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190428)말씀을 온전하게 받아들이십시오(삼상 3장 11-21절)

청명하늘 2019. 5. 1. 15:49

말씀을 온전하게 받아들이십시오

 

성경: 사무엘상 311-21(413)

찬송: 288(예수를 나의 구주; 204), 335(크고 놀라운 평화가; )

설교: 20190428.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전에 부교역자로 있던 한 교회에서 진행하는 것 중에 말씀 복 나누기라는 게 있었습니다. 여러분께는 좀 생소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씀 복이라는 말이 들어갔고, 또 교회에서 진행되는 것이니, 성경과 연결된 것이긴 하겠죠? 책갈피처럼 된 것에 성경 요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연말과 연초에 교인들이 각기 하나씩 뽑아 간직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요절을 뽑아서, 그에 해당하는 카드를 가진 분들에게 세수 비누 두 개 정도를 선물하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뽑히는 사람도 있고, 늦게 뽑히는 사람도 있지만, 한 해를 결산하면 모든 교인들이 빠짐없이 뽑히고, 선물을 받게 됩니다.

 

이런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물론, 교인들의 관심을 끌고, 작은 것이지만, 언젠가는 뽑힐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교회에 나오는 것도 나름 괜찮죠. 또 비싸거나 귀한 것은 아니지만, 선물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기 마련입니다. 이런 점에서는 나름 괜찮은 점도 있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이를 준비하고 대하는 자세를 보면 얼마나 진지한지 모릅니다. 말씀이 기록된 카드를 뽑기 전에 크게 긴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혹시 부담과 두려움을 주는 말씀을 뽑지 않을까, 또 자신이 원하는 복과 은혜를 약속한 말씀을 뽑지 못 할까를 염려하는 것이죠? 긴장하는 정도를 넘어서, 심지어 떠는 교인도 있고, 원하는 말씀을 뽑지 못 해 크게 실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뽑을 때 긴장하고, 원하는 것을 뽑지 못 했을 때 크게 실망하는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말씀 카드들 내용엔 큰 부담을 주는 경고와 저주의 말씀들은 없습니다. 경고와 저주의 말씀이 담긴 것을 뽑은 교인이 괜히 실망하거나, 신앙을 버릴 위험이 있죠? 그래서 아예 그런 말씀들은 없고, 모든 사람들이 겪는 문제들이 잘 풀리고 해결될 거라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들만 놔둡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긴장하거나, 결과에 따라 실망하는 까닭은, 연초에 뽑은 말씀 카드 하나에 따라 한 해의 삶이 달라지고 결정될 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뽑은 말씀 카드 하나가,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래서 그 결과대로 삶이 이루어질 거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주 잘못된 생각들입니다. 교인들이 자신이 뽑은 말씀 그대로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되었고, 여러 위험성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에게 잠깐의 즐거움과 위로와 평안을 주기 위해, 그렇게 말씀 카드를 만들고, 뽑고, 선물하는 것도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선택해서 받거나, 혹은 제비뽑기 식으로 주어진 게 아닙니다. 성경 어디를 봐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해서 받거나 버릴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4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우리의 모든 생각과 삶의 과정들에 들어오고, 바꾸고 고치도록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부담과 어려움을 주는 말씀들을 모두 제외시키고, 오직 평안과 기쁨과 소망만 주는 말씀만을 모아 놓았으니, 그것이 과연 신앙인들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까지 찔러 쪼개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반쪽짜리 말씀이 과연 살아 있고,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바른 믿음에 따라 살아감에도 고난과 아픔을 겪는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되새기게 하고, 고난 중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을 확인시켜 주어야 합니다. 반대로 악행을 저지르며 사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경고와 징계의 말씀으로 주어져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와 징벌을 받게 된다는 경고의 말씀을 통해, 잘못된 삶에서 돌아서서 선하고 거룩한 열매들을 맺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격려하고 위로하는 내용들만 모아놓은 카드들은 부족하거나 잘못된 것입니다. 만일, 교회는 열심히 다니지만,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이 격려하는 내용의 카드를 뽑았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죄에서 돌아서서 거룩하게 사는 것임에도, 위로와 격려의 카드를 통해 용기를 얻어 더 죄를 많이 짓고, 그러면서도 회개할 줄 몰라 멸망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부족하거나 잘못될 수 있는 다른 또 까닭은, 자신의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 말씀을 뽑을 수 있는데, 그것을 또 억지로 해석하다가 이상한 결론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혼 적령기에 있어서 결혼과 가정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겠죠? 그런 사람이 좋은 가정을 이룰 거라는 말씀을 뽑게 되면 얼마나 큰 위로와 기쁨이 되겠습니까? 결혼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고, 또 결혼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결혼을 못 하게 되면 혼란을 겪게 되고, 믿음이 흔들릴 수 있겠죠? 아니면 억지로 결혼하려다 안 좋은 결말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또 결혼했지만 아이를 못 낳은 부부가 자녀를 얻는다는 말씀을 뽑으면 기쁘고 기대가 되겠지만, 막상 그 해가 지나기까지 아이를 갖지 못 하면 실망감이 클 수밖에 없죠? 또 이미 70-80세가 된 분들이나, 혼자 된 사람이 자녀를 많이 낳을 거라는 말씀을 뽑으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낳는 것도 이상하고, 안 낳는 것도 이상한, 모순적인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교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복만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무조건 평안과 위로와 격려만 전해서는 안 됩니다. 듣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그것을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듣는 사람에게 상처와 슬픔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변질시켜서는 안 됩니다. 줄여서도 안 되고, 늘여서도 안 됩니다. 또 말씀을 읽고 듣는 사람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이면, 부담을 넘어 저주의 말씀이라도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나타나시고 말씀하시고, 엘리 제사장이 이를 전해 듣게 되는 과정이 나오는데, 이 속에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고 행하시는지, 사무엘이 말씀을 어떻게 전하는지, 그리고 말씀을 전해 듣는 엘리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잘 나오고 있습니다.

 

당시 엘리와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있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재판관과 제사장으로서 나름 괜찮게 일했습니다. 하지만 엘리를 이어 제사장이 된 두 아들은,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무시했습니다. 이것은 제사장으로서의 사역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무시하는 처사로 여겨졌습니다. 앞장서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가르치고 인도해야 하는 제사장들마저 하나님을 무시했으니, 하나님께서는 아예 백성들을 외면하십니다.

 

이런 때에도 순수한 믿음의 씨앗이 남아 있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 한 한나는 순수한 믿음으로 기도해서 아들을 얻게 됩니다. 아들을 낳으면 하나님의 일꾼으로 삼겠다는 약속대로, 젖을 떼자마자 곧 바로 하나님께 제사하는 회막으로 보냅니다.

 

이후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 번 부르실 때까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전혀 알아채지 못 했지만, 엘리 제사장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임을 알고, 듣겠다는 자세로 서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나타나시고 말씀하십니다. 다음 날 엘리 제사장은 사무엘을 불러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는지를 묻고, 사무엘은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하나 빠짐없이 전해 줍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엘리 제사장에게 어떻게 전하는지, 또 엘리 제사장은 사무엘을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우리가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본문 12절의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뜻하신 바대로 행하시고 이루십니다. 엘리 제사장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다 이루리라고 하신 것은 엘리 집에 내리시는 징벌과 심판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제사하는 엘리 가문을 하나님께서 직접 멸망시키겠다고 말씀하신 까닭은, 엘리의 두 아들의 죄가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인 엘리는 아들들의 죄를 알면서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너무 쉽게 지나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엘리와 그의 두 아들들은 제사장이라, 말씀을 읽었을 것이고, 그 누구보다도 말씀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자기들이 잘되고, 성공하고, 평안하고, 복을 받는다는 말씀들을 즐겨 읽고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성공과 번성의 복을 주시지 않고, 저주와 멸망으로 벌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벌과 저주를 나누시는 기준은, 그 사람이 무엇을 읽느냐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믿고,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위로와 격려와 용서의 말씀을 아무리 많이 읽고, 또 그런 말씀들을 아무리 많이 뽑고 가지고 다녀도, 여전히 죄와 멸망의 길대로 살면, 하나님께서는 벌하시고 멸망시키십니다. 비록 경고와 고난의 말씀 카드를 뽑거나, 그런 두려움이 크더라도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자녀에게는 반드시 복과 생명의 길로 이끄십니다.

 

말씀에 대해 배울 수 있는 두 번째 자세는 사무엘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엘리의 도움을 받아, 자신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을 뵙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말씀이 엘리 제사장의 가문에 대한 위로와 격려의 내용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 무엇으로도 엘리 가문을 용서하지 않으시고, 철저히 벌하시고 멸망하시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다음 날 엘리 제사장이 사무엘을 불러서,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셨는지를 묻습니다. 사무엘로서는 얼마나 곤란하겠습니까? 자신이 스승으로 섬기는 엘리가 질문하니 답하긴 해야 하는데, 사실 대로 말하자니 너무 무서운 내용이었습니다. 숨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말하라는 엘리의 부탁도 있었지만, 18절의 사무엘이 그것을 그에게 자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라는 말씀처럼, 사무엘은 전혀 숨기거나 줄이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그대로 엘리에게 전해 줍니다.

 

사무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어서 전해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듣는 사람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듣는 사람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줄이거나 늘이지 않고, 변질시키지 않고,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말씀을 전하는 이의 가장 큰 사명이고 의무입니다.

 

말씀에 대해 마땅히 가져야 하는 세 번째 자세는 엘리 제사장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엘리는 재판관과 제사장으로서 오랜 세월 동안 일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신에게는 단 한 번도 하나님이 나타나시거나 말씀하신 적이 없는데, 새파랗게 젊은 사무엘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것도 인간적인 기준으로 보면 기분이 상할 일이죠?

 

그런데 사무엘을 통해 전해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은 자기 가문을 완전히 멸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럴 때 웬만한 사람이었으면, 온갖 저주와 불평의 말들을 쏟아냈을 것입니다. 사무엘에게 네 까짓 게 뭔데?” “네가 뭘 알아서, 그런 소리 하냐?”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모르고, 그래서 잘못 들어서 그런 엉터리 소리나 하고 있다며 저주하며,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 시간들이 얼마인데...” 하며, 공로를 앞세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는 사무엘을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18절 뒷부분에서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고 인정합니다. 두 아들의 죄를 바로잡지 못 한 자신의 죄도 인정하고, 이 때문에 그 무엇으로도 용서받지 못 하고, 멸망당할 것이라는 말씀에 대해서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사용하는 말로 하면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삶의 행적은 전혀 상관하지 않고, 그저 잘되고, 원하는 대로 되고, 복된다고 하면 좋아하는 게 인간의 당연한 마음입니다. 죽을죄를 짓고, 온갖 악행을 저질렀어도, 그에 합당한 죄와 대가를 받는다고 하면 싫어합니다.

 

하지만 엘리는 자신의 가정이 잘된다거나,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약속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말씀으로 인정하는 게 아니고, 오히려 자신과 아들들의 죄가 너무 커서 용서받을 수 없고, 멸망당할 것이라는 저주를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아들들의 죄를 고치지 못 한 죄 때문에 불행한 최후를 맞이하지만, 그럼에도 엘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자세를 우리에게 잘 보여줍니다.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들이 많습니다. 예배, 기도, 찬양, 헌신도 중요합니다. 또 신앙의 성장을 위해 기적을 체험하는 것도 좋습니. 방언이나 병이 낫는 치유의 은사 등 성령의 은사를 행하거나 체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적이 우리를 영원한 삶으로 인도하지 못 합니다. 방언의 은사나, 병이 낫거나 다른 사람의 병을 낫게 하는 치유의 은사가 우리를 구원하지 못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말씀대로 사는 것만이 이 땅에서의 삶과, 이후에 있을 영생까지 보장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길과 죄에서 철저히 멀어지고, 성경과 설교를 통해 전해지는 모든 말씀을 받아들이며, 더불어 하나님께서 복 주실 만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이 땅의 삶도 하나님의 손길에 인도되어 더욱 은혜와 복이 넘치고, 더불어 이후에 주어질 영원한 삶도 받아 누리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