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찾아오시는 사람이 되십시오
성경: 사무엘상 3장 1-10절(구 412쪽)
찬송: 478장(참 아름다워라; 통78), 312장(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통341)
설교: 20190414.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을 설명할 때 자주 나오는 말들 중 하나가 ‘취업난’이라는 말입니다.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취업난이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은 많고, 일자리는 적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농촌에서 지내시니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네에서 일할 때는 잘 모르지만, 다른 동네나 다른 지역으로 일을 다니시다 보면, 하루 일하고 받는 금액이 달라지죠? 같은 시간 일해도, 어느 때는 받는 금액이 크지만, 또 어느 때는 금액이 훨씬 적습니다.
어느 시기에 일당이 가장 적은가요? 보통 12월에서 2월 사이죠? 이때는 농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많습니다. 시금치 작업을 하시면, 4-5시간 일하고 받는 금액이 3만원가량이라고 들었습니다. 춥고, 해가 짧아서 일하는 시간이 짧아서 그렇기도 합니다만, 8-9시간으로 바꿔 계산해도 일당이 6만원밖에 안 될 정도로 적습니다. 이것은 취업난의 한 경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취업난’이라는 말이 나올 때, 또 다른 한 편에서 함께 나오는 말이 ‘구인난’이라는 말입니다.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취업난’과 ‘구인난’이라는 말은 함께 사용되기 어려운 말입니다. ‘취업난’은 일할 사람은 많지만, 일거리가 적어서 생기기 때문이고, ‘구인난’은 일거리를 많은데, 일할 사람은 적어서 생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거리가 없고, 취업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면서, 동시에 다른 한 쪽에서는 일할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구인난을 심각하게 겪는다는 말을 많이 나옵니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직업을 구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덜 힘든 일, 또 적은 시간 일하면서도,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 합니다. 반대로 사람을 구하는 곳에서는, 힘든 일을 많이 시키면서도 오히려 돈을 적게 주고 싶어 합니다. 이 때문에 한 쪽에서는 일거리가 없다고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는 이상한 상황이 생깁니다.
그러나 돈을 많이 주고, 일할 여건이 좋은 회사들에서도 일할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는 말을 들어보면, 서로의 이익을 챙기려는 목적 이외에도, 또 다른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일하려 하는 이들은 많은데, 정작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들, 회사에서 필요한 것들을 잘 갖춘 사람들은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 청년들은 예전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준비하죠? 하지만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을 갖추지 못 하고, 전혀 상관없는 것, 혹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들만 많이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는 컴퓨터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갖춘 사람을 필요로 하는데, 이와는 상관없이 그저 영어나 자격증만 갖춘 사람들이 지원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직장을 구하고 싶으면, 좋은 회사가 요구하는 것들, 필요로 하는 것들을 잘 갖추는 게 취업하기에 가장 좋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회사에서 꼭 필요한 것들을 갖추면, 그때는 아예 회사에서 그 인물을 찾아가 큰 보상을 약속하며 사정하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을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지만,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는 것도 좋은 풀이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찾아가 만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아예 하나님께서 직접 사무엘을 찾아오시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시는 줄 전혀 모르는 것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네 번이나 나타나실 만큼 찾아오십니다.
그 전까지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적도 없고, 하나님께서 사람의 귀에 들리는 음성으로 말씀하신다는 것조차 들은 적이 없어서 이를 전혀 알아채지 못 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것을 모르고, 자신이 섬기고 있는 엘리 제사장이 부르는 것으로 알고 가서 심부름할 것이 있는지 묻습니다. 하지만 엘리는 자신이 부르지 않았다고 말하고, 사무엘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으로 생각하고 다시 잠자리에 눕습니다. 이것이 세 번이나 반복되자, 그나마 나이가 많은 엘리 제사장이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나타나신 것을 알고, 사무엘에게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알려줍니다.
앞 2장 22절의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라는 말씀처럼, 엘리는 그만큼 오랜 시간 사사와 제사장으로 활동한 인물입니다. 두 아들은 온갖 악행을 저질러 하나님의 저주와 징벌을 받지만, 엘리 제사장만을 놓고 보면, 큰 악행을 저지르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들을 꽤 신실하게 했습니다. 이 과정들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엘리에게는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본문 1절의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는 말씀처럼, 엘리 제사장만이 아니라, 그 당시엔 하나님은 그 어떤 것으로도 역사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찾고 만나려 제사하고, 기도하는 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거두셨던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는 오히려 먼저 찾아오시고 말씀하십니다. ‘삼고초려’라는 말처럼, 사람 사이에서도 한두 번 거절해도 다시 찾아가거나 부탁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네 번이나 사무엘에게 반복해 나타나십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아채지 못 했다면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이 알아챌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나타나시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처럼 사무엘에게 반복해서 나타나십니까?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찾고 기다리고 계십니까?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본문 1절 “아이 사무엘이”라는 표현을 보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사무엘의 나이가 어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기마다 제사장이 될 수 있는 나이가 달라지긴 했지만, 최소 20세가 넘어야 합니다. “아이 사무엘이”라는 표현을 볼 때, 아직 제사장의 직분을 받지 않았을 때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으로서 수십 년 일했던 엘리에게는 한 번 나타나시지 않으셨음에도, 아직 나이가 되지 않아 그저 심부름꾼으로 있는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다는 것은, 하나님은 그 사람이 가진 직분이나 신분에 관심이 없으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렇다고 사무엘이 하나님이나 말씀에 대한 지식이 많거나, 제사의 절차와 규례 등을 잘 알아서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으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7절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 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사무엘은 아직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나 열정이 대단하지 않았을 때입니다.
이처럼, 경험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열심이 있던 엘리에게 나타나시지 않고, 반대로 어리고, 또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열심마저도 충분치 않았음에도, 사무엘에게 반복해서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부르신 까닭을 앞 2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2장 30절의 후반절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고 말씀하시고, 35절에서는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은 아직 나이가 어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직분마저 없었지만, 그 마음에 말씀과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뜻에 따라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는 마음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런 속마음을 아셨기에, 하나님께서는 심부름꾼에 불과한 사무엘을 찾아오셨고, 사무엘이 알 때까지 반복해서 부르시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하나님을 만나려면 목사가 되어야 말하고, 성경에 대한 지식이 많아야 한다고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기도를 많이 해야만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은사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예배를 많이 드리고, 헌금과 헌신에 따라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달라진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외적 조건에 따라 달라지시는 분은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직분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제사와 헌신에 따라 바뀌는 분이시라면, 사무엘보다는 엘리 제사장에게 나타나셔야 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사무엘과 같은 모습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얼마의 시간과 헌신과 금액을 바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귀중히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우리의 삶에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인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면, 그렇게 살기로 다짐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 누구도 완벽할 수 없기에, 그런 다짐에도 불구하고, 자꾸 실수하고, 흔들거리고, 넘어지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그런 마음을 가진 이들을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런 자녀를 찾아가시고, 나타나시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로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여건 때문에 봉사나 헌금이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배울 기회가 충분치 않아서, 성경과 신앙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 하거나, 받아도 금세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배우는 것도 좋고, 헌신하고 예배를 드리는 것도 좋지만, 우리 속에 하나님을 품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단지 기억과 지식으로만 알고, 예배와 직분을 형식으로만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좀 부족하고, 신앙생활의 기간이 길지 않다 하더라도, 지식과 헌신이 크지 않다 하더라도, 그 속에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이 맡기신 것들을 지켜 행하기로 결심하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삶이 됩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만나시는 인생이 됩니다.
오늘 본문 속 사무엘과 엘리의 모습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사무엘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다른 무엇을 통해 찾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먼저 직접 찾아오시고 나타나시고, 그 삶의 모든 과정을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 모두가 사무엘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기억하고, 신실하게 약속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녀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복과 은혜를 날마다 누리며 살아 나아가는 복된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
'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190428)말씀을 온전하게 받아들이십시오(삼상 3장 11-21절) (0) | 2019.05.01 |
|---|---|
| (20190421)부활의 씨앗으로 소망을 품으십시오(막 16장 1-11절) (0) | 2019.04.21 |
| (20190407)하나님의 것을 귀히 여기는 신앙(삼상 2장 26-36절) (0) | 2019.04.07 |
| (20190331)오직 나의 신실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삼상 2장 18-26절) (0) | 2019.03.31 |
| (20190324)하나님만이 복 주심을 인정하는 신앙(삼상 1장 17-2장 11절) (0) | 2019.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