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181118, 추수감사절)주의 자녀로 사는 게 가장 큰 복입니다(막 6장 35-44절)

청명하늘 2018. 11. 18. 22:55

주의 자녀로 사는 게 가장 큰 복입니다

 

성경: 마가복음 635-44(63)

찬송: 543(어려운 일 당할 때; 342), 591(저 밭에 농부; 310)

설교: 20181118. 주일낮예배(추수감사절)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이번 주일은 추수감사절로 지키는데, 한 해 동안 거두고 이룬 것들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주일입니다. 감사를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이를 목적으로 기억하며 행하는 절기입니다.

 

감사라는 것은, 고맙게 여기는 것, 또는 그런 마음을 뜻합니다. 그러면 한 해의 막바지에 이른 지금의 모습과 상황에 대해 감사하고 기뻐하십니까? 감사하려면 그러할 만한 일이 있어야죠? 계획했던 일이 잘되었다든지, 몸이 건강해졌다든지, 돈을 많이 벌었다든지 하는 것 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모두가 바라는 것들이고, 또 신앙인들은 끊임없기 기도하는 것들이지만, 그럼에도 모두 바라는 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면 무엇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까? 더 나빠지지 않은 것으로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까요?

 

전에 이런 것으로 감사하는 것이 좋은 믿음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올해 농사를 지으면서, 이상 기후 때문에 풍작을 이루지 못 했어도, 더 나빠지지 않은 것으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한 마지기에서 쌀 80kg 기준으로 네 가마를 수확하는데, 올해는 바람 때문에 3가마밖에 수확을 못 했다면, 작년보다, 또 기대보다 줄었죠? 그럼에도 전혀 수확을 못 한 게 아니고, 그나마 3가마를 수확한 것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라는 겁니다. 또 교통사고가 크게 나서 다리 하나를 절단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은 사람이 있다면, 비록 다리 하나는 잃었지만, 살아 있고, 다리도 하나가 남아 있는 것으로 감사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도 감사의 종류일 수 있고, 그런 기준도 나름의 이유를 가진 것일 수 있지만, 성경에서 신앙인들에게 감사하라는 말씀과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 18절에서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즉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것은, 상황과 조건에 따라 좌우되지 말고, 기뻐하고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기뻐하고 감사하거나, 낙심하고 원망하는 것은 대부분 조금 더조금 덜에 따라 나뉩니다. 조금 더 얻고, 조금 더 좋아지면,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조금 덜 얻고, 조금 더 나빠지면, 실망하고 원망합니다. 그런데 더 안 좋아졌음에도, 그보다 더 나빠지지 않은 것에 감사하는 것은 꽤 괜찮은 모습이긴 하지만, 이것 역시 조건과 여건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상황과 여건과 조건에 따라 바뀌거나 변질되지 않고, 기뻐하고 감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모든 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갈까요? 아니면 도인이 된 것처럼, 세상 모든 것은 헛되고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며 살면 될까요?

 

오늘 본문은, 물고기 두 마리, 떡 다섯 개로 5,000명의 성인 남성을 먹인 오병이어 이적이고, 작년에 설교했습니다만, 추수감사절을 맞이해서, 다시 기억하고 새롭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경이 기록된 당시에는, 성인 남성만 계수하는 게 관례였습니다. 당시에는 무기를 들고 적과 싸움을 벌이는 경우가 많았겠죠? 그렇다 보니 무기를 들고 적과 싸울 수 있는 성인 남성이 기준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병이어 이적에서, 5,000명이라고 하면, 여성과 어린아이들까지 포함하면 일만 명 이상이었을 것으로 계산합니다.

 

예수님이 열두 제자들을 두 명씩 짝을 이뤄서 이곳저곳에 보내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다니지 않을 만큼, 사람의 것들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가르침을 받아들였고, 귀신들이 쫓겨났으며, 병자들이 낫는 등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몰려왔는지, 제자들이 밥을 먹을 만한 여유조차 없을 정도였습니다. 예수님이 배를 타고, 조용하고 외진 곳으로 가시는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서 오히려 먼저 도착할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몰려든 사람들의 끼니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셨습니다. 제자들의 계산으로는 200데나리온 정도가 필요한데, 그만한 돈이 제자들에겐 없습니다. 다만 한 아이가 가지고 있던 물고기 두 마리, 떡 조각 다섯 개를 찾아냈습니다. 이것은 한 사람이 먹을 정도의 아주 적은 식사입니다. 예수님은 이 보잘것없는 한 사람의 식사로 성인 남성만 5,000명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반응이 좀 이상합니다. 굶을 수밖에 없을 때에 배부른 식사를 베풀어 준다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합니까? 기대할 수 없을 때에 한 끼 식사는 한 끼 식사의 가치를 훨씬 넘어서죠? 오병이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의 한 끼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귀했습니다. 게다가 굶어야 하는 상황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식사를 제공받았으니,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겠습니까?

 

하지만 이 기적을 기록한 복음서 네 곳을 모두 살펴봐도, 이에 대해 기뻐하거나 감사했다는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지 몰라서 무덤덤하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 음식이 어떻게 왔는지 분명하게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제자들만이라도 놀라고, 기뻐하고, 감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굶어야 하는 상황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고, 그 식사가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을 통해 주어졌다는 것을 알면 더 그래야 합니다. 그러나 그 식사가 어떻게 주어졌는지 잘 알던 제자들도 역시 너무 무덤덤하게 지나고 맙니다.

 

그 이유를 달리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 본문 앞에 나오는 헤롯의 잔치와 연결해 살펴보면, 그 까닭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헤롯은 당시 이스라엘 일부 지역을 통치하던 왕이었습니다. 헤롯이 자기 생일에 장관들, 군대의 최고 지휘관들, 부자들을 불러 잔치를 벌였습니다.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자기 생일에 잔치를 벌였다면, 그 규모가 얼마나 크고 대단했겠습니까? 술에 취하고, 분위기가 한참 무르익을 때, 의붓딸이 춤을 춰서 손님들을 기쁘게 해주자, 그에 대한 보상으로 세례 요한을 죽였습니다. 심지어는 롯도 세례 요한이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고 인정했습니다.

 

헤롯의 생일잔치와 오병이어 이적이 이어 기록된 것을 통해, 예수님이 주신 오병이어를 먹은 사람들, 그리고 모든 과정을 잘 아는 제자들까지도 그렇게 무감각하게 받아들인 까닭을 알 수 있습니다. 모두 헤롯의 잔치 자리에 눈을 고정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왕의 생일잔치고, 최고 권력자들과 부자들이 모였다면, 그곳이 얼마나 귀한 것들로 가득했겠습니까? 또 그곳에 마련된 음식과 술은 얼마나 좋은 것이었겠습니까? 보통 사람들은 먹어보기는커녕, 보지도 못 한 귀하고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하겠죠? 재료만 귀하고 좋은 게 아니라, 그 나라에서 최고의 요리사들이 와서 준비했으니, 그 맛이야 기가 막힐 정도였겠죠? 술도 그 권력의 크기에 맞게 최고의 것이었겠죠? 귀하고 비싼 술이 어떤 맛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웬만한 사람들은 구경조차 힘들만큼 좋은 술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어디 이것뿐이겠습니까? 왕의 생일잔치를 베푸는 자리고, 귀한 손님들을 모신 자리니, 그곳은 금은보화와 보석 등 온갖 좋은 것들로 치장했겠죠? 자리마다 온갖 화려한 것들로 수놓았고, 나오는 그릇마다 얼마나 예쁘고 화려했겠습니까?

 

오병이어의 자리에서 먹은 사람들이 이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헤롯의 잔치에 눈을 고정하고 있으니, 자신들이 먹은 식사와 자리가 얼마나 초라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겠습니까?

 

오병이어 기적의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먹이려면 200데나리온, 요즘 우리 돈으로 하면 약 2,000만원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이를 만 명이 먹었다면, 한 사람 식사 값으로 2,000원 꼴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식사로 본다면, 밥과 김치 하나인 소박의 수준을 넘어 초라한 식사였습니다.

 

또한 오병이어 이적의 현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은, 인가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외진 곳밖에 없습니다. 편히 앉을 만한 곳, 잠을 잘 만한 곳도 아니었기 때문에, 어두운 때라도, 가다가 힘이 빠져 주저앉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 만큼 거칠고 불편한 자리였습니다.

 

제자들까지 포함해 그곳에 모인 이들이 모두 그렇게 헤롯의 잔치 자리와 그곳에 차려진 최고의 음식들만 바라보고 있으니, 예수님이 주신 음식도,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신 그 자리에도 전혀 감동하지 않습니다.

 

헤롯은 자기 욕망에 따라 살았고, 욕망이 가득한 생일잔치를 벌였습니다. 아름답고 귀한 보석들로 장신된 곳에,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 가득했고, 맛좋은 포도주와 귀한 술로 잔들이 끊임없이 채워지고, 앞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헤롯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아첨의 말을 끊임없이 내뱉었지만, 그러나 그 잔치가 영원하겠습니까? 그 분위기와 취기에서 깨어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단 몇 시간 후에 남은 것이라곤 후회와 두려움뿐이었습니다. 숙취로부터 오는 두통과 메스꺼움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고통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능력을 행하시는 것을 소문으로 들을 때마다, 자기가 죽인 세례 요한이 살아났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고 생각하는 것도 두려워하는데, 자신의 명령으로 죽인 사람이 살아나서, 그것도 온갖 기적과 능력을 행하고 있다고 하면 그 두려움과 고통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이렇게 보면, 헤롯의 잔치 자리는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과 좋은 술이 가득하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들로 치장된 자리였지만, 결국 멸망과 죽음으로 가는 자리였습니다. 좋은 것들로 배불릴 수 있는 한 끼였을지 모르지만, 현생은 물론, 내세까지 패망으로 이끄는 죽음의 자리였습니다.

 

예수님이 머무시고,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했던 자리는, 헤롯의 잔치 자리와 같지 않았습니다. 기름지고 맛있는 것 하나 없는 한 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자리도 소박한 식사와 다를 바 없이 거칠었습니다. 돌과 바위투성이인 거친 들판인지라, 편히 앉을 수도 없고, 누울 수도 없습니다. 바람과 이슬과 비를 피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는 세상적인 권력이나 지위가 없는 가난하고 초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통해 한 끼를 해결한 수많은 사람들도 역시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배가 고플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최소한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는 일에 동조하거나 방관하지는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초월하신 예수님의 능력을 맛보게 되었으니, 복된 자리였습니다. 그 자리에 하나님이 은혜와 기적을 베푸셨으니, 사실 그 자리는 초라하거나 부족한 자리가 아니라, 놀라움과 은혜가 넘치는 자리였습니다. 당연히 여기거나 부족하다고 원망할 자리가 아니라, 감사와 찬양이 넘쳐야 하는 자리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헤롯의 생일잔치 같은 삶을 바라고 좋아합니다. 그것이 성공이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예수님이 베푸신 오병이어 자리와 같은 삶을 싫어해 피하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의 자리처럼, 불편하고, 소박하거나, 힘없는 사람으로 사는 것을 싫어하며, 복을 받지 못 했다고 원망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 헤롯이 걸어갔던 거짓과 죄악이 없다면, 그것만으로도 뭔가 부족하거나 덜 채워진 삶이 아니라, 기적과 같은 삶입니다. 비록 우리의 삶이 헤롯의 잔치상처럼 산해진미와 기름진 음식이 가득하지 않더라도, 우리와 함께하는 이들이 높은 지위와 권력을 가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자리가 비싸고 귀한 것들로 화려하지 않더라도, 모든 여정들이 주님을 거스르지 않은 자리라는 것만으로도 기뻐할 일입니다. 일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며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잘못되거나 실패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복되고 성공하는 길입니다.

 

내생에 비춰보면, 지금 이 땅의 삶은 마치 한 끼 식사와 같은 과정에 불과합니다. 헤롯처럼 풍성하고 맛있는 식사를 하는 인생도 있고, 오병이어처럼 소박한 것으로 채워진 인생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맛있고 좋은 것으로 한 끼를 먹는다 하더라도, 그 맛과 배부름이 몇 시간 가지 않는 것처럼, 이 땅에서의 화려함과 부함과 권력도 금세 끝납니다. 비록 보잘것없고 밥과 김치로 이뤄진 소박한 식사를 하더라도, 그 초라함도 금세 끝날 것입니다. 그래서 화려하고 기름진 것들로 가득한 잔치자리였는지, 덜 갖고 덜 누린 보통의 삶이었는지 하는 것보다, 그 이후 어디로 가고, 어떻게 이어지느냐 하는 것이 더할 수 없이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의 삶이 최고 권력자와 삶과 같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부자들의 생일 잔치자리처럼 기름지고, 풍성한 식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의 집이 화려하고 귀중한 보석들로 치장된 곳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밥과 김치 하나뿐인 소박한 인생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여기저기 아프고 병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 안에서 살고 있으니, 우리의 삶이 끝난 후에,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과 영생이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할 일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 자체가 넘치는 은혜고, 기적의 현장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해,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하며, 이 땅의 여건에 따라 마음을 달리하지도 말고, 잠시 즐기고 배부를 세상 것을 위해 하나님의 것을 버리지도 말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가고 있음에 기뻐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