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210214)분별의 능력을 가지십시오(삼하 10장 1-19절)

청명하늘 2021. 2. 14. 13:40

분별의 능력을 가지십시오

 

성경: 사무엘하 101-19(476)

찬송: 461(십자가를 질 수 있나), 420(너 성결키 위해)

설교: 20210214.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몇 년 전에 섬에 며칠 갔다가, 뜻밖으로 북에서 온 젊은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요즘 TV나 인터넷을 통해서 탈북자들을 보는 건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북한에서 고위관리로 있던 사람이 탈북해서, 남한의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북한 출신을 직접 만나고 이야기해 본 적은 처음이라서 아주 이상했습니다.

 

그 동안도 스치듯 만난 경우들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북한 사람이라고 해서 생김새가 우리와 다른 것도 아니고, 말투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지라, 모른 채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만나게 된 상황이 편하고 좋은 자리가 아니라서 더 그랬는지, 북한 출신의 젊은 사람을 직접 만나 이야기한 일이 너무 낯설게 여겨졌습니다.

 

그 동안 북한을 탈출해 남쪽에 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남서부 해역에 있는 섬까지 올 수 있다는 사실이 실감되지 않아서, 탈북해서 남한에 온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여러분은 탈북자들의 수가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20년 동안의 자료를 보니, 매년 많게는 3,000명 가까이 되고, 적어도 1,000명이 넘어서 33,000명이 넘었습니다. 탈북자들이 모두 우리나라로 오는 건 아니고, 남한으로 온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생활한다고 합니다.

 

매년 1~3,000의 북한 사람이 남한으로 와서 산다는 이야기를 들으시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한편으로는 염려되죠? 왜 그렇습니까?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수가 와서 살아도 고민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동족이지만, 아직까지도 전쟁이 끝나지 않고 중지된 상대입니다. 그런데 북한 사람들이 이렇게 남한의 곳곳까지 오갈 수 있을 정도라면, ‘혹시...’라는 생각이 들어 걱정되죠? ‘매년 1,000명 이상이 온다면, 간첩이 탈북민으로 가장해, 간첩 활동을 하고, 유사시에는 적으로 돌변하면 큰일이겠다는 계산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탈북자들이 남한으로 오면 반드시 거치는 과정들이 있습니다. 기간이 조금씩 달라진다는데, 먼저는, 국정원과 경찰에서 보통은 6~7주 정도 조사합니다. 조사 중에 거짓 진술을 한 것이 밝혀진 경우엔 10주 이상을 조사합니다.

 

국정원과 경찰의 조사를 통과하면, ‘하나원이라는 곳으로 간다고 합니다. 이곳은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잘 적응해 살 수 있도록 훈련하는 곳입니다. 조사해서 간첩이 아니고, 순수하게 목적으로 탈출한 사람이라 밝혀지면, 남한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정착금까지 지원합니다.

 

한두 사람도 아니고, 이렇게 많은 사람을 조사하고, 훈련하고, 적응하도록 지원하는 과정까지 생각하면, 이에 들어가는 인력과 비용과 노력이 적지 않죠? 손해가 너무 큼에도, 이처럼 번거롭고,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반드시 거치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남한 사람으로서 우리가 가장 먼저 고민하고 염려하는 것처럼, 간첩이 섞여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사실 간첩이 탈북민으로 가장해 들어오지만 않는다면, 몇 주에 걸쳐 복잡하고 어렵고 번거로운 조사를 거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이게 비용과 인력을 아끼는 확실한 길입니다. 하지만 간첩이 탈북민의 무리 속에 끼어 들어와서, 남한에서 간첩활동을 펼친다면, 남한으로서는 얼마나 큰 손해고, 또 유사시에는 얼마나 큰 위협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말 그대로 탈북자인지, 간첩인지를 구별하려 큰 손해가 됨에도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노력을 기울입니다.

 

이처럼 우군과 적군을 구별하는 일피아식별이라고 하는데, 이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피아식별이 안 되면, 아군이라 믿고 의지했던 무리 속에 적이 있을 수 있고, 그 적이 나를 돕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나를 해칠 수 있습니다. 피아식별이 제대로 안 되면, 나에게 유익하고, 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우군과 아군을 내가 해치거나 없앨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사가 가장 분명하게 결정되는 군대에서 피아식별 과정을 훈련합니다. 기술과 능력이 좋을수록 좋은 일이지만, 그러나 피아식별이 안 되어 있으면, 오히려 더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최고의 능력을 갖춘 사람이 내 편이 아니라, 적이고, 내 가까운 곳에 머물러 있다면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전쟁이 일어나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죠? 생명을 걸고, 죽고 죽이는 전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고의 상당수가 바로 피아식별을 하지 못 해서 일어납니다. 전장에서는 죽고 사는 게 순식간에 결정될 수 있고, 그 짧은 순간에 누가 먼저 쏘느냐에 따라 모든 게 결정됩니다. 그러다 보니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긴장합니다. 쉽게 볼 수 없는 밤에는 더 그렇겠죠? 이럴 때 오인사고가 많이 일어납니다. 우리 편이 우리 편을 공격해 함께 망한 것입니다. 아군끼리 서로 공격하다가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안기는 일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습니다.

 

적과 싸우다 다치거나 사망했으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했다고 위로할 수나 있지, 같은 편끼리 서로 공격하다 망했다고 하면, 누구에게 하소연하고, 위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만큼 답답하고 손해되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는 오늘 본문에의 내용에서도 그대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이 인접해 있던 암몬 민족과의 싸움을 그리고 있습니다. 가까이 있는 나라일수록 화평보다는 갈등과 전쟁을 겪는 경우가 훨씬 많죠? 이스라엘과 암몬도 바로 곁에 있어 싸웠다고 하면 문제될 게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좀 달랐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있을 때, 암몬 족속의 왕이 죽고, 그의 아들이 왕을 이어받았습니다. 요즘도 한 국가의 원수가 사망했을 때는, 전쟁 중이 아니라면, 관례적으로 찾아가서 조문합니다. 본문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윗이 부하들에게, 암몬 왕이 죽었으니 조문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다윗이 보낸 부하들이 암몬으로 조문하러 갔는데, 암몬의 부하들은 자기 왕에게 정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이스라엘의 조문 사절이 조문하러 온 게 아니고, 조문을 핑계로 첩보 목적으로 왔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암몬의 새로운 왕이 조문단으로 온 이스라엘의 관리들의 수염 절반을 깎았습니다. 본문 당시 수염은 남자의 영광과 위엄을 상징하는데, 한 쪽의 수염만 잘랐으니, 이들을 보는 이마다 수치를 당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전통 의상은 통으로 되어 있는데, 옷의 가운데를 도려내어, 엉덩이가 드러나게 했습니다. 부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체면을 생명처럼 여기는 고위관리들에게는 죽음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조문하러 암몬으로 갔던 부하들이 그렇게 비참하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돌아오자, 다윗 왕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먼저는 조문단을 여리고 지방으로 보내서, 수염이 자랄 때까지 지내라고 명령했습니다.

 

암몬 왕과 부하들이 아무 생각이나 계산 없이, 이스라엘의 조문단에게 이렇게 부끄러운 짓을 저지르지는 않았겠죠? 당연히 전쟁이 있을 거라 계산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 힘만으로는 이스라엘과 싸워 이기기 힘들어서, 주위에 있는 여러 민족들로부터 군대를 불러들였습니다.

 

하지만 암몬 민족의 이런 계산과 판단은 결국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본문 마지막절 하닷에셀에게 속한 왕들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함을 보고 이스라엘과 화친하고 섬기니 그러므로 아람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다시는 암몬 자손을 돕지 아니하니라처럼, 이스라엘과 화친하고 섬기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는 다른 민족들도 다시는 암몬을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암몬이 이스라엘과 화친하고라는 말만 보면, ‘나라와 나라 사이에 다툼이 없이 서로 가까이 지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여기에서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싸움에서 패한 나라가 승리한 나라 앞에 무릎 꿇고 빌고, 해마다 귀한 진상품을 바쳐야 하는 굴욕적인 일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절에서 화친하고 섬기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암몬이 겪은 피해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주위에 있는 다른 민족이 암몬을 다시는 도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사람들을 전장에 보낸다는 건, 어찌되었든 피해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보내는 까닭은, 거기로부터 얻는 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계산으로 이스라엘과 싸우는 암몬을 도왔는데, 오히려 철저히 피해만 입었을 뿐만 아니라, 강대국이 된 이스라엘부터 미움을 받게 되었으니, 암몬을 도울 필요와 생각조차 없어졌습니다. 암몬으로서는 기대고 의지할 만한 힘이 없어진 것입니다. 당장만이 아니라, 이후를 보장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무엘하 8장에는, 다윗이 왕이 된 후 무찌른 적들이 여럿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암몬은 거기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민족들은 이스라엘과 사이가 나빴음에도, 암몬만은 사이가 괜찮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랬던 암몬 민족이 오늘 본문에서, 오히려 다른 민족들보다 더 나쁜 상황에 처하게 된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암몬 사람들이 피아식별을 제대로 못 했기 때문입니다.

 

다윗과 이스라엘 민족이 우군이었음에도, 암몬 왕과 신하들은 적으로 봤습니다. 암몬 왕이 죽어, 다윗 왕이 조문단을 보낸 까닭도 역시, 정탐해서 공격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순수하게 조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암몬이 다윗의 부하들에게 수치를 주었으니, 다윗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이스라엘로부터 공격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암몬이 이처럼 기울어지고 망하게 되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적군과 아군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 한 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군이 되어, 가장 큰 힘이 될 만한 이스라엘이었음에도, 오히려 적으로 간주해 수치를 당하게 했으니, 암몬이 실패하고 망한 까닭은 무엇보다도 피아식별을 제대로 못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것을 좋은 것으로 볼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하고, 나쁜 것을 나쁜 것으로 보고 버릴 줄 아는 안목과 결단이 필요합니다. 생명과 유익을 주는 것을 가까이 할 줄 알아야 하고, 죽음과 실패와 손해를 주는 것들을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앞날과 가족의 앞날이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먼저는 영혼과 영생이 세상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이를 위해 좋은 것을 선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영혼과 영생에 대한 관심을 거두고, 외면합니다. 요즘 전례 없는 전염병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만,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세상은 그렇게 흘러갈 것입니다. 눈에 보이고, 지금 당장을 즐겁게 하고, 손에 움켜쥘 수 있는 것들만을 좋아하고, 그 외의 모든 것을 버리며 삽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영혼과 구원과 영생이 얼마나 귀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영혼과 구원과 영생은 우리가 외면하고, 뒤에 두어야 하는 적이 아니라, 생명보다 귀하고, 다른 그 어떤 것보다 앞에 두어야 할 아군이고, 힘이고, 능력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이를 향해 끊임없는 발걸음을 내디뎌야 합니다. 이 땅의 삶만을 우군으로 여기고, 그래서 영혼과 구원과 영생을 외면하며 살면, 점차 기울어지고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불어, 피아식별을 일상까지 확장시켜야만 잘되고 평안한 수 있습니다. 피아식별이 반드시 사람에 한정된 것은 아닙니다. 이를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 하는 기준으로 확장시킬 수 있습니다. 아군, 우군처럼 나의 삶에 도움을 주는 게 있고, 나의 삶에 피해와 실패와 절망만 줄 수 있는 적군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피아를 잘 구별했으면, 유익한 것들에 힘써야 합니다. 피아를 구별하는 사람도 세상엔 많지 않지만, 그러나 좋은 것을 알고, 이를 위해 힘쓸 줄 아는 사람은 더더욱 적습니다. 나쁜 줄 알면서도, 나쁜 것을 버릴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람이 아주 적습니다.

 

두세 달 전에 고향에 있는 한 분이 부모님에 앞서 돌아가셨습니다. 작년 여름에 그분의 어머님이 제게 오셔서, 아들이 식사는 안 하고, 매일 술만 마셔서 너무 걱정이라고 하셔서 조언해 드렸습니다. 그렇게 술을 마시는 게 나쁘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쉽게 끊지 못 하다가,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좋은 것을 붙잡을 모르고, 나쁜 것을 버릴 줄 모르는 경우가 어디 이분뿐이겠습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도박이 될 수도 있고, 거짓말이 될 수도 있고, 분노일 수 있고, 한탕주의일 수도 있습니다. 또 누군가에게는 교만과 좌절감과 우울감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적입니다. 이런 것들이 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이런 것들이 왔을 때는 철천지원수인 줄 알고, 과감하게, 철저히 버려야만 우리와 후손들이 잘되고 평안할 수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속 암몬은, 다른 민족보다 훨씬 좋은 여건에 있었음에도, 피아식별을 잘못하는 어리석음 때문에 오히려 더 크게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 땅의 삶에도, 영혼의 삶에도 우리 편이 있고, 적이 있습니다. 가까이 할수록 좋은 것이 있고, 버릴수록 좋은 게 있습니다. 가까이할수록 나쁜 게 있고, 멀리할수록 나쁜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잘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것은 가까이, 나쁜 것은 모양이라도 철저히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기억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안목으로 선악을 잘 구별하고, 좋은 것만 더 가까이, 나쁜 모든 것을 철저히 버림으로써,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함께하시고, 날마다 복과 은혜와 평안을 누리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