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190519)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십시오(삼상 5장 1-12절)

청명하늘 2019. 5. 19. 15:05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십시오

 

성경: 사무엘상 51-12(415)

찬송: 400(험한 시험; 463), 545(이 눈에 아무 증거; 344)

설교: 20190519.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정확한 시기는 확인이 잘 안 됩니다만, 2017년에 전기밥솥을 들고 파출소를 찾은 할머니 사연이라는 이야기가 인터넷 기사에 올라왔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천안의 한 파출소 앞에서 한 할머니가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한 동안 고민하다 파출소에 들어섰는데, 손에는 새 것처럼 보이는 전기밥솥이 들려 있었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다 입을 여시고, “얼마 전에 시장에서 전기밥솥을 샀는데, 이게 고장이 났는지 작동이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는 겁니다.

 

이 할머니는 산골 오지 마을에 혼자 살고 있는데, 얼마 전에 큰맘을 먹고 전기밥솥을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쌀을 씻어 넣고 전기를 꼽고 아무리 기다려도 밥이 안 된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3일이나 굶고 있다가 먼 거리를 걸어서 파출소로 찾아오셨다는 겁니다. 전기밥솥이 없을 때도 밥을 해 드셨을 테니, 전기밥솥이 고장나서 3일이나 굶으신 건 아니겠죠? 아마 가난한 살림에 어렵게 큰돈을 들여서 전기밥솥을 샀는데, 밥이 안 되니 너무 속상해서 식사를 못 하신 것 같습니다.

 

새로 산 전기밥솥이 고장났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즘엔 그 가게로 가거나, 아니면 서비스 센타에 가면 고쳐주는 것은 당연하고, 새 것으로 바꿔 줄 것입니다. 하지만 몇 십 년 전에는 AS라는 개념이 별로 없거나, 크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죠? 이 할머니는 연세가 많아서 이런 것을 잘 모르니, 본인 혼자 가면 안 바꿔 줄 것 같고, 경찰관이 함께 가주면 바꿔줄 것 같아서 그렇게 부탁한 것입니다.

 

이 할머니의 사정을 들은 경찰관들이 할머니의 고민을 해결해 드리기로 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기밥솥에 물을 넣어 끓여봤더니 정상적으로 작동됐다고 합니다. 새로 산 전기밥솥은 고장났던 게 아니라, 할머니가 전기밥솥 사용법을 몰라서 밥이 안 되었건 겁니다. 그래서 경찰들이 할머니를 집에 모셔다 드리고, 밥솥 사용법을 제대로 알려드렸다는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시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우리 교회에서도, 몇 번 그런 적이 있죠? 전기밥솥에 쌀과 물을 넣고, 전기를 연결 안 했다든지, 아니면 전기코드만 연결시켜 놓아서 밥이 안 된 적이 있습니다. 쌀과 물을 넣고, 전기를 연결시켰으면,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죠? 요즘의 전기밥솥은 밥만 하는 게 아니고, 보온도 하고, 밥도 잡곡, 보리밥, 현미밥, 죽 등 다양한 종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쌀과 물을 넣은 다음에는, 밥을 할 것인지, 죽을 할 것인지, 보온만 할 것인지, 또 밥을 하려면 어떤 종류를 할 것인지 선택하고 단추를 눌러야 합니다. 쌀과 물을 넣어놓고, 전기를 연결했지만, 필요한 단추를 누르지 않으면, 3시간이 아니라 며칠이 지나 쌀이 상하는 한이 있더라도 밥은 안 됩니다.

 

전기밥솥의 기능도 크게 발전했죠? 이렇게 전기밥솥의 다양한 기능까지 더해져 편해지긴 했습니다만, 그만큼 사용법은 복잡해졌습니다. 예전엔 전기만 연결하고, 단추 하나만 누르면 밥이 되기도 하고, 보온도 되었습니다. 백미나 잡곡이나 죽을 선택하는 것도 없고, 말 그대로 밥을 짓는 것이 다였습니다. 그 이전의 밥솥은 밥만 되고, 보온마저 안 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엔 워낙 많은 다양한 선택이 있고, 그만큼 연세 많은 분들이 사용하기엔 어려움이 있습니다. 전기밥솥을 들고 파출소를 찾은 할머니도 이런 것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경우입니다.

 

이 할머니의 경우에서처럼, 밥솥에 대해 잘 알고, 사용법을 잘 익히면 이것만큼 편한 것이 없습니다. 가스나 나무로 밥을 하려면, 불의 세기를 보면서 조절해야 하고, 시간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렇게 해도, 밥을 따뜻하게 보관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쌀을 씻고, 물만 붓고 단추를 누르면, 밥솥이 알아서 끓이고, 뜸을 들이고, 또 뜨겁게 보관할 수 있습니다. 밥솥의 기능을 알고, 사용법을 제대로 익히면, 우리의 일상을 아주 편하게 됩니다.

 

그러나 만일 밥솥에 대해 잘 모르고, 사용법을 모르면, 이 할머니의 경우처럼, 돈만 낭비시킨 것이 되고 맙니다. 아무리 좋은 기능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고장나서 밥을 할 수 없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는 것이 됩니다. 좋은 기능이 많은 게 오히려 단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뜻을 알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좋은 것들로 채워주십니다. 삶의 모든 과정과 결과까지 맡기고, 평안히 따라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되십니다. 이 땅의 삶은 물론이고, 이 다음에 있을 삶까지, 안심하고 맡길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약속하신 것은 절대 어기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해 잘 모르면, 먼저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게 됩니다. ‘믿음을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가장 밑바탕엔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말 그대로 믿고 의지할 만한 대상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맡겨야 할 때를 생각해 보면,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습니다만, 몇 천 원짜리 가방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맡길 수 있죠? 이럴 때는, ‘혹시 저 사람이 가져가도 몇 천 원 손해 보고 말지하는 계산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화기와 신분증과 돈이 들어 있는 가방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안 맡기겠죠? 믿을 만한 사람인지, 그렇지 못 한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현금이 몇 천 만원이나 값비싼 귀금속이 들어 있는 가방을 맡긴다면, 훨씬 더 조심하고, 잘 알고, 또 믿을 만한 대상에게만 맡길 것입니다. 돈이나 귀금속보다 더 중요한 몸을 맡길 때도 마찬가지죠? 몸이 아프고 병들면, 능력이 뛰어난 좋은 의사를 찾고 만나려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까? 좋은 병원, 좋은 의사를 찾아 하루 이틀 걸리는 것도 감수하고, 검사하고, 치료하는 데 큰돈을 들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우리의 몸과 건강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가진 그 어떤 것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귀합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귀중품이 아무리 많아도, 죽으면 아무것도 가질 수 없고, 누릴 수 없습니다. 또 이후에 주어질 삶은 영원하고, 그래서 귀합니다.

 

귀한 것들을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바르게 알지 못 하면, 이 땅의 삶과 이후의 삶도 주님께 맡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알아야,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고, 하나님을 잘 모를수록 엉뚱하게 믿거나,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리고 이를 제대로 알지 못 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그래서 어떤 결과를 맞이하는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해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첫 번째 전투에서 패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회막에 고이 간직되어 있던 언약궤를 전쟁터까지 가지고 왔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믿지 않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패한 까닭이, 하나님의 언약궤가 전쟁터에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계산은 틀렸습니다. 전쟁에서 이기지 못 할 뿐만 아니라, 가져온 언약궤마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당시는 십자가도 없고, 지금처럼 신구약 성경이 모두 기록되지도 않은 때라서, 언약궤는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하심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이기고자 하는 욕심에 함부로 전쟁터에 가지고 갔다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전쟁에 패하고, 당시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던 엘리가 죽고, 그의 두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비느하스의 아내는 아이를 낳고,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짓고 죽었습니다. 그 뜻은 어디에 영광이 있는가?’입니다. 그 동안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하셨던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떠나셨고, 하나님의 선택과 보호를 받던 이스라엘 민족이 버림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블레셋 민족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전리품으로 빼앗고, 자기들이 섬기는 다곤 신전에 놓았습니다. 당시는 전쟁의 승패가 자신들이 섬기는 신에 따라 갈린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과, 다곤 신을 섬기는 블레셋이 전쟁하면, 하나님과 다곤 신이 싸우고, 두 신 중 강한 신을 섬기는 쪽이 이긴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전쟁에서 승리한 블레셋 사람들은 기고만장했습니다. 하나님은 전쟁과 산의 신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하나님을 다곤 신이 이겼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무서울 게 없습니다. 승리에 도취되어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자랑스레 다곤 신전에 놓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신전에 찾아간 블레셋 사람들은 전혀 뜻밖의 광경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 다곤 신상이 넘어져 있습니다. 언약궤도, 다곤 신상도 상징물이지만, 자신들이 섬기는 신상이 넘어져 있다는 것은 블레셋 사람들로서는 기분 좋을 리 없습니다. 다시 세워놓고 다음 날에 가서 보니, 이번엔 다곤 신상의 머리와 두 손목이 끊어져 몸뚱이만 남아 있었습니다.

 

가끔은 이해 안 되는 이상한 일들이 갑자기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세워놓은 다곤 신상이 한 번은 넘어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한 번 넘어져서 세울 때는 훨씬 더 견고하게 세웠을 것인데, 이것이 이틀 사이에 두 번이나 반복되었다는 것은, 이게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뜻합니다. 다곤 신이 하나님을 이겨서 전쟁에서 이긴 게 아니라는 것과, 하나님의 무서움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른 지역으로 옮겨놓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언약궤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는 그 지역에 극심한 종기와 재앙을 내리셨고, 이 때문에 블레셋 사람들은 큰 두려움에 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에서 패하게 하시고, 그러면서도 왜 다곤 신전에서는 다곤 신을 넘어뜨려 머리와 팔다리가 잘린 채 엎어지도록 하셨겠습니까? 왜 언약궤를 옮기는 곳마다 여러 재앙을 내리셨습니까? 이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 있습니까?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그 어떤 신보다 강하시고, 세상의 모든 것을 결정하시는 분임을 알려주십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다곤 신이 강해서, 이스라엘을 이기고, 하나님을 상징하는 언약궤까지 빼앗았다 생각했지만, 이들의 계산이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다곤 신은, 엎어질 수밖에 없는 모형에 불과합니다. 머리라도 있어야 뭔가를 판단하고 작전을 짤 수 있고, 팔이라도 있어야 싸울 수 있는데, 하나님 앞에서 팔과 목이 잘릴 만큼 다곤 신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모든 것을 직접 결정하고 행하는 분입니다. 수많은 이들이 섬기는 다곤 신이라 하더라도 부러뜨리시고,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욕하는 이들에게 견딜 수 없는 재앙을 내리실 만큼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강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에서 패하게 하셨겠습니까? 언제나 이스라엘이 이기도록 하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더 잘 섬길 것이고, 하나님을 알지 못 하던 사람들도 알고, 하나님을 믿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하나님이 이스라엘로 크게 패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상징하는 언약궤마저 빼앗기도록 하신 까닭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그저 제사만 잘 지내고, 언약궤를 잘 보관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함께하신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른 신을 섬기는 것처럼, 화려하게 갖추고, 많은 것 바치면 되는 줄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상을 극도로 싫어하시지만, 이에 못지않게 하나님을 우상 섬기듯 하는 것도 극도로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평소에는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며 살면서도, 언약궤만 가지고 오면 전쟁에서 이길 거라는 생각 같은 것을 너무 싫어하십니다.

 

지금 우리의 삶과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따라 사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일 이런 것을 뒤로하면서도, 어려움을 당할 때, 성경을 가지고 다니면 하나님이 지켜주실 거라는 생각, 교회에 나와 예배하고 헌금만 하면, 하나님이 무조건 기쁘게 받아주시고, 응답해주실 것이라는 생각은 하나님은 극히도 싫어하십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우상들은 이런 것을 용납하거나, 속아 넘어갈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런 우상과 다르십니다. 그런 것을 좋아하지도, 속지도 않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모습이고, 그래서 신앙생활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전기밥솥에 대해 모르고, 작동하는 방법을 모르면, 그것이 아무리 첨단 기술과 편의성을 가지고 있다 한들, 고장난 것과 다를 바 없고, 헛돈 쓴 것과 다르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서 벗어난 모든 것은, 시간과 돈과 땀의 낭비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들을 지켜 행하면,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한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이렇게 강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의 삶에 함께하시면, 그 무엇이 다가오더라도 넉넉하게 이길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삶엔, 복과 은혜와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삶엔 잔잔한 물가처럼 평안이 계속될 것입니다. 모든 어려움과 아픔 속에서 하나님이 친히 건져 주시고, 평안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우상 섬기듯 하는 모든 죄악을 기억하고, 그 어떤 모습이라도 철저히 버리고, 오직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받음으로써, 이 땅에서의 삶도, 이후에 주어지는 영혼의 삶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과 평안과 기쁨을 날마다 누리며 살아 나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