는 것입니다.

 

우주선을 보내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 그렇지, 성공 확률로 따지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계획대로 만들어지고, 우주로 보내지는 경우보다는, 반대로 계획이 실패하고, 우주로 보내지 못 한 경우가 훨씬 더 높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대단한 것 같으나, 사실은 부족함투성이에 불과합니다. 그 능력과 기술이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발전하고 좋아지는 것 같지만, 영원히 부족함을 메울 수 없는 연약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사람은 사랑과 용서의 대상이지, 절대 믿음과 확신의 대상이 되지 못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제자들과의 마지막 식사하시면서, 그 자리에서 나누는 떡과 포도주를 모든 이를 위해 주시는 것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성만찬이 있은 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때, 베드로가 부인할 것을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베드로는 팔짝 뛰며 이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 본문을 나눠서 설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순서에 따라, 베드로의 부인을 예언하신 것으로 설교할까 고민했습니다만, 성경에서 전혀 다른 이 두 이야기를 이어서 기록해 놓은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단지, 베드로가 부인할 것을 예언하신 것으로만 끝나면 그게 무슨 의미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에서 이 두 본문을 이어서 말씀한 까닭을 살피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합니다. 성경의 내용들을 살펴봐도, 제자들을 대표한 인물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아무 말도 못 하거나 머뭇거릴 때도 나서서 말하고 앞서 행동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성격처럼, 신앙생활에서도 결단력을 잘 보여 주었습니다. 마가복음 116절에 보면, 베드로는 동생인 안드레와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다가,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즉시 그물을 버려두고 따랐습니다. 신중하거나 뭔가를 잘 재는 사람이었다고 한다면, 그물을 다른 사람에게 팔거나 아니면 맡겨놓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물을 버리고, 머뭇거리지 않고 예수님을 따른 것을 보면, 급하고 결단력 있는 성격이 좋은 열매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가장 먼저 고백해서 칭찬을 들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물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두려워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베드로만 유일하게 물 위로 조금 걸었습니다. 또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여러 지역을 다니며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등의 기적도 행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에 빨리 순종하고, 또 적극적으로 앞장섰고, 결국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서 대표 노릇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속 베드로는 스승인 예수님을 부인할 것이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베드로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예수님의 이 말씀이 너무 섭섭했을지 모릅니다. 앞에서 열두 제자들 중 하나가 예수님을 팔 것이라 하신 것도 너무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특히 언제나 자신 있었고, 예수님을 가장 잘 믿고 따를 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까지 잘 이끈다고 자신했는데,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가 예수님을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니 얼마나 섭섭하고 놀랐겠습니까?

 

베드로의 성격으로 보면, 31절에서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하는 말이, 과언이거나, 마음속과 달리 거짓말을 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베드로는 정말 죽기를 각오하고, 주님을 지키고, 마지막까지 함께하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모두 예수님을 부인하고 떠난다고 해도, 자신만은 마지막까지 제자로서 머물고 싶고, 또 그럴 만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왜 이 말씀을 기록하셨겠습니까? 베드로가 부인할 것만을 말씀하시기 위해서라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너무 작아지고 맙니다. 베드로마저도 예수님을 부인했으니, 그러면 우리에게 어떻게 하라는 말씀인가요? 그냥 베드로가 스승을 부인하고 떠날 것을 예언하셨다는 것이 기록한 목적이라 하기엔 뭔가 부족해 보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을 앞의 성만찬과 연결해 보고 해석하는 게 좋아 보입니다.

 

스승인 예수님이 어려움에 처하시면, 가장 담대하고 또 적극적으로 따랐던 베드로마저 떠날 거라는 예고를, 성만찬 속의 말씀과 연결해 보면 비로소 그 뜻이 명확해집니다. 그것은 사람이 하는 모든 일과 말은 언제나 부족하고 흠이 있고 변질되기 쉬워서 믿을 수 없고, 반면에 예수님의 말씀과 약속은 절대 변질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마지막 식사 자리에서, 떡과 포도주를 주시면서, 그것이 곧 자신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22절에서는 이것은 내 몸이니라고 하셨고, 24절에서는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도 매월 마지막 주일낮예배 시간에 성찬예식을 행하고 있습니다. 비록 한 달에 행하고는 있지만, 이것은 단지 성찬예식을 행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성찬을 통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기억하며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찬을 행하시면서, 이후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말씀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피를 쏟으시고,

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고, 그래서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이 원리와 약속을 누가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만약, 우리를 위해 대신 희생하고, 그래서 이를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이 약속을 베드로가 한 것이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베드로의 그 약속을 과연 우리가 영원히 붙잡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인간이 때로는 대단한 것 같고, 엄청난 일들을 해낸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어낸 것들을 보면, 또 앞으로 얼마나 놀라운 것들을 만들어 내고, 이루어낼지 예상하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말과 약속과 능력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우리가 잘 알지 않습니까? 인간이 만들어내는 과정들을 오늘 본문의 말들로 바꿔 표현해 보면, 베드로의 다짐과 비슷해 보입니다. 워낙 자신있게 말하고, 확신해서 변질되거나 잘못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다른 제자들이 모두 주님을 부인할지라도, 차라리 죽는 한이 있어도 자신만은 절대 부인하지 않겠다던 베드로의 확신과 다짐이 철저히 무너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채 하루도 지나지 않고, 불과 몇 시간에 불과했습니다. 대단한 것 같고, 확실한 것 같아도, 이처럼 속절없이 무너지는 게 인간의 약속이고, 이게 인간의 한계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는다는 약속과, 이것을 믿고 살면 영원한 생명을 주겠다는 약속을 주님이 직접 주신 것입니다.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온 것이라면, 좋은 말이 아무리 많고, 소망이 가득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확신하지 못 하게 됩니다.

 

성만찬을 행하시면서, 많은 사람을 위해 몸과 피를 주신다고 예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고난과 죽음의 위협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도, 도망하거나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과 함께 먹고 자고 함께 생활했던 제자들 중 하나인 유다가 자신을 팔 것을 아셨음에도, 함께 식사 자리에 앉으셨고, 그 이름을 밝히지 않으셨고, 유다를 위해서도 몸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어떤 위협과 두려움이 있고, 고난과 죽음이 눈앞에 있을 때조차도, 구원과 영생에 대한 약속을 버리거나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과 같은 죽음도 아닙니다. 심지어는 고난이라 말하기도 어려울 때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라고 해도, 붙잡아가지도 않습니다. 당연히 고문이나 처형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두려워서 예수님을 버리고 부인하게 되니, 예수님의 모습과 철저히 대조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보면, 구원과 영생에 대한 약속이 연약한 사람의 입을 통해 주어지지 않고, 변질되거나 사라지지 않는 예수님의 말씀과 희생을 통해 주어졌으니, 한 치의 불안이나 의심없이 믿고 구원의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것들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 길이고, 번복되지 않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것들은 연약한 것 같으나 강하고, 사라질 것 같으나 영원하고, 이해되지 않으나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철저히 사랑하시고, 구원과 영생에 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들은, 사람이 주는 것과는 달리 모양은 없는 것 같으나 영원히 변치 않고,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구원과 영생에 대한 이 약속을 사람의 입과 행동을 통해 주시지 않고, 주님을 통해 주셨으니, 이 약속들을 믿고 살아가면, 우리는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 약속이 확실해지면, 지금 아프고, 두렵고 힘들어도, 우리는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소망을 가지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땅의 삶이 잠시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님의 삶과 희생으로 우리에게 영원히 변치 않는 약속들로 주신 구원과 영생의 소식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약속들을 확신하며 믿고 살아감으로써, 우리 모두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영원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