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190512)말씀을 기반으로 삶을 세워가십시오(삼상 4장 12-22절)

청명하늘 2019. 5. 12. 14:48

말씀을 기반으로 삶을 세워가십시오

 

성경: 사무엘상 412-22(414)

찬송: 337(내 모든 시험; 363), 204(주의 말씀 듣고서; 379)

설교: 20190512.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30,40년 전 우리나라 기독교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하면 차이가 많습니다. 여러 차이들이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기도원 문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도 곳곳에 기도원이 있고, 기도원에 찾아가는 신앙인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규모와 열기로 비교해 보면 차이가 큽니다. 통계로 정확하게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예전이 훨씬 크고 대단했습니다. 기도원에서 집회를 열면, 자동차로 몇 시간 거리에 있는 사람들까지 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며칠 동안 기도원에서 숙식하며 기도하며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교단이나 연령이과는 상관없이 참여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기도원의 영향을 꽤 많이 받았습니다. 물론 당시 기도원 집회에 대한 관심이 컸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저희를 가르친 분 중엔, 수년을 기도원장 밑에서 생활했던 분이 있었습니다. 이분이 기도원에서 보고 배운 것을 저희에게도 가르치고, 또 기도원으로 데려갔으니, 그 영향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기도원의 규모와 영향력이 크게 줄었습니다. 예전엔 기도원에서 집회를 한다면, 몇 백 명은 당연하고, 몇 천 명이 모이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직접 찾아보지 않았습니다만, 기도원에 모이는 사람도, 집회의 규모와 관심도 크게 준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특별히 관심을 가진 사람들 외에는, 무슨 기도원이 어디에 있는지, 무슨 집회를 언제 여는지조차 모를 정도입니다.

 

기도원이 우리나라 기독교에 미친 영향은 아주 큽니다. 신앙생활이 쉽지 않습니다만, 무엇보다도 첫걸음이 어렵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먹고 사는 일에 바쁘고 지치기 십상입니다. 이것은 언제나 눈에 가까운 거라, 크게 보이고, 손에 잘 잡힙니다. 이에 반해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은 언제나 멀고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귀로 들을 수도 없고, 몸으로 느낄 수도 없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는 계기를 만드는 게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기도원에 가면, 귀신이 주님의 이름으로 물러가는 모습, 여러 질병과 장애를 가진 이들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방언의 은사의 은사 등 교회에서 쉽게 체험할 수 없는 은사들을 기도원에서 보고,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을 인정하고, 믿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왜 몇 십 년이 지난 후에 기도원에 대한 열기와 관심이 지금처럼 크게 떨어졌겠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믿음의 기초를 잘못 세웠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기초란 시작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기반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개집이나 작은 창고 같은 것을 지을 때는 기반이라는 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땅을 팔 필요도 없고, 밑의 기반을 다질 필요도 없습니다. 말 그대로 대충 만들어 세우면 됩니다. 하지만 크고 오래 갈 건물을 세우려면 반드시 기반을 다져야 합니다.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높은 건물로 여겨진 63빌딩이 있죠? 이 건물의 높이가 249미터인데, 땅 아래 기초는 50미터라고 합니다. 이 건물을 세우는 데 걸린 시간이 55개월인데, 위로 보이는 높이의 1/5밖에 안 되는 기초에 들인 시간은 전체 공사 기간의 절반인 23개월이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롯데타워인데, 높이가 555미터라고 합니다. 이렇게 크고 높은 건물을 튼튼하게 지으려면 기초공사가 가장 중요하겠죠? 이에 대한 영상을 찾아봤는데, 보면서도 규모가 워낙 크고 방대해서 제 머리로서는 잘 계산 안 될 만큼 수많은 자재와 시간과 수고가 들어갔습니다.

 

겉에서 보면, 언제나 땅 위로 높이 솟은 부분만 보이고, 땅 아래에 있는 기반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땅 위로 솟은 부분은 사람들의 마음과 눈을 즐겁게 합니다. 땅 아랫부분을 준비하고 만들어 갈 때는, 시간과 노력은 많이 들어가지만, 너무 느리고 답답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럼에도 전체 건물로 보면 일부에 지나지 않은 기반을 다지는 일에 가장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는 까닭은, 그게 건물의 안전과 생명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에서도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 기도의 능력과 은사와 기적을 체험하는 것들도 물론 필요합니다. 우리는 온갖 고통과 슬픔을 겪는데, 우리로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워낙 많아서, 시험에 들고 믿음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의 기초를 튼튼히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의 기초란 무엇인가요? 마태복음 724절에서 예수님은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알고, 행하는 것이 곧 믿음의 기초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온갖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떡 몇 개와 물고기 두어 마리로 수많은 사람을 먹이는 기적도 행하셨습니다. 온갖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도 모두 고쳐 주기도 하셨습니다. 귀신에 들린 이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기도 하셨고, 물 위를 걷기도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 어디에서도, 기적을 행하는 것이나, 능력을 행하는 것이나, 능력의 은사를 체험하는 것이 믿음의 기초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기적과 능력을 행하신 것도, 병과 귀신과 배고픔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불쌍해서이지, 이를 통해 그들이 살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온갖 기적과 능력과 은사를 체험한 이들도 결국 주님을 버리고 도망한 것이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도원은 이런 의미에서 보면 기초를 잘못 닦았습니다. 기도원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려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들을 수 있는 능력에 집중했습니다. 이것이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원으로 모여들고, 며칠씩 숙식하며 참석하며, 금식하며 기도하게 만드는 까닭이기도 했습니다.

 

사람의 눈에 신기해 보이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그러나 말씀을 통해 믿음의 기초가 다져지지 않았으니, 그 믿음과 열심이 오래 갈 수 없습니다. 그 믿음이 튼튼할 수 없습니다. 기도원에서 온갖 기적을 보고, 체험한다 할지라도, 바깥 세상에 나오면, 다시 시험과 시련을 겪게 될 터인데, 믿음의 뿌리가 얕고, 기초가 잘못되어서 쉽게 흔들리고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으로 믿음의 기초를 다지는 것은, 건물의 기초를 다지는 것과 같아서, 잘 보이지도 않고, 그 과정이 느리고 답답하고 재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기초를 다지지 않은 믿음이라는 게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에게서도 확인됩니다. 열두 제자들도 직접 기적과 능력을 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큰 고난이 오자,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믿음의 기초가 튼튼하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믿음의 기초를 튼튼히 세우지 못 한 엘리 제사장과, 그 결과로서 그 가문에 어떤 저주와 징벌로 임하는지 나오고 있습니다.

 

블레셋이라는 민족이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에 맞섰지만, 첫 번째 전투에서 지고 말았습니다. 패배의 원인을, 언약궤를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다음에는 언약궤를 전쟁터까지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계산과는 달리, 첫 번째 전투보다 훨씬 크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도 문제지만, 싸움에서 이기겠다며 가져왔던 언약궤마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내용이 이어집니다.

 

이 전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겨우 살아남은 한 사람이 죽을힘을 다해서 엘리 제사장이 있는 곳까지 달려와서 싸움의 결과를 알려주었습니다. 크게 패했다는 것, 엘리의 두 아들이 죽었다는 것, 그리고 언약궤까지 빼앗겼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듣던 엘리 제사장이 받은 충격이 너무 심해서, 앉아 있던 의자에서 넘어지고, 목뼈가 부러져 그만 숨지고 말았습니다.

 

엘리 가문의 비극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의 며느리가 임신하고 있었는데, 이 모든 소식을 듣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급하게 아이를 낳게 되지만 그만 숨지고 말았습니다. 하루 이틀 사이에, 한 가정의 아버지와 두 아들과 며느리가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엘리가 죽는 과정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죽을 때의 나이가 98세로서, 나이로 눈이 어두워져서 앞을 보지 못 했지만, 40년 동안 사사로 활동했다는 것이고, 그리고 몸이 몹시 비대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이 엘리의 마지막 모습을 상세하게 기록한 까닭은, 엘리의 삶은 기초가 잘못 쌓아진 것이고, 그 결과를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엘리는 98세까지 살았습니다. ‘진흙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처럼,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 중 하나는 오래 사는 것입니다. 수명이 늘어난 요즘에도, 98세를 살았다고 하면, 오래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만한 세월입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몇 천 년 전에 98세를 살았다면, 특별하다 할 만큼 장수의 복을 누린 것입니다.

 

엘리가 몸이 비대했음을 통해서는, 평생 좋은 음식을 많이 먹고 잘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이야 건강 때문에, 힘들게 살을 빼려고 노력합니다만, 20,30년 전만 해도 잘 먹어서, 배가 나오는 것이 부의 상징과 매력으로 여겨졌습니다. 바꿔 생각하면, 비대할 만큼 좋은 것 많이 먹고 사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는 당시 사람으로서는 보기 드물 만큼 몸집이 거대했습니다. 그만큼 좋은 것 잘 먹고 잘 살았다는 것입니다.

 

사사로 40년 동안 활동했다는 것도 이런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사라는 말이, 요즘 우리가 사용하지 않는 말이고, 또 그 뜻도 어렵습니다만, ‘재판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요즘의 재판관과는 지위와 권력은 전혀 다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었습니다. 왕은 없어도, 위기가 찾아올 때 지도자가 있어야 하죠? 이때 활동한 사람들이 바로 사사입니다. 요즘처럼 판사 정도가 아니라, 최고 지도자의 역할을 담당하던 자리입니다. 그래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는 부분을, 영어 성경에서는,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이끌었더라”(NIV)고도 하고,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재판했다고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이 정도면 엘리의 삶이 어떤 것처럼 보입니까? 각자 바라는 것들이 다를 수 있지만, 전체로 보면 몇 가지로 추려질 것입니다. 오래 사는 것, 부자가 되어 잘 먹고 사는 것, 그리고 출세해 많은 사람을 이끌어 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엘리는 가장 성공한 사람, 원하는 것을 모두 갖고 누린 사람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엘리의 마지막 모습은 어떤 것 같습니까? 인생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른 결론을 내리겠지만, 엘리 개인도 그렇거니와, 엘리 가문을 봐도 성공해서 부럽기보다는, 오히려 안타깝고 불쌍해 보입니다. 성경에서 엘리의 마지막 모습을 상세하게 기록한 까닭도, 엘리가 가장 높은 자리에서, 온갖 좋은 것들을 가장 많이 갖고 누렸음에도, 실패하고 저주받았음을 말씀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엘리 자신은 나름 신실하게 일하고, 사역을 잘 감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반으로 인생을 세우고 만들어 가지 못 했습니다. 제사장과 사사라는 직분에는 열심히 했고, 언약궤를 귀중히 여기긴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은 그 무엇으로도 나타나거나 말씀하지 않으셨고, 엘리는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두 아들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을 기초로 닦았습니다. 무엇을 중심으로 삼고 있습니까? 혹시 좋은 것, 많은 것 갖고 누리며 살고자 하는 욕망을 중심으로 삼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보다는 좀 낫지만, 엘리처럼, 주어진 일에 대해서는 나름 노력하나, 하나님의 말씀과 뜻보다,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집중하며 살고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뜻 이외의 그 어떤 것으로 기초를 쌓으면, 비록 가장 높이 오르고, 가장 많이 가졌다 하더라도, 그 무너짐이 심히 클 것입니다. 엘리의 가문이 온갖 좋은 것들을 다 갖고 누렸음에도, 하루아침에 저주의 중심에 선 것처럼, 처참하게 무너지고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라는 반석 위에 인생의 기초를 세워 나아가면, 조금 덜 가진 것 같고, 덜 누린 것 같고, 좀 낮은 것 같으나 그 결국은 하나님의 손에서 높이 설 것입니다. 하나님의 칭찬은 물론이고,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자랑하실 만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 과정은, 건물의 기초를 쌓는 것처럼, 우리의 입맛을 자극하지 못 합니다. 시간은 오래 걸리고 힘들고 지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기초로 세우는 연습과 실천이 없으면, 그 위에 무엇을 쌓고, 아무리 높이 쌓은들 무너짐이 심히 클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라는 반석에 우리의 삶을 세워 가면, 그 무엇이 오고, 무엇이 와서 유혹해도, 흔들림 없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과 구원을 향해 곧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엘리와 그 가문의 모습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거짓되고, 덧없이 무너질 것들 위에 인생을 세워가지 말고, 변치 않고, 절대 무너지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과 계획 위에 삶의 기틀을 만들어 감으로써,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구원과 영생을 받고, 이 땅에서도 신실한 자녀, 그 안에 사는 자녀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을 누리며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